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스페큘러티브 디자인 - 모든 것을 사변하기' 서평
‘스페큘러티브 디자인, 모든 것을 사변하기’는 ‘던 앤 라비’라고 불리는 듀오 앤서니 던과 피오나 라비가 2013년에 쓴 스페큘러티브 에브리씽(Speculative Everything)이라는 책의 번역서이다.
스페큘러티브 디자인은 내게 생소한 분야는 아니다. 나는 던과 라비가 재직하고 있는 뉴스쿨에서 석사과정을 하던 당시에 원서를 접했고, 스페큘러티브 디자인 프로젝트를 여럿 수행하기도 했었다. 최근에는 스페큘러티브 디자인을 한국의 디자이너들에게 소개하는 글을 쓰기도 했으며, 디자인을 전공하는 대학생들에게 강의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스페큘러티브 디자인을 소개하는 데 어려움이 많았다. 첫째, 현대의 시장경제에 맞는 주류 디자인이 아닌 새로운 대안적 디자인이기에 주변에서 접하기가 쉽지 않은 것. 둘째, 던과 라비가 말하는 스페큘러티브 디자인을 온전히 우리말로 전하기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스페큘레이션(speculation)이라는 영어단어 자체는 ‘추측’이라는 사전적 의미가 있지만, 던과 라비가 말하는 스페큘러티브 디자인을 추측적 디자인이라고만 해석하기에는 한계가 컸다. 디자인은 원래 미래를 상상하고 추측하는 분야인데 대체 이 추측은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그렇다고 원서를 그대로 읽기에는 영어로 된 디자인에 대한 이해가 뒷받침되어야 하므로 편하게 읽을 책은 아니었다. 그렇기에 번역서의 등장은 내게 너무나 반가운 일이었다.
이 책은 2013년에 쓰였지만 던과 라비는 이미 1990년대부터 스페큘러티브 디자인, 즉 디자인 사변을 실험하며 발전시켜 왔다. 이들의 작품은 관객으로 하여금 해답보다는 질문을 유도하며 유럽과 북미의 디자인계에 큰 영향을 끼쳤다. 이들에게서 영향을 받은 많은 디자이너는 디자인 사변을 방법론으로 사용한 작품을 내놓고 있다. 이 움직임은 더 확산하여 샌프란시스코를 기반으로 하는 글로벌 커뮤니티 디자인 퓨처스 이니셔티브(Design Futures Initiative)가 생겨났으며, 각 지역에서 소규모로 디자인 사변에 대한 담론을 끌어내기도 하고 매년 스페큘러티브 디자인 프로젝트를 소개하는 글로벌 콘퍼런스 프라이머(Primer)를 열고 있기도 하다. 그뿐만 아니라 디자인 학계, 정부 기관, 미래 전략실을 두는 기업 등의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디자인 사변을 시도하고 있다.
그러나 내가 느낀 오늘날의 한국의 디자인 업계에서 스페큘러티브 디자인은 여전히 생소한 영역이다. 디자인 매체에서 여러 차례 소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게 있다더라’하는 정도로 알거나, 아예 들어본 적이 없다는 디자이너도 많다. 국내 디자인을 선도하는 대기업과 디자인 전략 컨설팅 프로젝트를 하면서도 디자인 사변이 얼마나 관심 밖에 있는지도 느낄 수 있었다. 2024년이 되어서야 한글로 된 번역서가 나왔다는 것 자체가 한국의 디자인이 얼마나 느리게 흘러가고 있는지를, 자본주의에 맞춰진 주류 디자인 위주로 흘러가는지에 대한 방증이 아닐까.
나는 이 책이 국내에서 지금 가장 시급하게 읽혀야 한다고 생각한다. 비트코인, 메타버스, AI 등 빠르게 발전하는 기술 앞에서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면, 이렇게 등장하는 기술 앞에서 방향을 잡아야 한다면 무엇이 필요할까? 바로 멀지만, 있을법한 미래를 생각하는 추측하는 능력, 그리고 그렇게 추측된 미래 중에 더 나은 것을 우리가 직접 선택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다. 이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것이 바로 디자인 사변이다.
던과 라비는 책의 초입에서 현대 사회의 문제를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첫째, 디자인이 너무 상업화된 것, 둘째, 시장 중심의 자본주의가 승리하면서 시장 경제에서의 논리가 아닌 것은 환상이나 비현실로 치부된 것, 셋째, 사회가 개인화되면서 다수가 공통으로 바라는 것을 생각하기보다는 작은 개인의 만족을 중시하게 된 것, 넷째, 20세기의 희망은 옛것이 되고 이제는 환경 문제 아래서 생존만을 열망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자본주의와 함께 발전해 온 디자인 특유의 낙관성과 빠른 기술 발전으로 우리가 보지 못하는 영역이 많아졌고, 정작 중요한 윤리 등이 뒷전으로 밀렸다고 일침을 가한다.
사람들은 대부분 디자인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중략)… 오늘날 우리가 겪는 문제의 대다수는 고칠 수 없고, 이를 극복하는 유일한 방법은 우리의 가치관과 신념, 태도, 행동을 바꾸는 것뿐이라는 사실이 점점 더 확실해진다. (p.16)
디자인 사변의 공간은 현실과 불가능 사이 어딘가에 놓여 있으며, 디자이너가 이 공간 안에서 효과적으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디자인 역할과 맥락, 방법론이 필요하다. (p.18)
디자인 사변은 이전에 이와 비슷한 형태로 존재한 개념 디자인(concept design)과 비평적인 디자인(critical design)과 맥을 같이 한다. 던과 라비는 “시장의 힘에 이끌려 온 디자인에 대안적 맥락을 부여하는(p.33)” 개념 디자인의 능력을 살리되, 허구나 엔터테인먼트로 소비할 게 아니라 비평적 디자인과 결합하여 의미 있게 활용되기를 기대한다.
특히 기술이 우리 삶에 개입하는 방식과, 기술에 대한 좁은 범주의 정의로 인해 적용되는 인간의 한계에 질문하고 비평하고 이의를 제기하기를 바란다. (p.58)
그렇다고 해서 디자인 사변이 그저 허구적이고 냉소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시장 경제에서 소비자의 역할이 강화되면서 “팔리는 디자인”이 힘을 얻는 현실을 인정하면서도, 소비자로서 더 나은 선택을 하도록 돕는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렇기에 던과 라비는 디자인 사변의 결과물 모습이 마치 어느 세계관에 존재할 것 같은 모습으로 구현되길 바란다.
우리가 생각하는 핵심적 특징은 ‘비평적 디자인이 아직 다가오지 않은 세상에 속하면서 동시에 이 이상, 지금 이 자리에 잘 어울리며 존재하는가’다. (p.71)
스페큘러티브 디자인 소품은 부분으로 전체를 나타냄으로써 관람자가 오브제가 속한 세계를 사변하도록 유도하는 디자인 (p.138)
내가 스페큘러티브 디자인을 프로젝트의 방법론으로 사용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그래서 뭐?’라는 질문과 싸우는 것이었다. 그 이유는 이미 우리 사회가 디자인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익숙하고, 디자이너 역시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낙관으로 무장한 상태지만, 디자인 사변의 목적은 해결책을 내놓는 것이 아니라 질문과 생각을 유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스페큘러티브 디자인 작품을 감상한 후에 밀려드는 당혹감이나 충격, 궁금증은 명확하게 정리되기 어렵고, 사람마다 다르게 나타난다. 머릿속에 드는 여러 생각이 나 혼자만의 환기로 휘발되지 않도록 이를 문제 제기와 담론으로 이어가고, 그 담론이 결국 사람들의 화두에 오르내리며 우리가 내리는 선택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디자인 사변의 궁극적 목표라고 할 수 있다.
최고의 스페큘러티브 디자인은 단순히 아이디어를 전달하는 것을 넘어서서, 반드시 한눈에 확연히 드러날 필요는 없지만 디자인 결과물의 가능한 활용도와 상호작용, 행동을 제시하는 것이다. (p.199)
사람들이 뮤지엄이나 갤러리 같은 비상업적 환경에서 스페큘러티브 디자인 오브제를 관람할 때, 이 오브제는 기술 중심 삶의 대안이 될 가능성이며 사회적 상상과 비판적 성찰을 끌어내는 소품이라고 여길 수 있도록 새로운 규칙과 기대를 명확히 세우고 이를 장려하는 것이다. (p.139)
궁극적으로 저자는 스페큘러티브 디자인이 ‘디자인’의 한 시대적 장르로서 흘러갈 것이 아니라, 현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모든 것을 사변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기를 희망한다. 그래서 디자이너뿐만 아니라 기술을 다루고 제품을 소비하는 소비자들이 현실에서 잠시 떨어져 비현실을 상상하는 경험을 하고, 이 경험을 반복하여 더 큰 그림으로 세상을 이해하고, 끊임없이 등장하는 신기술에 그저 순응하고 흘러가지 않고 대안적 미래가 있음을 인지하여 우리가 살아갈 세상을 더욱 주도적으로 설계할 수 있기를 바란다.
기존의 사회 구조와 권력, 특권 제도에 대응하는 실행 가능한 대안을 체계적이고 설득력 있게 설명할 근거를 개발하는 일은 중요하다. 이 일은 달성할 수 있는 대안의 사회적 한계를 스스로 변화시키는 사회적 과정의 한 요소다. (p.226)
이 책은 디자인을 전공하고 디자이너로 수년간 활동한 본인도 이 책을 온전히 흡수하기 위해서는 문장 하나하나를 차근히 읽고 다시 읽어야 할 정도로 깊고 난이도가 있었다. 이 책은 디자인이 어떤 역할을 하고 어떻게 발전되어 왔는지에 대한 지식을 밑바탕에 두고 쓰인 책이기 때문에 디자인을 전공하지 않았거나 디자인을 이제 배우기 시작한 분들에게는 어렵게 느껴질 수 있다. 대신 그만큼 디자이너들이 소장하여 두고두고 곱씹으며 읽을 디자인 사변 입문서이자 바이블 같은 책이다.
원서에 쓰인 단어들이 상당히 함축적이고 개념적이기 때문에 원문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겪어본 나로서는, 이 책의 번역 수준은 아주 훌륭하다고 말하고 싶다. 아직 국내에 제대로 자리를 잡지 못한 개념들을 어떻게 우리말로 옮겨야 할지 어려움을 느껴본 나로서는 이렇게 책의 문구를 한글로 인용할 수 있게 된 것이 굉장히 기쁘다. 어떠한 개념이 이름이 없다가 디자인 사변이라고 이름이 붙여진 이상, 디자인 사변은 앞으로 무한한 힘을 지닐 수 있다고 믿는다.
너무나 빠르게 발전하는 사회에 휘둘려 방향을 잃은 기분이 드는 이들, 잘 팔리는 기술보다는 소외된 것에 가치를 두는 이들, 우리가 살아갈 세상을 좀 더 멀리 보고 책임 있게 만들어 나가고자 하는 모든 이들을 위한 책이 아닐까? 일차적으로는 디자이너들이 읽기 가장 좋지만, 디자인하지 않아도 미래의 전략을 세우거나 기술을 연구하고 개발하는 분야에서도 디자인 사변을 방법론으로 차용하여 미래의 방향성을 세우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사실 이 책의 표지를 처음 온라인에서 보았을 때는 너무나 깜짝 놀랐다. 생소한 글자체와 생소한 표지 디자인에 판형은 더 작아지고 녹색 톤이었던 원서가 파란 톤으로 바뀌면서 내가 아는 그 책이 맞나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이 책 만의 독특한 글자체가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이 책의 원서 스페큘러티브 에브리씽의 표지 제목 또한 익숙한 글자체가 아니며, 본문에 쓰인 글자체는 스페큘러티브 디자인의 아이덴티티나 다름 없다는걸 경험으로 이미 알고 있었다. 어쩐지 그 글자체를 쓰면 비현실적이면서 미학적으로 느껴졌기 때문에 스페큘러티브 디자인 프로젝트를 하는 동료들도 이 글자체를 활용하곤 했었다. 그렇기에 안그라픽스에서 번역서를 출간하며 글자체에 얼마나 그 의미를 담으려고 노력했는지를 이해하게 되었다. 그러나 좌우로 제각각 길어진 'ㅇ'이 들어간 이 글자체는 본문의 소제목에는 잘 어울리지만 크게 들어간 표지에서는 어쩐지 당황스러워서 충격을 받았던 건 사실이다.
표지 그림으로 채택된 여러 개의 삼각형은 이 책 21쪽에 실린 PPPP라는 다이어그램이며, 이는 원뿔 형태로 가능성의 정도를 나눈 미래를 의미한다. 나 역시 이 그림을, 미래를 설명하는 데 자주 활용하고 있고 이 다이어그램이 얼마나 함축적인지 잘 알아서 표지로 삼는 것에 동의한다. 하지만 책에 실린 PPPP 다이어그램이 설명 그대로 입체의 원뿔 형태였으면 훨씬 좋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던과 라비… 아쉽습니다) 그리고 조금 더 예뻤으면 어땠을까 싶다. 이 서평을 위해 다른 독자들에게 말하자면, The Future Cone이라는 그림을 찾아보면 조금 더 이게 왜 원뿔인지 이해가 될 것이다.
어떻게 감히 내가 이 책을 평가할 수 있을까? 그 누구보다도 현시대가 놓치고 있는 문제들을 주목하며 디자인 사변이 널리 이해되길 바라는 디자이너 한 사람으로서 하루빨리 누구나 이 책을 소장하고 흡수하여 디자인 사변을 바탕으로 담론을 나눌 수 있는 시점이 다가오기를 간절히 희망한다.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12169917
*이 서평은 안그라픽스의 서평단 활동으로 작성하였습니다.
*교보문고 사이트에 동일한 서평을 게시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