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과 책이 함께 만들어가는 하나의 이야기
재능도 있고 하고 싶은 일이기도 하지만 세상이 알아 주는 일이 아니라 고통스러운 진짜 신의 손을 지닌 주인공을 만나본다. 세계 최고의 의학기술을 자랑하는 미국 존 홉킨스 대학(John Hopkins) 병원 현관에는 그간 홉킨스 의대를 빛낸 이들의 사진이 걸려있다. 그중에는 의사가 아닌 사람이 있는데 그가 바로 영화 ‘신의 손’의 주인공이자 실화인물인 비비안 토마스 명예박사다. (*우리나라에는 ‘신의 손’ 제목으로 번역되었지만 영화 제목은 Something the lord made(알란 릭맨 감독/모스 데프 주연)이다)
그는 처음에는 손재주가 아주 좋은 목수였다. 의사가 꿈이었지만 몹시 가난했다. 대학에 갈 돈을 마련하고자 미국 테네시 주 내슈빌에 있는 밴더빌트대학의 한 실험실 관리를 할 잡역부로 들어갔다가 당시 30대 초반의 젊은 외과의사 블래이락(Dr. Alfred Blalock)의 눈에 총명하고 놀라운 손재주가 띄었다. 블래이락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비비안은 실험대에 놓인 동물의 보이지도 않는 곳에 손가락만 넣어서 바느질을 완벽하게 해 혈관을 연결해 생명을 구한 것이다. 블래이락은 놀랍고 경이로운 그의 재주를 보고 'Something the lord made’라고 말했다. 'Something the lord made'는 '신이 만든 것'이란 뜻으로 실제로는 장인의 솜씨처럼 '정말 끝내줄 때' 사용하는 말이다.
블래이락은 비비안의 신비한 손재주를 어려운 수술에 도입, 세계 최초로 청색증 심장 환자의 생명을 구한다. [블래이락-타우식 단락수술]이라 이름이 붙여진 이 수술법은 대성공을 거뒀고 존 홉킨스 병원으로 환자들이 몰려들었다.
수술에 제일 큰 역할을 담당했던 비비안은 공과 명예가 자신이 아닌 블래이락과 타우식 등의 소위‘의사’에게로 향하자 자신의 일에 회의를 품기 시작했다. 병원일에 집중하지 못하고 ‘의사’라는 이름에 좌절하다 블래이락과도 갈등을 빚고 끝내 사표를 냈다. 처음 이 영화를 보았을 때 닥터 블래이락을 이해할 수 없었다. 비비안의 성과를 자신의 업적처럼 가로채 승승장구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비비안도 나와 마찬가지였다. 블래이락이 세계적인 심장전문의가 되어갈수록 실제 수술을 한 비비안의 어깨는 처지고 눈빛은 어두워져 갔다. 영화를 본 이후 여러 해가 흘렀다.
그동안 [사라 버스를 타다], [앵무새죽이기], [흑인 노예 12년], [한때 흑인이었던 남자의 자서전]을 읽었고 영화를 다시 보았다. 비비안이 살았던 그 시절 미국은 흑인들이 자유롭게 직업을 가질 수 없는 시대였다. 버스도 같이 탈 수 없었고 백인과 나란히 걷지도 못했다. 블래이락이 비비안을 적극적으로 의사로 만들지 못한 혹은 전면에 내세워 밝히지 않는 것은 당시 사회의식과 관련이 있었다. 블래이락이 비비안을 발탁해서 자신이 병원을 옮길 때마다 데리고 가고, 세계적 의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수술을 맡긴 것만으로도 파격적인 선택이었다. 이 모든 것을 순순히 받아들일 수는 없었지만 비비안은 다시 병원으로 돌아와 20년 동안 닥터 블래이락의 실험실 책임자로 일했다. 또한 세월이 흘러 의사가 아닌 자신의 의료행위를 좋아하고 자랑스럽게 여길 줄 알게 되었다. 비비안는 그렇게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걸었고 그 길에서 스스로 푯대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