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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작 Jul 06. 2022

"엄마, 이건 어떻게 읽어?"

별님일기



© tdederichs, 출처 Unsplash



한글에 눈이 뜨이면서 별이는 주변의 모든 글자를 묻고 알고자 한다. 이제 받침이 없는 간단한 글자는 꽤 잘 읽는다. 책장에 꽂힌 책들을 보고 또박또박 제목을 읽어 내려가는 모습에 놀랐다. 이 관심 덕에 별이와 함께 외출하는 날은 가끔 고행길이 된다. 눈에 보이는 글씨들을 모두 읽어줘야 하기 때문이다. 지난주에는 놀이터 안내문을 궁금해했는데 무슨 주의사항이 이렇게나 많은지, 세세하게 읽어주다 포기하고 엄마는 너무 더워서 가겠다며 줄행랑을 친 적도 있다. 욕구가 채워지지 않자 징징거리며 엄마를 따라오던 별이에게 미안하다. 별아, 미안해. 근데 요새 날씨가 너무 덥다….



‘읽어주기’는 엄마의 목소리를 통해 세상을 보는 것이다. 내가 정의하는 엄마란 아이에게 세상을 해석해 주는 사람이다. 같은 글자라도 엄마가 어떻게 읽어주느냐에 따라 그 글자가 구성하는 별이의 세상이 조금 달라질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간판을 어떻게 읽는지 물어보고 별이는 질문을 꼭 한두 개씩 덧붙인다. 거기에 엄마가 뭐라고 답했는지 별이는 정확하게 기억하고 재생해낸다.



하원길에 옆 아파트 단지를 가로질러 오는데, 여러 조형물을 보며 별이는 그 이름과 만든 이를 궁금해했다. 단지 내리막길 바로 앞에는 ‘향기 - 어떤 그리움’이라는 이름의 조형물이 있다. 고깔 모양의 기둥에 알록달록하고 커다란 나비가 앉아 있는 모습이다. 예술 작품에 붙은 이름은 추상적일 때가 많아 몇 번씩 대화가 오간다. 그러다 보면 돌아가신 증조할머니의 푸근한 냄새 이야기도 나오고, 그리운 정서와 향기가 어떻게 연결되는지도 이야기하게 된다. 이런 시간이 내게도 도움이 된다. 깊고 예쁜 이야기를 꺼내어 말로 늘어놓으며 정리해 본다.



한 번은 별이가 아무것도 없는 아스팔트 도로를 가리키며 ‘엄마, 이건 어떻게 읽어?’하고 물었다. 표지판이나 간판인 줄 알고 다시 물었으나 별이는 다시 도로를 가리킨다. 음…. 이걸 읽어달라고?



하긴 나는 별이에게 세상을 읽어주는 사람이니 못 읽을 것이 없다. 머리를 짜내어 즉흥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주인공은 도로가 깨진 아스팔트 틈으로 삐죽이 나온 민들레꽃. 포근한 흙과 따뜻하게 살아가던 민들레꽃이 어쩌다가 시커먼 아스팔트 더미를 만났는지, 흙의 도움으로 어떻게 반짝 얼굴을 내밀게 되었는지, 온 힘을 다해 이야기해 주었다. 어디에서 들어 본 듯한 이야기 구성과 주제의식이었지만 별이는 눈을 빛내며 끝까지 잘 들어주었다.



“엄마, 재밌어!”



그 한 마디로 모든 것을 보상받는 시간이었다.



별이의 세상에서 글씨를 포함한 주변의 모든 것은 ‘읽어내는 것’이다. 현상은 그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사람에게 특정한 방식으로 읽힌다. 지금의 찜통 같은 더위도 의미가 있을 것이고 퍼붓던 비도 마찬가지다. 학교에 다니고 일을 하는 것, 하루의 의미를 내 방식대로 채워나가는 모든 것이 읽는 행위다. 별이가 나를 찾아온 것도 내가 매일의 기쁨과 고통을 적절히 나누어 받는 것도 읽어내기 나름인 현상일 거다. 별이를 잘 키우고 싶어 매일 돌아보고 다듬다 보니, 비관 일색이던 나조차도 조금씩 달라지는 느낌을 받는다. 하루하루를 이렇게 읽어 가며 살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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