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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실애 Nov 19. 2020

달걀 철학

오늘도 달걀 넣은 라면을 끓였다

“달걀에는 국물을 섞어줘야 맛있지만, 국물에는 달걀이 섞이면 맛이 없어.”     


이게 무슨 말일까? 달걀에 국물을 묻혀 먹나 국물에 달걀을 섞어 먹나 그게 그거 아닌가? 이 달걀 하나 먹는 방법에도 개똥같은 철학이 있다.      


어릴 적 동생과 나는 엄마가 안 계실 때면 자주 떡볶이를 해 먹곤 했다. 떡볶이를 해 먹을 때 빼놓지 않는 것이 있었으니 바로 삶은 달걀이다. 떡볶이 국물에 삶은 달걀은 떡볶이의 품위를 한층 높여주었다. 떡볶이를 만든 프라이팬을 그대로 상 위에 올려놓고 삶은 달걀 몇 개를 까서 떡볶이 속에 퐁당 넣어준다. 그때부터 동생과 나의 치열한 말싸움이 시작된다. 나는 숟가락으로 바로 달걀을 반으로 가른다. 그리고 그 속에 든 노른자를 떡볶이 국물에 풀어버린다. 그러면 동생은 난리가 난다. 달걀 때문에 떡볶이 국물 맛이 없어지고 더러워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동생은 그 달걀을 자기 접시에 덜고는 똑같이 숟가락을 이용해 반으로 가른다. 그리곤 떡볶이 국물을 달걀노른자에 뿌려서 먹는다. 삶은 달걀노른자는 떡볶이 국물을 묻혀 먹어야 맛이 있다는 거다.     


이게 뭔지, 그게 그거 아닌가? 떡볶이 국물에 노른자를 말아 먹는 맛과 노른자에 떡볶이 국물을 묻혀먹는 거나 맛은 똑같지 않나? 이건 뭐 돈가스를 잘라가며 먹느냐 잘라놓고 먹느냐와 뭐가 다르냔 말이다. 탕수육처럼 부먹, 찍먹의 싸움과는 좀 다르다. 부먹은 확실히 탕수육의 바삭함을 빼앗아가니깐.     


이 달걀과 국물에 대한 싸움은 장군이가 라면을 먹을 때 또 한 번 벌어진다. 장군이의 최애 음식은 단연코 라면이다. 얼굴에 올라오는 두드러기 때문에 많아야 일주일에 딱 한번 라면을 먹을 수 있기에 더욱 라면에 대한 집착이 크다. 그런 장군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아무것도 첨가되지 않은 라면국물이다. 김치나 참치를 넣은 라면은 물론이고 특별히 꽃게를 넣어 끓여줘도 라면 국물 맛을 해친다고 싫어한다. 하지만 꼭 라면을 끓일 때 빼놓지 않고 넣는 것이 있으니 바로 달걀이다. 장군이의 라면을 끓일 때는 항상 심혈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라면 국물의 맛을 지키면서 달걀을 넣어야하기 때문이다.     


딱 500ml의 물을 넣고 끓기 시작하면 스프와 면을 넣는다. 면이 풀어질 정도가 되면 그 때 달걀을 넣는데, 절대 달걀이 풀어지면 안 된다. 그렇기에 조심스럽게 냄비 가장자리에 달걀을 넣고 달걀의 흰자가 한데 뭉쳐 응고될 때까지 라면을 젖지 않아야 한다. 그렇게 끓인 라면에 들어간 달걀은 언제나 반숙이다. 흰자는 다 익지만 노른자는 젓가락으로 찌르면 삐져나와 라면 본연의 맛을 빼앗아가기 때문이다.   

  

“난 라면 국물까지 다 먹고 달걀 먹을 거야.”     


“왜 그렇게 먹는데?”     


“달걀은 라면 국물이 묻어야 맛있는데, 라면 국물은 달걀이 섞이면 맛이 없어.”


그렇게 라면 국물의 본연의 맛이 중요하면 달걀을 안 넣으면 될 것을 꼭 달걀을 넣어야 하는 이 개똥같은 달걀철학.      


4학년이면 이제 라면은 끓일 줄 알아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이토록 심혈을 기울여 라면을 끓여야 함에 귀찮음을 묻혀 장군이를 나무란다. 라면을 끓일 줄 알지만 장군이는 웬만하면 혼자 라면을 끓이지 않는다. 이유는 달걀을 깰 때 꼭 노른자를 터트리기 때문이라나 뭐라나. 그래서 다행인 것은 엄마 몰래 라면 끓여 먹는 위험을 감수하지는 않는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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