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조이스의 '더블린 사람들'

제임스 조이스의 '더블린사람들'과 문학정신(文學精神)

by 한결

아일랜드의 소설가이자 시인으로 20세기 문학의 커다란 변혁을 가져온 제임스 조이스(James joyce, 1882~1941), 그의 최초 소설인 15개의 단편으로 구성된 '더블린사람들은 모두 공통된 배경과 일관성 있는 주제 및 이미지와 상징의 반복으로 통일성을 이루고 있는데, 모두 공통의 배경으로 아일랜드 더블린(Dublin)이 무대이며, 마비(paralysis) 라는 동일한 주제로 더블린 생활의 단면을 묘사하고 있다. 작품에서의 마비는 영국의 정치적 식민지 상태에 있던 아일랜드의 종교적, 도덕적, 경제적, 정치적, 문화적 마비 등 5가지의 범주를 보여주는데, 그중에서 도덕적 마비를 다루고 있는 작품 하나를 살펴보고자 한다.


도덕적 마비를 상징하는 작품을 보자면, 이블린(Eveline)이라는 단편이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작품에서 주인공 이블린은 돌아가신 어머니와 주정뱅이 이며 난폭한 아버지가 있는 가정에서 상점 점원으로 일하여 돈을 벌어 과중한 생활을 하는 소녀이다. 그녀는 어머니와 같은 고통스러운 삶을 살지 않기 위해, 애인 프랭크와 새 삶을 찾아 남아메리카로 ‘떠날 결심을 하지만 새로운 삶에로의 도피를 실현하지 못하는 대표적 인물이다. 이블린의 아버지는 술주정뱅이에다가 폭력까지 행사하는 인물로 생활능력이 없는 것은 물론, 가장의 역할도 하지 못한다. 그녀의 어머니는 생활고에 찌들어 비참하게 살다가 끝내는 미쳐 죽게 되는데, 이블린은 이런 자신을 생활고에서 구제해 줄 수 있다고 믿었던 것에 대한 고뇌를 하게 된다. 그녀는 이러한 생활에서 그녀를 구할 것이라고 믿는 프랭크와 행복이 보장된 남아메리카로 가려고 하지만 이성과 감성의 교차점을 보이는 주저하는 대목이 나온다. 자신의 도주에 대해 남들이 어떻게 생각할 것인지, 먹을 것이 있고, 잠자리도 있으며, 주변에 아는 사람들도 있는, 떠나면 잃게 될 것들을 걱정하는 행동을 보여주는 마비를 보여준다. 즉 이블린은 프랭크를 사랑해서가 아니라, 그녀에게 새 삶을 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와, 힘든 상황으로부터의 탈피 때문에 남아메리카로 가려고 했던 것이고 남아메리카로 가는 배에 오르는 난간에서 프랭크가 재촉하며 손을 끌자 이블린은 초점 없는 눈으로 결사적으로 난간을 붙잡고 가지 않으려고 애를 쓴다. 그녀의 가장 중심적인 사랑의 감정에 대한 마비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렇듯 제임스 조이스는 종교로써의 위치와 능력을 상실한 더블린의 부패한 카톨릭을 비판함과 동시에 그 당시 더블린 사람들의 위선과 도덕적 타락을 서술했다. 금전에 대한 추구 및 물질만을 추구하는 경제적 타락, 부패와 비리로 가득하여, 밀려드는 외세에 대항은 커녕 당쟁만 일삼는 정치권, 가식과 허영에 가득한 문화계의 일면 등을 다루고 있다. 그 마비 양상을 기술하고 조국인 아일랜드 사람들이 자신들의 전반적인 양상을 자각하고 깨달음으로써 마비로부터의 탈출, 정신적 해방과 재생을 각성하도록 하고자 했다.


대학시절 영국문학에 관심을 두었던 나는 특히 제임스 조이스라는 작가를 좋아해서 영어회화 시간에 나의 미국식 이름을 제임스로 사용할 정도로 그의 광팬이었으며, 지금도 몇몇 밴드 닉네임을 그의 이름을 딴 제임스 짓고 활동하는 등 조이스에 대한 사랑은 계속되고 있다. 이는 개인적 선호이기도 하지만, 80년대 우리 사회가 보여주었던 것과 제임스 조이스가 보았던 더블린의 풍경이 일면 닮았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어쩌면 ‘개선될 수 있을까’ 하는 희망이 우리 삶을 지탱하게 하는 요소이기도 하지만, 희망만을 안고 산다는 것은 현재의 삶이 낙관적이지 않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우리 사회는 지금도 당시 제임스 조이스가 나타나고자했던 인간성의 마비(Paralysis)현상이 곳곳에 만연하고 있다. 제임스 조이스가 살았던 그 당시 아일랜드처럼 어둡고 칙칙하고 암울한 분위기가 우리나라에 겹쳐 보이는 것도 유감이지만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또. 대내외적으로도 매우 어렵고도 중요한 상황에 처해있다. 진보와 보수,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남과 북 등 여러 문제의 분열과 갈등이 지속되고 있고 누구나 힘들 정도로 경제는 어렵다고 한다. 청년취업률은 이미 바닥을 친지 오래고, 돈 때문에 결혼을 하지 않겠다는 젊은이들이 증가하고 있다. 물질문명이 지배하고 있는 현대사회는 화합과 양보, 함께 더불어 사는 삶을 위해 따뜻한 가슴이 반드시 필요한 시기인데 과연 우리의 삶은 얼마나 푸근하 고 행복한지를 돌아보면 어디서부터 답을 찾아야할지 막막하기만 하다.


문학이 주는 긍정적 효과의 본질이 감동과 교훈, 카타르시스에 있다고 본다면 이는 혼란스러운 세상에서 서로 반목을 가져오는 개인주의적이고 이기적인 마음을 밀어두고, 인간 본연의 순수성을 회복하고, 서로가 소중한 따뜻한 사회를 만들고 이루어 감에 우리 문인들이 시대 참여적 역할의 선두에 서야한다는 것이 개인적인 견해이다. 문학은 시대와 공간을 초월하여 끊임없이 감동을 선물한다. 즉 문학은 항구성이라는 특성이 있다는 것이다. 고전주의를 대표하는 윌리엄 셰익스피어,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바이런 워즈워스 등 세계적인 대문호만큼 할 수 있을 것이라고는 꿈도 못 꿀지라도, 적어도 내가 쓴 작품을 통해 독자가 감동을 받고 감성을 찾고 복잡함과 무미건조함으로 메마른 마음을 촉촉하게 적셔줄 수 있는, 정서 회복을 통한 반성과 올바른 지향점을 향해가는 결심을 부여해 줄 수 있는 것이 문학이 사회에 참여하는 방법일 것이고, 사회성을 반영하는 작품을 쓰도록 노력하는 것이 작가인 우리가 할 일이라고 본다.


오늘날의 세상은 가상공간이 더해지면서 거대한 인터넷의 바다를 포함하고 있다. 누구나 이제 휴대폰으로 쉽고 빠르게 문학작품을 접할 수 있다. 깨알 같이 쏟아지는 수많은 작품들, 읽는 사람보다 쓰는 사람이 많다고 할 정도로 현재의 문단에는 시인, 수필가가 넘쳐 나고 있다. 심지어는 베스트셀러를 만들기 위해 심지어는 판매량을 늘려서 서점 판매 상위권 랭크 및 베스트셀러 작가 반열에 오르기 위해 자기가 쓴 책을 자기가 대부분을 사기도 한다는 기사가 나온 적도 있다. 적어도 문인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있는 이상 작품성의 심각한 문제를 갖고 있는 글은 지양해야한다. 소위 문인협회의 이름으로 등단을 종용하고 등단작가라는 제목을 붕어빵 찍어내듯 마구 생산해 내는 상술과 부합하여 미사여구나 나열하는 형편없는 글을 독자에게 보인다면 쓴 소리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나 하나 때문에 문단 전체가 욕을 먹고 문단 전체의 퇴보라는 오명의 주범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우수한 작품이란 무엇일까?


작가 본인만 이해가 되고 읽는 독자는 전혀 이해하기 어려운, 그리고는 수준이 높은 작품으로 본인 스스로 단정을 짓고는 뿌듯해하는 단순한 퍼즐 조각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 글로 독자의 평가를 받을 수 없다. 자유시를 쓴다고 아무렇게나 글자를 나열하는 것이 아니다. 참여시라고 무조건 현실에 대한 맹목적 비판을 하는 것만이 아니다. 작가 고유의 창작성과 독창성이 있어야하고 글의 조화를 통해 작가의 심상과 정서가 녹아있어서 독자에게 제대로 전달되어져야 그때서야 비로소 독자 들이 관심을 갖게 되고 평가가 시작될 것이다. 복잡하고 황폐한 이 세상에서 잃어버린 감성들을 사막 한 가운데 오아시스에서 솟아나는 물줄기처럼 뿌려줄 때 독자들은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되고 자신들의 삶의 분야들에 접목시켜 돌아보기도 하고 반성도 하면서 스스로 삶의 방향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보게 되지 않을까.


제임스 조이스의 작품을 다시 한 번 읽으면서 시대상황을 반영한 참여, 비판정신은 물론 더 나아가 철저한 자기성찰을 통해 변화하고자하는 그의 문학 정신을 다시 한 번 배우고 감탄한다. 시대상을 반영하고 그 시대의 부조리를 글을 통해 표현함은 물론, 휴머니즘 문학적 감동을 독자에게 전달함으로써 나로부터의 반성과 변화, 더 나아가서 우리 모두가 인간다운 따뜻한 사회를 만들자는 것, 제임스 조이스가 당시 문학전통에 반하여 새로운 문학 기법을 도입하고. 자신만의 문학세계를 구축하여 모더니즘을 대표하는 위대한 작가로 불리듯이, 어떤 작가가 될 것인가, 어떤 작품을 쓸 것인가는 각자의 문학정신에 달려있다. 문학 작품은 한 번 쓰고 버려지는 일회용품이 아니다. 고민하지 않고 고뇌 하지 않은 글로 그저 칭찬 일색의 댓글에 만족한다면 문인으로써의 자격미달이다. 머리로 쓴 글인지 가슴으로 잉태하여 나온 글인지를 스스로에게 묻고, 스스로가 문단의 잉여인간은 아닌지 돌아볼 때가되었다. 문학작품이란 우리끼리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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