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공연을 보다 보면, 좋아하는 작곡가, 연주가, 지휘자, 관현악단 등 자신만의 선호가 생기기 마련이다. 수없이 많은 음반이 발매되고 다양한 해석이 존재하는 풍요로운 시대에 자신만의 취향이 생긴다는 것은 본인만의 레퍼런스를 만들었다는 말로 다시 말할 수 있겠다.
내 경우엔,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관현악단(LGO)의 음악이 그것이었다. 일전에 한 내한 오케스트라의 프로그램을 예습하던 중 브람스 교향곡 4번을 이 관현악단의 음반으로 듣다 보니 해당 연주가 나의 레퍼런스가 되었다. 꼭, LGO의 공연을 실황으로 접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강렬해졌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아시아 투어를 한다는 소식이 들렸다. 하지만 아쉽게도 한국에서의 일정은 없고, 일본과 중국에서만 공연이 예정되어 있었다. 비행기로 한 시간이면 갈 수 있는 나라들이었다. 오히려 좋은 경험이 되겠다 싶어서 티켓 오픈하기가 무섭게 공연을 예매했다. 이것이 나의 음악 여행의 본격적인 시작이었다.
도쿄, 롯폰기의 산토리홀에서 진행된 이 공연은 무척 훌륭했는데(쇼스타코비치의 바이올린 협주곡과 차이콥스키의 교향곡 5번이었다) 그중에서도 압권은 앙코르로 연주해준 멘델스존의 서곡(Ruy Blas)이었다. 지휘자였던 안드리스 넬슨스가 멘델스존이 바로 이 LGO의 초기 지휘자였단 것을 말하면서 소개하는 순간, 이 관현악단에 대한 애정도는 급격히 상승했다. 나의 콩깍지 때문인지는 몰라도 단원들이 자부심을 품고 자랑스럽게 연주한 것 같았다. 300년이 가까운 역사를 가진 관현악단에 교과서에서나 보던 멘델스존의 등장이라니. 전통과 역사를 겸비하지 않은 유럽 오케스트라는 없다고 하지만, 나에게 직접적으로 다가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기에 매우 놀랐고, 다른 마음으로는 부럽기도 했다. 여행에서 돌아온 후 찾아보니 라이프치히는 멘델스존뿐만 아니라 바흐와 슈만과도 관련이 있는 도시였다. 바흐가 교회 칸토어로서 수 십 년 동안 근무하던 도시이며 멘델스존이 지휘자로 있으면서 근대적인 지휘의 개념을 도입하였고, 슈만이 살던 도시이며 오페라 연주 전문이 아닌 콘서트 연주 전문의 독일 최초의 민간 오케스트라인 LGO가 창단된 도시. 꼭 한번 라이프치히를 방문해서 현지 홀에서 진행하는 공연을 관람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음악 여행은 클래식이라는 취미에 한층 다양한 다채로움을 선사해주었다. 만약 해외로 나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면 타국의 공연 일정과 콘서트홀, 관현악단의 연고지를 찾아볼 일이 있었을까? 가볍게 여행 겸 보러 간 공연이었지만 새로운 장소에서 본 경험한 색다름은 나의 취미생활을 나만의 것으로 한층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방향성을 제공해주었다.
누구에게나 시작은 있기 마련이다. 어릴 적부터 새로움에 노출될 일이 많았던 나는 자주 바뀌는 주변 환경에 체득하며 스스로 만든 신조가 있다. 무엇이든지 3번을 행하게 되면 비로소 나의 것으로 만들 준비가 되었다는 것. 어쩌다 보니 또래들보다 자주 전학을 다녔는데, 새 학교에 간 첫날, 담임 선생님이 열어주는 교실 문을 두려움과 설렘이 반반 섞인 마음으로 바라보았던 기억이 뚜렷하다. 보통 학기 중간에 전학을 갔기 때문에 이미 무리를 형성한 친구들이 많았고 으레 그렇듯, 초등학교 시절의 학급생활은 그룹에 끼지 않으면 순탄하지 않았기에, 당연하게도 외딴섬이었던 나는 막막한 마음이 엄청났던 기억이 있다. 아는 친구 하나 없는 반에서 잘 어울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그때의 나에겐 큰 부담으로 다가왔던 것 같다. 하지만 이틀, 삼일 등교하며 친구들과 친해지고 학교생활에 잘 적응했던 기억이 난다. 두려움과 막막함, 다른 한편으론 두근거림과 함께 학교를 향해 가던 세 번의 발걸음이 그 시절의 나를 만들어 낸 것이다.
음악 여행 역시 마찬가지다. 도쿄와 파리를 다녀왔고, 일전에 또 한 번 일본을 다녀왔으니 세 번이 충족된 셈이다.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사소하겠지만 나에겐 의미가 크게 다가온다. 어떤 사람들은 여행지에서 현지 서점에 들러 현지어로 된 책을 구매하고, 어떤 사람들은 마그넷을 사 오면서 각자의 여행을 만들어나간다. 나는 현지 공연을 하나씩 보는 것으로 나만의 음악 여행을 만들어나갈 생각이다. 계속 반복하다 보면 이것 또한 나의 레퍼런스로 자리매김하지 않을까? 내게 이런 생각과 경험을 하게 해 준 클래식이란 장르에 다시 한번 사랑을 느낀다. 앞으로 마주할 수많은 음악을 기대하면서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의 표어로 글을 마무리해본다.
RES SEVERA VERUM GAUDIUM
(진정한 즐거움은 중대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