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햇볕 Jun 08. 2020

(7) 일단, 나를 돌아보자


[언니의 결혼 소식]


봄과 여름 사이. 창문을 열어놓으면 기분 좋은 꽃내음과 풀냄새가 나던 일요일 아침. 아침을 함께 먹던 언니가 남자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며 방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곤 '비상 비상!'을 외치며 급하게 방문을 뛰쳐나왔다.


언니가 '비상'이라며 외친 이유는 간단하면서도 조금 복잡했다. 언니와 진지하게 만나고 있단 이야기를 듣고 남자 측에서 아주 용하다는 곳에 궁합을 보러 갔다고. 


"궁합은 너무 좋은데, 올해 안에 결혼 안 하면 3년 뒤에 결혼을 하라고 했대."


우리 부모님은 3초 당황했지만 바로 '그래! 결혼해'라고 대답을 했다.


언니는 나를 보고 말했다


"너 호주 가는 거 어떡해..."

"뭐 미루지 뭐."


사실 호주에 입국하는 것에 대해 긴장하고 있던 터라 조금 안심했다.  





[언니랑 나랑 나가면 부모님은 어떡하지..?]


사실 난 비자를 받은 그 해 8월에 호주로 갈 예정이었다. 그러나 내가 계획했던 거와는 다르게 언니의 결혼 날짜는 12월에 잡히게 되었고. 나는 그에 맞춰 그즈음에 떠나면 됐다. 그냥 내 생각은 그렇게 결론을 지었다.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준비할 수 있는 기간이 훨씬 더 많이 남았다. 그 시간 동안 돈을 더 모으거나 더 여유 있게 호주로 갈 준비를 할 수 있게 된 것도 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심심했다.


그 해에 언니랑 나랑의 공통점은 둘 다 큰 일을 준비하는 기간 동안 점점 준비가 지루해졌다는 것이었다.


"아.. 하도 몇 년간 호주 호주 거리면서 이래저래 준비를 하니 벌써 마음은 호주 3년 차야"

"나도. 그냥 지금 당장 결혼해버리고 싶다. 12월 언제 와.."


언니와 나는 연말이 다가올수록 이런 대화들을 자주 나눴다.


내가 언니 결혼을 하고 난 뒤에 호주를 바로 간다고 하니, 주변 사람들은 부모님 외로워서 어떡하냐고 우려 섞인 목소리를 냈다. 자녀들을 한꺼번에 출가시켜서 집 허전해서 어떡하냐고. 사실 나도 그 부분이 걱정이 되긴 했다. 부모님께서 다행히도 일을 계속하고 있던 상태라서 바로 크게 허전해 하진 않으실 것 같긴 했는데...

내가 호주로 가면 엄마께서 바로 퇴직이라.. 음.. 마음이 좀 안 좋으시려나? 


어느 날 밥을 먹으며 여쭤봤다. 우리 가족은 식탁을 제외한 다른 곳에선 만나기 힘드니까.


"엄마 언니랑 나 집 나가면, 이제부터 허전해서 어떡해?"


무뚝뚝하시던 엄마께서는 내 대답이 끝나기도 전에 대답을 하셨다


"어우 그냥 다 빨리 나갔으면 좋겠어. 집을 카페나 펜션처럼 꾸미고 쉬고 싶어. 나도 나 혼자 살고 싶어."


괜한 걱정을 했다. 아빠한텐 안 물어봤다. 아빠는 엄마만 있으면 되니까.


호주에서 조금 더 편하게 살기 위해서 돈을 무작정 모으기 시작했었다. 출국 전까지 투잡, 쓰리잡을 뛰면서 열심히 돈을 모았다. (사실 그렇게 돈을 모으는 중에 일을 하면서 결국 사람들과 트러블도 많았다. 그래서 조용하고 혼자서 할 수 있는 일들을 위주로 돈을 모았었다. 직업상 컴퓨터 작업이 많아 가능했다.)




[남은 시간 동안 나를 돌아볼까?]


 호주로 가는 날이 다가올수록 금전적으로 여유가 생기고 시간적으로도 여유가 생기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이제.. 이제야 나 자신의 상태가 보였다.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고, 심한 감정 기복을 겪고 있으며, 무기력함 또한 있다는 것. 사람을 만나는 거에 큰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는 것.


 이제야 늦었지만 본격적으로 상처 투성이인 나 자신을 좀 챙기고 싶었다. 아무래도 호주에서는 사회생활을 해야 하는데 한국에 있었을 때처럼 스트레스를 받고 지낼까 봐 그게 걱정이 되었다. 사실 이 걱정 때문에 호주 생활 시작하는 걸 머뭇거렸던 것도 없지 않아 있었다. 사람에게 상처 받는 건 너무 무섭고 힘든 일이니까. 


 나 자신을 돌보기 전에 정신적으로 내가 지금 어떤 상태인지도 알고 싶었고, 내가 사회성이 어느 정도 있는지도 궁금했다. 내가 사람과 끊고 맺음이 제대로 안되었기 때문에 정서적으로 20대 초반에 머물러있는 건 아닐까 걱정도 되었다. 정신병원을 가야 하나.. 정신 상담을 받아야 하나.. 보건소에 가야 하나.. 아무것도 모르겠어서 다짜고짜 검색창에다 '정신 상담'을 검색했다.

그중 몇 사이트를 들어가 보고 최근에 방송 출연도 했을 정도로 괜찮다는 상담센터에 예약을 했다. 



정신 상담을 받는다는 게 나 자신이 문제가 있다는 걸 한 번 더 확인 사살시키는 거라 상담 예약 후 우울한 기분과 무기력한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앞으로 집을 떠나 해외에서 조금이라도 건강하게 살기 위한 나 자신을 위한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더운 날이 많지 않았던 2019년 8월의 목요일, 처음 정신상 담을 받으러 가는 길에선 눈물이 너무 많이 났다. 





그리고 상담을 받으러 가던 날. 나도 모르게 눈물이 많이 났다. 그냥 내가 나한테 그동안 많이 힘들었지. 외면해서 미안해라고 괜스레 말을 꺼내보았다. 그동안 왜 이리 아프기만 했을까. 아파도 왜 방치했을까. 아니야 그래도 더 늦기 전에 힘들었던걸 30대가 오기 직전인 지금이라도 해결할 수 있을 거란 희망을 얻어서 다행이다 라고 생각했다.


태어나 처음 상담을 받으러 갔다. 


상담 내용은 아직 잘 기억이 나질 않지만 상담 선생님은 나에게 내가 어떤 사람인지, 요즘 기분이 어떤지, 가족들과의 관계는 어떤지 등을 물어봤다. 그리고 나에게 '왜 그런 것 같아요?',  '방금 제가 한 말을 들으니 어떠세요?', '아이고 속이 말이 아녔겠네..', '내가 들어도 본인 잘못이 아닌데 뭘, ', '정말 잘 오셨어요'라는 말을 해주었다. 나는 약 한 시간 동안 신을 만난 신도처럼 눈물 콧물을 다 흘리며 나 자신에 대해 말을 했다. 


사실 누군가에게 내 상처와 아픔, 불안함을 드러내는 걸 어려워했다. 누군가에게 기대고 지금 내 속의 응어리가 되는 부분을 말하는걸 힘들어하는 성격이기 때문에 속 편하게 말을 하는 게 처음엔 어려웠다. 남에게 내 짐을 떠넘기는 것 같아서 그랬다. 아무튼 나는 말을 빙빙 돌려가면서 나의 상태를 설명했다.

상담 선생님께서 본인의 상태를 편히 다 말을 해줘야지만 치료가 가능하다며 나를 설득했고, 그 설득에 정말 가식 없이, 꾸밈없이 모든 걸 다 털어놓는단 생각으로 후반부엔 그동안 힘들었던 일들을 토해냈다.


말을 하는 동안 선생님의 눈치를 살짝 보긴 했지만 한편으론 '헐 나 그 상처 받는 순간에 내 마음은 이렇게 상해 가고 있었구나', '와.. 나 이렇게 힘든걸 대놓고 말해도 되는 거였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때 정말 엄청 속 안의 딱딱하고 새카만 독이 퍼져 사라지듯 마음속에 무언가 순환이 되는 시원함을 느꼈다. 


상담이 마무리가 되고 선생님은 요즘 들어 20대 친구들도 상담받으러 정말 많이 온다고 했다. 특히 사회생활에서 상처 받은 친구들이 자신의 감정이 굳어져가는 걸 느껴 찾아오는 경우도 많으니 본인이 이상하다 생각하지 말아 달라는 말을 들었다. 아무쪼록 상담을 받는 건 나에게 정말 큰 신세계였다. 


내 상태가 어떤지 알아보기 위해 다음 주에 본격적으로 치료를 시작하자고 했다. 나는 다음 주까지 기다리기가 힘들어 3일 후에 예약을 다시 잡았다.


3일 뒤엔 약 3시간에 걸쳐 내 상태를 알아보기 위한 다양한 검사를 진행했다. 그림도 그리고 퍼즐도 맞췄다. 연관되는 단어들을 잇는 검사도 하였다. 



[진단 : 불안증, 우울증]


일주일 뒤에 검사 결과가 나왔다. 불안장애와 우울증이 나왔다. 예상했었지만 한편으론 의외였다. 불안장애가 있는 줄은 몰랐다. 그럼 나 이때까지 호주 가는 거에 대한 두려움은 불안장애의 일부였던 건가? 뭐.. 더 이상 이 부분에 대해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약 2달간 상담을 받는 동안 점점 난 내 감정에 대해 할 말이 없어졌으며, 약물 치료까지 받지 않아도 된다는 선생님의 말에 상담을 멈추었다. 내가 어떤 상태인지 정확히 알았다. 

결론은 내 예상대로 나는 정서적으로 상처 받은 그 순간에서 성장하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내 인생에 어디서 그렇게 크게 상처를 받았는지는 가늠할 순 없었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사람들을 만날 때 관계를 맺는 것이 그렇게 어른스럽지 못했다는 것이다. 사람과 맞춰주는 것에 스트레스를 받아 사람을 싫어하게 되고, 재미있는 것을 일상에서 찾지 못하니 게임과 술에 쉽게 중독이 되는 것이라고 했다.(게임보단 술을 너무 좋아했다.) 누군가에게 거절을 당하는 게 두려워서 회피성의 성격을 가졌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이렇게 내 성격에 관련된 일부 내용을 이론적으로 설명을 듣다 보니 이제 난 나 자신을 다루는 법을 좀 알 것 같았다.


이너 피스, 마인드 컨트롤이라고 해도 사람의 감정이라는 건 혼자서 이겨내기가 힘들다. 옆에서 누군가가 도와줘야 한다고 한다. 그래서 난 혼자서 나 자신을 몇 년을 컨트롤하다 마지막의 수단으로 상담 선생님을 찾아갔던 것이다. 그러나 역시 상담을 멈추고 혼자서 나 자신을 달래는 건 한계가 있었다. 


또다시 감정이 요동치고 마음이 힘들던 날, 방안에 누워있는 나를 보곤 언니가 와서 나에게 말을 건넸다.


"왜 그래?"

"그냥.. 기분이 좀 그래. 괜히 화도 났다가.. 불안도 했다가.."


그리고 화장대에서 괜히 얼굴을 이리저리 돌리며 거울을 보던 언니는 


"아무도 널 공격하지 않아. 너무 불안해하지 마."


라고 말하곤 방을 나갔다. 


하긴 맞다. 난 지금 방안에 누워있는데 누가 나를 공격하고 괴롭히냔 말인가. 아마 내 인생에서 내가 나를 제일 많이 괴롭히지 않을까 싶다. 온갖 감정으로 숨이 막혔는데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본 언니의 살짝 따듯한 말에 산소호흡기를 단 듯 편안해졌다.


그 한 마디의 효과가 얼마나 컸는지, 이 글을 호주에서 쓰는 동안에도 다행히 내 감정이 나를 먹어 삼키는 일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상담받았던 내용 중 기억나는걸 간단하게 적자면...]


고립에 관해 : 검사 결과 대인관계 형성에 대해서 거절에 대한 두려움이 큽니다. 두려움이 크다 보니, 거절을 당할까 그 어떤 부탁과 약속 등을 말하지 않아요. 그리고 사람을 만나게 되면 자연스럽게 거절을 당하지 않기 위해 상대방을 격하게 잘 맞춰주게 돼요. 그렇게 맞춰주다 보면 사람과 만나는 게 스트레스로 이어지고, 결국 혼자 있으려고 본인을 가두게 됩니다. 먼저 친구들한테 연락 잘 안 하고 그러는 것도 것과 관련 있어요. 사람들이 날 싫어할까 봐 그것에 대한 걱정이 앞서서 그래요 
예민해지는 상황에 대해 : 외부의 상처에 대한 파장이 큰 편이기 때문에 본인이 상처를 받을까 봐 겁을 먹고 있는 상태예요. 그러다 보니 잠도 편하게 안 오고, 사람들이 본인을 공격할까 봐 하는 불안함도 있죠. 불안하다 보니 예민해지는 거고, 예민해지니 신경이 날카로워져 작은 것에도 화를 잘 내게 됩니다. 화가 나는 일이 많이 생기는 거죠. 


위의 이야기를 주변인들에게 말했더니 공감해주는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상담을 받다 호주로 가기 위한 예산 금액을 초과하는 바람에 심리상담을 도중에 멈췄지만, 정말 심리 상담이라는 건 너무나도 너무나도 좋은 경험이었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게 된다면 다시 받을 의향도 있다. 몸이든 마음이든 힘들면 병원을 가야 한다.




작가의 이전글 (6) 딸, 그만 징징거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