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리 오가이의 '다카세부네'

모리 오가이의 '다카세부네'에서 보는 존엄한 죽음

by 한결

모리 오가이(1862~1962)는 일본의 작가ㆍ의사로 메이지시대의 대표적 문인.이다. 1881년 도쿄 의대를 졸업, 군의관이 되고 의학 연수차 독일에 건너가 의학 외에 문학ㆍ미학ㆍ철학 등을 공부했다. 귀국 후 처음에는 서구의 고전 및 낭만시를 번역한 '오모가게' 를 내는 등 유럽 문예 소개에 힘써 신체시(新體詩)에 큰 영향을 주었으며, 잡지를 발간하면서 시작에 전념, 일본 낭만주의의 선구가 되었다. 청ㆍ일, 노ㆍ일 전쟁에 종군하여 돌아온 뒤 '청년', '기러기' 등을 썼고, 만년에는 역사 소설에 주력하였다.


'다카세부네'란 도꾸가와 막부 시대 교토의 죄인을 오사카로 유배 보낼 때 사용하던 죄인 호송선이다. 작품은 죄인을 호송하는 '쇼베'와 다카세부네에 탔던 죄인 '기스케'의 이야기로 모리 오가이의 소설집 '아베 가족'에 실려있는 단편이다.


쇼베는 지금까지 여러 명을 다카세부네에 태우고 죄인 호송의 일을 해왔는데 다카세부네에 탄 죄인들은 모두가 어두운 얼굴을 하고 있었으나 기스케만큼은 얼굴이 평온한모습이었다. 쇼베는 그런 기스케에게 관심을 갖게 되고 어떤 잘못을 저질러 다카세부네에 타게 되었는지 묻게 된다. 기스케의 이야기를 이렇다. 병에 걸린 동생이 자신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아 자살을 시도했는데 실패했고 자신에게 확실하게 죽여달라고 한다. 기스케는 고민을 했지만 고통스러워하는 동생을 보고 결국 동생을 편히 보내주기 위해 죽이게 된 것이다.


'동생은 면도칼을 빼주면 죽게 될터이므로 형에게 빼달라고 말했다. 그것을 빼서 죽게 했으니 살인을 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을 놔두어도 어차피 죽을 동생이었다. 그렇지만 빨리 죽고 싶다고 한 것은 고통을 견디기 어려웠기 때문이었다.기스케는 그 고통을 보고 있을 수가 없었다.동생이 고통에서 벗어나도록 숨을 끊어 주었다.

-본문 중에서


기스케의 행동은 실정법 상으로 볼 때 분명 죄가 될 것이다. 그렇다면 어차피 죽을 동생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면도칼을 빼준 기스케의 행동은 범죄는 맞지만 인간적으로는 의견이 분분할 수도 있을 것이다. 잘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잘 죽는 것도 중요하다. 최근 연명치료 거부 동의서와 같은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신청이 많아지고 있다고 한다. 즉 환자가 소생 가능성이 없는 임종 과정에 들어섰을때 심폐소생술, 산소호흡기, 항암치료, 혈액투석을 거부하도록 미리 서약을하는 것이다. 작성을 했다고 하더라도 언제 든지 취소할 수 있다고 하니 많은 사람들에게 관심과 이슈가 되고 있는 듯하다. 죽는 그 날 까지를 사는 것이라고 보면 죽을 때도 존엄을 지키고 싶다는 마음의 발로일 것인데,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한가. 초고령사회 우리가 마주할 미래임에는 틀림없다.

사진 전체 출처 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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