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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작 Jan 24. 2023

생각 많은 이의 설날맞이 상념

남편에 대해 생각하다

1.
동생이 집에 놀러 온 날이었다. 나는 동생이 뭘 먹고 싶은지 궁금해했고, 집에 있는 재료로 그걸 만들 수 있을지 고민했다. 동생이 도착했을 때 춥지는 않았는지 물었고 두꺼운 외투와 가방을 대신 들어 옮겨 주었다. 저녁 식사를 준비하는 과정도 전혀 고되지 않았다. 최대한 깨끗하고 먹을 만하게 상을 차리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문득 내가 남편에게 이런 마음을 가진 지가 오래되었다는 걸 깨닫게 됐다. 기꺼이 먹을 것을 준비하고 차리고 토닥이고 싶은 마음이.

2.
 시부모님 댁에서 명절 식사를 했다. 별이가 사촌 형과 놀고 싶다고 해서 별이 혼자 할머니 댁에서 하룻밤을 잤고 밤을 지새울 기세로 형에게 딱 붙어 있었다 한다. 명절 식사 자리 대화의 주제는 ‘귀찮게 달라붙는 별이’였다. 사촌 형이 머쓱한 듯 정말 힘들었다며 고백했고 어른들이 육아의 어려움을 이제 좀 알았냐며 깔깔 웃었으며 별이를 도마에 올려 화기애애하게 대화했다. 별이는 자신이 좋지 못한 소재로 다루어지고 있다는 걸 감지했다. 점점 얼굴이 굳어지더니 밥 먹는 속도가 느려졌다.
 그 자리에서 별이의 미묘한 변화를 알아차린 사람은 나 외엔 단 한 명도 없었다. 아마 첫 번째 이유는 내가 별이 엄마라서였을 것이고, 두 번째 이유는 민감하게 다른 이의 상황을 살필 줄 아는 성향을 지닌 이가 나뿐이어서였다.
 자리에서 일어나는 별이를 따라가서 말했다.

 “별이가 사촌 형과 즐겁게 놀았다고 생각했는데 모든 사람이 형한테 힘들었겠다고 하니까 무시받는 느낌이 들고 속상했겠다. 엄마는 그 마음 알아. 그래도 여럿이 모인 날이니까 맛있는 밥 함께 먹는 게 더 좋을 것 같아. 엄마가 안아 줄 테니까 힘내서 밥 먹던 거 마저 먹자.”

 별이는 그 한마디와 따뜻한 포옹 한 번이면 순식간에 감정을 정리할 줄 아는 어린이다.

 별이가 상 앞으로 돌아오자 남편 식구들은 한 목소리로 어젯밤에도 별이가 이유 없이 삐져서 분위기를 망친다고 혼을 냈다고 말했다. ‘엄마가 오냐오냐해서 그런다’는 비하의 말도 공식처럼 따라붙었다. 별이가 하는 모든 행동에는 이유가 있다. 그래서 ‘이유 없다’는 말은 어불성설이다. 별이는 자기만의 이유로 특정 행동을 했는데 그 이유를 먼저 묻는 어른 한 명 없이 다만 크게 혼이 났고. 그 상황이 그려져 마음이 아팠다.

 정리하자면 남편이 자라 온 환경은 그런 것이다. 남편의 자신만의 성향과 사고를 키워 온 곳. 그래서 남편의 절반 이상을 구성하고 있는 것들 말이다. 타인의 반응은 중요 쟁점이 아니다. 공감은 그리 중요한 주제가 아니다. 다름 아닌 바로 ‘나’가 생각하는 것이기에 틀린 것이 아니며 그로 인해 다른 사람이 속상하다 하더라도 그건 상대가 알아서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기분 나빠하고 영향받는 건 네 손해야. 내가 하는 말은 나름의 기준대로 거르기 때문에 자유롭게 할 수 있고 틀린 것도 아냐. 그러니까 네가 상처받은 건 모두 네 잘못인 거야.”

 몇 번 들어 본 말이지만 난 그걸 이해할 수 없었다. 나를 ‘인간으로 존중하는 마음’이 결여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그게 오랜 시간 동안 나의 숙제였다. 나를 존중하지 않는 사람과 어떻게 화합하며 살 것인가. 그런 방법이 있기는 한가.
 
 식사 자리를 통해서 나는 이 사람이 말하는 것이 오랜 세월을 거쳐 쌓아 온 그 사람의 고유 성향이구나 하는 생각을 새로이 하게 됐다. 내가 타인의 반응을 살피고 세심하게 반응하여 언행을 결정하는 성향이라면, 남편은 자기가 책임져야 할 일은 성실히 하지만 타인을 살피는 일은 우선순위 리스트에서 그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는 성향인 것이다. 사실 이런 관계라면 늘 세심한 사람만 상처받고 거기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한다. (지금 이렇게 길게 글을 쓰고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상대는 변화하지 않을 것이고 나는 지속해서 상처받을 것이다. 이런 피해의식을 느끼면서 평생을 살 수는 없다.

 그래서 연휴 동안 이런 생각을 했다.
 그래, 내가 상처받는 것은 나의 잘못이다. 타인의 말 한마디의 무게를 무겁게 다루는 것. 그 의도를 추측하고 공격받는다고 생각하는 것. 그 사람이 하는 말, 표정, 행동 모두를 민감하게 살피느라 정작 나 자신에게는 솔직하지 못한 것. ‘미움’이 많은 것. 피해자의 위치에 나를 앉혀놓는 것.
 이 마음을 내려놓고 싶다.

3.
 남편과 오랜만에 긴 대화를 나누었다. 말만 하면 싸우기 때문에 평소 많은 대화를 나누진 않는다.
 남편은 집에 올 때마다 아내가 항상 불만에 가득 찬 모습으로 있는 것이 싫다고 했다. 남편의 사고에서는 그 원인 제공자가 자신이라고 해도 ‘불만에 가득 찬 아내의 모습’만이 문제인 것이다. 법적, 윤리적으로 문제 있는 것도 아니고 남편이 뭘 하든 내가 알아서 영향을 안 받으면 되는데 굳이 그걸 끌어안고 불만에 가득 찬 모습으로 대하는 아내가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명절 식사 자리의 분위기를 겪었기 때문에 나는 그 사고과정을 조금 알 것 같았다.
 남편은 아내가 외모 관리를 열심히 하고 자신을 향해 늘 웃어주기를 바란다. 그리고 외모와 건강 관리를 할 때, ‘남편한테 예쁘게 보이고 싶어서 이렇게 노력한다’는 말을 해 주길 바란다. 나는 진짜가 아닌 말을 떠벌이고 싶지 않고(내가 외모나 건강 관리를 하는 것은 나 자신을 위한 것이다. 대체 그것이 왜 남편을 위한 것이 되어야 하는가) 진중하고 신뢰롭고 깊이 있고 진실한 사람이 되고 싶은데, 남편은 애교 많고 여우 같고 자신을 여러모로 기쁘게 해 주는 아내를 오래도록 원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4.
 지난 2-3년간 나는 내 삶이 잘 통합되고 있다고 생각했다.
 나의 직업을 무척 사랑하고 업무처리도 무르익어 ‘일 잘 하는/인격적으로 훌륭한 사람’이라는 평을 받아 왔다. 직장에서 나 자신이 ‘사랑과 존중을 받는 사람’이라는 자존감을 얻을 수 있는 것이 얼마나 흔치 않은 행운인가.
 그뿐인가. 별이가 쑥쑥 잘 크고 있고 안정적인 애착을 통해 바람직하게 자라고 있는 똑똑한 아이라는 생각이 든다. 타고난 기질이 순해서 내가 준 것보다 더 크게 자라고 있다. 잘 먹고 잘 자고 잘 큰다. 육아에 지칠 때 도움을 청할 수 있는 할머니도 건강하게 가까운 자리에 계시다. 아무래도 엄마는 아이에게 엄격한 면이 있을 수밖에 없을 테니, 할머니는 별이의 ‘비빌 언덕’, ‘숨 쉴 터전’이 되어주고 싶다고 말씀하시는 분이며 늘 배우고자 하신다.
 아마 나와 가볍게 아는 사람들은 내가 무척 좋은 상황에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사실 그렇지만은 않다. 내가 타인을 볼 때도 겉으로 보이는 사는 모습이 다가 아니란 걸 되새기는 이유다.
 잘 통합된 것처럼 보이는 내 삶에 문제가 있다면 남편과의 관계다. 이게 너무 크리티컬하다.

 5.
 그러니 나는 ‘다음’을 생각하고 싶었다. 남편이 사고하는 방식과 성향, 수많은 트러블, 원치 않았던 상처, 내가 했던 여러 선택과 판단들. 이것은 이미 ‘벌어진 일’인데 그냥 그 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이 내게 과연 좋은 일인가. 남이 어떻게 생각하든 크게 관여하지 않고 죄책감도 느끼지 않는 남편이 준 상처를 내가 이렇게 매일매일 들여다보고 살 필요가 있는가.

 아니다.

 너무나 당연한 답이다. 벌어진 일을 딛고 다음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 과거만 곱씹으면서 살 수는 없다.

 자신에 솔직해지자. 나는 솔직히 남편이 밉다. 내가 원하는 것들을 주지 않는 남편이 밉다. 나는 솔직히 남편이 안쓰럽다. 가장으로서, 전문가로서, 자기 책임을 다하려고 분투하는 모습이 안쓰럽다. 나는 솔직히 남편이 하찮다. 맨날 속옷 바람으로 소파에 널브러져 있고 싶어 하면서 입바른 말로 정치사회경제를 논하는 남편이 하찮다. 나는 솔직히 남편이 존경스럽다. 남들이라면 진작에 소진됐을 큰 사고를 처리하며 저 정도의 멘탈을 유지하며 사는 것이 존경스럽다.

 그리고 나는 당연히 사랑받고 싶다.
 나의 통합된 삶에 이 ‘가족’도 함께 있었으면 좋겠다. 원만하게 잘 지내는 엄마와 아빠의 모습을 별이에게 보여주고 싶다.

 그러니 어쩌겠는가.
 솔직한 나의 바람대로, 희망 대로, 나아갈 수밖에.

 남편을 웃으며 맞이해 보자. 일주일 동안 힘들게 일하다 돌아온 남편에게 ‘수고했다’는 말을 건네고 어깨 한번 토닥여주고, ‘나 혼자 일하느라 별이 돌보느라 너무 고생했어. 나만 억울해.’라는 생각은 뒤로하기로 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내가 ~~ 하면 상대가 ~~ 해주겠지’라는 생각을 줄이기로 했다. 생각이 표현이나 행동으로 이르는 절차가 너무 복잡한 것은 별로다. 나 자신에게 솔직해지면 가리고 재느라 시간을 오래 들일 필요가 없다.
 내가 하는 노력의 수혜를 보면서도 남편이 그것이 ‘남편을 위한 노력’이 아닌 ‘그냥 아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노력’으로 받아들이리라는 걸 받아들이기로 한다. 그리고 사실 그게 맞으니까. 나는 좀 더 나 자신을 존중하는 삶을 살아야 할 필요가 있다.

 이렇게 솔직히 인정을 하니 마음이 꽤 가벼워졌다. 남편을 향한 밉고 고마운 마음을 동시에 받아들이니 그가 그렇게 정복 못 할 대상도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원하는 것을 백프로 얻고 살지 못하듯, 남편도 나에게서 바라는 것을 백프로 얻지 못한 채 살 거고, 그것이 아쉽고 슬퍼도 어차피 삶이 그런 것이니. 중요한 것은 내 마음을 돌볼 사람은 나 하나뿐이라는 것. 다른 누구도 아닌 나에게만큼은 스스로 솔직한 삶을 살고 싶다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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