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당백에서 이야기해주는 것을 듣고 무척이나 마음에 들어, 서점에서 새 책을 사서 읽었다. 일당백의 정박님은 나온지 꽤 된 책임에도(2001년), AI시대를 맞이하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내용이 아닌가 하며 소개를 해주었다.
내가 2001년에 이 책을 읽었다면, 그리고 절반정도 그 내용을 잘 이해했다면 훨씬 더 나은 사람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그리고 지금이라도 이 책을 읽었으니 책 내용은 반만 잘 기억하고 실천할 수 있다면 훨씬 나은 사람이 되지 않을까 생각이 된다.
책에서 말하는 중요한 것들을 큰 줄기로 보자면, 훔치는 힘과 추친하는 힘과 요약하는 힘이 중요하다는 것. 그리고 그런 것들로부터 자신만의 스타일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물론 책에서 말하는 그 세가지 힘은 문자만으로 해석되는 의미의 것은 아니다. 조금 단편적이지만 짧게 이야기해보자면, 훔치는 힘은 강한 동기나 갈증 그리고 어느 정도의 지식이나 훈련이 있어야 제대로 훔칠 수 있는 능력을 갖출 수 있고 훔칠 수 있다, 그리고 그 훔치는 과정에서도 요약하는 힘이 있어야 중요한 것을 인식하고 올바로 나의 것으로 만들 수 있다는 식이다.
작가의 이런 주장을 다양한 사례를 들어 전개하고 있어서 재미있기도 하고, 작가의 주장 외에도 그 사례들을 나에게 대입해 이런저런 생각들을 더 할 수 있어서 좋았다.
아래는 마음에 들었던 부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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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생각하는 '살아가는 힘'이란, '숙달에 이르는 보편적 원리'를 반복적 체험을 통해 '기술로 만드는 것'이다. 어떤 사회에나 '일'은 존재한다. 경험이 전혀 없는 낯선 영역의 일이라도 숙달에 이르는 비결을 찾아내는 힘이 있다면 용기를 갖고 새로운 영역에 도전장을 던질 수 있다.
p.29
'전문가의 방식과 행동을 관찰하고 그 기술을 훔쳐 내 것으로 만든다.' 이것이 숙달로 이어지는 대원칙이다. 머리로만 아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생활에 녹여 습관화하는 것이 관건이다. 그런데도 대부분의 교육 현장에서는 이 '훔치는 힘'을 일류가 되기 위한 대원칙으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대원칙은 커녕 방법론으로써의 '훔치는 힘'을 언급조차 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교육의 본래 의미는 배우는 힘을 기르는 데 있다. 가르침이 있어도 배움이 없으면 교육이라 부를 수 없다. 반대로 가르침이 없어도 배움이 있다면 그야말로 훌륭한 교육이라 말할 수 있다. 교육이라 하면 '가르치고 가르침을 받는 것'이라는 관계적 개념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지만, 그래서는 '훔치는 힘'을 기를 수가 없다.
p.32
한창 싱커를 연구하던 야마다는 좀처럼 뜻대로 되지 않자, 용기를 내어 아다치에게 싱커 기술을 가르쳐 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아다치는 "싱커를 던지게 되면 자네의 주특기인 직구와 스피드를 포기해야 하니, 아직은 싱커를 던질 때가 아니야."라면 거절했다. 하지만 이미 필사적인 마음이었던 야마다는 포기하지 않았다. 야마다는 아다치가 불펜에서 투구 연습을 할 때마다 뒤에서 지켜보았다. 아다치의 투구 폼을 훔쳐보며 그가 구사하는 기술을 그대로 따라 하기 시작했다. 사실 당시 아다치의 의도는 이러했다.
"야마다가 언젠가는 나를 능가할 선수라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다만 그 당시 그의 부탁대로 선뜻 싱커를 가르쳐 주었다면, 나로서는 당장 밥줄이 끊기는 상황이 될 것이므로 바로는 가르쳐주고 싶지 않았다. 가르쳐주지 않는다면 훔쳐서라도 배우겠다는 마음이었던 것 같다. 포스트 시즌이 시작될 무렵 야마다의 투구 자세와 싱커를 보며 나는 그날이 왔음을 직감했다. 한 팀에 같은 스타일의 투두가 두 명씩이나 있을 이유는 없지 않나."
그야말로 프로다운 답변이다. 프로의 세계는 친분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실력과 결과로 평가받는 냉정한 세계다. 눈에 불을 켜고 훔쳐보아야만 비로소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다. 그냥 바라보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반복 경험하며 부딪혀봐야 비로소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다.
p.38-40
"아다치가 제게 싱커를 바로 가르쳐 주었다면, 저는 '아, 겨우 이런 거였잖아.' 하고 소중하게 여기지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그가 거절하자 저는 더욱 절실해져 밤낮으로 방법을 고민하며 연습에 몰두했습니다. 이제 어렴풋이 알겠다 싶을 때 마침 아다치가 제게 손을 내밀었고, 저는 그가 하는 말을 바로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의 충고가 저의 투구 폼을 완성해줬죠."
이 이야기는 충고의 진정한 가치는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의 '기술을 훔치려는 의지'가 얼마나 강한지에 달렸음을 보여준다.
'기술을 훔치는 힘'은 '기술을 훔치려는 의지'가 있어야 강해질 수 있다. 단순한 '모방'과 '훔쳐서 내 것으로 만드는 것'의 차이가 바로 이 부분이다.
p.40-41
무언가를 '기술'이라 부른다는 것은 이미 그 행위를 일정 수준 이상으로 능숙하게 하는 상태라는 뜻이기도 하다. 처음에는 무조건 따라 하기만 했을 것이다. 그것은 패션일 수도 있고, 단순한 버릇이나 전체적인 느낌일 수도 있다. 하지만 무엇을 '훔칠 수 있으려면' 몸소 체험하며 시행착오를 수없이 반복해야 한다.
기술을 훔치려면 그저 눈으로 보기만 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범위를 좁혀서 반드시 훔쳐야 할 핵심을 찾아내야 한다. 이 핵심 포인트를 걸러내는 과정이 곧 기술을 훔친기 위한 밑바탕이 된다. 핵심 포인트는 '기술'이라는 퍼즐을 완성하기 위한 마지막 한 조각이 되어줄 것이다. 물론 완성해야 할 퍼즐 역시 누가 손에 간단히 쥐여주는 것이 아니다.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파듯, 필요한 사람이 직접 찾아 나서야 한다.
p.41-42
모순적인 이야기로 들리겠지만, 질문을 던지는 것도 능력이다. 이미 일정 수준 이상의 실력 또는 배경지식을 갖추어야 날카로운 질문도 가능한다. 이것이 내가 말하는 '질문력'이다.
'기술을 훔친다'고 하면 기술이 없는 사람이 숙달된 사람의 기술을 모방하고 따라 하는 상황만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이미 숙달의 경지에 이른 사람이 초보자에게서 특정 기술이나 비법을 훔치는 일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전체적인 기량은 다소 부족한 사람이라도 하나하나의 기술을 따로 떼어놓고 보면, 그중 한 가지 기술 면에서는 일류의 실력을 보이는 경우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p.43-44
기술을 훔치는 비법이란 '암묵지'와 그것을 활성화한 '형식지'의 순호나을 기술화하는 것이다. 이 순환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서는 적확한 '요약력'과 전문가를 상대로 하는 '질문력', 그리고 '코멘트력'과 같은 중요한 능력들을 발휘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일이라는 것 자체는 '과정'에 따라 진행하기 때문에, 결국 기술을 훔치려는 것은 과정을 훔친다는 뜻이기도 하다. 자기 스스로 일을 기획하고 실행하는 과정을 정리하며, 그것을 제대로 추친할 수 있을 때까지 수련하는 것은 '일의 추진력'을 단련하는 일이기도 하다.
p.49
이 '세 가지 힘'과 꾸준한 독서를 연결하는 것이 바로 '요약력'이다. 요약력은 문과와 이과 계열 모두에게 공통으로 필요한 능력이다. 요약이라고 하면 흔히 몇 페이지쯤 되는 글을 200자 내외로 요약하는 과제를 떠올리기 쉽지만, 좀 더 포괄적인 관점으로 요약력을 새롭게 정의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영화 감상을 한 후 다른 사람에게 줄거리나 감상평을 전달하는 것도 요약력에 해당한다.
또한 무도나 예술 분야에서 강조하는 '형식(틀)' 역시 요약력의 결정체다. 다양한 움직임 중 가장 기본이 되는 동작을 통해 전체를 집약적으로 나타낸다. 이것이 바로 '형식'의 주요 기능이며, 현실 속에 존재하는 다채로운 움직임들을 요약하여 담는 것이라 정의할 수 있다.
p.60-61
요약의 기본은, 핵심을 남기고 그 외의 주변 요소는 과감히 '버리는 것'이다. '버린다'고 해서 무작정 쳐내는 것이 아니라, 남겨둔 핵심 속에 어떤 형태로든 녹여, 버려지는 요소에도 가치를 부여하는 것, 이러한 요약이 가장 이상적인 요약이다. 요약력이란 결국 '중요도'를 파악하는 것이다. 회의 자리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형식적인 보고에 할애하느라 정작 의사결정이 필요한 중요 사항은 제대로 논의조차 못 하는 상황이 적지 않다.
p.62
그렇다고 해서 그것을 신비스러운 능력이라고 거창하게 볼 일은 아니다. 평소 자신의 관심사나 주제 또는 키워드를 명확히 해두면 그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자석이 되어 그와 링크되는 말들이 저절로 달라붙는 이치다. 그 자석은 나무 형태를 띠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다. 즉, 나무 기둥이 되어줄 질문이나 키워드를 단단히 설정해 두고, 그 위에 수많은 정보가 쌓이면 이것이 양분이 되어 감각이 가지를 치고 지식의 잎이 무성해지는 것이다.
p.72
'질문력'을 판단하는 기준 중 하나는 그 질문 뒤에 숨어 있는 과제 의식의 강도다, '거런 거 물어서 대체 무슨 도움이 되겠나.' 싶은 애매한 질문도 있는 반면, 수백 조각으로 된 직소 퍼즐의 마지막 한 조각을 찾는 듯 예리한 질문도 있다. 퍼즐을 완성시키기 위해서는, 질문에 앞서 본인 스스로 직소 퍼즐을 일정 단곅까지 완성해 보는 수고로운 과정을 완수했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이렇게 수준 높은 '질문력'에 대해서는 그에 상응하는 수준 높은 '코멘트력'이 필요하기 마련이다. 대답하는 사람으로서의 책임감과 약간의 긴장감도 생긴다. 만약 잘못된 조각을 건네면 상대방이 그동안 열심히 맞춰온 퍼즐을 망치는 꼴이 될 수도 있다. 반대로 완성까지 아직 갈 길이 너무 멀어서 건네주어야 할 조각이 여러 개인 경우도 있다. 그렇다고 7~8개의 충고를 한꺼번에 늘어놓게 되면, 상대방이 제대로 소화할 수 없기 때문에 결국 무의미한 충고로 끝나고 만다.
그러므로 조언하는 사람은 범위 안에서 가장 핵심이되는 포인트를 찾아내는 힘을 길러야 한다. 직소 퍼즐을 예로 든다면 그중 한 조각만 알려주면 나머지 조각은 본인이 알아서 찾아낼 수 있도록, 해결의 열쇠를 쥐여주는 역할을 해내야 하는 것이다.
p.93-94
자, 이제 다시 하스미 시게히코와 고다르의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하스미는 이렇게 운을 뗐다고 한다. "선생의 영화는 대부분 상영 시간이 1시간 30분 정도로 짧은데, 그 이유가 당신의 직업적 윤리관 때문입니까?"
이는 정말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질문이었다. 무엇보다 상대가 현재 가장 마음을 쏟고 있는 작업(필름을 잘라서 잇는 편집 작업)과 가장 밀접한 내용이었고, 고다르의 과거까지 제대로 파악하고 있지 않으면 떠올릴 수 없는 질문이니 말이다. 더불어 길고 장황하게 이야기를 끌고 나가려는 현 영화계의 문제점에 대한 인식을 내비치며 상대방의 프로 의식을 자극했다.
p.99-100
무로부시 시게노부에게 지도란 '조용히 지켜보는 것'이라 했다. "그러나 조용히 지켜본다는 것은 그저 멍하니 바라보는 것이 아닙니다. 지켜보면서 코멘트할 타이밍을 기다리는 거지요. 가령 선수의 동작이 잘못되었더라도 그것이 이후에 어떤 형태로 기술에 반영되는지 지켜봐야 합니다. 일시적인 상황만으로 판단해서는 안 되지요. 언제 어떤 조언을 해야 할지 적절한 때를 기다리는 겁니다."
그가 말하는 타이밍이란 만조가 차오르듯 선수 본인에게도 과제가 눈에 들어오는 순간이다. 그때까지는 지도자가 먼저 이야기하지 않는다. "내가 먼저 해머 이야기를 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어요. 그렇지만 선수가 무언가 질문 할 때는, 일단 빠짐없이 모두 대답해야 합니다. 코멘트할 타이밍이 오기까지 설령 1년이 걸린다고 해도 나는 기다립니다. 지도자로서 나 스스로 항상 되묻는 것은 내가 과연 적절한 준비를 하고 있는지입니다."
p.102-103
단순히 나쁜 습관을 교정하기 위함이라면 개별적이고 대화 중심적인 관점의 지도자가 아니어도 상관없다. 그러나 그런 지도자는 습관을 교정하여 장점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 여지까지 없애버릴 수 있다. 훌륭한 지도자는 습관을 기술로 바꿀 수 있는, 즉 '습관의 기술화'라는 관점을 갖추어야 한다.
p.104
아무리 자기 모습을 찍은 영상이라고 해도 거기에서 무언가를 '훔쳐낸다'는 마음으로 분석적으로 파헤치지 않으면 원하는 만큼의 성과를 기대할 수 없다. 기술 연구나 모니터링을 위해 수없이 녹화하지만, 철저한 분석은 커녕 방치되어 무용지물이 되는 자료들도 많다. 이런 일이 자주 발생하는 것은 영상 그 자체만으로 충분히 현실 고증이 된다는 맹신과 영상에서 또 다른 의미와 기술을 찾아야 한다는 의식의 부재가 원인이다.
p.114
"눈은 앞을 보고 마음은 뒤로 두라."는 말은 신체적 감각을 포함한 표현이다. 자기 본위의 독선적인 자세로 일을 진행하다 보면, 의식은 잠식해 버리기 쉽다. 그럴 때 잠시 '틈'을 두고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가 천천히 내뱉어 보자. 그러면 잠들어 있던 의식이 깨어나고, 마음이 뒤에 놓인 감각을 맛볼 수 있게 된다. 이것은 현재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생생한 시공간에서 한 발짝 떨어져 나와 냉정하게 상황을 파악할 수 있는 기법이다.
p.121
그러나 기술이 한 개인의 특기로 자리 잡는 과정을 들여다보면, 각자의 신체적 특성에 따라 미묘한 변형이 발생한다. 이 미묘한 변형을 항상 의식하고 연구해 두지 않으면 원하는 기술을 몸에 익히는 데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 ... 여기에서 중요한 점은 똑같은 싱커를 던지려 했으나 결과적으로는 다른 싱커를 익히게 되었다는 사실이 아니라, 처음부터 상대방과 자신의 차이점을 명확하게 인지하고 연습에 임한다는 점이다. '내 속에서 이 기술이 어떤 변형 작용을 일으키는가?'를 정확하게 인식하는 능력이 숙달의 관건이다. 결국 이 능력이 자신만의 스타일을 완성할 수 있는 결정적 힌트이기 때문이다.
p.129-130
'나는 지금 무엇을 위해 이것을 하고 있는가?'라는 물음에 분명하게 대답할 수 있는 인식력을 다져 가는 것이야 말로 숙달의 비결이다. 이 인식력은 마치 손쉽게 배율을 바꿀 수 있는 현미경이나 망원경과 같은 것이다. 예를 들어 공을 쥘 때나 던질 때의 팔꿈치와 손목의 관계를 보는 것은 미시적 관점이다. 반면에 특정 기술이 자신의 전체 경기 스타일에서 어떤 역할을 담당하는지를 분석하는 것은 거시적인 관점이다. 미시에서 거시에 이르는 광범위한 영역을 넘나들며 배율을 조율하는 과정에서, 목적하는 기술을 찾아내고 그 기술을 완전히 자기 것으로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p.131
스타일을 보편적인 숙달 원리의 중심 개념으로 간주하는 것은, 단순히 개성을 예찬하려는 의도가 아니라 오히려 그 밤대라고 할 수 있다. 스타일이라는 개념은 자신이 어떤 계보를 다를 것인지에 대한 문제의식을 더욱 선명하게 만든다. 본인 스스로 어느 계보의 후계자로 규정할 것인지에 대한 의식, 이것을 '계보 의식'이라 부른다면, 이 계보 의식이야말로 스타일을 만들어 가는 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개념이다. 자기 스타일을 만들어 갈 때 롤모델이 될 만한 사람을 가리켜 '선행자'라고 부른다. 이렇게 본인의 선행자를 찾겠다는 문제의식을 지속해서 점검하는 것이 바로 숙달의 비결이다.
p.149
물론 아량 넓은 요시다 겐코의 눈에도 가치 없는 일은 있다. 그러나 그는 단순히 겉으로 드러나는 가치에만 휩쓸리지 않고, 설령 미천하고 보잘것 없어 보이는 장르의 일이라도 그 방면의 달인이 발견한 '인식'이 있다면 높이 평가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뿐 아니라 이러한 인식은 불도의 수행이나 나라를 다스리는 일에도 통용하는 보편적 원리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한 점에서 볼 때, 겐코는 숙달의 보편적 원리에 관심이 높았음을 알 수 있다.
p.187
이어 150단에서도 겸손함과 성실함에 관한 이야기가 등장한다. 무언가 예술적 기술을 익히려 할 때 "서투른 초보자 단계에서는 모든 것이 어중간하니 사람들에게 알리지 않는 것이 낫다. 스스로 확실히 습득한 다음 사람들 앞에 서는 편이 훨씬 고상한 방법이다."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은 평생 한 가지 기술도 제대로 얻지 못한다고 잘라 말한다. "이와 반대로 처음 미숙한 단계부터 그 영역의 달인들과 의견을 나누는 것이 중요하다. 웃음을 사고 지적을 받아도 부끄러워만 하기보다 당당하게 넘기고 꾸준히 노력하는 사람은, 비록 타고난 소질은 없어도 자기 멋대로 엉뚱한 기술을 습득하는 우를 방지할 수 있다.
p.187-188
여기서 겐코가 이야기하려고 하는 것은 첫째, 부끄러워하지 말고 달인들 속에 뛰어들어 배움을 실천할 것. 둘째, 중도에서 곁길로 새지 않고 끝까지 지속할 것. 이 두가지다. 그는 "제멋대로 행동하지 않고 법도를 올바르게 지키면 만인의 스승이 될 수 있다. 이는 모든 도에 공통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겐코 역시 다양한 예도를 관통하는 보편적 원리를 깊이 탐구하고 있었다.
p.188
의식 집중에 관해 앞서 소개한 화살 이야기가 미시적 차원이라고 한다면, 겐코는 거시적 차원에 관한 집중도 역설한다. 188단에는 이러한 이야기가 실려있다.
한 사람이 부모에게 "설법을 생활의 수단으로 삼는 설경사가 되거라."라는 권유의 말을 들었다. 이 말을 들은 그는 설경사가 되기 위해 가장 먼저 말타기를 배웠다. 사람들이 설법을 듣기 위해 말을 데리고 와 그를 모셔가려고 할 때, 낙마한다면 어설프고 한심하게 볼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더불어 설법이 끝난 뒤 그 집에서 술이라도 권하면 그 자리에서 선뜻 부를 수 있도록 유행가도 연습했다. 아무런 재주도 없는 사람으로 보여 비웃음을 사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두 가지 재주를 배우고 익히면서 요령을 터득하게 되자 그는 점점 더 잘하고 싶어져 바지런히 연습했다. 그러나 그 일에만 몰두한 나머지 가장 중요한 설경은 배우지도 못한 채 나이를 먹고 말았다는 이야기다.
젊은 시절에는 여러 가지 일에 뜻을 두어 이름을 알리거나 권위를 얻고자 하지만, 아직 시간이 많다는 생각에 게으름 피우며 눈앞에 보이는 일에만 신경을 쏟아 세월을 허비하기 쉽다. 그러다 보면 정작 어느 것 하나에도 숙달에 이르지 못한 채 속절없이 늙어가는 것이다. 이런 상황을 '가파른 고갯길을 내달리는 수레바퀴'에 빗댄 것은 대단히 강렬하면서도 인상 깊은 표현이다.
p.193-194
요컨대, 여기서 겐코가 말하는 것은 에너지를 적당히 분배하거나 분산하는 것이 아니라 의식의 '집중'이다. 일생을 통해 반드시 실현하고 싶은 바람들 가운데 어느 것이 가장 간절한지 비교해 보고 그중 한 가지를 정했다면 "그 이외의 일들은 배제하고 오로지 그 일에만 몰두해야 한다."고 단호히 말했다.
p.194
이 말은 무언가 기술을 얻고자 하면, 양적인 축적이 선제되어야 질적인 변화를 끌어낼 수 있다는 결론으로 이어진다. 미시적인 집중도 필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신이 지금 무엇에 집중해야 하는지 판단하는 거시적 관점이다. 물론 이 작업은 한 사람이 가진 삶의 의미를 좌우할 만큼 중요한 사안이므로 판단하기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겐코는 바둑에 얽힌 에피소드를 소개하며 이 점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 바둑에서는 작은 이익을 버리고 큰 이득을 취할 줄 알아야 한다. 바둑돌 세 개를 버리고 열 개를 선택하기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바둑돌 열한개를 얻으려 열 개를 버려야 하는 선택은 대단히 어렵다. 버려야 하는 바둑돌이 많아질수록 아깝다는 생각이 더욱 강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겐코는 더 큰 것을 얻기 위해서는 작은 것을 과감히 버릴 줄 아는 거시적 관점이야말로 한 사람의 인생을 좌우하는 강력한 무기임을 강조한다.
p.195-196
<쓰레즈레구사>에는 닌나지의 한 스님이 비웃음과 교훈의 대상으로 자주 등장한다.
52단에서는 한 스님이 나이를 먹도록 이와시미즈에 있는 하치만구신사를 참배한 적이 없어, 어느 날 크게 마음을 먹고 참배의 길을 떠나는 이야기가 나온다. ... 이 일화를 짧게 응축한 다음 문장은 일본 사람들에게서 유명한 표현이다.
"사소한 일이라도 먼저 깨달은 자의 지혜를 빌리라."
이 말은 실로 보편성이 높은 격언이라고 할 수 있다. 일상생활에서 수시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사고나 실패 상황에 이 격언을 대입해 보면 어떨까. 소크라테스가 역설한 '무지의 지'와 같이, 우리 인간은 자신이 모르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
자기가 모르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기 위해서는 그에 걸맞는 수준이 필요하다. 이와 마찬가지로 숙달의 경지에 이르기 위해서는 자신이 아직 터득하지 못한 대상에 대한 예감이나 비전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 미처 경험하지는 못했지만, 그것을 머릿속으로 그려보고, 터득하기 위한 연습 매뉴얼을 세울 수 있으면, 숙달에 이를 수 있는 확실성이 강해진다.
p.202-204
닌나지의 스님이 끝내 오르지 않았던 '산'은 숙달의 이치를 비유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본래 도달해야 할 산은 다른 수준이지만, 그 산의 높이가 의미하는 바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낮은 수준에서 만족해 버리는 사람의 태도를 꼬집어 '산 위의 신사'에 비유한 것이 아니었을까. 산에 '오른다'는 행위는 단순한 길 안내라기보다 '오른다'라는 행위가 숙달론을 형상화한 이미지와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 높이 오를수록 눈앞에 펼쳐지는 풍경도 넓어진다. 숙달의 이치도 마찬가지다. 높은 산에 오른 사람들만이 볼 수 있는 풍경은 오르지 못한 사람들의 그것과는 확연히 다를 것이라고, 겐코는 확신했던 것이리라.
p.206-207
숙달은 곧 기술의 습득이다. 기술을 습득하기 위해서는 반복해서 연습하고, 양적인 축적이 질적인 전환으로 이어지는 그 타이밍을 놓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멍하니 기계적으로 반복하는 것만으로는 의미가 없다. 지금 자신이 하는 일을 선명하게 의식하면 숙달에 이르는 데 가속도가 붙는다.
어떤 일을 반복하다 보면 그것을 더 효과적으로 하는 요령을 터득하는 순간이 있다. 이런 순간은 일정 수준의 시간을 투입하고 집중력을 유지해야만 찾아온다. 그 세계에 완전히 몰입하여 자신이 하는 일을 선명하게 의식하는 시간이 일정한 수준 이상으로 지속되었을 때 비로소 요령이 손에 잡히는 것이다. 기껏 긴 시간 연습을 했어도 집중력이 동반되지 않으면 요령이 몸에 베는 순간은 찾아오지 않는다.
p.219-220
집중력이라는 것은 '의식 조각'의 양, 즉 의식의 많고 적음이라고 생각한다.
영화 필름은 1초에 24컷이라는 조각을 돌린다. 이러한 조각들이 뇌 속에서 작용한다고 생각해 보자. 집중력이 높은 타자는 투수의 손을 떠난 공이 자신에게 날아오는 불과 1초도 안 되는 시간 동안, 수많은 판단을 해야 한다. 어떤 종류의 공이 어느 코스로 날아오는지, 스트라이크인지 볼인지, 자기 기술 가운데 어떤 것을 활용해야 하며, 어떤 기술을 활용할 경우 어디로 날아갈 것인지 등 다양한 상황을 언어로 표현할 사이도 없이 순간적으로 판단한다. 이 찰나의 순간 활동하는 '의식의 조각'은 같은 1초라도 평상시보다 훨씬 많을 것이다.
세계 모터사이클 선수권에서 아시아 최초로 챔피언 자리에 오른 가타야마 우야사이는 "초능력이란 집중력"이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레이서에게 1초는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다. 시속 300km로 달리고 있을 때라도 집중력이 극한으로 높아진 상태라면 주변 풍경이 선명하게 눈에 들어온다고 한다. 1초 동안 활동하는 의식의 조각이 많을수록 시간이 흐름을 더디게 느낀다.
p.222-223
평소라면 그냥 지나쳐버렸을 미묘한 차이를 알아채는 것. 나아가 이러한 기술을 지탱해 주는 신체 감각을 구체적인 체험을 통해 축적하며 연마해 가는 것. 이것이 곧 숙달의 비결이다. 러시아의 탐험가이자 지리학자인 블라디미르 아르세니에프의 <데루스 우질라>에 기록된 시베리아 사냥꾼 데루스 우질라가 선보인 '신체 감각의 기술화'는 말 그대로 충격적이었다.
p.247-248
폭넓은 주파수대를 감지하여 조율하는 능력을 갖추는 것. 이것이 바로 나의 세상을 넓고 다채롭게 그리고 더욱 풍요롭게 만드는 열쇠로 작용한다. 수용할 수 있는 주파수대가 좁으면 좁을수록 경험할 수 있는 세상도 좁아지며 만남의 질에도 한계가 있다. 감지할 수 있는 주파수대가 넓고 성능도 뛰어나면 경험할 수 있는 세상의 질도 높아질 뿐 아니라, 자신의 세계가 더욱 풍요로워진다. 그뿐 아니라 그 접촉을 통해 새로운 의미가 탄생하는 관계를 형성하기가 훨씬 수월해진다.
p.253-254
작가인 무라카미 하루키는 소설가로서 숙달되어 가는 과정과 자신만의 스타일을 만들어 가는 일이 매우 밀접하게 연관된 과제임을 분명하게 의식하고 있다. 작가의 경우, 작가 고유의 문체가 곧 그의 스타일이기 때문에, 숙달하는 것과 스타일을 확립한다는 것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으며, 이는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기도 하다.
p.264
"우선 저녁에 일찍 자고 아침에 일찍 일어나며, 운동을 통해 체력을 키웠습니다. 문단에 얽매이지 않을 것, 소설 의뢰를 받지 않을 것 등 구체적인 원칙을 세우고 그대로 실천해 왔어요. 이전에 아무도 가 본 적 없는 길을 혼자 힘으로 만들어 가며, 내 나름의 문학 스타일과 생활 스타일을 쌓아가야만 했습니다."
하루키에게 스타일이란 단순히 소설의 문체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생활 스타일까지 포함하는 것이다. 스타일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우선 자신이 반드시 지켜야 할 구체적인 원칙을 정한다. 스타일은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세세하고 구체적인 일들을 쌓아가며 완성해야 하는 것이다. 그는 먹고 자고 운동하는 등의 기본적인 생활 습관부터, 사람을 사귀거나 업무를 진행해 나가는 방법, 소설가로서 자신에게 최적의 환경을 만들어가는 것 등이 소설가로서의 스타일을 확립해 주는 과정이라고 믿었다.
p.267
결국 언젠가는 몰입 상태로 반드시 들어간다는 확신이 있으면, 힘들고 괴로운 작업이라도 견뎌낼 수 있다. 몰입 상태로의 전환은 절대 자연적인 현상이 아니다. 몰입의 경지에 도달하기까지의 일련의 과정을 습관화하고 기술로 발전시키다 보면, 자연스럽게 확신이 차오른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이 과정을 물 긷는 일에 비유하며 이렇게 이야기한다.
"자기 속에 깊고 깊은 우물이 있고, 그 우물의 깊은 바닥에 맑은 물이 솟아오르는 소중한 샘이 있다고 가정해보세요. 소설을 쓰려면 그 물을 길어 올려야 합니다. 나는 하는 수 없이 깊고 깊은 우물의 바닥까지 내려갔다, 다시 올라옵니다...... 또 다시 내려갔다 올라오는 작업을, 마치 시시포스 신화의 주인공처럼 힘겨운 노동을, 계속 합니다. 그것은 아무리 힘들고 괴로워도 반드시 해야 하는 일입니다.
p.284-285
자신에게 필요한 과제를 명확히 하고, 본인의 생활 전반에 걸쳐 있는 신체적 특성을 고려하여 해당 과제를 수행하는 것. 이것이 스타일 구축의 기본적인 원칙이며, 본격적으로 숙달의 보편적 원리를 터득하는 방법이다. 본인의 신체적 특성을 무시한 채 그 영역의 고유한 기술을 몸에 익히면, 막상 영역이 달라지거나 상황이 바뀌었을 때 애써 익힌 그 기술을 직접적으로 활용할 수 없다. 그러나 자기 신체성을 고려하여, 본인의 방식대로 일관된 변형(스타일)을 통해 제대로 익혀두면, 그 변형은 다른 영역의 일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게 된다.
p.287-2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