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남자, 자살을 참고 암을 피했더니 화병이 오더라 I
화병(火病)
"최순실에게 굽신굽신... 국민 화병 도졌다", "늑장 대응, 입장 번복... 인천 주민들 화병 날라." '화병'은 화가 나거나 속 터지는 심정을 표현할 때 자주 쓰인다. 말의 뜻을 풀어보면 병(病)이지만 진짜 병으로 느끼기보다는 답답한 마음을 에둘러 표현하는 것으로 받아들인다. 물론 화병은 진짜 병이다. U22.2라는 질병코드가 부여되어 있고 Hwabyeong라는 영문 명이 있으며 의료보험까지 적용되는 엄연한 질병이다. 주로 우리나라 사람에게서 증상이 발견되는 독특한 병으로 알려져 있으며, 미국 정신의학회에서도 한국의 독특한 문화 증후군으로 보고 그들의 진단 분류체계에 Hwabyung이라는 용어로 등재해 놓은 병이다.
화병을 간단히 말하면 ‘분노가 쌓여서 생기는 병’이다. 분노를 오랫동안 쌓아두다가 질투나 노여움, 억울함 같은 감정들이 폭발하면서 정신뿐만 아니라 신체에까지 증상이 나타난다. 한의학에서는 '울화병(鬱火症)', '울화증(鬱火症)'이라고 부르며, 외국에서는 분노를 억제해서 생기는 ‘분노 증후군(Anger Syndrome)’로 번역한다. 의학계에서는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참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는 우리나라의 문화적 특징이 만들어낸 병이라고 본다.
화병에 걸리면 신경이 예민해지거나 우울해지고, 괜한 불안에 시달리게 된다. 매사에 걱정과 근심이 앞서고 억울함, 증오, 분노 같은 나쁜 감정들로 인해 공격적인 성향도 강해진다. 마음이 좋지 않다 보니 입맛이 없어지고 불면증에 시달리기도 한다. 언뜻 보면 우울증과 비슷하게 보이지만 화병은 우울증과는 달리 몸에도 영향을 준다. 가슴이 답답하거나 조이고, 머리가 아프고, 소화가 잘 되지 않고, 쉽게 피로해지는 등 신체적 고통까지 동반한다.
화병의 세대교체
화병은 시대를 지배하는 문화 양식에 영향을 많이 받는 병이다. 예전에는 유교 문화에서 파생된 위계질서와 남녀차별 의식, 가부장적 제도와 억압된 분위기로 인해 주로 여성들이 많이 걸렸었다. 단지 여자라는 이유로 하찮은 인간으로 여겨지고 하대(下待)를 받았으니 분노나 억울함 같은 나쁜 감정이 생겨나지 않을 리 없다. 게다가 그런 나쁜 감정들을 속으로 삭히고 살았으니 쌓이고 쌓인 분노 때문에 화병이 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유교를 지배논리로 사용한 수백 년 전은 말할 것도 없고, 가깝게는 지금의 노년 여성들도 화병을 앓으며 살아왔다. 흔히 우리 민족의 정서라고 얘기하는 '한(恨)'도 어쩌면 화병을 앓으며 살아온 수많은 여성들의 감정적 응어리라고 보는 것을 맞을 수도 있다.
세상이 나아져 요즘은 이런 낡은 의식들이 많이 사라졌으니 화병 환자도 줄었으리라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의외로 젊은 화병 환자들이 많이 늘고 있다. 그리고 젊은 세대들은 옛날 사람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화병을 앓는다. 사라져 가는 옛 문화 양식을 경험한 50대~70대 사람들은 여전히 한스러움이나 가슴의 답답함, 무력감 같은 고전적인 화병 증상을 보인다. 반면에 20대~40대들의 화병은 감정을 밖으로 표출하고 싶은 충동의 양상을 보인다고 한다. 젊은 사람들은 위계질서, 남녀차별, 가부장적 체계가 아니라 인정받기 위한, 성공을 위한 경쟁과 남들과의 비교에서 오는 상대적 박탈감과 열등감, 갖가지 생활 스트레스로 인해서 화병이 난다고 한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자료를 보면 화병에 따른 연간 보험급여 비용이 2013년 약 12억 5천만 원에서 2017년 20억 원으로 늘어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보험급여 통계에 잡힌 것만 이 정도니 치료를 받지 않은 채 속으로 끙끙거리며 앓고 있는 사람까지 화병 환자의 수는 더 많을 것이다. 의료 기술도 좋아지고 약도 좋아진 세상이지만 마음에 관한 병은 쉽게 예방되거나 고쳐지지 않는다는 얘기다. 아마도 마음의 병은 백신이 없어일 것이다.
젊은 사람들 중에서도 남성 화병 환자가 꾸준히 늘고 있는 추세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통계에 따르면 2017년 화병으로 병원을 방문한 20대~60대 여성이 약 4만 명이 조금 안되고 남성은 1만 명이 조금 넘는다. 남성 화병 환자는 여성 화병 환자의 27% 정도다. 여전히 여성 화병 환자가 압도적으로 많다. 하지만 직년 연도의 수치를 살펴보면 얘기가 다르다. 2017년의 남성 화병 환자는 2016년 비해 약 30%가 늘어났다. 반면에 여성 화병 환자의 경우 2% 정도밖에 늘지 않았다. 좀 더 긴 시간을 지켜봐야겠지만 남성 화병 환자가 늘고 있음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수치다. 게다가 병원 잘 안 가기로 소문난 한국 남자의 성격상 남성 화병 환자들은 통계보다 더 많다고 볼 수 있다.
40대 남자는 언제 분노할까
화병은 분노가 쌓여서 생긴 병이다. 화병을 앓는 40대 남자들이 는다는 것은 그들에게 쌓아둔 분노가 그만큼 많아지고 있다는 의미다. 웬만한 일에는 흔들리지 않는다는 불혹(不惑)의 세대인 40대에게 분노할 일이 뭐가 있을까 생각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그들에게도 분노할 일은 적지 않다. 40대 남자들의 활동 범위는 거의 고정되어 있다. 주로 일터와 집을 오가는 것이 그들의 일상이다. 분노를 일으키는 대부분의 사건들은 그 일상의 범위 안에서 발생한다.
일상에서 벌어지는 일들 중에서 자주 생기지는 않지만 크고 오래가는 분노를 만드는 사건들이 있다. 실직, 사업실패, 재산의 손실 같은 사건들이 특히 그렇다.
실직 같은 경우 스스로 그 길을 택했다면 분노의 감정이 생기지는 않는다.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행동을 했을 때 분노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해고 같은 비자발적 실직은 얘기가 다르다. 해고를 당하게 되면 미래에 대한 불안이나 좌절감, 무력감, 수치심, 열등감 같은 나쁜 감정이 생긴다. 그리고 이런 불편하고 불쾌한 상황을 만든 대상을 원망하고 분노하게 된다. 한 취업사이트에서 40~50대 구직자들을 대상으로 실직 후 심리상태를 묻는 설문조사를 했더니 응답자의 57.4%가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38.7%가 무력감을, 33.1%가 다니던 직장에 대한 분노를 느낀다고 답했다. 이 설문의 경우 실직의 이유를 구분해서 응답자들을 선택하지 않았다. 따라서 응답자 중에는 해고된 사람도 있을 것이고 자발적으로 퇴사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아마 해고당한 사람들을 대상으로만 설문을 했다면 분노를 느낀다는 답변이 더 많이 나왔을 것이다.
사업 실패 역시 실직과 마찬가지로 불안, 좌절감, 수치심, 열등감 같은 감정들을 만든다. 망가져버린 현실 앞에서 분노의 감정이 생기는 것도 실직한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사업 실패 같은 경우 실직과는 다르게 분노의 대상이 명확하지 않다. 실직은 그 사건을 발생시킨 원인과 그런 결정을 한 주체가 분명히 있다. 자신의 무능력이나 과실로 인해 실직을 했다면 자기 자신을 혐오하고 비하하게 된다. 반면에 부당하고 억울하게 실직을 당했다면 실직을 결정한 쪽을 분노의 대상으로 삼게 된다. 하지만 사업 실패로 생긴 분노는 그 대상이 불명확하다. 사기를 당했거나 사고나 재해 때문에 망한 것이 아니라면 사업 실패는 딱히 누구 탓을 하기가 어렵다. 부당한 정리해고에 대해서는 삭발투쟁이라도 할 수 있지만, 사업 실패에 대해서는 분노를 토할 대상도, 삭발을 할 의미도 없는 것이다. 그래서 사업 실패로 인한 분노를 엉뚱한 대상에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 케이스가 불특정 상대에 대한 폭력이고 극단적인 케이스가 자살이다. 분노의 대상이 특정이 되지 않기 때문에 자기 자신에게 분노를 표현하거나 자신의 실패와 관계가 전혀 없는 사람들에게 분노를 표현하는 것이다.
자기 계발 분야에서는 실패를 소중한 경험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한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말은 자기 계발 분야에서 진리에 가깝다. 하지만 실패한 당사자의 입장에서는 배부른 소리로 밖에 들리지 않는다. 대다수의 실패는 쏟아부은 것들의 거의 대부분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패자부활이 쉽지 않은 우리 사회에서는 실패란 다시 일어서지 못함을 의미할 때가 많다. 그 절망감과 좌절감을 경험으로 치환하는 일은 맞닥뜨린 현실 앞에서 말처럼 쉽지 않다. 많은 사람들이 실패를 딛고 다시 성공을 움켜쥔 사례들을 들이대면서 실패의 가치를 말한다. 하지만 냉정하게 생각해 보면 그것은 드라마틱하게 포장된 자화자찬에 지나지 않는다. 다시 일어설 용기와 의지는 이성적 사고가 만든다. 하지만 실패의 쓰라림은 이성을 압도하는 감정을 만들어낸다. 사업 실패로 인한 분노의 감정은 지독한 현실을 피할 수 없기 때문에 크고, 분노의 대상이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오래갈 수밖에 없다.
삶에서 자주 있는 일은 아니지만 투자 실패, 사기, 사고나 병 같은 재해로 인한 재산의 손실도 크고 오래가는 분노를 일으킨다. 이런 사건들은 물질적인 손실과 손해가 따른다. 그리고 그 손실과 손해가 클수록 분노는 더 커진다. 하지만 잃어버린 재산 자체 때문에 분노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투자 실패, 사기, 사고나 병 같은 사건들의 공통점은 내가 통제할 수 있는 범위 밖에서 대부분의 결과가 만들어진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주식이나 부동산, 요즘 유행하는 가상화폐에 투자했다고 하자. 어떡 주식에, 어떤 건물에, 어떤 가상화폐에 얼마를 투자할지는 내가 선택할 수 있다. 하지만 내가 투자한 주식과 부동산, 가상화폐의 값어치가 오르거나 내리는 데는 내가 영향을 거의 미치질 못한다. 그렇게 할 수 있다면 이미 선한 투자자가 아니라 소위 말하는 ‘작전세력’이다.
사기 같은 거대한 속임수 역시 나의 통제 범위를 벗어나 있다. 사기를 치는 범죄자의 입장에서는 상황을 통제할 수 있는 힘이 자신에게 많을수록 사기의 성공 가능성이 높아진다. 사기를 당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내가 상황을 통제할 수 없기 때문에 사기를 당하는 것이다. 사고나 재해는 말할 것도 없이 나의 통제 범위 밖의 일이다. 물론 나의 실수로 크게 사고를 당하거나 재해를 입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실수가 어떤 사고를 가져올지, 어떤 재해를 촉발할지는 예상 밖의 일이다. 예상할 수 없었다면 그것은 통제 범위 밖의 얘기가 된다.
자신이 영향을 미치지 못한 일로 인해 재산상의 손해까지 입으면 “왜 나한테 이런 일이 생겼지?”라는 생각이 들게 마련이다. 일종의 억울함이다. 이 경우의 억울함은 부당한 대우, 내가 받지 않아야 할 대우를 받았다는 데서 오는 감정이다. 이 억울한 감정은 부당한 대우를 받았을 때 생기는 분노와 시작점이 같다. 조심스러운 얘기지만 세월호 사고에 대해 많은 시민들이 느꼈던 감정이 바로 이런 분노였다. 국가가 피해자들에게 행한 부당한 대우에 대해 피해자와 유가족이 느끼는 억울함을 공감했기 때문에 광장이 촛불로 환해질 수 있었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일로 인해 생긴 사건들은 억울함을 낳고, 그 억울함은 분노로 전환된다. 그것들이 재산상의 손실과 손해를 크게 입힐수록 억울한 마음도 커지고 분노도 커진다. 그리고 이런 일들로 인해 생긴 손해는 쉽게 복구가 되지 않기 때문에 그 분노는 오래갈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