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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작 Jun 26. 2022

아이의 말과 행동, 그리고 맥락

별님일기



© congerdesign, 출처 Pixabay


1


이번 주말은 조금 조용한가 했더니 아이아빠는 어김없이 찬송가를 튼다. 그래, 당신 마음이 요즈음 꽤 어지럽겠지 싶어 식탁에서 밥을 먹던 별이에게만 '아빠 또 저 노래 튼다.'라고 조용하게 말했다.



- 엄마. 아빠는 옛날 사람이라서 그래~



몇몇 찬송가는 리쌍이나 MC스나이퍼 같은 20여 년 전의 가요들과 함께 아빠의 플레이리스트를 채우고 있다. 오래된 노래에 기겁하는 내게 아이 아빠는 '나는 옛날 사람이라서 이 노래들이 좋다'라고 말하곤 했었고 별이도 그 말을 옆에서 들었었다.



- 엄마, 옛날 사람을 뭐라고 하지?

- 응? 그게 무슨 말이야?

- 엄마가 나 손으로 밥 먹으면~ 뭐라고 하는 거~

- 아! 원시인?

- 맞아. 원시인!



별이가 베란다에 있는 아빠한테로 가서 '아빠는 원시인이야!'라고 일침을 한다. 아이아빠는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한다.



- 아빠 원숭이라고?

- 아냐! 원시인! 동굴에 가서 살아야 돼~



별이는 나름 회심의 농담을 던지고 킥킥 웃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이아빠는 정색하며 답했다.



- 별아. 여기 아빠가 산 집이야. 동굴 나가 살려면 별이가 나가.

- 아냐! 아빠가 원시인이라서 그런 건데...



아빠를 놀려주려던 별이가 머쓱해졌다.



아이아빠에게 어디서부터 설명을 해 주어야할지. 가끔 맛있는 반찬이 젓가락으로 잘 집히지 않아 손으로 먹을 때면, 엄마로부터 그건 원시인이나 하는 일이라는 잔소리를 들었다. 원시인 별이는 이제부터 동굴로 들어가서 살아야 하는 거냐고 너스레를 떠는 엄마에게 '엄마랑 같이 살아야지~ 동굴은 안 갈 거야~'라며 다시 젓가락을 고쳐 쥐곤 했던 별이였다. 별이는 오래된 가요를 들으며 옛날 사람으로 자신을 지칭하는 아빠가 휴대폰으로 재생한 찬송가를 가요와 제대로 구분해 내지 못했지만 늘 아빠가 듣던 그 노래라는 것은 정확히 알았다. 그래서 아빠를 놀리고 싶어 만면에 개구쟁이 같은 미소를 띠고 원시인이라는 단어를 찾아 꺼냈다.



이 모든 사고의 흐름이 내게는 보였다. 느껴졌다. 별이는 아빠의 정색에 다시 엄마 쪽으로 돌아와 먹던 밥을 마저 먹고 입을 다물었다.






2


별이의 런닝을 몇 개 샀다. 잘 맞는지 대어보니 내년까지 입어도 너끈할 만큼 품이 넉넉하다. 깨끗하게 잘 입자고 별이에게 파이팅을 하며 엉덩이를 찰싹 두드렸다. 아이스크림을 입에 물고 있던 별이는 약간 놀라 자기도 하이파이브 하듯 엄마에게 손바닥을 내밀었는데 하필이면 엄마의 눈썹께를 확 치는 모습이 되어 버렸다. 눈가에 별이 손이 빠른 속도로 다가오니 나도 모르게 움찔하며 어깨를 움츠렸고, 그것을 소파에 앉은 아이아빠가 보았다. 앞 장면이 모두 생략된 채, 바로 그 장면만.



- 별이 너! 엄마를 때리는 건 절대 안 돼!



아이아빠가 정색하며 아이를 엄하게 혼내자 별이는 억울함과 서러움이 뒤섞여 높은 비명을 지르며 반항했다. 별이는 아직 세세한 자기변호를 하지는 못하는 나이이므로 아빠에게 말한 것을 반대로 뒤집어 대항했다.



- 엄마 안 때렸어! 나 엄마 안 때렸어!



그러나 의도가 어쨌든 별이의 손이 엄마 얼굴에 찰싹 붙었다 떨어졌던 것은 사실이었으므로 별이는 거짓말을 했다는 죄명까지 뒤집어썼다. 상황을 수습하고자 내가 끼어들었다.



- 별아, 엄마가 먼저 사과할게. 아까 별이 엉덩이 찰싹 때려서, 먼저 때려서 미안해.



하지만 아이아빠는 자기를 키워주는 어른을 공격하는 건 곧장 바로잡아야 하는 심각한 일이라는 지론이 있었고 그래서 별이를 계속 궁지로 몰았다. 한번 그렇게 정한 마음은 내가 어떤 말로 반박하고 설득한들 꺾이지 않았다. 엄마가 먼저 몸에 손을 댔으니까 별이가 그랬던 것 같다고 대신 변명해도, 어른이 때리는 것과 아이가 때리는 것은 다르다는 시각만을 확인할 뿐이었다. 결국 별이는 엉엉 울며 자기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고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게 했다.



한참을 지나 마음이 가라앉은 별이가, '엄마! 화해하고 싶으면 지금 들어와도 돼.'라고 말했고 부리나케 들어가니 방바닥에 누워 땀을 뻘뻘 흘리며 눈물을 흘리는 별이가 보였다. 가슴이 미어졌다.



별이에게 진심을 다해 사과했다. 엄마가 그러면 안 되는데, 별이 엉덩이를 찰싹 때렸어. 엄마가 아무 생각 없이 그런 행동을 해서 정말로 미안해. 그것 때문에 별이가 똑같이 행동한 건데, 그걸로 아빠에게 혼나게 해서 또 미안해. 별이를 일으켜 안으니 숨소리가 조금씩 평온해진다.



별이 마음은 어때? 말하고 싶지 않은 것을 물으면 별이는 마음속으로 이미 대답했다고 말한다. 별이의 대답이 무엇인지 나는 알 수 있었다. 엄마한테 미안한데, 아빠가 너무 혼을 내서 그 말을 할 수가 없었다고. 하지만 다음부터는 안 그럴 거라고, 그렇게 마음으로 말하고 있을 거였다.



별이에게 앞뒤 설명을 찬찬히 들어보면 좋았을 텐데. 아이아빠가 원망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그게 아니라면 내 말이라도 좀 들어보지. 원망 하나가 더해졌다.






3


동반 생활이 빚어가는 역사가 있다. 오랜 시간 밀착되어 생활하다 보니 별이의 사고 패턴이나 별이의 감정 같은 것들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기가 수월해졌다. 말이나 표정으로 표현되지 않는 안쪽의 것들도 어렴풋이 감을 잡을 수 있다. 예전의 일화가 현재의 현상을 이해하는 데에 도움을 주기도 한다. 그래서 아이의 말과 행동을 온전히 이해하려면 별이와 함께 한 사건과 시간들을 충분히 알고 먼저 수용해야 한다. 그 시간을 기억하고 재생하여 다가가는 것이 한 사람을 이해하는 방법이었다.



주말부부로 생활하는 것이 내게는 큰 타격을 주지 못했다 해도, 별이에게는 아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좀 슬펐다. 주중에 아이와 계속 떨어져 있어서 의미 있는 사건과 이야깃거리를 차곡차곡 쌓지 못하고 그래서 오해로 이어지는 결과를 자주 감수해야 한다는 것이 그렇다. 애정을 가지고 시간을 함께 보내는 행위가 사람 사이의 이해를 가능하게 한다는 걸 확인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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