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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쟁이 써니 Apr 21. 2016

삶과 죽음의 갈림길

애별리고를 한하다 1 - 제망매가 읽는 시간

 꿈에 언제나처럼 엄마와 동생, 내가 함께 있었다. 나는 문득 아빠가 아직 오지 않았다고 언제 오냐고 엄마한테 물었다. 엄마는 모르겠다고 했고 나는 문자를 보내볼까 했다. 그래도 나는 문자를 보냈던가 어쨌던가.
 깨고 나서 역시 난 모든 것이 허무한 꿈임을 알았다. 아빠가 가신 후 한참은 꿈 속에서 그 사실을 몰라 깨고 나서 오랫동안 울곤 했다. 몇 년이 지나니 꿈 속의 나도 이제 알고 있어서 그럴 일이 없었는데.

 생각해보니 아빠한테 문자로 언제 오냐고 보내본 기억이 딱히 없다. 휴대폰이 보편화될때 쯤 나는 집을 떠났다. 별로 아빠를 챙기거나 궁금해하진 않았던 걸까 하는 생각도 든다. 지금 돌아보면 아빠와 함께 있는 시간이 너무 짧았다. 영원히 함께 있을 줄 알았는데 같이 있는 시간이 이렇게 짧을 줄 알았다면 좀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좀 더 잘 챙겨드릴걸. 도대체 뭘 하면서 그 귀한 시간들을 허비한 걸까? 나는 중얼거렸다. 아빠, 지금 어디있나요? 어딘가에 계신 건가요? 그곳은 어떤가요?

 아침에 일어나니 야자 감독까지 해야 하는 달갑지 않은 월요일이다. 출근을 준비하며 집에 엄마와 나만 있다는 것이 새삼 느껴졌다. 한때 우리 가족은 늘 함께였고 함께인 것이 당연했는데 아빠는 하늘나라로 갔고 동생은 결혼을 했다. 이제 집엔 엄마와 나만 남겨졌다. 나까지 결혼을 하면 엄마는 혼자 남을텐데. 과연 괜찮을까? 이런 생각을 하면 역시 난 결혼을 안 하는 게 나을까 싶기도 하다.

 요즘 학생들에게 제망매가를 가르치고 있다.

생사길은 여기 있으매 머뭇거리고

나는 간다 말고 못다 이르고 가는가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우리는 우리 자신, 그리고 가족의 삶과 죽음의 갈림길을 만나게 된다. 한 가지의 나뭇잎들이 영원히 함께 있을 것 같지만 언젠가는 헤어지듯 우리도 마찬가지다. 여러분들 주위의 사랑하는 사람들, 가족들이 언제까지나 여러분 옆에 있어줄 수는 없다. 정말 무서운 삶과 죽음의 갈림길은 나의 것이 아닌 사랑하는 사람의 것인지도 모른다. 떠나는 사람은 가버리지만 남겨진 사람은 고통스럽기 때문이다."


 속으로 생각한다. 그 갈림길은 너무 아프고 쓰리고 그래서 언제나 무섭다고.

 함께 웃고 사랑하던 사람들과 왜 헤어져야 할까? 왜 이 세상은 애별리고의 법칙을 벗어날 수 없는 걸까?

  비탄과 슬픔과 절망으로 끝나지 않는 데에 이 시의 가치가 있다. 제망매가의 시인 월명사는 언젠가 죽은 누이와 미타찰(극락)에서 만날 날을 기약한다. 인간은 희망이 없으면 살 수 없는 존재이니 어떻게든 희망을 발견해낼 수밖에 없다.


아이들에게 물어보았다.

"우리는 죽으면 어떻게 되는 걸까?"

이과 남학생들은 대체로 쿨하게 대답한다.
"죽으면 그냥 끝인 거죠."

 냉정한 녀석들. 여학생들은 좀 다르다.

"죽을 뻔하다가 산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체험한 게 있대요. 자기보다 먼저 죽은 사람들이 마중을 나와 있었대요."

옆 학생이 말한다.

"헐, 뭐야. 무서워."


 나에겐 무섭기는 커녕 위안이 되는 달콤한 이야기이다. 과연 언젠가 나에게도 삶과 죽음의 갈림길이 찾아와서 죽음의 세계로 가면 아빠가 날 마중나올까? 그곳에선 우리 네 가족이 예전에 살던 집에서 둘러앉아 웃으며 밥을 먹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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