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나 채울 수 없다는 것
생기는 돈을 모조리 옷이나 신발, 가방에 쓰던 시절이 있었다. 주로 내 취향보다는 남들이 좋다고 하는 것, 남들이 알아봐 주는 것들에 돈을 쓰며 살았다. 그 시절을 조금 지나자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또렷해졌고, 유행보다 ‘내 마음’에 드는 것이 기준이 되었다. 트렌드와 맞을 때는 그 위에 올라탔고, 그렇지 않을 때는 또 그렇지 않은 대로 여전히 소비를 즐기며 살았다.
하지만, 필요한 만큼만 일을 하고 아이와 함께 보내는 시간을 늘리는 방향으로 삶의 기준이 변화하면서 물질적으로 꼭 사야 할 것, 꼭 갖고 싶은 것들이 점점 줄었다. 간혹 “예쁘다,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것들도 있었지만, 그럴 때마다 예쁜 하이힐보다는 뛰기 좋은 운동화 한 켤레, 가방보다는 책 한 권을 더 선택했다. 그렇게 내 소비의 중심축이 변화했다.
그러다 어느 날은 급기야 , 내 입에서 “물욕이 없어.”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왔다.
있으면 입고, 없으면 말고. 겉에 걸치는 것보다 안이 맑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욕망이 더 커졌다. 읽고, 쓰고, 되뇌며 지내는 시간이 늘어갔고 그런 매일의 행복은 더 컸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처음 의사 선생님으로부터 ‘루푸스입니다’라는 이야기를 들은 이후, 나의 축이 다시 기울기 시작했다.
부어서 들어가지도 빠지지 않던 손가락의 반지가 한 줌씩 털어 넣은 약들로 손가락을 수월히 오가던 날.
팔목이 욱신거려 시계도 차지 못했던 팔목에 팔찌를 꺼내 걸었다. 오래 쓰지 않았던 가방도 다시 꺼내 들어보고, 신발장 가장 위에 넣어둔 높은 굽의 구두를 신어보았다. 사기만 하고 거의 쓰지 않았던 귀걸이도 꺼내 걸고, 생전 바르지 않던 립스틱을 발라보았다.
왜였을까.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