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선작 Jan 27. 2023

우리는 화학적으로 변화할 수 있게 만들어진 존재

[독서노트] «레슨 인 케미스트리 1,2» 보니 가머스



출처 http://www.yes24.com/


배경은 1950년대 미국. 중심인물은 헤이스팅스 연구소에 소속된 과학자 엘리자베스 조트다. 당시 여성은 가정 내에 머물러야 하는 사람이었으며 임금노동을 한다 해도 사무보조 정도의 일을 했을 뿐, 엘리자베스와 같이 직접 연구하는 과학자는 전무했다. 엘리자베스는 동료 과학자인 캘빈 에번스와의 사이에서 결혼 없는 동거로 딸 매들린을 낳았다. 하필이면 캘빈이 불의의 사고로 사망한 날에 임신 사실을 알게 된다. 임신을 이유로 연구소에서 쫓겨난 이후 우연한 기회로 TV 요리 프로그램의 진행자로 발탁된 엘리자베스는 이제껏 본 적 없는 레시피를 대중에게 선보이기 시작한다. 엘리자베스의 요리 수업은 ‘기초 화학 수업’이었으며 ‘인생 수업’이었다. 전국의 수많은 여성 시청자들의 주목을 받았으며 스타 반열에 오른다. 엘리자베스는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살고 말하는 인물이었으며 다른 여자들은 기꺼이 그녀를 돕는다.



작품에서 엘리자베스는 눈에 띄게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여성으로 묘사되는데 때문에 그 시대의 규칙대로 살았다면 비교적 안락한 삶을 살며 여생을 보냈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엘리자베스는 순종적인 여성형은 아니며, 전문적이고 정확한 언어를 쓰고 자신의 의지대로 강단 있게 나아가는 인물이다.



시대에 저항하는 인물을 수도 없이 봐 왔지만, 엘리자베스의 삶이 더 흥미로운 이야기가 되었던 것은 잘 몰라 관심 없었던 주제인 화학을 전면에 들고 왔기 때문이었다. 전통적인 여성상을 거부하는 엘리자베스가 유독 요리에 정성을 기울이는 모습을 보면서 새로운 의미를 발견한 것이다. 남성과 아이의 식사를 챙기는 안사람을 보는 편견이 과학자 엘리자베스의 시선에서 완전히 새롭게 창조된다. 요리는 화학이며, 요리하는 과정은 실험의 일부였다. 엘리자베스는 적절한 온도와 재료배합으로 식재료의 화학 성분이 온전히 화합할 수 있게 돕는 지휘자였고 방송을 통해 이것을 전국의 주부들에게 전파한다.



소설은 소설인지라 엘리자베스에게는 늘 운명 같은 도움의 손길이 적절할 때 나타나고 사실 알고 보면 그 인연은 과거의 시점으로부터 이어져 왔음이 지속해서 드러나는데, 이런 우연의 중첩이 가능한 것인가 따져보게 되면서도 한편으로는 인물이 더 잘 됐으면 하는 기원을 하게 된다. 어쨌든 이야기는 이야기니까. (마지막 장면에서 캘빈을 몰래 지켜봐 왔던 생물학적 어머니, 매들린의 할머니가 나타나 앞으로 이들을 책임질 것처럼 묘사되며 마무리되는 부분에서는 해피엔딩을 향한 강한 열망이 충족됨과 동시에 ‘너무 소설이다’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 하지만 그게 이야기를 읽는 이유이기도 할 거다.)



다음은 엘리자베스가 자신의 마지막 방송에서 한 말로, 두 권의 소설 전체를 통틀어 작가가 하고 싶은 메시지가 여기에 들어 있다.



자신에 대한 의심이 들 때마다. 두려움을 느낄 때마다 이것만 기억하십시오. 용기는 변화의 뿌리라는 말을요. 화학적으로 우리는 변화할 수 있게 만들어진 존재입니다. 그러니 내일 아침 일어나면 다짐하십시오. 무엇도 나 자신을 막을 수 없다고. 내가 뭘 할 수 있고 할 수 없는지 더는 다른 사람의 의견에 따라 규정하지 말자고. 누구도 더는 성별이나 인종, 경제적 수준이나 종교 같은 쓸모없는 범주로 나를 분류하게 두지 말자고. 여러분의 재능을 잠재우지 마십시오, 숙녀분들. 여러분의 미래를 직접 그려보십시오. 오늘 집에 가시면 본인이 무엇을 바꿀 수 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보십시오. 그리고 시작하십시오. (2권, 236쪽)



엘리자베스의 과학자였기 때문에 합리적인 이유에 따라 자신의 행동을 결정했다. 전혀 과학적이지 않은 사회적 관습이나 타인의 시선은 신경 쓰지 않는다. 성격이 인생을 만든다고, 엘리자베스는 이로써 진정한 ‘자신의 삶’을 일구어 간다.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게 여성 인권이 낮았던 195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이유는 더 열악한 상황에 강인한 인물형을 던져 놓음으로써 벌어지는 일을 현시대의 독자가 목격하게 하기 위함이 아닐까 싶다. 그 시대의 여성들과 현재의 여성들에게 동시에 존재하는 어떤 마음을 꺼내어 엘리자베스를 응원하며 위로를 얻는 그런 순간을 주기 위해서.



자신이 누군지 알고 말하고 행동할 줄 아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끌어당긴다. 정말 매력적인 인물이었다. 엘리자베스에게 끌려 단숨에 두 권의 책을 다 읽었다. 마지막 책장을 덮은 이제는 나도 엘리자베스와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내가 무엇을 할 수 있고 바꿀 수 있을지 ‘스스로’ 생각해 볼 것, 그리고 실행해야겠다는 생각을. 나는 화학적으로 변화할 수 있게 만들어진 존재니까. 왠지 힘이 난다. ✅



작가의 이전글 생각 많은 이의 설날맞이 상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