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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앨런 Oct 27. 2015

기억조각모음

잊혀졌던 순간들을 들고, 갑자기 나타난 흔적



얼마 전 싸이월드 백업대란, 아니 그런데 대란이라고 하기에는 그렇게 또 대단한 반응이 있었던 것은 아니니 굳이 말하자면 소란정도랄까, 암튼 그런 이 있었다. 내 또래의 사람들과 나보다 조금 나이가 많 형&누나들, 혹은 내 또래라고 말하고 싶진 않으나 어느새 젊음이 무기라고 하기에는 제법 나이가 차오른 젊은이들은 갑자기 나타난 싸이월드라는 타임머신을 타게 되었다.


싸이월드라니. 언제 적 싸이월드냐 말할 사람들도 많겠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아주 오래 전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그 몇 년 사이에, 어떤 중딩은 대학생이 되고, 또 수많은 20대는, 만으로는 아직 20대, 라며 끝까지 버티다가 그 말조차 할 수 없는 30대가 되었을 테니, 그 시절이 아득하게 느껴질 법도 하다. 게다가 30살 인생에게는 3년도 인생 10분의 1의 세월 아닌가.

백업. 까맣게 잊고 지냈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 분명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그 말에 동요했다. 지금에 비하면 꽤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밤늦게까지 파도를 타며 바득바득 자신들의 일상과 생각, 감정 등을 꾹꾹 눌러 담았던, 덕분에 평생이불팡팡 자료들이 가득한 판도라의 상자, 싸이월드가 사라진다니. 9월 30일까지 백업을 하지 못한 사람들의 원성이 쏟아지자 싸이월드 측은 백업 기한을 연장해주었다. 원성을 내진 않았지만, 나도 덕분에 백업을 했다. 21개의 html 파일. 싸이월드 측은 리뉴얼이라는 것을 거듭 강조했지만, 사실상 우리들의 미니홈피는 사라졌다.

지난 주말에 부모님 댁에 들렀다. 어머니는 감자탕을 했으니 점심을 같이 먹자고 하셨다. 식사 준비를 하시는 동안 내 방이었던 곳에 들어갔다. 이제는 창고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는 잡동사니 방이 되었지만 오랫동안 사용했던 책상과 책꽂이에는 내가 미처 치우지 못한 흔적들이 가득했다. 물건을 하나씩 건드릴 때마다 먼지가 날렸다. 갑작스러운 먼지의 기습에 기침과 콧물이 흘러나왔다. 생각해보니 내가 살 때엔 먼지가 더 많았다. 먼지를 쌓아놓고 살면서 당당히 청소를 거부하던 시절의 나의 방. 감자탕을 두 그릇 해치우고, 괜히 맛있다는 말을 했다가 잔뜩 받아오게 된 깍두기와 이것저것 어머니가 챙겨주신 여러 반찬들 그리고 창고에서 찾은 책 한 권을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3D스도쿠 고급. 3년 전, 서점에서 충동적으로 샀던 3D스도쿠 중급과 고급. 두 권을 함께 샀는데 중급은 한때 열심히 풀었던 기억이 있지만, 고급은 펼쳐보지도 않은 채 줄곳 책꽂이에 두었던 것이다. 중급은 어디에 두었더라. 샤워 후, 침대 위에 엎드려 책을 펼쳤다. 3D스도쿠 고급. 3년 만에 펼친 새 책의 낡은 빛깔. 첫 번째 문제에서 막혔다. 역시 고급이구나. 중급은 어디에 두었더라. 창고를 다시 떠올린다.

결혼한 후에는 부모님 댁에 들릴 때마다 타임머신을 타는 것 같다. 얼마 만에 들리든 늘 아주 오래전으로 돌아가는 기분이다. 몸도 마음도 작아지는 꿈. 순식간에 늙어버린 꿈. 그날 밤에는 바쁘게 많은 꿈을 꾸었다. 그리고 밤새 콧물이 멈추지 않았다. 아마도 낮에 부모님댁에서 먼지를 많이 마셔서인가 보다. 그러고 보니 나는 그곳을 더 이상 우리 집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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