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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선오 Apr 26. 2022

아이들의 비밀(2)

- 보따리 선생님 이야기

 햇빛 초등학교에서 수업을 시작한 지 몇 주일이 지났다. 아이들은 이제 내 수업에 익숙해져 공부가 끝나면 오늘은 뭘 하고 놀까 궁리부터 한다. 보통은 그림을 그리거나 초성 게임을 하니 편을 나눌 필요가 없었는데 갑자기 우리에게 게임이 하나 생겼다. 덧셈과 곱셈을 활용한 일종의 학습 보드게임이다. 이제 구구단을 외우기 시작한 아이들에게 도움이 될 것 같아 덩달아 나도 신이 났다. 


 그런데 게임을 시작하려고 편을 나누는데 주연이가 자기는 무조건 승훈이랑 한 팀을 하겠다고 우겼다. 유일한 남학생인 승훈이는 성격도 시원시원하고 친구들에게 양보와 배려도 잘 해주는 터라 아이들이 모두 좋아한다. 같은 반인 유라 역시 승훈이를 좋아해 같은 팀을 하고 싶다고 하니 난감하다. 그래서 공평하게 팀을 나누자고 했더니 주연이가 절대로 안 된다고 한다. 그래서 내가 왜냐고 물었더니 주연이의 대답이 당황스럽다. 


 “제가 트라우마가 있거든요.”


 평소 인터넷으로 영상 보는 것을 좋아하는 주연이는 가끔 아이들은 잘 사용하지 않는 어휘를 사용해 나를 깜짝 놀라게 할 때가 있다. 트라우마라는 단어를 쓰는 것도 놀랍지만 대체 무슨 일인가 싶어 물으니 뒤따라 나오는 대답은 더 충격스럽다. 


 “제가 1학년 때 여자애들한테 괴롭힘을 당했거든요. 걔네들이 저랑 안 놀아주고 매번 놀리고 그랬어요. 그래서 여자애들이랑 같은 팀 하는 건 싫어요.”


 너무도 담담한 듯한 말투에 내가 놀라 대답을 못 하자 옆에 앉아 있던 소은이가 말을 거든다. 


 “주연이 1학년 때, 애들이 주연이 많이 괴롭혔어요. 막 놀리고 같이 안 놀아주고.”


 “뭐라고 놀리는데?”


 “주연이 피부가 까맣다고요.”


 순간 나는 할 말을 잊었다. 


 주연이의 어머님은 필리핀 분이다. 사실 난 처음 주연이를 보고도 주연이가 다문화 가정 아이인 줄은 몰랐다. 그저 피부가 조금 까만 편이구나 싶었다. 그러다 수업 중 주연이가 먼저 엄마 얘기를 꺼냈다. 엄마가 필리핀 분이라 필리핀에 여행을 갔다 온 적도 있다고 말이다. 내가 묻지 않아도 자기가 아는 필리핀 얘기를 재미있게 해주는 주연이 덕분에 나도 필리핀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되었다. 주연이는 가끔 공부하기를 싫어하지만 그래도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은 분명히 말할 수 있는 친구라 나는 이 친구에게 무슨 문제가 있을까 싶었다. 그런데 따돌림과 괴롭힘을 겪었다는 말에 내 심장이 내려앉는다. 


 한 학년에 50명이 채 되지 않는 햇빛 초등학교에는 생각보다 많은 다문화 가정 친구들이 있다. 사실 내가 가르치는 유라도 어머님이 베트남 분이다. 말도 잘하고 글도 제일 예쁘게 잘 쓰는 유라가 다문화 가정에서 자란다는 것을 알았을 때는 조금 놀랐다. 아마 내게도 편견이 있었나 보다. 하지만 뭐든 똑소리 나게 잘하고 친구들과도 사이좋게 지내는 유라를 보고 있으면 설마 이 학교에서 다문화 가정이라는 이유로 따돌림이 있을 거라고는 전혀 생각 못 했다. 


 주연이는 1학년 때 있었던 일이라고 아무렇지 않은 듯 말했지만 내 마음이 무거워졌다. 더구나 문제는 그때의 충격 때문인지 주연이가 아이들과 어울리는 것을 아직도 어려워한다는 것이다. 주연이는 자기가 하고자 하는 것은 확실히 말할 수 있지만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일에 아직 서툴다. 같이 놀이를 할 때도 갑자기 엉뚱한 소리를 하거나 자기가 원하는 것만을 강요해 친구들을 당황스럽게 할 때도 있으니 말이다. 


 그래도 우리의 수업이 계속되면서 다행히 주연이는 유라, 소은이, 승훈이와도 잘 놀게 되었다. 서로 같은 팀을 하며 이기기도 하고 지기도 했으며 가끔은 같은 팀인 친구의 손을 잡고 폴짝폴짝 뛰기도 했다. 공부와 놀이를 같이 하며 주연이도 조금씩 닫혔던 마음을 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제일 먼저 도서실에 도착한 주연이는 가방에서 주섬주섬 루피 껌과 젤리를 꺼냈다. 자랑이라도 하는가 싶어 그냥 보고 있는데 수줍은 얼굴로 나를 쳐다보는 주연이가 친구들을 위해 준비했다고 한다. 얼른 친구들에게 주고 싶어 주연이는 계속해서 도서실 밖을 내다보았다. 


 그때, 승훈이와 유라의 담임선생님께서 오셔서 오늘 유라와 승훈이가 결석했다는 얘기를 전해주셨다. 이 아쉬운 얘기를 주연이에게 전하니 그 큰 눈망울에 슬픔이 어린다. 


 “주연아, 승훈이랑 유라가 다음 주에는 꼭 올 거야. 주연이가 기다렸다 다음 주에 주면 기뻐하지 않을까? 그때까지 기다릴 수 있어?”


 주연이는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준비한 간식을 가방 깊숙한 곳에 꼭꼭 숨겨 두었다.

 

그리고 한 주가 흘러 주연이와 승훈이가 왔을 때, 제일 먼저 뛰어가 가방 속에 숨겨 두었던 간식을 꺼내주었다. 친구들을 위해 선물을 준비하고 기쁘게 그 선물을 나누어 주는 주연이를 보고 있으니 가슴이 뭉클해진다. 


 요즘 아이들이 좋아하는 루피 판박이가 있는 풍선껌을 받자마자 아이들은 바로 먹겠다고 난리다. 내가 껌은 지금 먹으면 안 된다고 하자 아이들이 판박이라도 해보고 싶다며 조른다. 아이들이 야무지게 풍선껌을 뜯자마자 커다란 도서실이 달콤한 풍선껌 향으로 가득 찼다. 덕분에 내 하루도 하루 종일 달콤해진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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