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향기

휴먼 에세이 16

by 한결

회의실 탁자 위에 꽃을 가져다 놓았다. 조그만 꽃병에 꽂은 꽃 몇송이임에도 봄을 지나 여름의 초록 향이 물씬 나는 것이 분위기가 한층 밝아진다. 코를 가까이 대고 그 향을 음미한다. 한 순간에 긴장되고 딱딱했던 마음이 부드러워지는듯 마음이 싱그럽다. 회의실에 들어오는 모두의 시선이 화병으로간다. 꽃이 아름다운 것은 아름다운 색상, 꽃이 내뿜는 향기와 더불어 꽃을 준비한 사람의 마음이 함께 느껴지기 때문일 것이다. 모두가 부대끼는 아침, 찔레꽃의 향기가 상쾌한 출발의 매개체가 된다.

우리가 코로 맡을 수 있는 온갖 기운을 냄새라고 하고 꽃, 향, 계절, 자연 등에서 나는 기분 좋은 냄새를 향기라고 힌다. 향기와 냄새의 차이가 있다면 향기는 달콤하거나 신선하다 등의 긍정적이고 감각적인 수식어가 따라붙으나 냄새에는 고소하다, 좋다 뿐만 아니라 역하다, 구리다 등 긍정과 부정의 뜻을 모두가 포함된다.


며칠 전부터 거실에서 평생 처음 맡아보는 이상한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생선 썪은 내 같기도 하고 하수구가 역류하여 음식물 찌꺼기가 썪는 듯한 냄새 같기도 한데 문제는 이 냄새가 하루종일 가시지 않고 며칠이 지나도 안 없어지는거다. 보통 냄새와 함께 있으면 적응이 되어 못느낄만도 한데 환기를 시키고 탈취제를 뿌려도 끄떡없으니 기가 찰 노릇이다. 도대체 아무리 찾아봐도 근원지를 모르겠고 옷에서 까지 배어 퀘퀘한 냄새가 나는 듯하다. 견디다 못해 주말을 맞아 청소를 하기 시작했다. 거실 곳곳을 싹 뒤지고 베란다와 세탁실을 샅샅이 찾다가 드디어 범인을 발견했다. 세탁기가 있는 다용도실 옆에 까만 비닐 봉지가 원인인 듯하여 가까이 가보니 감자 한 알이 그 안에서 썪고 있는 것이다. 냄새가 역하기로 유명한 열대과일 두리안은 명함도 못내밀겠다. 감자 한 알의 위력은 정말 대단했다. 파, 마늘 등의 친구들이 주방에 뽑혀갈 때 혼자 선택되지 못한 서러움을 온 몸으로 뿜어내는 악취에에 '억!' 하고 저절로 뒤로 물러날 수 밖에 없었다. 이걸 음식물 통에 넣을 수도 없고 그냥 밖에 버릴 수도 없고 결국 재활용이 안되는 비닐을 찾아 몇 겹을 싸서 쓰레기봉투에 넣고 집안에 있는 쓰레기란 쓰레기는 다 찾아 겨우 봉투를 채우고는 겨우 아파트 1층 쓰레기 수거함에 넣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에는 저마다의 냄새가 있다. 사람에게도 저마다의 냄새가 있을 것이다. 어떤 이에게선 장미꽃의 고풍스런 향기를 맡을 수 있고, 어떤이에게선 막걸리의 걸걸하고 시큼한 냄새도 맡을 수 있을 것이며, 또 어떤이에게선 숲과 나무의 신선한 향을 맡을 수도 있을 것인데 불현듯 떠오르는 생각이 사람의 냄새가 다 다르다는 것이다. 돼지 갈비 안주에 소주 한 잔 걸치고 지하철 막차에 올라탄 어느 가장의 옷에 배인 고기 냄새가 비록 음식냄새라 할지라도 숭고하지 않다고 할 수 없듯 아무리 진한 향기로 치장을 하더라도 바람에 날려 향수 냄새가 사라질 때쯤 드러나는 진짜 본 모습의 냄새는 아무리 속에서 썪어가는 냄새를 감출 수는 없다. 세상을 살면서 자기도 모르게 썩은 감자의 역한 내를 풍기며 그런 모습으로 세상을 물들이면서 검은 비닐 봉지안에서 정체를 숨기고 자기도 모르게 계속 썪어가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사진 민병식

사람의 안을 채우고 밖으로 흘러나오는 것이 인품이고 사람의 향기라고 한다면 지금 내 몸에서는 어떤 향기가 나는 것인지 궁금하지 않을까. 오늘 아침의 꽃에게서 나는나던 향기가 나는 것인지 이맛살을 찡그리게 하는 썪은 감자의 불쾌한 악취가 나는 것인지는 내가 판단할 수 없다. 다른 사람이 나의 향기를 맡는 것이다.


세상은 시끌벅적한 소리로 화려한 외관을 드러내지만 그 세상을 유지하는 것은 내면의 향기다. 로마신화에 나오는 야누스와 같이 두 얼굴을 가진 이중적인 냄새가 나는 삶을 살았는지 돌이켜본다. 내가 생각하는 나의 모습과 남이 생각하는 나의 모습은 다르기에 원하지 않아도 두 얼굴로 살기 십상인 세상에서 난 어떤 향으로 살았을까. 향기였을까. 아니면 고약한 냄새였을까. 겉은 장미향이고 속은 썩은 감자는 아니었을까 반추해보며 앞으로 어떤 향기를 뿜으며 살아갈지 스스로에게 숙제를 내준다. 어렵고 각박한 세상, 늘 남을 위해 봉사하고 자신의 모두를 헌신한 이름있는 성직자의 향기는 아닐지라도 공해에 찌들은 세상에 애써 산소를 공급하고 조금의 푸르름이라도 선사해 주는 길가의 가로수같은 인간적인 향기는 뿜어내야 하지 않을까. 세상을 향한 나만의 향기를 희망하는 아침이다.

사진 네이버(야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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