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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볕 Feb 17. 2022

에필로그 - 한인 사회에 대해서


코로나 펜더믹이 장기화되었다. 6개월이 넘어가니 지쳐버린 외국인들은 본국으로 돌았고, 외국인들의 일손으로 돌아가던 호주 농가에서는 일손이 부족하다며 정부에 항의를 했다. 그리하여 농산물의 가격이 급등하는 소식도 들려왔다. 


나는 한인 회사에서도 일을 시작했는데 이 한인 회사 또한 일손이 부족하여 난처함을 표하지 못하고 있었다. 

특히, 내가 한국으로 다시 돌아갈 때쯤엔 아무리 공고를 올려도 일을 하겠단 사람이 없어 심란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 유일하게 한 지원자가 나타났다.


디자인 관련 직종의 인력을 구하고 있었는데, 이 지원자(미란다)는 디자인 관련한 이력이 전혀 없었다. 그래도 일단 급한 대로 내가 옆에서 2주간 인수인계를 해주었다.  나중에 물어보니, 어차피 인력난이라 본인이 될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고 한다. 대단한 용기다. 

미란다는 그래도 열심히 하고자 노력했고, 나 또한 짜증 한번 내지 않고 열심히 알려주었다. 메모도 열심히 해주었고, 이해를 하지 못하는 부분은 직접 편집하여 알기 쉽게 이미지로 표현해 알려주었다. 




호주로 돌아가는 당일날 미란다는 나에게 너무 고마웠다며 본인 남자 친구 차를 통해 날 공항까지 데려다준다고 했다. 정말 고마웠다. 그리고 차에는 미란다, 나, 미란다의 남자 친구 이렇게 셋이서 차를 탔다.

내가 이때까지 얼마를 받고 일을 했는지 알려주었다. 어차피 가는 마당에 이게 뭐가 중요한가.

그랬더니 미란다 남자 친구가 너무나도 놀라면서 하던 말


"저는 일할 때 스트라 필드(한인 지역) 근처에도 안 가요. 사람이 받아야 할 금액을 제대로 주지 않아요."


미란다도 옆에서 거들었다


"언니, 솔직히 언니 지금 3명이서 하는 일 하시는 거잖아요. 그러면 금액을 더 많아야 하는데 주에 1,000불도 못 받으시는 거 엄청 적게 받으시는 거예요"


어머나 세상에. 나는 내가 잘 받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켈리 언니도 주에 700불 정도 받는 거면 잘 받는 거라고 말해줬는데. 한인사회가 그렇구나. 나는 호주에 와서 좁은 세상에서 살고 있었구나. 

어쩐지 갑자기 로컬 쪽으로 회사를 옮기고 싶더라니. 왜 내가 호주에 처음 도착했을 때 택시 드라이버가 '절대 한인사회에 발 들이지 마세요. 호주까지 왔는데 한국인들이랑 어울리지 마세요"라고 했는지 알 것 같기도.


한국에서 내 삶을 인정받지 못해 조금이라도 편한 삶을 살고자 여기로 넘어왔는데, 이렇게 바보가 되어있었다. 불행함은 친절함과 같이 온다. 친절한 사람들 속에서 금전적으로 인정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었다니. 나는 그걸 왜 이렇게 늦게 깨달을 걸까. 하필. 공항 가는 택시 안에서. 



같이 일하던 곳에는 중국계 호주인 '캐시'도 같이 일했었다. 

예~전에 내가 한번 취미로 타로카드를 배운적이 있었는데, 나에게  늘 '달링~' 이라며 애칭을 불러주던 캐시가 어느날 심각한 표정으로 나에게 왔다.


그녀는 나에게 타로카드를 봐달라고 했고, 난 흔쾌히 허락했다.

캐시의 고민은 "중국인 사장이 돈을 주지 않는다!" 였다. 


나는 열심히 카드를 휘저었고, 죽음카드와 돈으로 인해 우울한 표정을 짓고있는 카드들이 나왔다.

나는 그녀에게 잘 설명을 해주고자 했으나, 영어 어휘가 부족해 


"No money, You Die"  라고 말했고


안그래도 심각한 표정이었던 캐시의 얼굴엔 그림자가 드리웠다. 

그녀는 그 이후 2~3일간 회사에 나오지 않았고, 이유를 들어보니 중국인 사장과 담판을 지으러 갔다고 했다. 


호주에 초반에 왔을때 아시아인에게 환상이 있어 나에게 접근했던 칠레 남자도 

"사장이 돈을 안준다"라며 나에게 치킨 값을 얻어먹곤했다.


임금체불 문제는 어디든 있나보다. 이러한 문제를 한인사회만의 문제라고 치부할 순 없다. 



나는 한인 신문사에 일하게 되면서 많은 소식들과 사람들을 알게 되었다. 한인사회는 수많은 협회들로 이루어져 있고, 정치적으로 나누어진 파들도 있다. 그들은 호주 영주권/시민권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사회문제를 위해 열심히 목소리를 내거나, 호주 정치인들을 만나 호소하기도 한다. 시위도 한다. 그리고 김치를 알리기 위한 김치 축제도 연다. 이들은 법적으론 호주 사람이지만, 한국을 아직도 너무나도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한인사회에 대해 안 좋은 면들도 많이 보았다. 당연히 장점보단 단점이 더욱 잘 보이기도 한다. 일부 한인 사장들은 가족도 지인도 없는 임시비자(워홀, 학생비자)들에게 잘해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여성 같은 경우엔 성희롱도 쉽게 당한다. 이건 워홀 오기 전부터 조심하라고 각 포털사이트에 올라와있긴 하다.


호주와 한국의 환율 차이가 많이 났을 때 일부 한인 사장들의 갑질은 말로 이룰 수 없었다고 한다. 그냥 사장 본인이 여자를 사귀고 싶을 때 본인 이상형을 빙자한 자격조건을 구인 사이트에 기재하였다. 이에 맞는 여성이 오면 교재를 시도하고, 실패하면 자르고 다시 구인구직을 올렸다고 한다.(특히 그들은 본인과 단둘이 일하는 걸 선호했다고 한다.)


돈 지급 관련 부분에서도 문제가 많긴 하다. 내 친구 같은 경우에도 주급일 밀리는 경우가 허다했으며, 그 또한 제대로 계산을 하지 않은 채로 받았다고 한다. 수학과를 나와 계산을 빠르게 하는 이 친구가 계산내역을 들고 사장에게 찾아가면 "까다롭게 군다"며 타박을 주기도 했다고 한다. 돈 문제 때문에 같이 일하던 직원이 '한국에 돌아간다'라는 핑계로 일을 관두니 사장은 뒤통수에 대고 "코로나 걸려서 죽어버려라"라며 저주를 퍼붓기도 했다. 놀랍게도 이 사장은 매주마다 공짜로 음식을 나눠주는 봉사를 하고 있었다.  


코로나 시국이 더해지면서 제대로 금액을 주지 않는 경우가 늘어났다. 요즘 힘들다며 앓는 소리를 하는 사장들이 늘어났다. 직원들은 그 이야기를 귀담아듣지 않아야 하는데 아무래도 잘 들리다 보니 회사를 위해 열심히 일을 해야 하는지 아니면 내 주급을 깎아드려야 하는지 묘한 고민이 생기기도 한다. 그들이 불쌍하게 느껴지니까. 하지만 코로나로 인해 힘든 사람들을 위해 복지를 마구 퍼주는 호주 앞에서, 혜택을 받지 못하는 임시비자 소지자들은 그런 생각을 하면 안 된다. 생각보다 호주는 자국민을 아주 잘 챙기는 복지 국가이다. 




한인 커뮤니티에 이러한 글이 올라왔다. 


<워홀 하는 사람들 웃기지도 않네요>

영어도 못하고, 경력도 없는 사람들 채용해서 우리가 시급 챙겨주는데 고마워할 줄은 못할 망정 저희를 그냥 악덕 사장으로 만드네요. 저희도 맘 같아선 영어 잘하는 애들 채용하고 싶죠. 그래도 같은 피가 흐르는 한국인들 챙겨주고 인심 쓰는 겁니다. 고마운 줄 아세요.


댓글이 달렸다. 


"와 ㅋㅋ 한인 사장들 마인드가 다 이렇구나"

"틀니 일주일간 압수" 

"불법을 이런 식으로 정당화하네."

"웃기고 앉아있네 영어 잘하는 애들 일부러 안 뽑는 거잖아 너네 가게 신고당할까 봐 ㅋㅋㅋ"




한인사회가 얼마나 좁은지 간단하게 말해보겠다.


하 팀장 언니(한인교회 다님) - 후임 미란다(한인교회 다님) - A유학원 원장(한인교회 다님) - 후임 제시카(A 유학원에서 학생비자 신청함) - 나 - 법률 사무소(A유학원 담당자랑 아는 사이)


이 다섯이 모두 연결되어있다. 아는 사이다. 그들 사이에 나도 있다. 


어느 날은 미용은 한국인한테 맡겨야지 해서 미용실을 찾아갔더니, 내가 써드 잡으로 일하는 사장의 아내였다. 어휴 그 자리에서 사장 욕이라도 했으면 큰일 날 뻔. 

아무튼 한인사회가 이렇게 좁다. 알고 보면 더 좁다. 내 친구도 일하고 있는데, 자기 집주인이랑 본인이 일하는 가게 사장이랑 또 아는 사이라서 놀랐다고 한다. 한인사회는 진~짜로 좁다. 그래도 이렇게 좁은 사회에서 서로 경쟁도 하고 돕기도 한다. 커뮤니티에 들어가면 서로 사기도 치고 싸우기도 한다. 없는 말을 지어내서 사이버 불링도 하고. 아무튼 바쁘다. 그래도 칭찬글, 미담 등도 적지 않게 올라온다.

그냥 정말 말 그대로 한인 '사회'이다. 


그래도 본인이 너무 소문이 안 좋게 날까 봐 몸 사릴 필요는 없을 것 같다. 호주에서 오래 지낸 사람들은 나에게 말한다.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다."라고. 내가 느끼기엔 강한 자들이라기보다는 남 의식 잘 신경 안 쓰고 씩씩하고 활발한 사람이 오래 남아 잇는 듯하다. 한국에 와서 생각해보니 낯선 환경에서 적응하기에 최적의 성격이다. 



[호주에 오래 있던 이들에게 들은 호주 생활]


"해외에 혼자 오게 되었으니, 연애는 최대한 늦게 해라. 한번 연애를 시작하면 그 사람만 보고 있어서 친구를 만나거나 새로운 정보를 얻을 기회가 줄어든다. 

그래도 연애를 하고 싶다면 교회 남자를 만나봐라. 교회 남자들이 참 착하고 좋다." 


"교회 사람 조심해라. 아무리 착하고 잘 맞는다고 해도 교회 새로운 가족 들 중에서 다단계, 사이비 애들도 수없이 들어온다. 처음엔 경계해야 한다. 본인이 어디에 흐트러지지 않고 잘 버틸 줄 알아야 한다.

여기도 한국 사이비가 있는데, 얘네 이번 주에만 새 신도가 300명이래. 사람 조심해. 한국이나 호주나 다 똑같아."


"한국 사람들은 시드니 하면 뉴욕 같은 도시를 연상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내가 있어보니 시드니는 그냥, 작은 동네 같은 느낌이다. 내가 익숙해져서 그런가?"


"(약 40분째 은행 업무로 전화 상담 대기 중) 근데 이거 빨라진 거야. 예전에는 이것보다 더 느렸어"


"한국은 비자 문제를 전화로 한다고? 확실히 빠르네 우리는 메일 보내고 일주일 안에 답장 오는 게 빠른 건데"


"장애인들에 대해서 참 잘되어있지? 트레인 탈 때 휠체어가 보인다 싶으면 저~기 멀리서 관련 일하는 사람들이 뛰어나와 편하게 갈 수 있도록 도와줘. 마찬가지로 유아 차(유모차)를 끌고 다니는 사람들한테도 편하게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게 도와주지"


"우리 아이들은 새벽 네시부터 수영을 배우러 다녀. 근데 여기는 아이들을 등하교할 때 차로 데려다주고 데려오지 않으면(픽업) 문제가 생겨. 그렇기 때문에 아이를 키우기엔 좋은 여건인 것 같아."


"여자들이 살기 좋다고 생각해.(참고로 이 말을 한 사람은 남자였다.) 여기 이혼율 엄청 높아. 그 이유가 뭔지 알아? 이혼하면 남편의 재산의 절반 이상을 가질 수 있거든. 그래서 남자들이 이혼 안 당하려고 또 엄청 애를 써~ 어제 만났던 치킨 사장 기억나지? 그 사람도 지금 이혼당할 위기야. 여자들은 미혼녀더라도 경제적으로 힘들지 않게 제도가 잘 되어있어서 겁날 게 없지."


"호주 하면 복권 문화지. 일주일 내내 복권을 살 수 있어. 그래서 가끔 보면 워홀 온 애들 중에서 연금 복권이나, 큰돈에 당첨되더라고. 어디서 들은 건데 임시비자 소지자가 복권 1등에 당첨되면 영주권을 준다고 그러더라. 당첨된 그 돈 본국에서 쓰지 말고 호주에서 다 써란 뜻이지 뭐"


"나도 참 이상한 게 한국에선 그렇게 잠이 잘 안 오는데, 호주에만 오면 그렇게 잠이 잘 와. 확실한 건 아니지만 호주가 한국보다 공기가 밀도가 더 높아서 잠이 잘 온다고 그래. 그래서 동물들도 큼직 큼직.. 믿거나 말거나."


"저기 쓰레기통 뒤지는 사람 거지 아니야. 페트병이나 유리병 모아서 되팔려는 사람들이야. 나도 최근에 한번 작정하고 페트병이랑 유리병 모아봤거든? 300불이나 벌었다니까..? 은근 쏠쏠해. 너도 지금 먹고 있는 콜라 다 먹으면 빈 캔 나한테 줘"


"여긴 직업 간 계급이 없어. 나는 한국에 있을 때 내 밑이라고 생각하는 애들이랑은 눈도 안 마주쳤어. 근데 여기선 그런 거 없어. 같이 골프 치고 놀다 보면 저 사람 직업이 뭔지 그런 건 안중에도 없다니까~ 호주는 그런 게 좋고 편해."


"날씨 참 좋아. 가끔씩 강변을 걷고 있다 보면 호주에 오길 참 잘했단 생각이 들어"


저 말들이 그들이 살아온 호주 생활을 압축할 순 없지만 내가 만난 사람들은 항상 나에게 호주 생활에 대해 말해주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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