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격자

아이가 걱정되었다

by 디에디트랩

이 글은 추격자가 개봉했던 2008년에 쓴 글을 조금 수정했습니다.


영화 <추격자>가 나의 관심을 끈 것은 기대하지 못했던 흥행 행진이 연일 계속되자 매스컴이 주목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것은 처음 길거리에 포스터가 붙었을 때만 해도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아서 몰랐지만 개봉 즈음하여 접하게 된 주연 배우의 이름이었다. 김윤석과 하정우.
영화 <타짜>를 보며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뮤지컬에서 그 파워를 더욱 떨치는 조승우도, 뒤늦게 영화에서 빛을 발하는 백윤식 선생님도, 여전한 넉살의 유해진도, 개인적으로는 언제 봐도 그저 부담스럽기만 한 김혜수도 아니었다. 그것은 아귀 김윤석이었다. 아무렇지 않은 듯 툭툭 내뱉는 말과 행동에서 비치는 살벌함, 마지막에 보이던 갑옷을 살짝 젖혀버리던 약한 모습. 하정우의 경우엔 김기덕 감독의 <시간>이었다. 서른 명 남짓 정도밖에 들어가지 않는 작은 극장에서 보았던 <시간>. 나중에 알고 보니 공전의 히트작 <용서받지 못한 자>의 주연이자 탤런트 김용건씨의 아들이었다고 하지만, 난 <시간>을 보며 그를 처음 만났었다. 그를 보면서 화려하지 않은, 건조한 듯하면서 담백한 맛을 느낄 수 있었고, 그런 그의 모습을 더 많은 작품에서 볼 수 있길 바랐다. 나중에 그가 모 드라마에도 출연했었지만, 난 그를 영화에서 볼 수 있길 더 바라며 애써 가끔씩 눈에 들어오는 그 드라마를 피했습니다. 이렇게 계속해서 영화에서 볼 수 있길 바라던 두 배우가 한 영화에 출연한다니 나로서는 참 반가웠다. 마치 알 파치노와 로버트 드 니로가 함께 출연하는 영화처럼 말이다. 하지만 게으름 때문인지 영화를 보는 건 400만 관객의 선을 넘었다는 소식을 접하고, 잡지에 실린 제작사 대표가 사실 마지막 둘의 격투에서 사용하기로 했던 것은 시나리오 상으론 망치가 아니라 미진의 머리였다고 밝히는 기사를 읽고 나서야 가능했다.

처음 시작하자마자 진행된 버려진 차와 그에 꽂힌 수북한 전단지로 결국 그녀가 살해당했다는 것을 보여주었던 씬이 좋았다. 아마도 첫 시퀀스만 제외하면 영화 전체가 펼쳐지는 영화 속 시간의 밀집성 때문인지, 그 시간의 제한 속에서 숨가쁘게 치닫는, 그러면서도 적당한 포인트에서 살짝 고무줄을 놓기도 하고, 또 적당한 유머를 여기저기 유치하지 않고 적당하게 뿌려주는 모습이 참 좋았다. 앞서 말한 제작자의 인터뷰에서 그녀가 감독을 천재라고 표현했는데, 그가 정말 천재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두시간여의 스토리를 이끌고 가는 동안 팽팽한 긴장감과 그 긴장감을 요령있게 잘 조절함으로써 지루하지도 불편하지도 않게 하는 꽤 좋은 호흡을 느낄 수 있었다. 이 부분에 있어선 배우들의 공도 크다고 생각한다. 처음 이 영화로 저를 이끌었던 두 배우의 모습은 역시나 참 좋았다. 다만, 김윤석의 걸걸한 말투가 왠지 시작 부분에선 조금 어색하게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이제 영화가 끝나고 남는 두 가지 의문, 혹은 걱정. 하나는, 영민이 그녀들을 살해 한 동기는 무엇일까. 정말 그저 정과 망치를 자신의 불완전한 성적 만족을 느끼기 위한 도구로 사용한 것일 뿐일까? 그리고 다른 하나는, 의문이라기보다는 걱정이다. 마지막 쇼트. 불이 꺼지고 혼자 병실에 누워 잠자고 있는 죽은 미진의 딸 침대 옆에 중호가 힘겹게 앉는다. 그는 아이의 잠든 손을 잡고 힘든 몸을 벽에 기대고 카메라는 창 밖 서울 야경(이라기 보다는 야경의 실루엣이라고 부를 만한)으로 시선을 돌린다. 난 여기에서 아이가 걱정되었다. 이제 이 아이는 앞으로 어떻게 삶을 살게 될 것인가 하는 걱정이 밀려왔다. 영화 전체에서 가장 인상 깊게 가슴을 치고 들어오던 장면. 엄마가 죽었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아챈 아이가 차 안에서 엉엉 울고, 카메라는 비가 내리는 밖에서 창을 통해 이러한 아이를 보여준다. 아이의 울음은 들리지 않고 우리는 그저 비에 얼룩진 차창을 통해 아이를 볼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중호는 그 옆에서 악에 받쳐 전화에 대고 소리를 지르며 운전한다. 나는 정말이지 이 아이의 미래가 걱정되었다. 어차피 영화는 픽션이니 괜한 걱정일까?



추격자 Dir. 나홍진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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