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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선기 Jun 29. 2022

만수르 사촌에게 초청 받아 사우디에 다녀오다.

실패의 실력 #8

『실패의 실력』#8


성공이라는, 착각

사우디 아라비아 왕실에서 초청한 귀빈

 


“스타트업 대표들이 가장 좋아하는 투자자가 누군지 알아?”

한 스타트업의 대표가 물었다.


“글쎄요. 워런 버핏이나 소프트뱅크 벤처스의 손정의? 내가 대답했다.


“틀렸어. 사우디아라비아 왕실이야.”


“엥? 왜요?” 나는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이 사람들은 하도 돈이 많아서 투자해놓고 까먹거든.”


그의 말을 듣고 옆에 앉아있던 다른 대표들이 함께 웃었다.


우리는 사우디 아라비아의 수도 리야드(Riyadh)로 향하는 전용 비행기에 탑승 중이었다.




그 해 가을,


사우디 아라비아 왕실의 제2 왕세자였던 무함마드 빈 살만 알 사우드(당시 사우디의 국방장관, 현재는 제1왕세자)가

자신의 비영리 단체 Misk 재단을 통해 주최하는 ‘전 세계 스타트업 포럼’에 초청했다.

(사진 출처 : © REUTERS / POOL New)


무함마드 빈 살만 알 사우드의 개인재산은 2,500조 원이다.

2,500조. 실감도 안 되는 액수다.


삼성전자 이재용, 워런 버핏, 일론 머스크, 래리 페이지 구글 창업자, 빌 게이츠의

내가 아는 세계 최고의 부자들이라는 사람들의 모든 재산을 합한 것보다 몇 배나 많은 액수다.

(참고로 대한민국의 2022년 국가 총예산이 약 600조 원)


CNBC에서 추정하여 발표한 '공개된 재산'만 그 정도인 것이다.


괜히 포브스에서 세계 100대 부자 순위를 매길 때 중동의 석유 재벌들을 제외하는 것이 아니다.



행사의 특별연사로 빌 게이츠와 워런 버핏 등 내로라하는 세계적인 인물들이 초청되었고,


전 세계에서 선별된 스타트업 대표에게 왕실 명의의 공식 초청장과 함께 왕복 항공권과 숙박, 교통, 식사, 기업 홍보자료 제작비 등을 전액 지원해주는 호화로운 행사였다.


못해도 수백억 원은 썼을 행사지만 그의 재산을 봤을 땐 정말이지 티도 안 나는 금액일 것이다.


사우디 아라비아 왕실의 초청장


사우디 아라비아 왕실의 초청장


“와… 이거 완전 북한 아니야?”

공식 초청장과 함께 첨부된 ‘사우디아라비아에서 하면 안 되는 행동’을 확인하며 입 밖으로 자연스럽게 나온 말이었다.




우선 음주와 돼지고기가 법으로 철저하게 금지됐다.


여성들은 짧은 치마나 반바지를 입지 못하게 했고, 운전조차 할 수 없었다.


대중가요는 물론이고 서양의 고전 클래식 음악조차 금지하고 있었다.


마트나 백화점의 계산대에는 남성 전용 줄과 여성 전용 줄이 따로 있었고,

공공장소에서 이성 간의 스킨십은 금지였다.(이건 좋은 법인 듯)

동성 간의 스킨십은 말할 것도 없었다.(동성애는 최소 태형에서 최대 사형까지 당할 수 있다)


다른 중동 국가를 포함해 꽤 많은 나라를 가봤지만 이렇게 까지 사회가 경직되고 꽉 막힌 국가는 처음이었다.



그럼에도 포럼에 참석하기로 결정한 것은 전 세계 각 분야에서 혁신을 일으키고 있는 다른 스타트업들과의 교류가 목적이었다.


운이 좋아 현지 투자자-투자해놓고 까먹는-와 연결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일이기도 했다.


이러저러한 기대를 가득 품고 사우디 아라비아로 떠났다.



왕실에서 마련해준 비행기를 통해 수도인 리야드의 제다(Jeddah) 공항에 도착한 후 VIP 전용 입국장을 거쳐 공항 밖으로 나왔다.


입국장 밖에는 영화에서나 보던 검은색 대형 럭셔리 SUV 차량이 끝도 없이 줄 지어 정차해있었다.

전속 차량과 운전기사를 배정받아 호텔로 향했다.

5박의 일정 동안 차량과 기사를 마음껏 이용할 수 있었다. 마치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던 회장님처럼.



“이 나라는 도대체 돈이 얼마나 많은 거야?”

호텔에 도착해서 배정된 방으로 안내되었을 때, 감탄이 나왔다.


호사스럽기 그지없던 객실은 내부에 별도의 방과 침실이 3개나 딸린 스위트룸이었다.


원하는 모든 종류의 룸서비스도 마음대로 주문할 수 있었다.




전용 비행기, 전용차와 운전기사, 그리고 최고급 호텔의 스위트룸까지.

상상했던 것을 훌쩍 뛰어넘는 호사였다.




호사는 계속되었다.


이튿날에는 주최 측에서 국립박물관 투어를 준비해줬는데 무려 사우디 왕실의 공주가 직접 안내를 맡아 투어를 진행해줬다.



그렇지만 예상대로였다. 2시간가량을 박물관 전시실을 걷고 또 걸었지만 

눈에 보이는 거라곤 유목민들의 삶을 재현한 쇼 케이스가 대부분이었다.


이런 표현은 주최 측에겐 조금 미안하지만... 0.0000001도 궁금하지 않았던 유목민의 역사...





슬슬 지루함과 피로감이 몰려올 때, 가장 마지막 전시관에 도착했다.


시대 순서에 맞게 가장 최근인 근현대 전시관이었다.





“아 ……” 


순간 나는 할 말을 잃었다.


그곳엔 3층짜리 건물 높이의 거대한 ‘원유 채굴기’가 있었다.


“왜? 뭐? 설명이 더 필요해?”라고 그 원유 채굴기가 말하고 있는 듯했다.


만든 사람: Christopher Boswell 

저작권: Copyright Christopher Boswell 2015

(대충 이렇게 생긴 원유 채굴기 하나가 전시관 한복판에 떡 하니 있었다)



기승전결이 꽤 명확한 국립박물관이다.


안내를 해주던 공주의 얼굴에서 숨길 수 없는 뿌듯함이 엿보였다.



‘이걸 보여주기 위해 그렇게 빙 둘러 둘러왔구나.’

그런 생각이 들자 웃음이 새어 나왔다. 부러움과 질투가 적당히 섞인 웃음이었다.


이 넓은 박물관이 결국 이걸 자랑하기 위해 세워진 건가라는 합리적인 의심이 들자 이들이 귀엽기까지 했다.


옷장 깊숙한 곳에 꼭꼭 숨겨뒀던 장난감을 꺼내서 자랑하는 조카와 다를 바가 없지 않은가.





점심 식사를 마치고 다른 일행들은 리야드 인근의 사막에서 유목민족 전통 축제를 체험한다고 떠났다.

나는 호텔로 돌아와 알람도 맞춰두지 않고 그대로 잠들었다.


최고급 원단의 침구와 매트리스가 주는 푹신함과 뽀송뽀송함에 그대로 깊이 잠들었다.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시계가 오전 8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


Misk 재단에서 개최한 글로벌 포럼은 서울의 코엑스나 프랑스 파리의 아레나 컨벤션홀보다 몇 배는 더 큰 곳에서 개최됐다.



행사장에는 세계 각지에서 온 열정 가득한 스타트업 대표들과 주최 측의 행사 진행 요원들


그리고 ‘어디 투자할만한 재미있는 기업 있나?’하며 그다지 신중하지 않은 눈으로

재미거리를 찾으러 마실 나온 사우디 왕실의 투자자들이 자리를 메우고 있었다.


행사는 빌 게이츠의 축사로 시작됐다.

‘전 세계의 혁신과 인류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기원한다’는 내용의 다소 빤한 인사말이었지만

스피커가 다른 사람도 아닌 마이크로소프트의 창업자였기에 그 말에 강한 힘이 실렸다.



미국의 전직 대통령과 글로벌 기업 오라클의 대표가 연이어 축사를 했다.


오전에는 공유경제를 대표하는 유니콘 기업(기업의 가치를 1조 원 이상으로 평가받는 벤처기업)의 창업자들이 패널로 참여한 토크쇼가 이어졌다.


앞으로 전 세계의 글로벌화가 더 가속화되고 공유경제가 완전히 시민의 일상이 될 것이라는 내용의 토론이었다.


그러나 몇 년 뒤, 전 세계는 코로나19라는 팬데믹을 만나고 공유경제는 박살이 나는데.... 


오후에는 내 차례가 왔다.


스타트업 대표들이 돌아가면서 청중에게 자신의 사업 아이템과 비즈니스 모델을 소개하는 시간이었다.


긴 숙면 직후라 최상의 컨디션이었던 나는 적절한 유머까지 섞어가며 한국 문화 공유 플랫폼인 애스크컬쳐를 설명했다.


지난여름부터 20·30대를 모집하여 결성한 한국 문화 체험단 애스커스(AskUs)를 주축으로

수 백 건 이상의 한국문화 체험 서비스를 매칭 시키며 서비스 품질을 완성해가고 있었다.


애스커스가 외국인 방문자들과 함께 한국의 일상을 즐기는 사진과 영상을 소개하면서 우리 서비스를 알기 쉽게 청중들에게 보여줬다.


발표의 끝은 이전 달에 뉴욕 타임스스퀘어에서 서비스를 광고하던 모습의 사진과 영상으로 마무리했다.


프레젠테이션이 끝나자, 설립한 지 1년도 안 된 스타트업의 약진과 미래를 향한 당찬 포부에 대해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다른 국가에서 온 스타트업 대표들이 윙크를 보내거나 엄지를 추켜세워 주며 명함을 교환하자고 줄 지어 다가왔다.


몇몇 현지 투자자들 또한 명함을 건네며 이것저것 물어왔다.



“그렇지. 여기에 있는 다른 스타트업 그 어디보다 더 잘할 수 있어.”

자만에 빠져 속으로 생각했다.


모든 게 계획대로 진행 중이다. 아니, 모든 일이 계획보다 더 잘 진행되고 있었다.


마치 눈덩이가 굴러가듯, 호랑이 등 위에 올라탄 듯. 그렇게 멈추지 않고 성공이라는 종착지를 향해 전속력으로 다가가고 있는 것만 같았다.




컨벤션 홀 옆에 마련된 초대형 카페테리아에서 뷔페로 점심식사가 제공되었다.


자리에 앉아 식사를 하고 있는데, 얼굴과 몸이 둥글둥글한 한 중년이 다가와 “인상적인 프레젠테이션이었다”며 인사를 건네 왔다.


그러더니 생뚱맞은 걸 물었다.


“혹시 음악 듣는 걸 좋아하십니까?”

“네, 물론이죠.” 다소 뜬금없는 질문에 내가 웃으며 대답했다.


그러자 그는 뒤에 서 있던 누가 봐도 ‘보디가드’ 같이 생긴 이에게 뭐라 말을 건넸다.


잠시 사라졌던 보디가드는 몇 분 후 쇼핑백을 들고 돌아왔다.



“선물입니다.” 테이블 맞은편에 계속 앉아있던 둥글둥글한 중년이 내게 쇼핑백을 건넸다.


쇼핑백 안에는 미키마우스가 쓰고 다닐 법한 귀마개 모양의 헤드폰이 담긴 박스가 있었다.



헤드폰에 무지하고 관심이 없던 나는 건성으로 감사하다고 대답했다.


컴퓨터 게임을 좋아해서 업무시간에 늘 꾸벅꾸벅 졸고 있던 직원에게나 갖다 줘야겠다.


둥글둥글 중년은 자신의 명함을 건네고 내 명함을 받아간 뒤 SNS 아이디까지 교환하고 나서야

내가 귀찮아한다는 걸 깨닫곤 자리에서 일어나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가 자리를 떠나자 한국에 있는 직원들과의 메신저 대화방에 방금 선물 받은 헤드폰 사진과 그가 줬던 명함 사진을 공유하며 물었다.


“이 헤드폰 회사 유명한 곳인가요?”


“헐……. 대표님, ‘닥터 드레’도 몰라요?”


송 팀장이 기가 막힌다는 말투로 되물었다.



늦깎이 작은 스타트업 대표인가 했던 그 둥글둥글 중년은 전 세계 헤드폰 시장을 석권한 Beats by Dre의 대표였다.


회사 규모와 매출 면에서 소니((Sony)급 글로벌 대기업의 대표가

굳이 내가 식사하고 있던 자리로 찾아와 먼저 인사하고 선물까지 주고 갔다.


괜히 어깨가 들썩였다.



***


“허 참, 저 형님은 여기에 뭐 전단지나 나눠주러 왔나?”


한국에서 함께 출발한 모 스타트업의 모 대표는 그날 내내 식사도 안 하고 열심히 행사장을 돌아다니며

자신의 회사 팸플릿을 돌리고 있었다.


조금이라도 자신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이가 있으면 바로 스마트폰을 꺼내 애플리케이션을 보여주며

그렇게 하루 종일 자기 회사가 하고 있는 서비스를 홍보하고 소개하고 있었다.



‘여기까지 초청받아 올 정도의 급이라면, 

저런 일은 직원 시키거나 굳이 안 해도 되는 거 아냐?’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랬다. 이런 국제 행사 자리에 귀빈으로 초청되어 온갖 호사를 누리고 쟁쟁한 스타트업들, 

글로벌 대기업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는 자만과 착각에 빠져 나는 속으로 그런 생각이나 하고 있었다.




모든 일정이 끝난 날,


주최 측에 ‘런던 지사에 볼 일이 있어서’라는 이유를 대며 영국 런던을 경유해서 서울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했다.


그들은 갑작스러운 요청에도 조금의 불평이나 확인 절차 없이 몇 분 만에 바로 새로운 항공권을 보내줬다.


돈도 넘쳐나지만 일처리도 대단히 빠른 사람들이었다.









그렇게 잔뜩 우쭐한 채로 굳이 런던을 들려 런던 지사에서 일하고 있는 직원들을 찾아 회의 후 회식을 했다.

(애스크컬쳐의 런던 브랜치 오피스는 영국 왕립 예술대학 RCA 캠퍼스 내의 다이슨 빌딩 창업센터에 있었다)











무슨 대통령 순방 마냥 뒷짐 지고 사무실을 휙 둘러본 후 회의를 가장한 업무보고를 받곤


‘좋아요, 잘하고 있군요. 이제 가서 밥이나 먹읍시다’하고 온 것이다. 




그러곤 혼자서 프리미어리그 손흥민 선수의 경기를 관람했다.


첼시 홈구장에서 열린 첼시와 토트넘의 런던 더비였다. 




경기장 인근에서 그와 사진을 찍고 사인까지 받은 뒤 기분 좋게 한국으로 돌아갔다.




귀국하는 비행기에서 깊이 잠이 들었는데 우리 회사가 유니콘 기업이 되어있었고

나는 보디가드를 대동하고 으스대고 다니면서 어린 친구들에게 사인해주는 꿈을 꿨다.



***



그로부터 불과 4년 뒤, ‘우리가 무슨 잡상인도 아니고 저렇게까지 열심히 해야 되나?’ 하는 마음으로 바라봤던

어느 스타트업 대표는 그 사이에 회사를 코스닥에 상장시키고 시가총액 2,000억 원에 달하는 대기업으로 성장시켰다.



작은 일에도 쉽게 들뜨고 건수만 생기면 자만에 빠져 우쭐대기 바빴던 또 다른 어느 대표는

그 포럼을 다녀온 지 불과 몇 개월 뒤, 모든 사업 프로젝트를 중단해야 했고,

직원도 사무실도 없는 상태에서 빚만 잔뜩 남게 되었다.



잔뜩 들떠서 구름 위를 걷고 있던 나는 정말이지 내가 그렇게 될 거라곤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성공이라는, 착각

사우디 아라비아 왕실에서 초청한 귀빈


-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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