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퍼블리싱 스타트업 퍼블리의 박소령 대표
조선비즈 인터뷰 시리즈 '미디어 혁신가'(2016~ )를 브런치에 연재합니다. 취재 후기와 (기사에 못 담은) 저의 생각을 덧붙였습니다. 새로 추가한 내용은 파랑 글씨로 적었습니다.
일간지 머리기사를 보면 '이게 왜' 하는 생각이 자주 든다. 종합 정치 사회 문화 오피니언 경제 순의 스토리텔링은 빤하다. 새 헌법재판관 지명과 조선사 구조조정, 카탈루냐 분리독립은 내게 먼 얘기다. 하루 만에 잊힐 기사를 읽어 무얼하나 하는 생각도 든다. 그때 퍼블리를 알게 됐다.
최근 시리즈A 투자 유치에 성공한 퍼블리에는 '국내에 없던 기업'이라는 수식이 붙는다. 출판과 크라우드펀딩, O2O를 합한 이 콘텐츠 스타트업은 출판사도 언론사도 아니다. 퍼블리는 각종 보고서와 오프라인 모임을 적정 가격에 판다. 크라우드펀딩 텀블벅의 스마트함과 소소한 재미를 닮았다. 프로젝트별 모금액을 보면 수완도 좋다.
2017년 10월 18일 기준, 퍼블리의 '외환위기 20주년, 과거에서 미래를 배우다' 프로젝트는 목표를 348% 초과 달성했다. 마감까지 22일이 남았고 무난히 500%를 넘길 것 같다.
소위 '잘 팔리는' 리포트에는 몇 개 유형이 있다. (기사보다 나은) 현장 르포, 흥행력 있는 저자, 시의성 있는 기획. '퇴사준비생의 도쿄' '모노클, 미디어를 말하다' 등 퍼블리는 꾸준히 블록버스터를 내놓고 있다.
좋아하는 작가를 직접 만나면 실망하게 된다는 말도 있지만, 퍼블리의 박소령 대표는 만날수록 더 알고싶은 분. 앞으로의 퍼블리가 더 기대되는 이유 중 하나다.
2016.12.14
콘텐츠 퍼블리싱 스타트업 퍼블리의 박소령 대표
해외 취재기 담은 리포트, 저자의 '경험' 팔아… 재구매율 25%
'CES 저자를 찾습니다.'
지난 6일 콘텐츠 스타트업 '퍼블리(PUBLY)'의 웹페이지에는 구인광고 하나가 올라왔다. 매년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 IT 박람회 CES를 취재할 지원자를 뽑는다는 내용.
그런데 왜 '저자'일까. 퍼블리의 저자는 해외 콘퍼런스에 참석해 300여페이지에 달하는 리포트를 쓰고 오프라인 강연도 연다. 취재 기록에 더해 생생한 현장 경험을 전하는 게 퍼블리의 취지다. 그렇다고 '스터디'만 하는 건 아니다. 앞서 7월엔 피아노 콘서트, 9월엔 맥주 파티도 열었다.
그래서 이름도 저자와 독자들이 커뮤니티를 이루는 펍(Pub), 콘텐츠 퍼블리케이션(Publication·출판), 공공성(Public)의 영문 앞글자를 따서 지었다. 여기서 공공성은 공공의 의미를 지닌 가치 있는 콘텐츠를 의미한다는 게 퍼블리의 설명이다.
흥행 성적은 어떨까. 퍼블리는 '장사'도 곧잘 한다. 유료화 성공 사례가 적은 콘텐츠 시장에서 단연 눈에 띄는 성과다. 창업한 지 2년이 채 안 된 이 스타트업은 법인을 등록한 2015년 4월부터 2016년 12월까지 30개 프로젝트를 진행했고 이 중 29개의 목표 금액을 달성했다. 결제 방식은 다수 개인에게서 자금을 모으는 크라우드 펀딩이다. 독자들은 해당 프로젝트의 리포트를 살 수 있고, 오프라인 모임 티켓도 결제할 수도 있다.
14일 현재 퍼블리의 웹페이지에는 4개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다. 일본 도쿄의 비즈니스 모델 27곳을 소개하는 '퇴사 준비생의 도쿄'(https://publy.co/project/595)에는 모금 목표액인 600만원을 249% 초과 달성한 1495만원이 모였다. 마감일까지 아직 23일이 남았다. 앞서 6월에 프로젝트를 시작한 '2016 칸 국제광고제'는 목표액을 459% 초과 달성했다.
퍼블리에 따르면, 가입자 6000여명 중 60%가 유료 고객이다. 재구매율은 25%에 달한다. 이런 성과를 반영하듯, 퍼블리는 지난 11월 25일 제5회 한국온라인저널리즘어워드에서 '주목해야 할 미디어' 상을 수상했다.
지난 7일 박소령 대표를 만난 곳은 아산나눔재단이 운영하는 서울 역삼동의 스타트업 사무공간 '마루 180'. 여기엔 퍼블리를 포함한 24개 벤처가 입주해 있다. 이날 오후 늦은 시간 방문한 마루 180의 3층에는 세탁 서비스, 유아복 스타트업 직원들이 한 층을 나눠 쓰고 있었다.
-퍼블리를 간략히 소개해달라.
"퍼블리는 한국어로 된 지적 자본이 될 수 있는 유료 콘텐츠를 만드는 스타트업이다. 독자들에게 도움이 되는, '공공성'을 갖춘 콘텐츠를 제공한다. 유료화 모델은 크라우드 펀딩이다. 우리가 '이런 콘텐츠를 만들겠다'는 기획안을 올리고 선주문을 받는다. 기획안에는 리포트를 쓰고 오프라인 모임을 여는 저자 소개, 프로젝트의 취지 등이 소개된다. 목표 금액이 달성돼야 발행된다. 비슷한 사례는 많지 않다."
박소령 대표는 학부에서 경영학을, 대학원에서 공공정책학을 전공하고 5년간 컨설턴트로 활동했다. 박 대표는 미디어 스타트업을 창업하게 된 계기로 학부 시절 읽은 토마스 프리드먼의 책 '렉서스와 올리브나무'의 다음 구절을 꼽는다. "세계를 설명해야 할 저널리스트와 세계를 만들어가야 할 전략가는 급변하는 시대에 가장 중요한 직업이다." 한때 기자 지망생이었던 그는 미국 유학을 마치고 전략가와 저널리스트가 접목된 일을 찾던 중 창업을 결심하게 됐다고 말한다.
-타깃 독자의 연령대와 직업군은.
"30대 중반인 제 나이를 기준으로 위아래 열 살 정도인 20대~40대 초반으로, 모바일과 인터넷에 굉장히 익숙하고 유료 지적 콘텐츠에 돈을 지불할 의사가 있는 독자다."
◆ "독자, 저자의 생생한 경험 공유에 기꺼이 지갑 열어"
-오프라인 모임 후기 다수에는 '기꺼이 지갑을 여는' 콘텐츠라고 적혀 있었다. 퍼블리 독자들의 구매 동기는 무엇일까.
"리포트를 사는 독자와 오프라인 모임 티켓까지 구매하는 고객이 추구하는 게 조금 다른 것 같다. 통상 100명의 유료 결제자 중 80명 정도가 리포트만 사고, 20명은 오프라인 티켓도 구매한다. 퍼블리의 독자들은 저자의 생생한 경험을 원한다. 그게 오프라인 모임 참가자가 꾸준히 늘어나는 이유 중 하나라고 본다."
-창업 후 1년 8개월이 지났다. 퍼블리의 현재를 평가한다면.
"운이 굉장히 좋았다. 정량적으로 평가하자면, 가입자와 유료 구독자 수가 꾸준히 느는 것에 큰 의미를 둔다. 가입자 6000여명 중 60%가 유료 회원이다. 2015년 4월 법인 등록을 했지만, 웹페이지는 올해 1월 정식으로 열었다. 지난 7월부터 매주 하나씩 새로운 프로젝트를 열고 있다.
누적 펀딩 금액은 1억5000만원을 돌파했다. 우리는 유료 콘텐츠에 지불하는 독자들이 누구고, 무엇을 좋아하는지를 파악해 우리 상품에 더 '뾰족하게' 반영하기 위한 노력을 많이 한다. 퍼블리는 충성 독자들로부터 유의미한 숫자를 얻어내기 위해 공을 들인다."
-하반기 들어 프로젝트가 급증했다. 직원 규모는.
"현재 10명이고, 2017년 1월이면 14명이 될 예정이다. 콘텐츠와 개발 인력이 각각 5명이고, 최근 데이터 과학자, 사업개발 담당자, UX 기획자, 운영 디자이너 등 4명을 추가 채용했다."
-크라우드 펀딩 개수와 성공 횟수는 얼마나 되나.
"프로젝트는 2016년 12월 6일까지 30개를 진행했다. 이 중 한 개를 제외한 29개 프로젝트는 목표 금액을 달성했다. 펀딩 모금액이 1000만원이 넘은 프로젝트는 지금까지 5개다. 펀딩이 마감된 프로젝트 중에는 '2016 칸 국제광고제'(6월·프로젝트 시작 월), '2016 프랑크푸르트 북페어'(9월), '2016 스탠퍼드 인공지능 보고서'(11월), '한국 대표 스타트업과 투자자들의 끝장토론'(11월)이 있고, 진행 중인 프로젝트 중에는 '퇴사준비생의 도쿄'(10월)이 모금액 1000만원을 돌파했다. 1000만원 선을 넘는 프로젝트가 매달 나오는 게 목표다."
-프로젝트 가격은 어떻게 설정하나.
"저자의 출장 비용과 그 외 투입된 비용을 산정해서 계산한다. 평균 단가는 5만원, 재구매율은 25% 정도 된다. 오프라인 모임에서 저자가 들려주는 '경험 콘텐츠'에 고객들이 어느 정도까지 지불하는지를 계속 실험하고 있다."
-기억에 남는 프로젝트 2개를 고르자면.
"펀딩 금액이 1000만원을 넘은 첫 프로젝트인 '2016 칸 국제광고제'(https://publy.co/project/277)를 우선 꼽고 싶다. 기획안만으로 1700만원을 넘게 모금했다.
지난 8월부터 프로젝트를 시작한 '한국 조선업 40년 역사로 읽는 글로벌 경제'(https://publy.co/project/449)도 기억에 남는 프로젝트다. 펀드 매니저와 주식 애널리스트가 리포트를 쓰고 강연도 했다. 두 저자는 현재의 위기와 조선업의 40년 역사를 설명해, 기존 언론의 보도와 차별화했다."
-8월이면 정부의 조선업 구조조정이 한창 진행 중일 때였다. 시기는 어떻게 정했나.
"올해 봄, 저자 중 한 명인 강대권 유경 PSG자산운용 주식운용본부장(CIO)이 퍼블리의 오프라인 모임에 참석했다. 그날 모임 후 강 본부장이 하반기에 조선업 이슈가 커질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고, 논의 끝에 퍼블리와 협업을 진행했다."
-흥행이 부진했던 프로젝트는.
"2015년 네 번째 프로젝트였던 '런던 디자인 페스티벌'은 유일하게 실패한 사례다. 행사에 참석한 디자이너가 기록을 전달하면 그걸 다른 작가가 재해석할 계획이었는데, 초기 기획에서 부족함이 많았다. 결국 저자와 신청자 모두에게 사과하고 프로젝트를 중단했다."
-IT, 경제 경영, 여행, 책, 광고 등 콘텐츠의 폭이 넓다. 퍼블리가 주로 다루는 분야는.
"퍼블리의 콘텐츠는 크게 5개 카테고리로 나뉜다. 알파벳 순으로 A, B, C, D, E인데 각각 A(Affairs·정치 사회 국제), B(Business·경제 경영), C(Culture·문화), D(Diversity·다양성), E(Education·교육)이다. 이 중 경제 경영 콘텐츠가 절반 이상이다. 저와 공동 창업자인 김안나 CCO가 둘 다 경영학을 전공했고, 이 분야에 종사하는 독자가 많은 것도 이유 중 하나다."
-어떤 분을 저자로 섭외하나.
"퍼블리는 저자와 독자의 공감대를 굉장히 중요하게 여긴다. 그래서 가능한 한 이 둘의 연령대를 맞추려고 한다. 우리는 독자들이 '자신이 모르는 분야에 대한 같은 세대의 지식과 경험'에 돈을 지불한다고 판단한다. 퍼블리 독자의 50% 이상이 30대일 것으로 추정된다."
-저자들은 주로 어떤 연유로 지원하나.
"다수가 '경험'이라고 답한다. 평소 가보고 싶었던 콘퍼런스에 가보고, 취재하는 경험. 퍼블리의 오프라인 모임에 오는 고객들과의 교류도 이유 중 하나다."
-'진행 예정'인 프로젝트의 개수가 10개 이상이다. 급변하는 시장 상황을 반영하기 어려울 것이란 우려도 있다.
"진행 예정인 프로젝트를 만드는 목적엔 두 가지가 있다. 프로젝트의 시작 전 '관심 있어요' 버튼을 누르면, 론칭 후 구독자에게 알림이 간다. 이 방식으로 사전 마켓 테스트를 해볼 수 있다. 독자들의 반응이 좋은 프로젝트 위주로 시작한다. 이런 방식으로 시장 상황을 반영하고 프로젝트 성공률을 높인다."
◆ 두 번 이상 결제한 고객, 구매 패턴 집중 분석
-고객의 구매 패턴을 유심히 보는데. 프로젝트를 여러 건 진행하면서 누적된 노하우가 있다면.
"두 번 이상 결제한 고객을 유심히 본다. 보통 두 가지 패턴이 있다. IT 분야 종사자의 경우 기술에 관한 콘텐츠를 연이어 구매한다. 가령 미국 최대 IT 스타트업 콘퍼런스인 '테크크런치 디스럽트'(9월)의 리포트를 산 독자가 번역 콘텐츠인 '2016 스탠퍼드 인공지능 보고서'(11월)도 구매하는 식이다.
퍼블리가 소개하는, (기존 언론에 없던) 새로운 콘텐츠를 주로 구매하는 독자들도 있다. 국내 기본소득 연구팀이 만든 '글로벌 기본소득 실험'(9월) 콘텐츠, '피아니스트 정한빈의 인터뷰와 살롱 콘서트'(7월)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뉴스레터도 그렇고 책 관련 콘텐츠가 많다.
"출판물에서 많은 영감을 얻는다. 큐레이션을 잘하기로 유명한 강원도 속초의 동아서점, 서울 강남의 최인아책방, 영국 잡지 모노클에서 여러 아이디어를 얻었다. 퍼블리는 초기부터 '디지털 콘텐츠는 왜 수익을 내기 어려운가'라는 고민을 해왔고, 'URL(인터넷상 파일 주소) 형태로 돌아다니는 온라인 기사는 완성품이라는 생각이 덜 들기 때문'이라는 결론을 도출했다. 퍼블리는 인쇄물에서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우리는 온라인 콘텐츠에 종이 느낌이 나도록 목차도 넣고, 그래픽 제작에 공을 들인다."
-어떤 잡지를 주로 보나.
"브랜드 전문 월간지 '매거진 B', LS네트웍스가 발행하는 계간지 '보보담(步步譚)', 민음사의 격월간 문예지 '리터(Littor)', 교양과학 계간지 '스켑틱(Skeptic)' 정도를 꼽을 수 있다. 매거진의 레이아웃과 주제 선정에서 아이디어를 많이 얻는다."
-최근 시작한 프로젝트 중에도 책을 다룬 게 있다.
"진행 중인 '책이 좋아서'(https://publy.co/project/751)는 미국 포틀랜드와 일본 도쿄 두 도시의 동네 서점을 제가 직접 방문하고 작성한 프로젝트다. 포틀랜드를 가게 되면 '파월북스(Powell's books)'를 꼭 방문해보라. 큐레이터의 책 선정 감각에 놀랐다. 서점 한 켠에 미국 대선 관련 서적을 모아놨는데, 미국의 1~44대 대통령 자서전과 평전이 한 층에 모여 있었다. 섹션마다 담당 큐레이터가 따로 있다."
-차후 계획은.
"외부와의 협업을 확대할 계획이다. 진행 중인 '퇴사 준비생의 도쿄'는 여행 스타트업 '트래블코드'와 퍼블리가 공동 진행하는 프로젝트다. 콘텐츠의 기획부터 제작, 에디팅까지 외부 업체가 주도한다는 점에서 앞서 다른 협업과는 다르다. 퍼블리는 플랫폼을 개방하는 실험을 늘릴 것이다. 퍼블리의 저자가 되길 원하는 여러 개인·팀·조직의 연락(project@publy.co)을 기다린다.
웹, 오프라인 모임, 오디오 서비스 외 다른 플랫폼을 확대할 계획도 있다. 마침 오늘(7일) '한국 대표 스타트업과 투자자들의 끝장토론' 콘텐츠를 엮은 종이책이 나왔다."
원문보기:
http://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6/12/14/201612140068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