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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엄마라도 괜찮아
by 연주 Jul 27. 2018

#05.원해서 태어난 아이는 없다.


첫째를 낳고는 회복이 더뎌서 고생을 많이 했다. 정신적인 혼란도 왔다. 산후 우울감이 문제가 아니었다. 나의 부정적인 유년 시절 기억이 폭풍우처럼 몰아닥쳤다. 이름도 가지지 않은 갓난쟁이 삶에 미칠 영향을 우려하던 그때, 친정 오빠가 해준 말이 육아 시작에 힘이 되었다.

이 세상에 
자기가 원해서 태어난 아이는 
단 한 명도 없어. 
그걸 잊지 말고 키워.


나 하나로 인해 아이와의 관계나 환경이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으로 변화될 수 있음을 자각하는데 충분한 말이었다. 
  
나는 임신의 간절함을 기억한다. 코딱지만 한 태아의 심장 소리를 듣고 뭉클했던 첫 진료를 떠올린다. 새벽마다 힘찬 태동으로 나를 깨워 자신을 알리던 시간도. 분만실의 하얀 천장이 노랗게 보일 때 마지막으로 힘을 주어 아이를 낳던 찰나와 탯줄도 자르지 않은 아이를 처음으로 품에 안았을 때의 환희는 엄마로 태어났음을 알리는 현실이 되었다. 
  
울면서 가슴에 안긴 아이가 "OO야, 아빠야"라는 말에 울음을 멈추던 순간이 생생하다. 살기 위해 기를 쓰고 젖을 빨던 모습도, 쪼글 거리는 손으로 최선을 다해 내 엄지손가락을 꽉 움켜쥐던 순간도 잊을 수가 없다. 어리바리하게 수유를 거듭하고 흐뭇하면서도 힘겨워 울던 시간은 내가 지켜주고 제대로 키워야 할 생명에 대한 책임감이 되었다.


나는 완벽함이나 철저함과는 거리가 멀다. 첫 출산을 앞두고 육아서를 읽어 대비한다는 생각은 못 했다. 임신 기간의 무서움과 출산 전후의 고통을 몰랐다. 육아의 피로감은 전혀 알 길이 없었기에 애 낳아 키우는 것을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인 미련한 사람이었다. 미리 준비하기보다는 문제를 마주하게 될 때마다 내면의 어린 자아에 계속 물었다. 특정 시기에 맞춰 ‘반드시 해줘야 할 것들’은 놓치기 일쑤였지만 육아서 읽기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나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이 하나만 키우던 내게 기껏해야 삼사 년 된 것 같은데 뭘 알기는 아냐며 누군가 말했었다. 시간으로만 따지면 나는 육아에 대해 잘 모르기에 그렇다고 대답을 할 수밖에 없다. 사회적 이력의 기준은 연차와 각종 경력, 학위나 타이틀에 집중한다. 전문적인 기술력은 그런 기준들이 중요하다. 


그런데 살아온 시간 순서대로 제대로 된 어른이 되지 않는 것처럼, 사람을 키워내는 일에 연차가 오래되었다고 학위가 좋다고 육아를 잘 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확고했다. 아이가 있는 현실을 받아들이려는 양육자의 마음과 태도 변화가 있어야만 뜻하는 육아가 된다는 믿음 덕분이다.
  
첫 육아 초기에는 아이 때문에 자는 거, 밥 먹는 거, 화장실 가는 거, 씻는 것 등 인간으로 누려야 할 가장 기본적인 것을 제대로 누리지 못했다. 인권이 상실된 거 같아 우울감이 왔다. 방도를 찾아야 했다. 아이가 들려주는 외계어 같은 옹알이, 무심히 하는 몸짓 하나, 미묘한 표정의 변화까지 조심스럽고 세심하게 집중했다. 


그러면서 아이를 낳은 이유와 엄마가 된 이유를 계속 물었다. 엄마가 처음이라 아이가 버겁고 힘들었지만, 아이도 초보 엄마를 만나 얼마나 고생일까 싶어 단단해지려 애썼다.

실천 윤리학의 거장 피터 싱어의 저서 <더 나은 세상>에 이런 문장이 있다.

정작 태어날 아이에게 
정말로 좋은 일이 될지 
고민해본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이 책을 거의 다 읽어 갈 즈음에 만나게 된 문장 앞에 침묵이 이어졌다. 책을 덮었다. 한 여자가 두 아이의 엄마가 되어 살아온 시간을 생각하면서 내게 물어가며 이 문장의 의미를 이해하려 했다.


‘태어날 아이의 시선으로 삶을 본 적이 있었나?’
‘우리는 부모로의 본분을 다하고 있는가?’
‘엄마, 아빠가 해야 할 본분은 무엇이 있나?’
‘두 아이를 위한 우리 부부의 품은 열린 울타리인가, 닫힌 담인가?’


결혼하고 부부가 되었으니까 이어지는 임신과 출산은 당연한 것으로 인식을 했다. 솔직히 아이의 입장에서 출산을 생각해본 적이 없다. 진작 생각해보고 고민해봤어야 할 부모 됨의 무게와 아이의 존엄성은 낳은 후에 깨달았다. 삶의 의미를 평소에 제대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한계에 부딪혔다. 


둘째를 임신할 때도 하지 못했던 고민이다. 이미 아이를 하나 키운 경험에 비추어 둘째가 있는 삶도 괜찮을 거라 넘겨짚은 무모함이라 할 수도 있다. 그렇다 해도 자책보다 나를 격려할 수 있는 건, 본인이 원해서 태어난 아이가 아니기 때문에 낳은 책임은 우리 부부가 가져야 하고 아이의 삶은 타인의 삶이기에 소중히 가꾸고 길러야 한다는 소신을 확인하는데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임신 전에 이 문장을 접했다면 이런저런 생각으로 겁을 먹었을 거다. 두 아이를 낳고 아웅다웅하며 지낸 시간이 쌓인 후에 접한 것이 다행이다. 아마 겁보라서 부모가 되는 것을 마다했을지도 모른다. 두 사람이 만나 부부가 되고 두 생명을 책임져야 할 부모가 되기까지 약 15년이다. 덕분에 아이에 한정되어 생각하지 않고 결혼 전부터 지금까지 이어진 시간을 더듬을 수 있었다. 
  
태어날 아이의 삶과 세상이 정말로 좋은 일이 될지 말지는 가장 가까운 양육자에 의해 전적으로 결정되는 시기가 있다. 이때 등장하는 ‘애착 형성’은 육아서마다 언급해서 흔해진 말이다. 육아는 ‘사람을 만드는 일이다.’라고 표현을 한다. 본능에 따라 감정을 표현하는 어린 시기에 제대로 된 이성을 갖출 수 있도록 우리는 노력을 한다. 



아이의 이성이 본능과 적절한 조화를 이루고 이성적 판단력을 갖춘 사람으로 성장하도록 돕는 것은, 먹이고 재우고 입히는 양육자의 수고만으로는 부족함을 알기 때문이다. 

예비부모의 대부분은 너는 그저 건강하게만 태어나다오.’라는 순수한 바람 하나만으로 임신 기간을 보낸다피터 싱어의 문장에 붙인 나의 마지막 물음은 건강하게만 태어나길 바랐던 그 마음이 많이 변질되지는 않았나?”이었다
  
출산의 고통과 인내로 삶의 기쁨과 아픔을 다르게 볼 수 있도록 기회를 준 존재,
나의 내면에 갈등을 일으키는 수많은 과제를 던져주며 나를 알게 해주는 존재,
지식을 많이 지녔거나 오랜 삶으로 터득한 지혜가 있는 것도 아닌데 배움을 주는 존재,
사람에 대한 공부가 먼저임을 알고 사람답게 살 기회를 주는 존재,

그들이 아니라 우리가 원해서 기꺼이 자식이 되어준 두 아이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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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에 마음을 담고 실천하며 잘 자라고 싶은 엄마, 연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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