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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작 Jan 14. 2023

별이의 겨울, 별이의 말

[별님일기] [육아일기]


1️⃣


나는 알아주는 '개코'다.


비염만 나으면 100미터 밖 냄새까지 다 맡을 수 있을 것이다.

상한 음식이나 가스 냄새 같은 것을 정말 잘 맡고, 그래서 환기에 목숨을 건다.

바깥 기온이 영하 10도여도 하루에 일정 시간 이상 환기를 해야 산다.



별이는 이런 엄마에게서 '개코'라는 단어를 배웠다.



냉장고 채소칸에 꽁꽁 숨겨 놓은 사탕을 별이가 찾았다.

의자를 가지고 밟고 올라가서 사탕을 꺼내더니 장난기 어린 얼굴로 위풍당당하게 말한다.



"엄마! 어때? 나 개눈이지!"



그날은 별이에게 '매의 눈'이라는 표현을 알려 주었다.





2️⃣


복부에 살이 너무 쪄서 맞는 바지가 없어지자 정말 슬펐다. 소파에 앉아 스마트폰으로 큰 사이즈의 하의를 찾아보는데 짜증 섞인 눈물이 났다. 훌쩍거리며 큰 바지를 찾고 있으니 별이가 다가와서 같이 울먹인다.



"엄마, 내가 보기엔 엄마 예전이랑 똑같이 날씬해. 내 생각에는 그래~"



저는 엄마가 살쪄서 울 때 같이 울어주는 아이랑 같이 살고 있어요.





3️⃣


엄마: "별아, 엄마가 무슨 복을 지었길래 이렇게 예~쁜 아이랑 같이 살지?"

별이: "엄마 다른 집에는 별이 없지?"

엄마: "맞아! 우리 집에만 별이 있지. 엄마는 별이랑 키우면서 같이 사는 엄마라서 정말 정말 행운이야."

별이: (기분 좋은 미소)

엄마: (브레이크 상실) "아~ 엄마는 얼마나 행운인지! 다른 집에는 별이가 없지. 다른 집에는~ 별이 없대요~ 별이 없대요~ 얼레 꼴레리~ 얼레 꼴레리~" (점점 오버하기 시작)

별이: (정색) "엄마. 근데 왜 다른 엄마들을 놀리는 거야?"



미... 미안하다. 내가 잘못했어.





4️⃣


홈 요가 중. 유튜브를 틀어놓고 따라 한다.

동작이 잘 안 된다. 특히, 후굴 자세는 반포기 상태로 영상만 감상한다.

자칭 '관리요원'인 별이가 엄마를 다그친다.



별이: "엄마! 용기를 내. 도전을 해야지. 얼른 해 봐."

엄마: "나 저거 못하겠어. 허리 부러질 수도 있어."

별이: "그럼 댓글에 '너무 힘들어요'라고 써."



아냐. 그러면 모든 영상에 다 써야 되잖아.





5️⃣


국립중앙박물관에는 움직이는 AI 안내로봇 큐아이가 있다.



사진 출처: https://museumnews.kr/



이렇게 생긴 로봇으로 관람객이 터치하면 화면과 음성으로 소장품 해설도 해 주고 위치도 찾아 준다. 소장품과 관련된 간단한 그림 게임도 할 수 있다. 특히 위치를 찾아줄 때에는 직접 움직여서 해당 장소로 안내해 주는데 흡사 피리 부는 사내처럼 어린이들을 졸졸 매달고 다닌다. 별이도 이거 보러 박물관 가자고 할 정도로 큐아이를 좋아한다. 센서도 잘 되어 있어 관람객이 동선에 걸리면 바로 움직임을 멈추고 '길을 비켜 주세요'라고 명랑한 안내 음성을 내 보낸다.



한 번은 별이가 어딘가로 움직이는 큐아이를 쫓아가기 시작했는데(종종 명령시켜 놓고 큐아이 혼자 안내 보내는 관람객들도 있다ㅠㅠ) 그 큐아이가 반대편에서 오는 큐아이와 마주치고 말았다.



두 큐아이는 서로를 향해서 번갈아



- 길을 비켜 주세요.

- 길을 비켜 주세요.

- 길을 비켜 주세요.

- 길을 비켜 주세요.



하고 완벽한 AI 보이스로 말했다.



별이가 눈이 동그래져서 "엄마! 큐아이 둘이서 싸워!"라고 말했고 큐아이의 결투 현장은 온갖 어린이들의 관람 명소가 됐다.



집에 올 때까지 그 장면이 생각나서 피식피식 웃었다. 별이와 함께 다니면 재미있는 일들이 많이 생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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