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찾는 담배가 없는 이유

by sun

오늘따라 담배를 찾는 손님이 유난히 많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이들의 눈길은 약속이라도 한 듯 카운터 뒤편 진열장으로 향하지만, 내 마트의 담배 진열장은 이미 앞니가 숭숭 빠진 늙은 호랑이 신세다. 물건이 가득 차 있을 때의 그 서슬 퍼런 위용은 간데없고, 손님이 올 때마다 텅 빈 구멍을 드러내며 비굴하게 웃는 듯해 민망할 따름이다.

평소엔 인체 신비전의 전시물처럼 썩은 폐와 문드러진 혀를 노골적으로 드러내어 눈길조차 피하게 만들던 담배 갑의 경고 사진들이, 재고가 바닥난 오늘만큼은 내 마음의 평화를 수호하는 값비싼 현대미술 작품처럼 다가온다. 흉측한 형상이라도 좋으니 제발 진열대 구석구석을 빼곡히 메워 나를 안심시켜 주길 바라는 장사꾼의 간절함이 인다.


담배 유통의 법칙은 철저히 거대 자본과 공급자 중심으로 돌아간다. 일주일 치 물량만 확보하려 해도 소상공인의 수중에서는 수백만 원의 현금이 신기루처럼 빠져나간다. 물건을 받기도 전에 돈부터 내야 하는 선결제의 원칙은 늘 가계를 압박한다. 기업은 효율과 인건비 절감이라는 스마트한 논리를 앞세워 배송을 외주 택배사에 맡기는 결단을 내렸지만, 그 세련된 결정은 현장에서 기막힌 엇박자를 낳았다.

내 주머니에서 돈을 채가는 기업의 손길은 전성기 타이슨의 잽보다 빠르고 정확하지만, 텅 빈 진열장을 채우러 오는 물건의 발걸음은 천 년을 산 거북이보다 신중하고 무겁다.

명절이나 연휴가 겹쳐 이 주 치 물량을 한꺼번에 감당해야 할 때면, 자금의 흐름이 좁은 작은 마트들은 결국 구색(具色)을 포기하며 스스로를 잘라낸다. 대기업이 효율이라는 이름으로 깎아낸 비용의 빈자리는, 결국 물건을 찾아 골목을 헤매는 소비자의 고단한 발품과 카운터를 지키는 나의 무력감으로 전가된다.

중앙의 보급이 늦어질수록 마트의 평화는 부서지고 카운터는 고립된 전선(戰線)으로 변한다. 쿠팡이 로켓으로 무장한 화려한 정규군이라면, 우리 같은 골목 마트는 보급선이 끊긴 채 최전선에 버려진 특수요원이다. 탄창(진열대)은 있으나 담배라는 총알이 없으니, 쉴 새 없이 밀려드는 손님들을 상대로 입으로만 ‘죄송합니다, 없습니다’를 반복하며 허공에 대고 ‘탕! 탕!’ 외치는 처절하고도 낯 뜨거운 백병전을 벌인다.

이 변화의 전선은 비단 마트의 진열장에만 머물지 않는다. 종이 번호표 대신 휴대폰의 복잡한 예약을 더듬고, 대답 없는 키오스크와 씨름하며 내 순서가 호출되길 기다리는 일상. 이 모든 풍경은 사람의 온기와 몸값이 더 이상 감당 안 되는 시대가 보내는 서늘한 신호다. 기업은 효율을 위해 서비스라는 이름의 인간적 배려를 지웠고, 그 텅 빈 공간을 소비자의 직접 노동과 인내심으로 채워 넣었다. 세상은 더 편리해진 듯 보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더 많이 움직이고 더 많이 기다려야 하는 ‘번거로운 편의’의 굴레 속에 살고 있다.

당신이 찾는 담배 한 갑이 없다는 사실은 단순한 해프닝이 아니다. 그것은 거대한 시대의 파도가 골목 끝 작은 마트의 문턱까지 밀고 들어와 일으킨 정직하고도 잔인한 나비효과다. 우리는 삶이 견고한 콘크리트 위에 서 있다고 믿으며 안심하지만, 실상은 언제든 뒤집힐 수 있는 출렁이는 파도 위 작은 뗏목에 더 가깝다. 거대한 시스템의 변화는 예고 없이 들이치고, 우리는 그 물결이 발목을 적시고 나서야 비로소 내가 서 있던 곳이 안전한 땅이 아니라 바다 한복판이었음을, 그리고 나 역시 그 파도에 휩쓸려가는 파편이었음을 실감한다.


담배 한 갑이 사라진 진열장의 그 서늘한 빈자리로, 보이지 않는 차가운 바닷물이 야금야금 스며든다.

아흐, 발끝이 시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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