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엄살쟁이로 전락하기까지
“저기 저 방 산모 있잖아, 자궁문 1cm 밖에 안 열렸는데 울고불고 소리 지르고 큭큭. 수술해 달라고 난리 쳐서 제왕절개했잖아.“ 새벽 시간 인수인계하는 간호사들의 뒷담의 주인공인 나는 말똥한 정신으로 다 듣고 있었다. 가만히 누워 들으면서도 어이가 없었다. 자연분만을 위해 얼마나 노력을 했는데 이렇게 끝나다니.
간호사들의 말처럼 나는 유도분만 약 5시간 만에 제왕절개를 했다. 이유는 너무 아파서 요청에 의한 긴급수술이었다. 나는 엄살쟁이였을까? 사람들에게 구구절절 설명하기도 구차해서 말하지 않았던 나의 출산 후기를 여기에서나마 풀어보고자 한다.
나이 서른이 되도록 나는 뼈가 부러져본 적도 피부를 꿰맨 적도 없어서 오히려 수술이 더 무서웠다. 그래서 애초부터 자연분만을 원했었다. 나는 둔한 사람이라 고통을 견디는 것은 자신 있었으며, 진통의 고통을 줄여준다는 호흡법과 마지막 힘주기 방법도 열심히 연습했다.
다른 산모들의 출산 브이로그도 빠짐없이 찾아보며 마인드컨트롤을 했다. 사람마다 걸리는 시간은 달랐지만 보통 자궁문이 4cm쯤 열릴 때 진통이 심해지는데 이때 무통주사를 맞고 견디다 보면 자궁문이 8cm가량 열리며 마지막 힘주기를 하고 아기가 나오는 식이었다.
출산예정일 하루 전날을 맞이하는 새벽, 배가 싸르르 아팠다가 괜찮아졌다가 아팠다가 괜찮아졌다 했다. 주기를 체크해 봤는데 규칙적이다가 텀이 늘어나며 불규칙해지더니 없어졌다. 마침 정기검진이 있는 날이라 병원에 가서 밤중에 가진통이 온 것 같다고 했다. 선생님이 초음파를 보시더니 정말 자궁문이 0.5cm 정도 열렸다고 하셨다. 그런데 갑자기 양수가 심하게 부족해졌다며 당장 유도분만을 하는 것이 좋겠다고 하셨다.
유도분만은 인공적으로 진통을 일으키며 실패율이 높다고 하여 마음에 들지 않아서 자연진통이 오기를 기다렸었는데, 얼결에 분만실로 들어가 유도분만을 하게 된 것이다. 준비를 마치고 자궁수축촉진제를 투여하자 있는 듯 없는 듯하던 진통이 확실히 규칙적으로 오기 시작했다. ‘오 이제 시작인가 보네’ 생각했다.
진통의 느낌은 생리통과 같았다. 생리통도 임신을 준비하며 커졌던 자궁이 다시 수축하며 생기는 통증이고, 진통은 엄청나게 커진 자궁이 아기를 감싸고 있다가 밀어내기 위해 수축하며 생기는 통증이기 때문에 느낌이 비슷하다. 대신 자궁이 늘어난 크기만큼 고통의 강도가 수십수백 배는 된다.
그런데 이게 문제였을까. 자궁이 수축하는 것이기 때문에 보통 사람들은 배가 아픈 모양인데, 나는 생리통도 허리와 골반뼈로 오는 편이다. 생리를 할 때마다 허리와 골반뼈가 아려서 그나마 골반뼈를 시원하게 해주는 개구리자세로 엎드려있다가 결국 진통제를 퍼먹곤 했었다.
처음에는 배만 조금 아프고 호흡법도 통하는 듯했으나, 원래처럼 허리와 골반뼈가 아파오고 생리통의 3-4배쯤 되는 고통이 진통으로 오기 시작하자 처음으로 ‘어? 심한데 어떡하지? 나 견뎌낼 수 있을까? 나 못 견딜 것 같아…’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고통은 더욱더 심해지기 시작했다. 이제 배는 아픈 줄도 모르겠고 허리와 골반뼈의 고통에 다 묻혔다. 살아있는 사람의 골반뼈를 용광로에 달구듯 시뻘겋게 달구었다가 그 열기를 살짝 식혔다가, 다시 시뻘겋게 달구는 것을 반복하는 것. 그게 내가 느낀 진통의 명확한 느낌이었다. 호흡법을 계속 시도해 보았지만 나의 허리진통에는 전혀 통하지 않았다.
아픈 와중에 찾아낸, 이 고통을 견딜 수 있는 방법은 진통이 올 때마다 허리와 골반뼈를 미친 듯이 두드리거나 아니면 허리를 벽에 미친 듯이 치거나 일어서서 허리를 막 흔들고 뛰는 것이었다. 그렇다. 허리로 진통이 오면 가만히 누워서 호흡하는 게 더 고역이다. 어떻게든 움직여야 한다. 그런데 이 또한 여의치 않았다. 아기의 심박과 자궁의 수축 정도를 실시간 체크할 수 있는 온갖 기계들이 몸에 주렁주렁 달려있었기 때문이다.
아파하는 나를 보며 간호사가 “아파도 호흡하셔야 해요! 그래야 안 아파요!!” 할 때는 어이가 없었다. ‘당신이 뭘 알아? 내가 그걸 몰라서 이래? 호흡법이 안 통한다고!’ 다른 간호사분은 허리를 마구 두들겨주셔서 너무 감사했다. 그러나 나만을 위해 간호사분이 종일 허리를 두들겨줄 수는 없는 일. 남편 또한 코로나 검사를 위해 가버리고 나는 혼자 베개를 안고 엎드려서 그나마 골반뼈를 시원하게 하는 개구리 자세를 하고서는 생으로 이 악물고 고통을 견뎌내기 시작했다.
산채로 고문을 당하는 사람 같았다. 파도처럼 계속 넘어오는 진통을 하나하나 넘기기가 버거웠다. 어찌어찌 이 악물고 진통을 하나 넘기고 다음 진통을 기다리는 순간이 너무 두렵고 절망스러웠다. 허리진통은 진통이 쉬는 타임에도 진통의 여운이 많이 남아 쉬지 않고 계속 찡하게 아픈 느낌이었다. 진통이 올 때마다 으으으으으윽… 그리고 잠깐 기억이 없다가 또 으으으으으윽… 허리를 덜덜 떨고 베개를 쥐어짜면서. 그렇다. 중간중간 기절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의사는 자궁 수축 수치를 보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100이 max인데 수치는 50 정도.
“이 정도로 아프진 않으실 텐데…? 왜 이렇게 아파하시지? “
“배는 아픈 줄 모르겠어요. 허리가 너무너무 아파요.”
“평소에 허리디스크나 허리수술한 적 있으세요? 산모님들이 허리로 진통이 오면 잘 못 견뎌하시더라.”
“그런 건 없는데 원래 생리통도 허리로 와요.”
“아직 자궁문 1cm 겨우 열렸어요. 좀 더 참아보세요”
미치겠네. 자궁수축은 수치로 볼 수 있어도 나의 고통은 수치로 볼 수 없는 건가요? 이렇게 아픈데 자궁문은 왜 안열리는 건가요.
그런데 기절을 할 정도의 고통은 그래도 어떻게 견뎌내 볼 수 있는 수준의 고통이었다. 더 큰 고통이 오기 시작했다. 숨도 쉴 수 없었다. 골반뼈를 달구던 불길이 심장까지 치솟았고 팔뼈와 허벅지뼈까지 달구어지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이 고통을 넘겨보기 위한 어떤 노력도 통하지 않았다. 불길이 뒷목까지 타고 올라올 때쯤 나는 온몸이 불에 타고 있는 사람처럼 소리쳤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악!!!!” “아아아아아아아악!!! 이…. 이것 좀 떼주세요 당장 수술해 주세요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이 정도의 고통이, 고작 자궁문이 1.5cm 겨우 열렸을 때의 고통이었다. 의사는 10시간에서 24시간 정도는 더 버텨야 자궁문이 다 열릴 것이라고 했다. 이 타이밍에 무통주사를 놔줄 수 있다거나, 마지막 힘주기를 해보자고 했다면 그거라도 희망 삼아 더 버텨볼 수 있었을까? 그냥 수술이 답이었다. 답도 없는 고통이었고 진행속도도 너무나 느렸다.
유도제를 제거하자 진통이 사그라들었고 수술은 빠르게 진행되었다. 배가 몇 번 흔들흔들하더니 시뻘건 아기모형 같은 것이 쑥 나와 우렁차게 울었다. 그 이후 나는 코로나 시국에 바빠서 일하러 간 남편 덕분에 보호자도 없었으나 혼자서도 몸을 잘 일으켰으며, 소변줄도 빼지 않고 씩씩하게 걸어서 아기를 보러 갔다. 내장이 쏟아지는 느낌이 들며 훗배앓이를 한다는데 나는 아직도 그게 무슨 느낌인지 모른다. 그야말로 제왕체질이었던 것이다.
자연분만은 1억 어치 고통 일시불이라면 제왕절개는 200만 원어치 고통 3개월 할부다.
자연분만은 짐승 같은 고통이라면 제왕절개는 인간적인 고통, 뭐 수술 후 회복 고정도다.
내가 느끼기엔 그랬다.
그런데? 또, 나와는 반대로 제왕절개 회복이 너무너무 아프고 힘든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그러니 임신 출산은 참 내 마음대로 되는 게 없다. 노력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의지로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사람마다 정해진 운명이 있는 것 같달까. 어떤 사람은 몇 시간 만에 순산하고, 어떤 사람은 하루이틀 진통 하다가도 긴급수술을 하기도 한다. 나같이 초장부터 심한 고통이 들이닥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견딜만하다가 마지막 세 시간 정도만 아팠다고도 한다. 그러니 함부로 엄살쟁이라고 하지 말아 줬으면 좋겠다. 사람마다 느끼는 고통의 수준이 다르고 나는 저 사람과는 달라서 그 고통을 모르니까. 그저 임신출산의 과정을 잘 마쳤다고 고생했다고 손뼉 쳐주면 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