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언저리인데...
아이를 낳고 나서 경험한 세상이 (마치 내가 다시 태어난 것처럼) 신세계였기 때문에
새롭게 알고, 느끼고, 경험하고, 나아가 재구성되는 관계(남편과도)에 대해서 쓸 것이 넘쳐 흘렀는데
쓸 겨를 (정확히 정신머리) 없이 쏜살같이 시간이 지나갔다. 정신 차리고 뭘 좀 적어볼까, 하고 블로그들을 열어봤더니 마지막 접속이 7년 전이다.
오늘 아침에 단지 뒤에 있는 산에 갔다가 노루 비슷한 것!이 후닥닥 뛰어가는 것을 보았다. 오마이... 서울에서 나고자라 서울 언저리 경기도에서 살고 있는 나에게 집 뒷산에서 개보다 큰 몸집의 동물을 보는 건 처음이다. 요즘 뒷산이 너무 좋아 아이 등원하고 돌아오는 길에 직행하여 잠시라도 걷고 오는 게 낙이다. 공식 등산로가 없는 산이니 인적은 드물지만 버섯, 도토리, 밤, 야생 남천(...응? 챗GPT 에게 물어보니 조경수 씨앗이 날아와 발아한 것 같다고.) 등이 야생처럼 번져있는 멋진 산이라, 관공서에서 길을 닦아 놓은 산길과는 다른 '자연이다!' 라고 혼자 속으로 감탄한다. 그렇게 오르고 내리는 데 한시간 채 걸리지 않는 짧은 산길이지만, 다녀오면 종일 도시 인공물에 갇혀 있는 것보다 훨씬 머리가 맑고 상쾌하다. (물론 가기 전에 잠깐의 귀찮음으로 '오늘은 건너 뛸까' 하다가도, 일단 첫 발을 들여놓으면 역시 오길 잘했어 라고 항상 생각한다.) 너무 소듕한 루틴.
여튼, 청설모나 다람쥐는 종종 보는데 몸집 큰 짐승은 처음이다. 그 아이가 더 놀랐겠지. 후닥닥 너무 빨리 뛰어가서 어떤 동물인지 식별조차 못했지만, 이 산에 사람이나 작은 동물이 아닌 동물들도 살고 있다는 걸 본 이후 아주 새로운 감각으로 이 장소를 대할 것 같다. '이 산에 불이 나면 우리 단지까지 덮칠까?' 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는데, 이젠 그 노루 같은 아이가 떠오를 것 같다. 올해 6월 의성에 산불 피해주민들의 이야기를 듣고 온 적이 있는데 내 또래인 그 곳에 사는 여성분들이 <엄마 까투리> 동화책을 낭독해주면서 산불이 났을 때 저 산에 있는 토끼와 고양이 산짐승들이 오도 가도 못하고 타죽었겠구나 마음 아프다고 하셨던 게 떠올랐다.
글을 쓰고 있는데 아이가 일어나서 무릎에 앉아 엄마 뭐하냐고 묻는다.
응 오늘 아침에 산에 갔는데 노루같은 동물을 봤어. 그래서 일기를 컴퓨터로 쓰는 거야.
이제 조금씩 써야지.
쓰고 싶은 것은 아마도, 나같은 사람(페미니스트, 자연스럽게 살고싶지만 아직 수도권에 살고 있는)도 이 도시에서 나답게 육아할 수 있었던 고마운 이들에 대한 것. 그럼에도 좌충우돌.
삼십 오세에 다 컸다고 생각해서 인간과 세상에 대해 알 거 많이 안다고 생각했지만,
나랑 다른 인간이 0부터 시작하여 커가는 과정을 목격하면서 새롭게 알게 된 것들.(사실 모르는 게 너무 많은 채로 살아왔다는 걸 인지한 과정) 그런 것들 생각나는 대로 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