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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작 Jul 26. 2022

무엇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는가

[독서노트] 나는 나 - 가네코 후미코 옥중 수기





가네코 후미코는 독립운동가 박열 의사의 아내이며 그녀 자신도 독립운동에 투신했다. 영화 <박열>이 개봉했을 때 영화관에서 본 일이 있지만, 가네코 후미코 역을 한 배우 최희서의 일본인 연기가 너무 자연스러웠다는 것 외에는 오래 기억에 남지는 않았다. 이 이름을 다시 듣게 된 것은 지난달 다녀온 도서전에서인데, 도서전 기획으로 리커버 도서가 다시 출간되었던 모양이었다. 방문하는 부스마다 이상할 정도로 자주 마주치게 되는 표지 속 그 얼굴이 자꾸 기억에 남아 꼭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영화 <박열>에서 가네코 후미코는 천방지축에 발랄한 성격을 가진 당찬 여성으로 그려졌던 것으로 기억한다. 궁핍하고 부조리한 삶 속에서도 당당함을 잃지 않는 명랑만화 주인공 같은 느낌의 캐릭터였다. 그러나 당연히 그게 다 일리가 없었다. 그런 인상을 받았던 것이 죄송해질 정도로 그의 지난 삶은 고통의 연속이었다. 가네코 후미코는 당시 일본의 왕세자를 암살하려다 검거되고 옥중에서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는 수기를 썼다. 우리가 초점을 맞추는 인물과 만남으로부터 주변인(으로 불리는 그)의 삶이 시작된 것이 아니라, 모두가 고유한 삶 속을 살아내다가 문득 서로가 만나게 되는 것이었다. 모두의 인생은 저마다의 무게를 가지는 법이다.



원제는 ‘무엇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는가’, 현재 출간된 개정판의 제목은 ‘나는 나’. 두 제목이 책의 내용을 모두 담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네코 후미코가 왜 체제에서 벗어나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향해 투신하게 되었는지 성장환경과 주변 사람들로부터 퍼즐이 맞추어져 간다. 요약하자면 가네코 후미코는 (누구나 그렇듯)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태어나 어른들의 보호를 받지 못한 채 한동안 무적자無籍者로 살아가는데 그런데도 배움에 대한 열망을 꺼뜨릴 수 없어 배로 힘들게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사람이었다. 내내 누군가로부터 학대당하고 누군가의 노예로 살아가며 아무리 애를 써도 그것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그런 그에게 식민지 조선 사람들의 삶은 결코 남의 일이 아니었다. 마지막 순간에 가네코 후미코는 ‘나는 이제껏 한 번도 나 자신을 살아보지 않았다’는 깨달음을 얻고 제 일을 찾아 해야 하겠다고 다짐하게 된다. 가족의 그늘이나 나라의 보호 따위는 허울뿐임을 안 후에 그 모든 이데올로기에 벗어나 자기 삶을 스스로 개척하고 창조해야겠다고 결심한 것이다.



 옥중에서 쓴 수기이기 때문에 박열과의 만남 이후의 삶이 상세하게 묘사되어 있지는 않다. 그것이 책의 핵심도 아니다. 독립운동가의 아내가 아니라, 가족과 국가의 울타리를 뿌리치고 나로서 살기로 한 인물의 수기로 보는 편이 더 옳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 인물은 누군가의 보호나 애정을 얻지 못하고 삶의 극단의 극단까지 떨어져 내려가면서도 그 끝에 오롯이 홀로 남은 ‘나 자신’을 대면할 수 있었던 것인데 그것이 가슴 아프기도 하고 서럽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고, 굉장히 복합적인 감정이 들었다. 본문에는 자신이 정상적인 환경에서 자랐으면 나 자신을 발견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불운한 운명에 오히려 감사한다는 구절이 나온다. 가네코 후미코의 고통스러운 삶을 조용히 따라갔던, 평범한 독자 1인 나로서는 ‘나라면 차라리 모르고 말겠다’고 혼잣말을 하게 되는 대목이었다.



사람은 세상에 태어나 평생을 자기 자신을 찾는 여정을 하게 되고 사실 자신이 누구인지도 모르고 세상을 뜨는 사람들도 부지기수일 거다. 나를 둘러싼 것들, 그러니까 나를 무언가로 규정하는 환경적인 요소들을 모두 빼고 나서 덩그러니 남은 나를 발견하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 ‘그래야 한다’는 삶의 명제들도 다 제거하고 나서 벌거벗은 나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이 글을 쓰다 보니 가네코 후미코를 ‘박열의 아내’라든가 ‘대한민국의 건국훈장을 받은 일본인 여성’이라는 타이틀로 규정하는 것이 그에게 큰 실례가 되리라는 생각을 굳히게 됐다. 그는 자신의 삶이 어떤 방향이어야 하는지를 스스로 생각한 사람이고 그 방식대로 자신을 살아낸 사람이다. 그것이 제목이 함축한 바일 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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