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분히 사랑하는 삶
아이를 데리고 지구 반대편으로 여행을 왔다.
출국날까지 좋지 않은 컨디션에 링겔을 맞으며 옷보다 많은 약을 가방에 넣으며 이걸 가는게 맞나…생각했다.
다만, 한가지. ‘가자.‘라고 생각했던 데에는 ‘어차피, 낫는 병이 아니니. 기다린다고 나아지는 것도 아니니. 그러니, 이 안에서 좀 더 즐거운 방법으로 살겠어.’라는 좀 대책없는 결론이었다.
(물론, 이 무모함에는 이미 우리가 갈 곳에서 일때문에 머물고 있는 남편의 존재가 든든한 한 몫을 했다. )
출국날. 아침부터 이어진 아이의 학교 관련 일정에 기진맥진해서 오른 비행기 안에서, 무슨 영화를 보다가 잠이들까 고민하며 화면을 이리저리 넘기는데 눈앞에 익숙한 여배우의 얼굴이 스쳤다. 어려서 보던 일본 드라마에서 늘 기무라타쿠야의 상대역으로 자주 등장하던 ‘마츠다카코’. 늘 똑똑하지만 어딘가 허술한 여주인공의 역할을 자주 하던 그녀가 반가웠다.
‘First KIss’라는 제목의 영화는 그렇게 시작되었는데, 오랜만에 만난 영화속 주인공인 그녀는 내게 생각지 못한 메세지를 계속 던지기 시작했다.
영화속의 한 중년 부부는, 결혼 후 서서히 서로의 생활 습관과 취향을 비난하기 시작하며 급기야는 같은 집에 살지만 완전한 남남처럼 지내게 된 모습이다. 그렇게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아닌 완전히 무관심한 동거인 사이로 매일을 이어간 끝에, 이혼할 결심을 한 둘. 그런데, 양쪽이 동의한 이혼 서류를 가지고 출근한 남편이 지하철에서 유모차에 탄 아이를 구하려다 선로에 떨어져 사망해버린다.
사람들은 완전한 타인을 살리려 자신을 희생한 그의 죽음을 추앙하지만, 남겨진 아내는 정작 소중한 가족인 자신은 두고 죽어버린 남편의 죽음에 무감각한 모습으로 반응한다. 원망도, 후회도 없이. 불조절을 잘못해 타버린 군만두가 더 슬퍼서 눈물이 나는 매일이 지나간다.
그런 그녀에게, 이상한 일이 생긴다. 회사로 가는 길에 지나던 터널을 지나면 과거로 갈 수 있게 된 것.
그 과거 속에서 그녀는, 15년 전 자신이 남편을 처음 만났던 날로 돌아가 29살의 젊은 남편과 다시 만나게 된다. 생활에 찌들어버린 45살의 회계사가 아닌, 고생물을 사랑하며 자신이 하는 공부에 열심히였던…소심하지만 솔직하고 순수한 남편을. 그리고 과거에 존재하는 29살의 남편과 과거로 어쩌다 돌아간 45세의 아내는 큰 나이차이에도 불구하고 또 자연스레 끌리게 된다. 그리고 어떻게든 그 하루를 바꾸어, 남편의 사망을 막아보려 애쓰는 그녀의 노력이 영화 내내 펼쳐진다. 남편이 만나는 사람을 바꾸어보려고도 하고, 직업을 바꾸어보려고도 하고, 자신과 사랑에 빠지는 것을 막아 죽음이라는 현재의 결론을 바꾸어보려 노력한다.
’혹시 나와 결혼하지 않았다면, 다른 일을 했다면, 그 날 우리가 만나지 않았다면....
남편은 살아있지 않을까?‘
이런 기대를 가지고 갖은 애를 쓰는 그녀를 보며,
문득. 요즘의 나와 참 닮아 있다는 생각을 했다.
뜻밖의 병을 진단 받고 ’혹시 내가 그때 그랬다면, 아프지 않았을까?‘ ‘혹시 내가 그때 이 일로 스트레스를 덜 받았다면 안 아팠을까?‘ ‘그 때 그 사람을 안 만났다면 달라졌을까?‘ 이런 과거로의 질문들을 정말이지 끝도 없이 던지고 있던 나였으니까.
다만 한가지, 영화속의 주인공과 다른 점은…
’만약에‘라는 질문을 아무리 던져도
그걸 테스트 해볼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는 것 뿐, 끊임없이 과거를 돌아보는 우리는 꼭 닮아 있었다. 현재에 대한 깊은 후회와 원망도.
그런데, 영화의 결말의 의외였다.
이렇게 노력해서 현재를 바꿀 수 있었다면 어디선가 한번 본 타임슬립 영화로 마무리가 되었을텐데. 영화 속의 아내가 어떤 노력을 기울여도, 현재속 남편의 죽음은 달라지지 않았다.
그건, 이미. 정해진 운명이었기에.
아내를 만나 사랑에 빠지는 것도, 그녀와 결혼을 하는 것도, 그리고 누군가를 구하다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것도 변하지 않았다. 왜였을까.
영화속 고생물학자였던 젊은 시절의 남편은,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줄서서 기다리던 중 물리학에서 말하는 삶의 개념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물리학의 상대성 이론에 따르면, 우리가 흔히 느끼는 “과거–현재–미래”라는 구분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는 ‘블록우주’의 개념을 설명한다. 좀 더 쉽게 이야기해보자면 시간은 흐르며 과거에 의해 현재가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현재'라고 느끼는 것은 단지 우리가 따라가고 있는 어떤 세계선의 한 점일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것.
그러니. 과거의 나에게 자꾸 이런 ‘만약에 그랬다면, 저랬다면 ’이라는 질문을 던질 수록 남게 되는 것은 자책과 후회 뿐일 것이다. 마찬가지로 그리고 다가오는 미래의 나를 위해서 지금의 내가 잘하고 있는 것은 맞는지 신경쓰는 것 역시 그저 현재의 걱정을 더 키울 뿐.
미래에서 찾아온 아내를 통해 15년 후 자신의 죽음을 알게 된 젊은 날의 남편은, 그 모든 사실에도 불구하고 아내와 똑같이 사랑에 빠지고 결혼을 하는 선택을 한다. 다만, 그 15년의 시간을 달리 살아간다. 미래를 알기 전의 삶에서는 어느샌가 서서히 틀어진 관계가 이혼까지 치달았다면, 이번 삶에서는 배우자와 보내는 매일의 삶에 최선을 다한다. 아침을 먹으며 빵가루를 흘리는 아내를 힐난하기 보다는, 귀엽다는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아내가 좋아하는 토스트를 가장 맛있게 구워줄 기계를 주문한다. 그렇게 서로 꼴보기 싫던 습관들을 그저 ‘그 사람이라서’ 사랑으로 봐주는 매일을 보내며. 서로를 아끼는 마음으로 애뜻하고 충만한 하루하루를 보낸다.
그 결과.
떠나는 것은 정해져 있었을 지라도 15년이라는 시간 속 이 둘의 삶은 이전과는 참으로 달랐다.
그가 죽고 난 뒤의 그녀의 삶 또한 달라져있다.
그동안 충분히 사랑 받았고, 사랑했기에.
영화속 마츠 다카코는 내게 이런 말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아무리 애를 썼어도, 정해져있던 미래는 바뀌지 않아.
그러니, 어떻게 해도 바뀌지 않는 결론이라면 그 안의 매일을 더 기쁘고 소중하게, 값어치 있게 살아가는 선택을 하길 바란다고. 4.6억년이라는 긴 지구의 삶 속에서 겨우 8-90년을 사는 내가 찍고 있는 작은 점 속에서의 시간들이 어떨지를 보라고. 루푸스라는 병 역시 어차피 내게 올 일이었다면, 그 안에서 행복을 찾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일 것이라고.
곁에서 곤히 잠든 아이에게, 멀리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남편에게, 출국 전까지 걱정하며 마음 졸이던 부모님께. 나는 오늘, 그대들을 사랑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과거의 나를, 누군가를 용서하며 오늘의 나를 감사히 받아들인다.
어차피 내게 올 일이었다면, 기.꺼.이.
곧 비행기가 착륙한다는 기장의 안내가 들린다.
자, 또 가보자. 우릴 기다릴 미래의 웃는 나에게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