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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선오 Mar 24. 2022

카네이션 카드에 담긴 마음

-  보따리 선생님 이야기

 아이들은 참 신기하다. 감정을 어찌 그리 잘 표현하는지 이미 어른이 된 나로서는 아이들의 그 능력이 부러울 때가 있다. 


 수업을 시작한 지 2주가 흘렀지만 햇빛 초등학교 학생들을 만난 것은 고작 나흘도 되지 않는다. 그 잠깐의 시간 동안 아이들은 금방 나를 따르고 좋아해 주었다. 그 벅찬 사랑에 고마우면서도 가끔은 미안한 생각이 들 정도다. 아이들의 솔직한 마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내가 늙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 그 사랑은 지구 어디쯤 있을 사랑의 저장고 한 귀퉁이를 확실히 채우고 있다는 것을 나도 분명히 알고 있다.


 언제 왔는지도 모를 봄이 소리도 없이 떠나고 금방 따뜻한 햇살이 뜨겁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5월이 되자 어버이날을 비롯한 여러 행사가 있었기에 나의 방과 후 수업에도 이벤트를 준비했다. 커다란 보따리 가방에 카네이션 카드 만들 준비물을 챙겼다. 평소 손재주도 좋고 만들기를 좋아하기에 간단한 재료들은 내 방 서랍에서 꺼내와도 충분할 정도다. 급하게 카네이션 꽃 접는 방법을 배워 아이들에게 보여줄 샘플카드를 만들었다. 생각보다 예쁘게 만들어진 카드를 들고 수업을 하러 가는 발걸음이 가볍다. 


 오늘의 수업이 끝나고 아이들과 카드 만들 생각에 내가 더 들떴다. 오늘따라 열심히 문제를 풀고 질문하는 아이들 덕분에 수월하게 수업이 끝났다. 수업이 끝나자마자 아이들에게 샘플카드를 보여주고 오늘 우리 이거 만들자며 웃으며 말하는데 아이들 반응이 영 시원찮다. 


 왜 그런가 했더니 학교 수업에서도 부모님께 드릴 편지 쓰기며 카네이션 만들기를 이미 했단다. 더구나 아이들이 가방에서 꺼낸 카네이션을 보니 클레이로 만든 무려 입체 꽃이다. 귀엽고 아기자기한 아이들의 카네이션을 보니 내가 준비해 온 카드 재료가 부끄러워졌다. 아이들은 이런 내가 불쌍해 보였는지 처음에는 시큰둥하다가 한번 만들어 보겠다며 재료를 달라고 한다. 


 그런 아이들의 마음 씀씀이가 고마워 예쁘게 만들어 보자며 아이들을 응원했다. 다행히 아이들은 만들기를 시작하자마자 언제 그랬냐는 듯 만들기에 집중한다. 샘플카드는 있지만 각자 카드 디자이너가 되어 자기만의 독특한 카드를 만들자고 했더니 정말 다양하면서 예쁜 카드를 만들기 시작한다. 자기만의 개성이 듬뿍 담긴 카드를 만들고 있는 아이들을 보고 있으니 오늘 준비하기를 참 잘한 것 같다. 


 아이들이 예쁘게 카드 만들기를 완성하자 이번에는 카드에 편지를 써보자고 했다. 어버이날과 스승의 날이 있으니 각자 원하는 사람에게 편지를 쓰자고 했더니 승훈이는 이미 아빠한테 편지를 썼다며 안 쓰겠단다. 그래서 그럼 엄마나 할머니께 쓰는 것은 어떻겠냐고 했더니 애꿎은 연필만 만지작거린다.


 “왜 그래? 쓸 말이 없어?”


 승훈이는 어색한 얼굴로 내 얼굴을 보더니 부끄러운 듯 말한다. 


 “어떻게 쓰는지 모르겠어요.”


 나는 처음에 승훈이가 엄마께 편지를 쓰려니 부끄러워서 그런 줄만 알았다. 하지만 알고 보니 승훈이는 자신의 마음을 글로 표현할 수가 없다. 나는 재빨리 연습장 공책을 하나 찢어 하고 싶은 말들을 해보라고 했다. 내가 대신 써준다는 것을 알자마자 나머지 친구들도 자기도 대신 써달라고 한다. 물론 아이들이 먼저 쓰게 하고 고쳐주는 것이 더 좋겠지만 아쉽게도 시간이 부족하다. 


 나는 아이들의 말을 하나씩 받아 적으며 미리 연습 편지를 써주었고 아이들은 내가 쓴 글을 보고 다시 적으며 자신만의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언젠가 이 아이들도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글로 적을 때가 오겠지. 그때가 될 때까지 내가 열심히 도와야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정신없이 아이들의 편지를 대신 쓰고 있을 때였다. 네 친구 중 유일하게 한글을 잘 쓰는 유라가 나에게 편지를 썼다며 가져왔다. 자기 혼자 글을 쓰는 동안 절대로 보지 말라며 그렇게 철두철미하게 보안을 지키더니 그 카드의 주인공이 바로 나였다. 


 수줍게 웃으며 혼자만 보라고 던져주고 간 카드에는 활짝 핀 카네이션 한 송이와 예쁘고 정성스러운 글씨의 고백이 가득했다. 선생님은 어떻게 그렇게 예쁘냐며 자신도 선생님을 닮아 예뻐지고 싶다는 말에 웃음이 터졌다가 너무도 사랑한다는 그 말에 괜스레 코끝이 찡했다. 코로나 때문에 매일 마스크만 쓰고 있으니 내 얼굴은 본 적도 없을 텐데 아이들의 마음의 눈에는 내가 예쁘게 보였다니 정말 고마운 일이다. 이처럼 절절한 사랑의 편지는 아마 앞으로도 절대 받지 못할 것이다. 


 직접 만든 귀한 카드를 내가 받아도 되겠냐니까 유라가 당연하다며 얼른 가방에 넣으란다. 그 마음이 고맙고 소중해 그날만큼은 내 보따리를 품에 꼭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내 방 서랍에 보물이 또 하나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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