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서누 Sep 16. 2022

순둥한 리트리버의 얼굴에 제발 속지 마세요

대형견에 대한 로망을 와장창 깨 드립니다

나는 어릴 때부터 대형견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멋진 늠름한 대형견을 끌어안고 같이 놀고먹고 자는 생활을 상상하기도 했고, 저녁 산책으로 거뜬하게 10km씩 걸었기 때문에 대형견과 함께하는 산책을 꿈꾸기도 했다. 대형견과 함께 하는 조깅이라니, 미국 드라마에 나올 것 같은 멋진 풍경이지 않은가!


그런 나에게 대형견 로망을 실현할 기회가 생겼다. 결혼을 하면서 남자친구가 키우던 골든리트리버 모모를 함께 키우게 된 것이다. 확실히 대형견이라 걸음이 빠른 나와 보폭도 잘 맞았고 밤산책을 오래오래 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도 같았다. 사람도 좋고 개도 좋고 윈윈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일이 터졌다. 밤에 모모를 산책시키고 있는데 마침 늦게 퇴근한 남편이 멀리서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남편이 있는 쪽으로 대형견과 함께 멋지게 달려가 반겨주는 상상을 하면서, "모모, 아빠가 왔네? 가자!"하고 달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현실은 상상과는 완전히 달랐다. 주인을 발견하고 전속력으로 달리는 대형견의 힘은 상당했고, 하필 손목에 목줄을 단단히 묶었던 나는 허공에 붕떴다가 턱부터 추락했다. 다행히 뼈에는 이상이 없었지만 턱이 찢어졌으며 뇌진탕 증세가 와서 어지러움이 가라앉을 때까지 한동안 땅바닥에 누워있어야 했다. 이후에도 모모는 길고양이, 버려진 공, 다른 강아지 친구 등을 보면 순간 어마어마한 힘으로 뛰쳐나가려 했고 나는 산책 때마다 온 신경을 곤두세워 주변을 살펴야 했다. 대형견과의 평화로운 조깅은 물 건너간 것이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모모도 다른 리트리버들처럼 무엇인가를 물고 씹고 뜯는 것을 너무 좋아한다. 산책하면서 나뭇가지를 주워 씹을 때는 그래도 귀여웠다. 문제는 어디선가 음식물 쓰레기를 담았던 비닐, 썩은 이물질이 묻은 휴지 등을 귀신같이 찾아 입에 물 때였다. 보기만 해도 더러워 죽겠는데 놓으라고 해도 놓지를 않았다. 물고 싶은 본능을 거스르는 일이니 뱉는데 엄청나게 시간이 걸렸다. 비가 쏟아지기 시작하는데 입에 물은 것을 놓지 않아서 30분 동안 "놔!"를 수도 없이 반복했을 때는 정말 인내심이 한계에 달했다. 뿐만 아니라 잠깐 한눈팔면 집의 벽지나 가구, 수건이나 옷가지 행주 슬리퍼 등을 물고 질겅질겅 씹는 것은 일상이다.


나뭇가지가 많이 떨어져 있는 날, 어떤 것을 가져갈지 심각하게 고민하는 모모


리트리버는 꽤 깔끔 떠는 내 성격과도 상극이다. 물을 아주 좋아해서 비 온 후에 생긴 물구덩이를 보면 즉시 드러누웠으며, 목욕을 자주 시켜주지 못하면 비린내가 심하게 났다. 털도 엄청나게 빠져서 열심히 털을 빗겨도 집안에는 늘 털 뭉치가 굴러다녔고 풀숲에라도 들어가면 피를 먹어 통통해진 진드기를 달고 다녀 경악하게 했다. 나는 위생이 심각하게 걱정되어 온갖 목욕용품, 소독 및 청소용품을 사들여 청소를 하기 시작했다.


가끔 미디어에서는 리트리버가 아주 어른스럽게 배려하는 모습이나, 굉장히 영리하고 똑똑한 인상 깊은 모습을 보여주곤 한다. 하지만 그것도 개 by 개인 것 같다. 우리 모모에게서 느껴지는 언어는 상당히 단순한데, "우와 너무 신나!!!", "야 이거 뭐야!!", "놀자! 나가자! 좋다!!!", "아 이거 물고 가면 안 돼? 가져가고 싶은데 왜 그러냐 아휴 진짜", "이것도 안돼? 알았어 진짜 아휴 하고 싶은데... 진짜 안돼?" 정도의 느낌이 전부다.


내가 앉아 있으면 쓰다듬어 달라며 머리를 들이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덩치만 클 뿐이지 하는 짓은 아기나 다름이 없기 때문이다. 같이 있으면 마냥 쓰다듬어 달라고 커다란 몸을 들이대고 놀아달라고 장난감을 물고 온다. 그리고 확실히 착하다. 잔뜩 화를 내고 혼내도 물거나 짖는 일이 한번 없이 아주 무서워하며 풀 죽은 모습을 보인다. 그러니 자꾸 마음이 쓰여 한 번 더 산책시켜주고 한 번 더 쓰다듬어 주고 한 번 더 놀아주게 되는 매력이 있다.


하지만 위에서 언급했듯 리트리버를 키우는 데는 어마어마한 체력이 필요하다. 혹시 나와 같이 대형견에 대한 로망이 있다면 이 같은 현실적인 어려움까지도 감당할 수 있는지 진지하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교육을 제대로 시킬 수 있는 사람이 키우면 더욱 좋을 것 같은데, 모모의 경우 산책 시 주인에게 집중하도록 하는 훈련이 효과적이었기 때문이다. 하나 더 더하자면, 리트리버와 같은 대형견에게는 마음껏 체력을 소모할 수 있고 시원하게 물놀이나 목욕을 시키기 좋은 마당이 있는 환경에서 키우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아쉬움이 든다.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