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해안가 마을이 품은 공간들
한 해의 끝자락, 올해마저 끝내지 못했던 개인적인 프로젝트에 집중하기 위해 일본의 소도시로 떠나왔다.
분명 도시에 있다면, 나는 미루고 미루던 이 프로젝트를 올 한 해가 가기 전에 끝내지 못할 것을 확신했고,
아무도 모르는, 그리고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으로 가야 했다.
며칠 동안 후쿠오카에서 2-3시간 정도 거리 내에 있는 숙소를 뒤졌고
오바마 타운이라는 생소한 곳에 숙소를 예약했다.
(예약하는 내내 - 오바마… 가 방문한 타운인가?라는 터무니없는 생각을 하다가 일본인 다이키에게 오바마는 일본어라고 혼났다 ㅎㅎ)
오바마 타운. ‘작은 해안가 마을’을 뜻하는 이곳은
하카타 기차역에서 기차 두 번 타고, 마을버스를 40 정거장 타고 도착하면 탁 트인 바다의 정경이 반겨준다.
(도착하고 안 것은 기차를 갈아타지 않고 이사하야 역까지 후쿠오카에서 바로 오는 직통 버스가 있다. 그 후, 마을버스로만 갈아타면 된다).
큰길을 따라 온천이 즐비하고 온천수에서 나오는 뜨거운 연기가 추운 겨울날의 공기를 뒤덮는다.
조용하고 보이는 건 모두 하나 건너 하나로 짬뽕집 혹은 온천이다.
맞아, “나가사키” - 아, 짬뽕이 유명한 동네다! 해산물이 정말 많은 곳!
마을버스 터미널에서 6분 정도 걸어가면 우리가 고대하던 <모로야마 수쿠샤> (Moroyama Shukusha)가 있다.
작은 골목을 따라 걷다 가파른 언덕을 올라 도착한 우리의 숙소는 사진에서 본 그대로다.
젊은 디자이너와 건축가 부부가 함께 만들고 운영하는 이 공간은 아늑하고, 개인의 취향이 듬뿍 담겨있다.
건축을 공부한 남편은 디자이너인 아내가 카리미주안 스튜디오 (Karimizuan)에서 일을 하기 위해 이곳으로 이주하며 함께 이 공간을 손수 만들었다고 했다. 오래된 집을 손수 고치고, 디자인하고 운영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작은 공간부터 모든 곳에 이들의 취향이 물씬 배어있다.
숙소 안에는 샤워시설이 없는데, 이 또한 로컬 문화로 온천 마을이기에 대부분 동네 사람들은 온천을 사용한다고 한다. 우리에게도 다양한 온천을 이용해 보기에도 충분히 좋은 요소였다.
일주일 동안 이 작은 동네에서 지내면서 전혀 예상치 못했던 것이 있었는데...
'카리미주안' 스튜디오.
그저 조그마한 동네에 취향의 숙소가 있어 방문하게 된 동네가 내가 좋아하는 키친웨어 브랜드 '킨토' 디자인의 다수를 담당한 작가 Kosei Shirotani의 고향이라니.
오바마 타운 출신의 디자이너 고 '시로타니'씨는 생전 한국인 아내이자 작가인 '옥은희'씨와 함께 이 동네에서 디자인 스튜디오 카리미주안을 운영하셨고 이 아름답고 감각적인 공간은 갤러리 겸 카페로 지금도 운영되고 있다.
그의 영향력과 정부 지원금 등 다양한 노력들은 젊은이들을 이 마을로 이끌었고 지금의 오바마 타운을 만드는 데 기여했다. 고향으로 돌아온 이들과 외부에서 이주해 온 젊은이들이 만들어낸 이 마을은 외부인에게 친절했으며 새로운 이들의 방문을 반기는 듯한 문화가 깊이 존재하는 듯했다.
길을 걷다 만나는 어르신들은 우리가 어디에서 왔는지 궁금해했으며
식당에서, 바에서 쉽사리 '서비스'라는 말을 곁들이며 온정을 전해왔다.
작지만 감각적인 편집샵부터, 정말 맛있었던 카레 가게, 케이크 숍과 (피자와 감자가 끝내주는) 바, 사철 내내 아이스크림을 팔고 한 달에 이틀 동안만 정말 맛있는 크루아상을 구워내는 베이커리 (우리는 운이 좋게 둘째 날 남은 마지막 하나의 크루아상을 먹었다) 그리고 천연재료로 염색한 천을 파는 숍까지 토착민과 이주민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물결 속에는 유쾌함, 친절함 그리고 환대가 존재했다.
모로야마 숙소에 지내는 동안 만난 이들도 대부분 두 번째 혹은 세 번째 이 동네로 다시 돌아온 사람들이었고
공교롭게도 대부분 디자이너였다. 로컬 디자이너들 사이에서는 이미 유명한 동네라고 했다.
분명 단조롭고 지루한 나날을 보내며 글만 써야지- 다짐했던 나였음에도
여기서 지낸 일주일은 매일이 새로웠다 (아주 긍정적으로!)
게다가 타이밍이 좋게도 연말마다 동네 작은 펍에서 열리는 재즈 콘서트에서 함께 동네 댄스 선생님이 가르쳐주는 춤을 추고 노래를 따라 부르며 시간을 보냈다.
도시에서와는 분명 다른 감각의 경험이었다.
에어비앤비에서 찾아낸 호스트의 개인 취향이 듬뿍 묻어나 보이는 듯한 숙소를 예약하며 시작된 이 여행의 끝에
우리는 우리 각자의 취향을 다시금 돌아보고 알게 되었으며
이 작은 마을의 온정에 잔뜩 물들어져 돌아간다.
아직 못 가본 곳이 많다고. 다시 또 다른 계절을 이곳에서 나기 위해 방문하자는 약속과 함께.
한 해의 막이 편안하고 따뜻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