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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gho Kim May 30. 2016

거절의 회고

한국의 중금리 대출시장을 개척한다는 것의 의미

한국의 중금리 대출시장을 개척하려는 이전의 모든 시도는 실패했다

중신용자는 은행이 신용대출을 해주기엔 연체율이 높았다. 수년전 은행들은 중신용자를 대상으로 한 중금리 대출을 몇 번 시도하였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빠르게 접었다. 아무도 방법을 찾지 못했다. 중금리 구간은 '죽음의 늪'으로 불렸다. 중신용자들은 굉장히 많지만 누구도 중금리 대출이 가능한 시장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스타트업이 중금리 대출을 한다?

신용이 기반인 금융업 특성상 스타트업이 도전하기 적합한 영역이 아니며, 규제 한 방에 산업 전체가 사라지는 것도 매우 쉽고, 무엇보다도 은행들이 실패한 시장을 겨우 스타트업이 맨주먹으로 시도한다는 것만으로도 용기가 가상한 일이다.



8퍼센트는 중금리를 대상으로 한 한국 최초의 P2P 대출 스타트업

8퍼센트는 재작년 11월에 법인을 설립하고 영업을 시작해 반 년 여만에 중금리 대출시장을 여는 데 성공했다. 수많은 후발업체들이 뛰어들었다. 곧 은행을 포함한 여러 금융기관이 중금리 대출에 진출하고 있다. 모두가 꺼리던 죽음의 늪에 모두가 뛰어들고 있는 상황 전환만으로도 8퍼센트는 이미 대한민국 서민금융에서 기적 같은 성취를 이루고 있다.


대출심사는 곧 거절을 하는 일

8퍼센트에서 투자자 쪽 포지션으로 일을 시작했지만 감사하게도 많은 분들에게 다양한 영역을 배우게 되었다. 최근에는 대출심사를 학습하고 있다. 심사를 하며 짧은 기간 동안 내 손으로만 많은 사람들을 거절했고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을 알고리즘만으로 거절했다. 자본주의 사회에 살아지게 된 서민으로서 돈은 목숨과도 같을 것인데. 수많은 사람들의 절박한 손길을 내쳤다. 쉬이 거절된 사람일수록 깊은 사연이 있다.


결코 평범하지 않은 평범함

당신은 학자금으로 수 천 만원의 빚을 지고서 사회생활을 시작한다. 물려받은 재산이 없어 월세로 큰 돈을 지불하지만 그나마도 보증금을 대출받는다. 당연히 금리는 높다. 당신은 '위험인물'이기 때문이다. 평범한 재산이 없고 평범한 대기업을 다니지 않는 당신은 정말이지 위험한 사람이다. 21세기 한국에서 평범하다는 것은 결코 평범하지 않다. 비싸지 않은 중고차조차도 상당한 금리의 할부금융으로 구입한다. 지금, 아슬아슬하다는 걸 인지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경미한 교통사고가 난다거나 병원에 는 일이 생기면 약간의 돈이 실해진다.


급할 때 택시를 타는 정도로 생각했을까

고금리 대출을 받게 된다면 즉시 신용등급이 하락한다. 당신은 더욱 위험한 사람이 되어버린다. 대부업자 외의 모두가 당신을 거절한다. 대부업자는 당신이 원금을 갚기를 결코 원치 않는다. 대출은 곧 매출이기 때문에, 당신이 가능한 오래(혹은 평생) 고금리 대출을 안고 살아가길 원한다. 이자만 갚게 된다.


또 다른 당신은 20대 미혼모

딸은 이미 다섯 살. 딸과 함께 사는 것이 일생의 소원이겠지만 당장 연체되고 있는 몇 백 만원을 갚을 방법을 모른다. 비정규직인 당신은 그저 사력을 다해 일을 하겠지. 체는 지속된다. 더욱 위험한 사람이 되어간다. 희망은커녕 현재가 유지되는 것이라도 원하지만, 아주 많이 남은 일생은 어두워져 간다. 아직 서른도 안 됐는데.


또 다른 당신은 많은 빚을 상속받았다

당신은 큰 빚을 물려받아 한순간에 풍비박산 나버렸다. 그나마도 갚으려고 노력하는 것이 처절하다. 상속포기나 한정승인은 한참 늦어버렸다. 채권자에 지인이 있던 것일까, 갚아야 된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작은 선의가 당신의 목을 조인다. 갚을 수도, 갚지 않을 수도 없는 진퇴양. 당신의 가족들은 그런 상황을 아는지 모르는지. 내 가슴이 답답해진다.


보증, 지인의 배신, 사기, 다단계, 자영업, 묻지마 투자

사건은 정말 다양하다. 자본주의는 당신을 최고금리의 형에 처한다. 죄목은... 글쎄, 잘 모르는 내가 뭐라고 할 수 있는 건 아닌 것 같다.  어떻게 풀어야 할까. 몇 백 만원 때문에 당신은 신용불량자가 되어버린다. 범죄자 마냥, 이제는 돌이킬 수 없을 만큼 위험한 사람이다. 빌린 금액은 커지지 않아도 이자는 점점 커진다. 당신은 방법을 모른다. 이곳저곳에 손을 벌려본다. 절박한 마음으로 8퍼센트에 대출신청을 했으리라.


미래를 이야기하고 싶다

당신의 절절한 이야기는 숫자들로 표현되어 나타난다. 알고리즘만으로 거절된다. 아... 아직 우리의 거리가 너무나 멀다. 조금 더 일찍 만났으면 좋았을텐데. 당신은 이미 거절에 익숙하다. 쉽게 체념한다. 당신은 내일 무엇을 할까?


8퍼센트 직원 29명은, 당신에게 더 나은 내일을 주고 싶다는 일념으로, 모든 것을 걸고 하루하루 조금씩 나아가고 있다. 내일은 당신에게 좀 더 다가가고 싶다. 정말이지 세상 물정 모르는 미친 짓이지만, 우리의 미래를 이야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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