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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작 Jan 13. 2023

내향성과 멜랑꼴리의 힘

[독서노트] 콰이어트, 비터스위트 (수전 케인)


수전 케인의 저서 두 권을 읽었다.



«콰이어트»는 이전에도 몇 번 도전을 했다가 중도 포기했었는데 더 일찍 만나지 못했던 것이 아쉬울 정도로 좋은 책이었다. 어느 책 방송에서 '이 책을 읽고 마치 구원을 받는 느낌이었다'는 감상평을 들었는데 그 말이 정확히 내게도 해당됐다. 흔히 타인을 위로하는 말은 아름답고 따뜻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때로는 이처럼 꼼꼼한 리서치와 논리적인 전개도 위로가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것 같았다.



수전 케인은 미국인이다. 미국은 스몰토크와 사교와 액티비티의 나라 - 외향인들을 위한 나라다. 작가는 이런 문화에서 차분함을 지키며 사는 세심한 사람들이 shy한 것이 아니라 introvert할 뿐이라고 말한다. 수전 케인은 책벌레에 감수성이 풍부한 여성으로 자랐다. 그러나 평균보다 더 높은 텐션으로 자신의 외향성을 드러내야만 능력이 있다고 평가받는 사회에서 수전 케인의 내향성은 부끄러운 것, 고쳐야 할 것으로 평가받곤 했다. 사회생활의 큰 비중을 차지하는 학교와 직장에서 외향성이 가장 큰 성격적 자산으로 다루어지자, 그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 - 아마도 전체 인구의 2분의 1 정도를 차지할 - 은 본래의 성격을 숨기고 과장된 몸짓과 언어를 사용하며 온갖 에너지를 소진하고 집에 돌아와 녹초가 되어 버리는 일상을 반복해야 했다.



수전 케인은 어느 날 내향적인 자신의 성격을 그대로 활용하여 특정 협상에서 성공한 후, 자신과 같은 고민을 가진 사람들을 위해 내향성이 얼마나 이로운 성향인지를 주장하기로 했다. 오랜 시간을 거쳐 완성된 책이 «콰이어트»다.



자신을 드러내는 대신 내면을 가다듬고 탐구하며, 크게 소리를 지르거나 책상을 쾅쾅 치는 대신 부드럽고 차분한 어투로 주장할 줄 아는 능력과 혼자 있는 시간에서 얻는 통찰로부터 훌륭한 리더가 성과가 이루어졌고 역사를 바꿀만한 사건도 발생했다. 일을 되는 방향으로 이끌어 가는 데에 자아ego를 앞세우지 않는 이성적인 판단력과 민감성을 가진 이들이 조직에서는 더 훌륭한 리더가 됐다.



수전 케인은 몇 백 페이지에 걸쳐 내향성이 감추어야 할 부끄러운 성향이 아닌 힘을 가진 진중함임을 주장하고 있다. 많은 사례와 연구 결과가 제시되어 그 주장을 뒷받침한다. 특히나 내게 마치 사이다와 같았던 문장은 양쪽 기질의 사람들이 갈등과 고독 중 어떤 것을 더 치명적으로 생각하느냐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하는 페이지였다.



거의 1년간 엄청난 외향형에 타인의 반응을 고려하지 않고 하고 싶은 말을 퍼부어대는 동료 근처에서 근무를 했는데 종종 기분 나쁜 일을 겪고 그것 때문에 짧게 어색해지기도 하면서 대체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 누가 들어도 기분 나쁠 말을 생각 없이 뱉고, 그러고 나서야 후회하는 모습이었다. '딱 5초만 입을 닫고 생각하면 될 일을 왜 참지 못하지?' 그러나 저 구절을 읽고서 의문이 풀렸다. 나는 갈등과 고독 중에 하나를 택하라면 고독을 택한다. 혼자서 시간을 보낼 줄 알고 그 속에서 얻는 것도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료는 갈등을 겪을지언정 고독을 택하지 않는다. 단 한순간도, 감정적으로라도 혼자 있고 싶진 않은 것이다. 고독이 싫으니 실언도 잦고 갈등도 많고. 주변 사람들로부터 신의를 얻지는 못하지만 또 그 나름의 캐릭터로 살아가는 것을 보면서 모두가 성향껏 사는 방식이 있는 거겠거니 생각해 본다.



내향인으로서 내가 가진 강점을 펼치며 살아가는 방법에 대해서 차분히 알아가며 마지막 페이지까지 뜻깊게 읽었다. '즐거운 독서'보다는 '갈증을 채워주는 독서'에 가까웠고 그래서 더 좋았다.






두 번째 책은 «비터스위트»로 이 또한 수전 케인이 오랜 시간을 공들여 집필한 책이다. 전작으로부터 10년 정도가 걸려 세상에 나왔다. (역시 내향인들은 뚝딱 결과를 내놓진 않는다. 세심하게 정성을 기울여 하나씩 빚어내는 것이 보인다!)



«콰이어트»가 시끌벅적한 나라 미국에서 내향인의 강점을 발견하고 북돋는 내용이었다면 «비터스위트»는 명랑하고 긍정적인 나라 미국에서 bittersweet한 감정의 필요성을 발견하고 북돋는 내용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의 감정 중에 쓸모없는 감정은 없다. 슬픈 음악을 듣거나 우울한 이야기를 들으며 사람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특정한 작용 또한 그렇다. 늘 긍정적이고 활기찬 반응만을 해야 한다는 사회적 강요 앞에 내향적이고 멜랑꼴리한 작가 수전 케인은 이 또한 우리의 강점이며 필요한 감정이라고 말한다.



사실 어떤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억지로 재단하려고 하는 것에서부터 정신병리학적 증상이 나타난다고 생각한다. 수전 케인은 이것을 '긍정의 횡포'라고 부른다. 저자는 나아가 우리가 부정적이라고 생각했던 감정들 - 하루빨리 내 안에서 몰아내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감정들 - 을 자양분 삼아 더 나은 방향으로 내 삶을 이끌어 갈 수 있다고 주장한다. 여기에서 저자가 어린 시절 엄격하고 통제적인 어머니로부터 느꼈던 감정들과 거기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어떤 씁쓸한 감정들을 겪었는지가 서술되는데, 이 땅의 모든 '착하고 순종적인 딸'들의 이야기인 것 같아 무척이나 공감하며 읽었다.



자신의 우울감을 예술이나 창작 쪽으로 발현시키는 사람들도 많다. 나 또한 흘러넘치는 감정을 주체할 수 없을 때에 글을 쓰곤 한다. 괴로운 감정이 괴로움 자체로 남아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떤 창작물로 승화되어 생산적인 정서가 될 수 있음을 이미 겪어 봤기 때문에 나는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가 옳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수전 케인처럼 조용하지만 강하게 '우리'를 대변해 주는 작가가 있어 너무 감사하다는 생각을 했다. 내향성과 우울감 모두 나를 이루는 요소들이기에 더 감명 깊게 읽은 책들이었다. 모두에게 권하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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