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주변의 I-dealers(가상협상-3)

by 크네이트

3.3 프로젝트 베이스의 재설계 ― 문용, 떠나려던 전략가의 조용한 복귀


3.3.1 성과는 남고, 삶은 사라졌다

문용은 전략기획실 팀장이었다. 입사 12년 차, 위기 때마다 회사를 지탱했던 전략가였다. 회생이 불가능하다는 평가를 받던 해외 법인 구조조정 전략을 혼자 완성했고, 신사업 진출 시에는 실행 로드맵을 직접 설계해 연매출 30%를 끌어올렸다. “결정은 위에서 하지만, 방향은 문용이 잡는다”는 말이 사내에 돌 정도였다. 그는 누구보다 몰입했고, 누구보다 많은 것을 해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자신이 그 모든 장면 속에 없다는 걸 느끼기 시작했다. 성과는 쌓였고 회의는 그의 언어로 마무리되었지만, 가족과의 약속은 해마다 연기되었고, 친구들의 연락은 점점 줄었다.

퇴근길의 풍경도, 주말의 시간도 모두 다음 보고서를 준비하는 공간이었다. 그는 몇 번이나 고민했다. “휴직을 내볼까?” “한두 달 쉬면 괜찮아지지 않을까?” 하지만 쉽게 결심할 수 없었다. “지쳤다”는 말 한마디로, 지금까지 쌓아온 신뢰가 무너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잠시 쉰다고 해서, 다시 제대로 일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었다. 그는 결국 인정했다. 이 방식으로는, 더는 나를 지킬 수 없다. 그리고 조용히 결심했다.


“이 일이 나빠서가 아니라, 이 방식이 나를 지운다면, 나는 멈춰야 한다.”


3.3.2 조직이 바꿔야 했다

문용의 사직 의사는 전략본부장에게 곧바로 전달되었다. 그리고 그 시점은 절묘하게도 새로운 전략 프로젝트가 막 출범하는 때였다. 복수의 부서와 이해관계자가 얽힌 복잡한 과업. 실행계획과 내부 조정, 외부 리스크 관리까지 총괄할 사람이 필요했다. 본부장은 머뭇거렸다. 문용은 이 모든 조건을 충족할 수 있는, 어쩌면 유일한 인물이었다. 조직은 고민에 들어갔다. 성공 가능성을 위해선 그가 필요했고, 그를 붙잡기 위해선 일의 방식을 바꾸는 것 외엔 방법이 없었다. 결국 인사팀과 전략본부는 한 가지 원칙을 세웠다.


'성과는 요구하되, 방식은 전권을 위임한다.'


3.3.3 새로운 제안, 새로운 조건

며칠 뒤, 전략본부장이 문용을 다시 불렀다. 그는 더 이상 “돌아와 달라”고 말하지 않았다. 대신 이렇게 제안했다. “이번 프로젝트, 당신 이름으로 시작해주셨으면 합니다. 출퇴근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회의도, 보고도 최소화하겠습니다. 다만, 정해진 기한 내에 결과만 제시해주세요. 전권을 드릴 테니, 당신 방식으로 이 일을 완성해주십시오.”

문용은 잠시 말이 없었다. 조직이 이렇게까지 형식을 내려놓고 일을 다시 설계해보자고 말한 건 처음이었다. 그 제안은 단순한 재택근무가 아니었다. 일하는 방식의 재구성, 그리고 신뢰 기반의 프로젝트 위임이었다.


3.3.4 회복과 몰입, 두 단어의 공존

문용은 제안을 수락했다. 단, 몇 가지 조건을 덧붙였다.

∙ 프로젝트는 자율적으로 운영하되,

∙ 주 1회 정기 보고, 월말 점검 회의,

∙최종 완료 보고까지는 일정에 맞춰 수행할 것

∙실시간 회의나 메시지 요청은 사전 협의 없이 진행하지 않으며,

∙ *비동기 피드백 체계를 원칙으로 할 것

∙최종 기한은 반드시 지키고, 결과물은 독립된 책임 하에 제출할 것


그는 더 이상 밤새지 않았다. 아이와 함께 아침 산책을 마친 뒤, 바다 근처의 조용한 서재에 앉아 전략 문서를 다듬었다. 주중에는 팀과 협업을 이어가되, 금요일은 방해받지 않는 깊은 몰입의 시간으로 확보했다. 그날만큼은 삶의 리듬을 되찾고, 그 위에서 전략의 방향을 다시 그려나갔다. 한때는 자신을 지워야만 가능했던 일이, 이제는 자기다운 삶의 중심에서 다시 시작되고 있었다.

성과는 줄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더 깊이 몰입했고, 더 빠르게 설계했다. 결과는 명확했다. 프로젝트는 예정보다 일주일 먼저 완료되었고, 그가 제출한 전략문서는 곧장 이사회 안건으로 채택되었다.


※ 비동기 피드백 체계란, 실시간 회의나 호출 없이 메신저, 협업툴, 문서 코멘트, 이메일 등을 활용하여 사전에 정한 시간과 방식에 따라 피드백을 주고받는 협업 구조를 말한다. 문용은 이를 통해 집중이 필요한 시간에는 방해받지 않고 일에 몰입할 수 있었고, 팀은 필요한 정보를 명확하게 공유받을 수 있었다. 이 방식은 자율성과 책임을 동시에 확보하는 신뢰 기반 업무 운영의 실제적 예였다.


3.3.5 개인과 조직의 교차점 ― I-deals의 6가지 실행 조건

문용의 요청은 단순한 업무 환경의 조정이 아니었다. 그것은 “이 방식으로는 더는 나를 지킬 수 없다”는 고백이자, “그럼에도 이 일을 계속하고 싶다”는 간절한 연속의 요청이었다. 여기엔 명확한 조건들이 있었다. 그러나 그 조건은 개인만의 요구가 아니었다. 조직 역시 같은 시점에서 균열을 감지하고 있었고, 이 균열을 복원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일하는 방식을 다시 설계할 수밖에 없다는 판단에 이르렀다. 이 협상은 그래서 특별했다.


한 사람의 생존을 위한 요청이자,

조직의 생존 전략으로도 기능한 ‘이중 조건 협상’이었기 때문이다.


문용의 제안과 조직의 수용이 어떻게 6가지 실행 조건을 충족했는지를, 개인과 조직의 교차 시점에서 하나씩 확인해보자.


∙ BATNA ― 떠남의 명분, 남음의 대안

문용의 BATNA는 분명했다. 그는 조직에 사직 의사를 전했다. 단순한 감정 표현이 아니었다. 그는 계산하고 있었고, 준비하고 있었다. 여느 퇴사와 달리, 그의 퇴장은 오랜 시간에 걸친 내적 설득의 결과였다.

퇴근 후, 그는 아이와 대화하지 않았고, 가족과의 식사 자리에조차 자주 빠졌다. “지금 내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 거지?”라는 질문이 점점 강박처럼 따라붙었고, 그 질문은 어느 날, “이 일을 계속할 수는 없다”는 결론으로 바뀌었다.

문용은 알고 있었다. “그만두겠습니다”라는 말은 단지 회사를 떠나겠다는 뜻이 아니다. 그 말은, ‘지금 이 구조로는 내 삶을 지킬 수 없다’는 선언이었다. 그는 단지 피로했거나 업무 강도가 높아서 떠나려는 것이 아니었다. 지금 방식으로 계속 일한다면, 성과는 남지만 '내적 정체성'은 사라진다는 것을 직감하고 있었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 그는 일에서 완전히 등을 돌린 것도 아니었다. 그는 그 일이 싫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너무 좋아했기에 이렇게까지 고민했던 것이다. 그래서 문용은 명백한 퇴사 결심을 꺼내면서도, 그 말을 통해 조직에 묵시적 제안을 던지고 있었다. “지금 이대로는 안 되지만, 다른 방식이라면 계속할 수도 있다”는 암시 말이다.


그것은 위협이 아닌 마지막 여지였다. 그의 진짜 BATNA는 떠남이 아니라, ‘지금의 방식을 멈추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협상은 일방이 아니라 쌍방이었다. 조직도 이미 느끼고 있었다. 문용의 피로, 멀어지는 감정, 줄어드는 회의 발언, 드물어진 야근, 예전보다 늦게 올라오는 전략 보고서. 그는 사직서를 낼 때 갑자기 무너진 것이 아니었다.

조직은 조용한 붕괴의 징후를 알고 있었고, 그것이 진짜 위기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 새로운 전략 프로젝트가 출범을 앞두고 있었다. 부서 간 협업이 중요한 프로젝트였고, 내부 이해관계 조정과 대외 커뮤니케이션까지 고려해야 하는 고난이도 과업이었다. 그 역할을 누가 맡을 것인가? 실무와 전략, 설계와 실행을 모두 아우를 수 있는 사람은 사실상 문용이 유일했다.

그를 놓치면 프로젝트는 계획 단계부터 흔들릴 수 있었다. 본부장은 고민했다.


‘우리는 그를 설득할 수 있을까?’ ‘단순한 위로로 돌아오게 만들 수 있을까?’


아니었다. 그것으로는 안 된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 이번에는 방식이 달라야 했다. 그래서 조직도 나름의 BATNA를 설정해야 했다. 그를 잃는 대신 누구를 투입할 것인가? 그 대안이 실제 존재하지 않았고, 설사 있다고 해도 그만한 품질의 결과를 만들 확률은 낮았다. 문용의 퇴사는 조직 입장에서 실패 리스크였다. 따라서 조직은 그의 제안을 들어야 했다. 그리고 단순히 그를 설득하는 것을 넘어서, 그가 머물 만한 구조를 설계하는 것 자체가 조직의 협상 전략이 되었다. 이 BATNA 협상은 아주 조용하게, 그러나 깊게 작동했다.

문용은 명시적으로 어떤 제안도 하지 않았지만, 조직은 그의 사직서를 보고 ‘이대로 두면 정말 떠날 것’이라는 확신을 가졌다. 이것이 바로 I-deals 협상이 갖는 특징이다. 표면상으로는 제안 같지 않지만, 그 안에는 ‘떠남의 명분과 남음의 조건’이라는 두 개의 명제가 동시에 들어 있다. 이 협상은 실패한 것이 아니었다. 실제로는 아주 정교하게 설계된 ‘조건 없는 제안’이었다. 문용은 묻고 있었던 것이다.


'일이 아니라 방식이 문제라면, 방식을 바꿔줄 수 있습니까?'


∙ 장기지향성 ― 회복 없는 지속은 없다

문용이 처음에 떠올린 해결책은 단순했다. “한두 달 쉬면 괜찮아지지 않을까?” 그는 휴직을 고민했고, 유급이든 무급이든 시간을 벌어 자신을 회복할 수 있을지 계산했다. 하지만 바로 깨달았다. 이건 단기 처방일 뿐이라는 걸. 몇 주 쉰다고 해서 바뀔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다. 그는 자신이 ‘지친 것’이 아니라, 이 방식으로는 더 이상 나로 존재할 수 없다는 감각을 안고 있었다. 문제는 피로가 아니라, 정체성의 침식이었다. 이 시점에서 문용은 방향을 바꿨다.

회복은 잠시의 휴식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리듬에서만 가능하다는 인식이었다. 그는 단기 유연성을 요구하지 않았다. 출퇴근 시간, 휴가, 근무지의 변경 같은 물리적 변화가 아니라, 자신이 일의 주기를 조정하고, 몰입과 회복을 교차적으로 설계할 수 있는 장기적 몰입 구조를 요청했다. 그는 다시는 일 때문에 삶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결심 아래 ‘금요일의 몰입 루틴’을 제안했고, ‘비동기 피드백 체계’를 통해 방해받지 않는 작업 환경을 설계했다. 그의 요청은 ‘편의’가 아니라 ‘철학’이었다.


“나는 이 일을 오래 하고 싶습니다. 그러기 위해선 방식이 바뀌어야 합니다.”


그 말은 단지 살아남기 위한 요구가 아니라, 일을 오래도록 사랑하고자 하는 사람의 정중한 요청이었다. 조직의 반응은 처음엔 신중했다. 전략기획실에서 오랫동안 고성과를 내온 그였지만, 형식 없이도 성과를 낼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가 있었다. 회의를 줄이고, 피드백을 비동기화하고, 업무의 주도권을 전적으로 그에게 넘긴다는 발상은 기존의 리더십 문화와 통제 방식에 도전하는 일이기도 했다. 그러나 곧 조직은 하나의 사실에 도달했다. 이대로라면, 그는 떠난다. 그리고 그가 떠나면, 새로운 인력을 뽑아도 같은 수준의 전략을 설계하고 이해관계를 조정할 사람은 쉽게 나오지 않을 것이다. 회사의 지속가능성이 걸려 있는 프로젝트에서, 한 사람의 지속가능성을 고려하지 않는 건, 결국 회사 스스로의 자충수일 수 있었다. 그때 본부장이 조용히 말했다.


“지금 필요한 건, 단기 대체자가 아니라 장기 설계자입니다.”


그 말은 곧, 기존 조직문화가 ‘관리’ 중심이었다면, 이제는 ‘지속 가능한 관계’ 중심으로 전환되어야 한다는 선언이었다. 문용의 제안은 조직의 미래와 연결되었다. 그의 장기지향성은 개인적 편의를 넘어서 “일을 오래 할 수 있는 구조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조직에 던졌다. 그리고 그 질문은 조직이 스스로의 지속가능성을 돌아보게 만들었다.


∙ 절차공정성 ― 신뢰는 새로운 형식에서 시작된다

문용은 조직에서 오랫동안 고성과자로 불렸지만, 그 누구보다 규칙을 중시하는 사람이기도 했다. 성과는 과정에서 나온다는 것을 알았고, 그 과정이 예측 가능하고 합의된 기준 위에서 진행되어야 한다는 신념이 있었다. 그래서 그가 이번 프로젝트에 대해 요청한 방식은 기존의 절차를 무너뜨리는 ‘파격’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새로운 방식의 ‘절차 재설계’를 제안한 것이었다. 그는 전면적인 출퇴근 자율을 요청하면서도 ‘주 1회 정기보고’, ‘월말 점검회의’, ‘최종 성과 제출’이라는 명확한 업무 체크포인트를 스스로 먼저 제안했다. 보고 시간과 방식은 유연하되, 성과는 예측 가능하게, 그리고 스스로 책임지겠다는 뜻이었다. 그가 강조한 것은 ‘절차의 폐기’가 아니러 ‘절차의 재구성’이었다. 그는 기존의 ‘출근–회의–보고–승인’이라는 수직적·동기화된 절차를 벗어나 수평적이고 비동기적인 협업 루틴을 제안했다. 하지만 그 안에는 여전히 ‘기준’이 있었다. 그 기준은 자율과 책임을 동시에 담은, 신뢰 가능한 운영의 재정의였다. 이 지점에서 조직이 느낀 것은 혼란이 아니었다. 오히려 납득이었다. ‘문용이 요청한 것은 특혜가 아니라, 새로운 합의였다’는 사실.

그동안 조직은 절차를 통해 통제와 공정성을 확보해왔다. 모두에게 동일한 방식, 동일한 보고, 동일한 시간표를 제공함으로써 성과의 비교 가능성을 보장하고자 했다. 그러나 그 절차는, 누구에게는 억압이었고 누구에게는 소외의 루틴이었다. 특히 프로젝트 기반의 전략 과업은 정형화된 루틴보다는 창의적 판단과 유연한 설계가 더 중요한 경우가 많았다. 문용은 이 점을 정확히 짚었다. 기존 절차는 효율성을 위한 구조였지만, 그 효율이 사람을 잃게 만든다면, 그건 조직도 잃는 것이었다.

인사팀은 처음에는 난색을 표했다. “문용만 예외를 주는 것이냐”는 내부 우려도 있었다. 하지만 문용이 제안한 구조가 단지 ‘자기 편한 방식’이 아니라 더 높은 책임성과 예측 가능성을 담고 있다는 점이 공유되자, 의견은 바뀌었다. 오히려 인사팀장은 회의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건 특혜가 아니라, 합의 기반의 새로운 형식입니다.

절차공정성은 ‘똑같이’가 아니라, ‘각자의 방식으로 책임질 수 있게’ 만드는 구조를 말합니다.”


그 순간, 절차는 다시 신뢰가 되었다. 기존의 형식은 내려놓았지만, 새로운 절차는 그보다 더 강한 몰입과 결과를 이끌 수 있다는 기대가 생겼다. 문용은 과거의 틀을 부쉈지만, 대신 ‘스스로 설계한 절차’로 책임의 무게를 견인하고 있었다.


∙ 상호작용공정성 ― 권위보다 대화가 먼저였다

문용은 조직 내에서 누구보다 신뢰받는 인물이었지만, 그만큼 누구보다 많은 기대를 짊어진 사람이기도 했다. 그의 이름은 항상 중요한 회의와 보고서의 마지막에 등장했지만, 그 자신은 점점 조직과의 ‘의미의 대화’에서 멀어지고 있었다. 사직 의사를 밝힐 당시에도 그는 불만을 쏟아내지 않았다. 소리를 높이지도, 감정을 앞세우지도 않았다. 단 한 번, 조용히 말했다.


“이 방식으로는 더는 버틸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 말은, 형식적으로는 통보였지만, 실제로는 묵직한 대화의 제안이었다. 조직이 그의 내면에 귀 기울이기를 바란, 조용하고 깊은 시그널이었다. 그 신호를 처음 받은 본부장은 당황하지 않았다. 오히려 조용히 물었다.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이 방식이 왜 지금은 안 맞는다고 느끼시는지 설명해주실 수 있습니까?” 그는 문용을 설득하려 하지 않았다. 대신 문용이 말할 수 있게 만들었다. 이 과정은 단순한 커뮤니케이션이 아니었다. ‘존중이 우선된 대화’, 즉 상호작용공정성의 핵심이 발현되는 순간이었다. 문용은 그 질문 앞에서 처음으로 자신의 감정을 설명할 수 있었다.


“회의 중엔 언제나 제안했지만, 그 제안이 ‘결정권자 언어’로 번역되는 걸 보고 나면, 제 말이 사라지는 느낌이었습니다.”

“제가 설계한 전략이지만, 그 설계의 맥락은 공유되지 않았고, 결과만 남았습니다.”


그는 단지 몰입을 원하는 것이 아니었다. 존재로서 존중받고 싶었던 것이다. 자신의 판단과 언어, 기획의도와 운영전략이 ‘단지 실행 도구’가 아닌, ‘주체의 사고’로 받아들여지기를 바랐다.

조직의 반응은 성숙했다. 본부장은 말하지 않았다. 대신, 인사팀장과 함께 직접 문용을 다시 만났다. 그리고 이번엔 요청하지 않았다. “돌아와 달라”고 하지도 않았고, “쉬고 오라”고 하지도 않았다. 대신 말했다. “어떻게 일할 수 있을지를, 당신이 먼저 말해주세요.” 그 말은 명령이 아니었다. 그건 권위를 내려놓고 건넨, 신뢰의 대화였다. 이 상호작용은 회복의 문을 열었다. 문용은 조건을 제시할 수 있었고, 그 조건이 조직에게 ‘특혜’가 아닌 ‘합의’로 받아들여질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이러한 대화의 품질이 있었다. 상호작용공정성은 단지 말의 기회를 주는 것이 아니다. 그 말을 ‘존재의 언어’로 받아들이고, 의사결정의 일부로 존중하는 구조다. 문용과 조직 사이의 이 대화는 그 어떤 정책보다 강력한 회복의 기제가 되었다. 조직은 그를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 그의 말이 머물 수 있는 공간을 먼저 마련한 것이었다. 그 점에서 이 협상은 대화가 만든 변화였다.


∙ 설명력 ― 납득 가능한 설계는 설득을 낳는다

문용은 감정에 기대지 않았다. 그는 ‘힘들다’고 말하지 않았고, ‘쉬고 싶다’는 말도 꺼내지 않았다. 대신 그는 설계도를 들고 왔다. 자신이 어떤 환경에서, 어떤 방식으로 일할 수 있는지를 하나하나 항목별로 제시했다. 그 제안은 치밀했고, 구체적이었으며, 무엇보다 논리적이었다. 비동기 피드백 체계의 필요성과 장점, 금요일 집중 몰입 시간을 확보하는 이유, 출퇴근 자율이 프로젝트 리듬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주간 단위 피드백이 업무의 예측성과 품질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등 그의 설명은 요청이 아니라 구조 설계에 가까웠다. 그는 일할 수 없는 조건을 불평하지 않았다. 대신 일할 수 있는 조건을 논리적으로 조립했다. 그리고 그 조립의 완성도를 통해, 자신이 이 프로젝트를 끝낼 수 있는 사람이라는 신뢰를 다시 세웠다. 그 설명 앞에서 조직은 자연스레 수용을 고려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문용에게만 특별대우를 해주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있었다. 그러나 본부장과 인사팀이 그의 설명 자료를 공유받고 나서, 분위기는 달라졌다. 그 안에는 논리적 설계와 실무적 고려, 책임의 경계까지 포함된 완결성이 있었다. 이 제안은 단지 편의 요청이 아니라, 업무 수행을 위한 프로젝트 운영 모델이었고, 성공을 위한 전략적 장치이기도 했다. 조직은 깨달았다. 이건 요청이 아니라 제안이고, 그 제안은 성과를 위한 대안적 방식이라는 점을. ‘감정 표현’이 아닌 ‘설명력 있는 구조 설계’가 설득이 아니라 납득을 만들어낸다는 사실이 명확해졌다. 설명력이란 무엇인가? 이 협상에서 설명력이란, '상대방이 그 안에 숨어 있는 이유와 구조를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드는 능력'이다.


문용의 설명은 단지 말이 아니라, '설계와 책임, 예측 가능성'을 담은 설명이었다. 그는 이렇게 말한 셈이었다. “저는 이 일을 계속하고 싶습니다. 다만, 이 방식이 저를 사라지게 만든다면, 제 방식으로 설계해보겠습니다. 그 안에 성과와 책임, 회복과 리듬을 함께 담겠습니다.” 그 설명은 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이유가 되었다.그것은 이해를 넘어, ‘그래야만 한다’는 공감의 문장이었기 때문이다.


∙ 심리적 안전감 ― 실험할 수 있는 구조가 몰입을 만든다

문용이 가장 두려워했던 건 실패였다. 단순한 업무 실패가 아니라, “내가 만들어낸 새로운 방식이 조직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어떻게 하지?”, “성과가 기대에 못 미치면, 이번 방식이 ‘예외의 실패’로 낙인찍히진 않을까?”

그는 이 요청이 받아들여진다 해도, 그 구조 안에서 자신이 실패한다면 이 실험 자체가 조직에서 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제안 단계에서부터 자기 책임을 명확히 했다. 성과 기한은 엄수하고, 산출물의 결과를 객관화하며, 팀원들과의 협업은 주기적인 체크포인트 안에서 운영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동시에 그는 ‘몰입의 리듬’을 보장받고 싶었다. 그 리듬이 흔들리지 않아야, 이 실험이 의미 있을 것이었고 그래야만 그는 다시 자신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었다. 문용에게 심리적 안전감은, ‘실패해도 괜찮다’는 말이 아니라 “몰입이 보장되는 구조 안에서 일할 수 있는 자유”였다. 그는 회의를 줄여달라고 한 것이 아니라, 회의가 아닌 시간에 방해받지 않기를 원했다. 그는 결과로 평가받기를 원했고, 과정은 자신의 방식대로 설계하겠다는 선언이었다.

조직도 처음엔 긴장했다. “정말 이 방식이 통할까?” “성과가 떨어지면 어떻게 하지?” “다른 팀에 이게 전파되면 통제는 누가 하지?” 불안은 당연했다. 하지만 동시에 조직은 알게 되었다. 기존 방식이 그를 떠나게 만들 뻔했다는 사실을. 지금 필요한 건, 통제의 지속이 아니라 신뢰의 실험이었다. 본부장은 이 실험을 승인하면서 인사팀에 이렇게 말했다.


“이건 문용을 위한 조건이 아니라,

우리가 변화할 수 있는지를 시험하는 조건입니다.”


그 말은 곧, 조직이 ‘허용’을 넘어 자신의 운영 방식을 실험 대상으로 놓겠다는 결단이었다. 조직은 처음으로 '표준'이 아니라 '개인의 리듬'을 중심에 놓고 운영 설계를 다시 해보려 한 것이다. 그리고 이 실험은 성공했다. 문용은 몰입했고, 팀은 혼란 없이 결과를 공유받았고, 성과는 오히려 빨랐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방식이 한 개인을 회복시켰다는 사실이, 조직 전체에 또 다른 가능성을 제시했다. 심리적 안전감은 배려가 아니라 설계다. ‘마음 편히 일해도 된다’는 말은, ‘어떻게 하면 몰입할 수 있는가?’에 대한 구체적 구조로 나타나야 한다. 문용은 그 구조를 만들었고, 조직은 그 구조에 신뢰를 담았다. 그 결과, 이번 협상은 예외가 아니라 조직 문화를 시험한 작은 실험이자, 성공한 복귀의 리허설이 되었다.


3.3.6 학습적 고찰 ― 신뢰가 먼저일까, 성과가 먼저일까

이번 사례는 단순한 근무형태의 전환이 아니라, 몰입과 회복의 조건을 스스로 재설계하고, 그 구조 안에서 일과 정체성, 성과와 신뢰를 동시에 복원한 협상의 과정이었다. 문용의 요청은 형식 파괴가 아닌 ‘존재 조건의 재조립’이었고, 조직의 수용은 ‘특혜’가 아닌 ‘운영 철학의 재해석’이었다. 이 과정은 개인과 조직 모두에게 깊은 심리적, 제도적 의미를 남긴다. 다음은 이를 뒷받침하는 주요 이론적 해석이다.


◼ 개인의 시점 ― 회복은 권리가 아니라, 구조다

∙ 자기결정이론(Self-Determination Theory)

Deci & Ryan(1985)의 자기결정이론에 따르면, 자율성, 유능감, 관계성의 충족 여부는 내적 동기의 핵심 조건이다. 문용은 고성과자였지만, 일정과 업무 방식에 대한 통제권을 상실한 상태에서 점차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가고 있었다. 그는 단순한 ‘성과 창출자’가 아니라, 전략을 기획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설계자’로 일하고자 했다. 자율성이 회복되지 않으면, 몰입도 회복될 수 없다는 판단이 이번 I-deals 협상의 내면적 동력이 되었다.


∙ 정체성 이론(Identity Theory)

정체성 이론은 개인이 자신의 역할을 어떻게 해석하고 내면화하는지에 따라 행동이 형성된다고 본다. 문용은 조직 안에서 점점 “전략을 직접 그리는 사람”이 아니라 “누군가의 결정을 실현하는 전달자”로 느껴지고 있었다. 이러한 '역할–정체성 불일치'는 그가 과거의 몰입을 지속할 수 없게 만든 핵심 요인이었다. 그가 요구한 것은 단지 자유가 아니라, 역할의 회복을 통해 정체성을 다시 말할 수 있는 구조였다.


∙ 심리적 계약이론(Psychological Contract Theory)

Rousseau(1989)의 이론은 구성원이 조직과 맺는 비공식적 기대와 약속의 체계를 강조한다. 문용은 입사 초기부터 “조직의 방향을 설계하는 사람”으로 인정받아왔다. 그러나 반복되는 위기와 성과 중심 운영 속에서 그는 점차 그 계약이 무력화되는 것을 경험했다. 이번 협상은 침묵과 체념으로 응고되던 파기된 심리적 계약을 스스로 다시 구성하고 체결한 회복의 시도였다.


∙ 직무요구–자원 모형(Job Demands–Resources Model)

Tims & Bakker(2010)는 직무자원의 확보와 회복이 직무 스트레스를 완화하고 몰입을 촉진한다고 보았다. 문용은 주도권 없는 루틴과 방해받는 업무 환경 속에서 점차 직무자원을 상실하고 있었다. 그가 제안한 비동기 피드백 구조, 자율 일정, 몰입 루틴은 단지 편의를 위한 조건이 아니라, 고갈된 직무자원을 복원하고 확장하기 위한 설계 전략이었다.


◼ 조직의 시점 ― 절차는 형식이 아니라, 신뢰다

∙ 절차공정성 이론(Procedural Justice Theory)

Leventhal(1980)의 절차공정성 이론은 결정 절차의 일관성, 정확성, 수정 가능성 등이 공정성 인식에 영향을 준다고 본다. 문용의 요청은 형식을 깨는 것이 아니라, 성과 중심 과업에 적합한 절차를 새로 설계하자는 제안이었다. 조직은 이 제안을 통해 ‘동일한 절차 = 공정’이라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다른 방식으로도 정당성을 가질 수 있다’는 확장된 공정성 인식을 갖게 되었다.


∙ 심리적 안전감(Psychological Safety)

Edmondson(1999)은 팀원들이 처벌받을 두려움 없이 의견을 낼 수 있는 상태를 심리적 안전감이라 정의했다. 문용의 요청은 실패해도 괜찮다는 말이 아니라, 실험할 수 있는 구조에 대한 설계 제안이었다. 조직은 그 제안을 수용함으로써 통제가 아닌 신뢰 기반의 협업 구조를 시험했고, 결국 그 실험은 빠른 성과와 자율적 책임을 함께 증명해냈다.


∙ 제도화 이론(Institutional Theory)

Scott(2001)은 조직의 제도는 단지 규칙이 아니라 문화적 인식과 정당성의 총체라고 말한다. 이번 사례에서 조직은 기존의 근무제도 바깥에 있던 요청을 공식화된 ‘가능성’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이는 단순한 예외 허용이 아니라, I-deals가 제도화될 수 있는 길을 여는 전환점이었다.


∙ 상호작용공정성 이론(Interactional Justice)

Bies & Moag(1986)는 구성원이 조직 내에서 존중받고 있다고 느끼는 방식, 즉 대화의 질이 공정성 인식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다고 했다. 문용 사례에서 결정적이었던 것은 “왜 그랬는가”보다 “어떻게 함께 할 수 있을까”를 물었던 상사의 태도였다. 이 상호작용의 질이 단순한 요청을 ‘공정한 협상’으로 전환시킨 심리적 조건이었다.


3.3.7 회복을 설계한 조직 ― 일과 신뢰 사이의 새 합의


현실 협상형 I-dealer의 또 다른 얼굴


▶ 핵심 개요(협의형 거래 + 정체성 회복 관점 통합)

그는 ‘전략가’였다.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데 능했고, 성과 중심의 조직에서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아남아 왔다. 그러나 어느 순간, 성과는 남았지만 삶은 사라졌고, 자신이 설계한 일에서조차 더 이상 ‘나’를 느낄 수 없었다. 그가 요청한 것은 단순한 시간 조정이나 유연근무가 아니었다. 그것은 “이 방식으로는 나를 지킬 수 없다”는 고백이자, “그러나 이 일을 계속하고 싶다”는 절박한 설계 제안이었다.

조직 또한 알고 있었다. 그를 잃는다면, 이번 프로젝트는 흔들릴 것이며, 대체 가능한 자원이 없다는 사실도 인식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 협상은 특별했다. 문용은 ‘지속 가능한 몰입’을 설계'했고, 조직은 ‘지속 가능한 성과’를 위해 그 구조를 수용했다. 이 협상은 감정의 양보가 아니라, 서로의 지속가능성을 보장하기 위한 협의형 거래였다. 개인은 정체성을 회복했고, 조직은 방식을 전환했다. 이 조용한 협상은, 존재를 되찾기 위한 요청이자 조직 운영의 철학을 바꾸는 시작이었다.


◼ 3.3.1 성과는 남고, 삶은 사라졌다

문용은 누구보다 성실하게 일했다. 위기의 순간마다 조직을 지탱했고, 이름 없는 보고서 속에서 수많은 방향을 만들어냈다. 그러나 점점 가족과의 시간은 사라지고, 친구들과의 연락도 끊겼다. 회의에서 전략을 주도하던 그는 여전히 말하고 있었지만, 그 말이 결정권자의 언어로 번역되어 사라지는 순간을 반복하고 있었다. 그는 점점 ‘설계자’가 아닌 ‘전달자’처럼 느껴졌다. 존재는 흐릿해졌고, 감정은 닫혀갔다. “그렇게 계속하면, 난 무너질 거야. 그러니까 멈춰야 해. 일이 나빠서가 아니라, 이 방식이 나를 지우니까.”


◼ 3.3.2 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사람은 남지 않는다

그의 사직 통보는 갑작스럽지 않았다. 이미 수개월 전부터 그는 조직과 정서적으로 분리되어 있었다. 문제는 과업이 아니었다. 정체성의 침식이었다. 그는 전략을 설계하는 사람으로 입사했지만, 이제는 지시를 요약하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조직 역시 그를 포기할 수 없었다. 중요한 프로젝트가 막 시작되려던 시점, 그의 이탈은 단순한 인력 손실이 아니라 조직 전체의 리스크였다. 조직은 결심했다. 성과는 요구하되, 방식은 전권을 위임한다.

그의 복귀 조건은 명확했다. 성과는 책임지고, 방식은 내가 설계하겠다.


◼ 3.3.3 I-deals의 6가지 실행 조건

그의 요청은 단지 근무시간이나 방식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는 ‘일하는 구조’ 자체를 바꾸자고 말했다. 그 변화는 다음의 여섯 조건을 충실히 갖춘, 존재 회복의 협상 전략이었다.


∙ BATNA ― 쌍방의 선택지가 사라진 자리에서 이루어진 설계

그는 퇴사를 실질적 선택지로 삼고 있었다. 그러나 진짜 원하는 건 떠남이 아니라, ‘지금 방식의 중단’이었다. 이 협상은 단순한 감정 표현이 아니라, 구조에 대한 질문이었다. 동시에 조직 역시 알고 있었다. 그를 떠나보낼 경우, 새로 시작하는 전략 프로젝트는 계획부터 흔들릴 수 있다는 것을. 대체 인력이 사실상 존재하지 않았고, 실패 리스크는 조직의 지속 가능성에도 영향을 줄 수 있었다.


이 협상은 떠남을 전제로 한 협상이 아니라, 남음을 전제로 한 구조 설계였고, 양측 모두가 각자의 한계선 위에서 절실하게 도달한 ‘공존의 설계안’이었다.


∙ 장기지향성 ― 회복 없는 지속은 없다는 양측의 전략 인식

문용은 일시적인 휴직이나 유연근무가 아닌, 몰입과 회복이 공존하는 구조를 요청했다. 단기 재충전이 아니라, 자신이 일의 주기를 설계하고 감정의 리듬을 회복할 수 있는 장기적 구조. 그는 금요일 몰입 루틴과 비동기 피드백 체계를 제안했고, 조직은 그것이 단지 편의가 아니라 ‘지속 가능한 성과를 위한 설계’임을 인식했다.


이 협상은 개인의 회복이 아니라, 조직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공동의 장기 전략이었다.


∙ 절차공정성 ― 통제에서 합의로, 형식에서 신뢰로

문용은 기존의 ‘출근–보고–승인’ 루틴을 대신해, 주간 보고, 월말 점검, 최종 성과 제출이라는 자율적 기준을 제안했다. 조직은 처음에는 우려했지만, 그 제안이 단순한 탈형식이 아니라 스스로 책임을 증명하기 위한 구조라는 점을 인식하게 되었다.


절차는 파괴된 것이 아니라 재구성되었고, 공정성은 일방적 규칙이 아니라 상호 책임 기반의 합의로 전환되었다.


∙ 상호작용공정성 ― 권위가 아닌 경청으로 시작된 복귀 설계

문용은 사직 의사를 감정 없이 조용히 전달했고, 조직은 그를 설득하기보다 조심스럽게 물었다. “왜 떠나려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함께할 수 있을까?”가 이 협상의 출발점이었다. 그 물음은 문용에게 ‘존재의 언어’를 회복시켰고, 조직에는 ‘리더십의 언어’를 되묻는 계기가 되었다.


이 협상은 명령이 아닌 대화, 통보가 아닌 상호 해석에서 출발한 신뢰 기반의 상호작용이었다.


∙ 설명력 ― 구조화된 제안, 납득 가능한 설계

문용의 요청은 단지 “힘들다”는 말이 아니었다. 그는 비동기 피드백 체계, 자율 일정, 몰입 루틴을 명확한 운영 모델로 설계해 제안했고, 그 안에는 성과 예측과 팀 협업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조직은 그것이 단지 편의 요청이 아니라 ‘전략적 대안’임을 납득할 수밖에 없었다.


이 설계는 설득이 아니라, 성과를 전제로 한 구조적 신뢰의 제안이었다.


∙ 심리적 안전감 ― 실패해도 괜찮다는 말이 아니라, 실험 가능한 구조

문용은 실패할 경우 스스로 책임지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면서도,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이 보장되길 요청했다. 조직은 처음엔 불안했지만, 그의 요청이 리스크가 아닌 실험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받아들였다. 그래서 비동기 피드백, 회의 최소화, 자율 일정이 모두 수용되었고, 그 결과는 성과와 회복의 동시 실현이었다.


이 협상은 배려가 아니라 신뢰 기반 실험이었고, 조직은 통제가 아닌 가능성을 선택했다.


◼ 3.3.4 학습적 고찰 ― 이 조용한 협상이 말해주는 것들

∙ 자기결정이론: 자율성과 유능감, 역할 회복이 내적 동기와 몰입 회복의 핵심이었음을 보여줌

∙ 정체성 이론: ‘기획자’에서 ‘전달자’로의 전락을 거부하고, 본래 역할에 대한 해석을 회복한 시도

∙ 심리적 계약이론: 무효화된 계약(전략 설계자)을 스스로 다시 체결하려 한 내면적 행위

∙ JD-R 모델: 자율적 일 구조와 몰입 시간의 확보를 통해 소진된 직무자원을 회복한 설계 전략

∙ 절차공정성 이론: 기존 틀을 깨되, 새로운 합리성과 예측 가능성을 갖춘 ‘재설계된 형식’을 제안

∙ 심리적 안전감: 실패해도 괜찮다는 말이 아닌, 실험 가능한 구조를 확보한 신뢰 기반의 실천


▶ 이 사례가 보여주는 전략적 의미

∙ 몰입은 감정이 아니라, 구조다

문용의 협상은 감정 표현이 아니었다. 그것은 몰입의 구조를 다시 설계하자는 제안이었고, 그 구조 안에서 성과와 회복은 함께 작동할 수 있었다.


∙ 특혜가 아니라, 정체성 회복이다

조직은 처음엔 그의 요청이 ‘예외’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곧 그것이 “일을 계속하기 위한 정체성 회복 요청”이라는 사실을 깨달았고, 그 회복은 조직 전체의 일하는 방식에 영향을 주었다.


∙ 일을 바꾸는 건 제도가 아니라, 말할 수 있는 용기다

그는 누구를 비난하지 않았다. 대신 조용히 말했다. 그 말은 협상이었고, 동시에 ‘사라진 자기 자신을 다시 조직 안에 호출하는 행위’였다. 그 요청은 새로운 룰이 아니라, 역할의 회복에 대한 믿음이었다.


▶ 적용 가능한 독자 행동 지침

∙ 회복은 휴식이 아니라, 몰입이 가능한 구조에서 시작된다.

∙ 정체성은 직무가 아니라, 내가 일 안에서 누구인가에 대한 해석이다.

∙ 협상이란 나를 위한 전환 요청이자, 조직을 위한 구조 설계 제안이다.

∙ 감정의 표현이 아니라, 실행 가능한 설명을 준비하라.

∙ 조직은 누군가의 ‘말할 수 있음’을 통해 구조를 다시 설계할 수 있다.

∙ I-deals는 특혜가 아니라, 조직 지속성을 위한 회복 장치다.

∙ 결국, 협상의 출발은 ‘존재의 요청’에서 시작된다.


4. 말할 수 있는 조직, 회복할 수 있는 문화

4.1 정체성의 침묵에서 협상의 언어로 ― 개인의 회복은 어디서 시작되는가?

그들은 말하지 않았다. 혹은, 말할 수 없었다. 자신의 자리에서 묵묵히 일했고, 회의에 참석했으며, 보고서를 제출했다. 그러나 그들의 말은 점점 짧아졌고, 감정은 드러나지 않았고, 존재는 희미해져 갔다.

정희는 회의 시간의 의미를 되물었고, 상훈은 보고 방식의 목적을 재설계했으며, 문용은 일의 방식 전체를 다시 짜는 구조를 요청했다. 그들은 협상을 시작한 것이 아니다. 단지 ‘말할 수 있는 조건’을 찾으려 한 것뿐이었다. 그 말은 '감정이 아닌 구조였고, 불만이 아닌 질문이었으며, 변화가 아닌 회복'이었다. 그들은 조직에 요구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누구인지 다시 말하고자 했다.


4.2 조용한 협상이 균열을 만든다 ― 말은 어떻게 문화를 바꾸는가?

처음엔 작은 요청이었다. 30분의 회의 시간 조정, 보고 방식의 전환, 출퇴근의 유연성. 그러나 그 요청은 단순한 근무 조건이 아니었다. 그것은 정체성을 복원할 수 있는 최소 단위의 실천이었다. 그리고 이 실천은 조직과 개인 사이에 잊혀졌던 ‘관계’를 다시 호명하는 작업이었다. I-deals는 제안이지만, 동시에 대화의 문법을 바꾸는 언어였다. 그 안에는 “나는 왜 이 일을 해야 하는가”라는 개인의 질문과 “우리는 어떻게 이들과 함께 일할 수 있는가”라는 조직의 질문이 맞물려 있었다. 그리고 이 조용한 균열은, 조직이 당연하게 여겨왔던 절차, 공정성, 제도의 전제들을 되묻게 만들었다.


4.3 예외는 가능성으로 바뀔 수 있는가 ― 조직은 어디까지 회복할 수 있는가?

중요한 것은 이 협상들이 특별한 사람들이 만든 이례적 사례가 아니라는 점이다. 정희, 상훈, 문용은 모두 현실에 존재하는 평범한 구성원이었고, 그들의 제안은 누구나 시도할 수 있는 회복의 언어였다. 그들의 요청이 받아들여졌다는 사실보다 더 중요한 건, 그 요청이 조직의 구조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그들의 말은 사람을 살렸고, 그 말을 들은 조직은 스스로의 방식도 바꾸기 시작했다. 조직은 누군가의 침묵에 안도해서는 안 된다. 말하지 않는 것은 무해한 것이 아니라, 회복을 포기한 상태이며, 정체성을 숨긴 몰입의 상실이기 때문이다.


4.4 이 장이 던지는 마지막 질문


∙ 우리는 왜 구성원이 “말할 수 없었다”고 느끼는지를 묻고 있는가?

∙ 그들이 일하고 있는가, 존재하고 있는가를 구분할 수 있는가?

∙ 회복은 개인의 노력인가, 조직이 함께 설계해야 하는 구조인가?

∙ 당신의 조직은, 일하는 방식을 누가 정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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