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만정 Jul 13. 2022

회사원이라는 모험 : 회사와 퇴사에 관한 50개의 단어

단어 8: 0점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느냐고? 처음부터 잘못됐다. 입사 3  나는 이미 형편 없는 개발자가  것임을 확신했다. 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 사고 소식이  상황처럼 비현실적으로 들렸다.


내가 일반적인 개발 직무로 입사해서 대부분의 사원들처럼 기술교육 2달을 받았다면 그 과정에서 나는 아마 자연스럽게 탈락했을 것이다(실제로 그랬다는 사람을 본 적은 없지만). 어차피 자바 개발자가 아닐 신입사원 교육 비용을 아끼기 위해 팀과 회사에서는 내게 기술교육 전반부 이수만 시키기로 결정했다. 최소 이수 기준 점수 같은 건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용케 이클립스를 작동시키긴 한 것 같은데 그때까지도 내가 뭘 하는지 이해했다고는 말 못 하겠다. 늘 하던대로 강사가 하는 말을 열심히 들었다. 이해하려고 노력도 했다. 그러나 도서관 대출 시스템이라고 생각하고 속성을 만들어보라는 예제의 뜻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당시 강사는 내게 노력만큼은 정말 인정한다는 묘한(이라고 그동안 나를 위로해왔지만 이젠 받아들여야겠다. 명백한 말이었다. 정말 프로그래밍에 답 없는 친구라는) 코멘트를 남겼다. 그도 그럴 것이, 이 4-5주 동안 나는 빵점을 두 번 맞았다. 실기, 필기 할 것 없이 가망이 없었다.


태어나서 이렇게 격렬한 시련은 처음이었다. 이후 십년 동안 나는 베일에 가려져 있던 나의 자동사고와 무의식적인 학습 방식을 관찰할 최고의 환경에 처하게 되었다. 매일, 매순간 실패하는 환경 말이다.


그런 것 치고 나는 꽤 의연했다. 어처구니 없는 점수에 놀랐지만 아직 여지가 있다고 생각했던걸까(어차피 나는 개발 직무가 아니니까)? 아직 사태 파악을 못했던걸까(컨설턴트 노릇을 하려면 분석설계를 해야하고 그러려면 최소한 독해 능력은 있었어야 했는데. 그걸 깨닫는 건 아직 먼 훗날의 일이었다)? 둘 다 였을 것이다. 나는 사노 요코 동화책 속 주인공, 태어나지 않은 아이와 같았다. 아무 상관이 없었다고나 할까. 어차피 오래 다니지 않을 거니까 아무 상관 없었다. 그동안 세상 구경이나 좀 해보자 싶었다.

작가의 이전글 회사원이라는 모험 : 회사와 퇴사에 관한 50개의 단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