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래도 애들 감기에 옮았나 보다. 머리도 지끈거리고, 밤새 뒤척였다. 타이레놀을 먹고 잤는데, 왠지 더 심해지는 느낌이다. 하는 수 없군. 나는 순순히 감기에 항복한다. 두 애들이랑 뒹굴거렸으니 오히려 안 걸리는 게 이상했겠군, 싶은 거다. 여보 나 아파. 자고 있는 남편보고 말하니 약 먹으란다. 먹었는데 아파. 하니까 다시 먹으란다. 뭐지? 이 섭섭함은. 맞는 말인데 은근히 섭섭하다. 그렇지만 난 얌전히 인정한다. 아마 우리 남편이 자는 나를 깨워서 말했으면 똑같이 말했을지도 모른다. 섭섭하지만 묘하게 동질감 느끼는 거.. 뭐야 이거..
밤새 뒤척이며 진땀을 뺐더니 덥다. 일어나자마자 샤워를 했다. 이례적인 일이다. 웬만하면 일어나자마자 샤워하는 경우는 드물긴 한데(나는 가끔 여자들이 남자들보다 더 더러울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아무리 깔끔을 떨어도 하루에 두 번 샤워하는 우리 남편을 보면 저렇게는 못하겠다 싶다) 땀이 너무 나서 씻었다. 씻고 나니 머리가 지끈지끈. 밥 달라며 밥그릇 앞에서 시위하는 강아지에게 줄까 말까 하는 못된 심보가 올라온다. 나도 못 먹은 밥을 니가 먼저 먹어야겠어? 하지만 나는 금세 그 귀여움에 결국 진다. 새로 산 사료를 꺼내어 사료통에 쏟으니 신난다고 뛰는 저 강아지를 귀여워하지 않을 수 없다. 사료를 밥그릇에 부으며 맛있게 먹어.라고 말해준다. 듣긴 하는 건지, 먹느라 정신없다.
그런 느낌이랄까. 몸은 분명히 열이 나는 것 같은데, 체온계로 재보면 미열조차 없는.. 지금 내 상태가 그렇다. 아니면 더워서 그런 걸 지도 모른다. 덥다고 생각하면, 몸에서 열이 나서 더운가. 그런 생각도 드는 거다.
엄마는 이래저래 아프면 손해다. 애들도 손해지만, 엄마는 더 손해다. 일단, 어른은 아프면 손해인 것 같다. 다 큰 어른은 누가 돌봐주지도 않고, 혼자 끙끙 앓다가 병원 가서 주사를 맞든가, 그래야 한다. 그 와중에 애들이 있으면 애들도 봐줘야 하고, 어쨌든 이래저래 손해다. 청소도 안 하고, 빨래도 안 하고, 밥도 안 한다 쳐도 육아는 해야 한다. 그건,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여기저기 손 빌릴 곳이라도 있으면 좋지만 이러나저러나 자기 애들은 본인이 책임져야 한다.
남편도 책임이 있다 하지만, 육아 휴직을 내지 않는 이상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주말에 도와주거나, 평일에 내 생각보다 좀 일찍 와주면 그걸로 일단 고맙다. 9년을 살면서 느낀 거지만, 일하는 남자들이나 육아하는 여자들이나 다 똑같이 힘들다. 원망해봤자, 나만 고달파지는 인생을 걷게 되는 것이다. 왜 나만 봐야 해? 왜 나만 힘들어야 해.라는 생각은, 자신을 좀먹는다. 그건 너무 조금씩 조금씩 갉아먹는터라, 우울에 늪에 빠지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면 이미 빠져있는 셈이다. 나는 겪어봤다. 좀먹는 나를 발견했을 땐 이미 늦었었다.
행복한 인생보다, 편안한 인생을 살기 위해서는 일단은 내려놔야 한다는 걸 9년 차가 되니 알게 된다. 물론 10년 차에는 다르게 생각할지도 모른다. 사람은, 모름지기 경험해 봐야 진리를 깨닫는 것 같다. 나도, 살아보니 알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 우리 엄마 아빠는 얼마나 많은걸 깨닫고 있을까. 아마 지금까지도 깨닫고 있을지도 모른다. 인간은, 나이가 들어서도 배운다고 하니 말이다.
그나저나 아침은 뭘로 먹는담. 대뜸 글을 쓰며 아침밥을 뭘 해야 하나 생각을 한다. 엄마가 해주는 된장찌개에 깻잎무침이 먹고 싶다. 금방이라도 달려가면 일하는 나의 엄마도 고달프지만 차려줄 것임을 안다. 하지만, 감기 걸린 내가 갈 수는 없다. 엄마한테 괜히 옮기기라도 했다간, 큰일이다. 엄마가 나보다 더 나이가 많으니, 아프면 더 아팠지 덜 아프진 않을 것이다. 그런 민폐를 끼칠 순 없지. 나는 엄마 대신 남편에게 된장찌개를 부탁해봐야 하나. 에잇, 그냥 내가 끓일까. 이런저런 생각을 한다. 결론은 내가 끓이는 걸로. 내가 먹고 싶은 거니까.
매일 아침, 질문 일기 365라는 수첩에 질문이 쓰여있는 칸에 답글을 쓰는데, 가고 싶은 곳이 있다면 어디로 가고 싶냐는 물음이 있었다. 당연히 거제도지! 나는 얼른 적어 내렸다. 거제도에 핀 동백꽃이 생각난다. 아름다운 거제도. 언제나(는 아니다 매번 갈 순 없다. 멀다 멀어) 좋은 기억이 있는 거제도. 오랜만에 가고 싶어 진다. 지금은 여름이니 나무가 싱그럽게 울창할지도 모른다. 예쁜 바다와, 산이 있는 거제도. 나는, 상상하며 오늘 마트에 가기로 한 걸 잊지 않는다. 현실은 언제나. 대형마트인가. 오늘은 특별히 밀키트를 사겠어! 라며 다짐한다. 거제도와 마트는 아무 상관관계가 없는데, 뜬금없이 터지는 나의 생각들이 풍선 터뜨리기처럼 하나씩 터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