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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작 Jul 03. 2022

행복에 대한 질문, 문학 : 은희경 작가 강연 후기


책캐스트 챙겨 들은 지 어언 3년이 되어 가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오랜 작가가 말하는 ‘행복’의 강연 주제에 그다지 마음이 끌리지는 않았다. 다만 사람에 대해 오래 생각해 본 사람들이나 글 쓰는 사람들한테 가까이 가서 그 기운을 좀 받고 싶은 소망이 있었다. 준비된 자리에서 정제된 언어를 들을 때의 기쁨이 있으므로. 그래서 폭우를 뚫고 마지막 특화 프로그램 강연을 들으러 갔다. 


서른일곱 당시로써는 늦깎이 데뷔를 했다는 은희경 작가는 쓰는 것으로 다른 사람의 인생을 살아보는 즐거움과 성취감을 느꼈다고 했다. 글을 쓰기 전에는 사회가 인정하는 모범적인 삶을 기꺼이 살아왔다고 했다. 서로 다른 인간들이 같은 것을 추구할 때에 나타날 수밖에 없는 경직이 있는데 글을 씀으로써 그동안 갇혀 있던 그 틀을 처음으로 깨고 나오게 됐다고 했다. 틀을 허물어 갈 때 인생의 행복을 찾을 수 있었다고 작가는 말했다.



나를 쓰게 만드는 것은 인간의 삶에 다른 선택이 있다는 믿음입니다.

은희경 작가가 소설을 쓰는 일은 타인을 공부하는 시간이라고 했다. 인간의 고유성을 인정하고 ‘모두 그렇게 산다’라는 함정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한다. 어떤 면에서 문학은 인물의 성공담이라기보다는 이상한 사람들이 나오는 실패담에 가까운데, 그 불온함이 세상을 바꾼다고 했다. 문학은 얼어붙은 내면을 깨는 도끼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답다’라는 상투성을 깨고 싶었습니다.

최신작 《장미의 이름은 장미》에서 은희경 작가는 예상되는 전개를 쓰고 싶지 않았다고 했다. 인물들이 극적인 화해하거나 연인이 되거나 가족애를 되찾거나 하는 결말을 피했다. 대신 갈등을 갈등 그대로 남겨 놓는 선택을 했다. 작가는 여기에서 ‘느슨한 연대’와 ‘고독의 연대’를 이야기했다. 상대의 생각을 바꾸거나 한 사람의 선택에 따라가는 식으로 억지로 묶어내는 방식이 아니다. 갈등을 그대로 남겨 놓은 채, 서로가 고유한 존재 – 그래서 고독이 불가피한 존재 – 라는 것을 인정한 채로 느슨하게 손을 잡는 것이 작가가 제시하는 방법이었다.


다름 아닌 바로 내가 늘 서로의 의견이 그림같이 하나로 합치되기를 바라왔던 대표적인 사람이었다. 갈등은 그런 방식으로 해결되는 것이라고 이상적으로나마 생각했었다. 친구나 동료들과의 견해차야 관계가 끊어지면 동시에 소멸하는 것이었으므로 대충 회피하면서 살 수 있었지만, 가족이나 부부간의 견해차는 그럴 수가 없었다. 안 보고 살 수가 없으니까. 그래서 더 고통스러웠던 것 같다. 이상에 다다를 수가 없으니 늘 패배한 기분이었고 눈물과 함께 포기하며 억울한 기분마저 들었는데 이걸 새로운 관점으로 보게 됐다. 너와 나의 고유성을 인정한 채로 느슨하게 이어진 관계도 방법이 될 수 있다는 것과 그것만이 유일한 해결책일 수도 있다는 걸. 오랜 시간 타인의 삶을 연구한 작가님이 보여 준 방법이니 믿어봐도 되지 않을까.



소설이 따뜻해졌다는 말을 들었어요.

냉소적인 창작자로 불렸다던 은희경 작가는 이번 소설을 내고 나서 반대의 평가를 듣고 있다고 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바로 직전에 읽은 《빛의 과거》만 해도 사람에 향한 시선에 냉소적인 느낌이 꽤 있었다. 이에 대해 작가는 예전에는 작품 속에서 문제를 제기하려면 인물을 굉장히 독한 상황에다 던져두어야 했지만, 이제는 독자들이 기본적으로 공감하는 것이 바탕에 있어 굳이 그럴 필요가 없었다고 답했다. 떠올려보면 한동안 굵직한 여성 서사에는 공식처럼 미친 여자(ex. 82년생 김지영, 채식주의자)가 나왔던 것 같다. 지금 읽는 소설에는 우울하고 예민하긴 해도 아예 돌아버리지는 않은 그런 인물들이 더 많아졌다고 느낀다. 이게 나만의 생각이 아니었다니 창작자의 마음에 가까이 닿은 것 같아 우쭐해졌다.






강연 제목인 ‘행복에 대한 질문’을 풀어쓰면 ‘그래서 행복은 무엇입니까?’일텐데, 여기에 대한 은희경 작가의 답은 ‘각자의 고유성을 유지하고 자기 삶의 조종간을 스스로 잡으며 느슨하게 연대하는 것’이라고 정리할 수 있겠다. 은희경 작가는 달변가는 아니었다. 중간중간 침묵이 생기기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망설이는 표정도 모두 인간적인 창작자의 모습 같아 더 가깝게 느껴졌다. 스스로 인간적인 사람만이 타인도 너그러운 시선으로 바라봐 줄 것 같아 작가님에 대한 호감이 더 커졌다. 한 자리에 오래 머물며 한결같은 마음을 유지하는 인생 선배의 기운을 조금이나마 받아온 것 같아 좋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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