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과 황금으로 만들어진 예수 그리스도의 제단

따뜻한 남쪽나라 안달루시아 여행기 3 - 세비야 대성당

by 글쟁이 써니

1월 7일 여행 기록

세비야에서 보내는 마지막날. 눈을 뜨자 어제의 햇살은 온데간데 없다. 하늘은 잔뜩 찌푸려 있고 추적추적 비가 내린다. 일어나자마자 론다로 가는 버스표를 사기 위해 버스터미널로 갔다. 혼자서 우산을 쓰고 가노라니 좀 서글픈 기분이 든다. 3시 반에 출발하는 론다행 직행 버스표를 사서 돌아왔다. 돌아와서 어제 못 본 세비야 대성당에 들어갔다.

입장 시간인 열한시에 시간을 맞춰서 갔지만 이미 줄은 성당을 한 바퀴 돌 정도로 길었다. 프라도 미술관에서의 악몽이 떠올랐지만 줄은 팍팍 줄어들었고 생각보다 빨리 성당에 들어갈 수 있었다.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성당이자 고딕 건축의 가장 훌륭한 예라고 하는 세비야 대성당은 무려 1세기에 걸쳐서 지어졌다고 한다.

날씨가 맑았던 어제 찍어놓은 대성당 사진.

고딕 양식의 가장 훌륭한 예라고 하지만 세비야 대성당은 이슬람으로부터 세비야를 탈환한 후, 원래 있던 이슬람 사원을 성당으로 개조한 것이라 한다. 천정의 복잡하고 기하학적인 양식은 이슬람 천장 양식의 영향이라 한다.(이외에도 히랄다 종탑, 오렌지 안뜰에 이슬람의 영향이 남아있다.)

인간은 어마어마한 크기의 조형물이나 예술품 앞에서 압도감을 느낀다. 이 성당을 지은 자들도 애초에 그것을 노렸을 것이다.

"우리는 교회를 갖게 될 것이다 … 건축 과정을 보는 이들이 우리가 미쳤다고 생각할 만한 그러한 교회를."
라고 건축설계위원회 멤버 중 하나가 말했다고 한다.(네이버 지식백과,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세게역사유적 1001 참고)

건축 과정을 본 이들도 결과를 본 이들도 미쳤다고 생각할 만하다. 엄청나게 높은 천정, 웅장한 고딕 양식 앞에서 인간은 갑자기 보잘것없는 존재처럼 느껴진다. 건물 곳곳에 가득한 신의 흔적들은 더욱 그런 마음을 심화시킨다. 실내는 전반적으로 어둡고 스테인드글라스는 그나마 들어오는 빛을 더욱 신비롭게 만들어주는 역할을 한다. 많은 분들이 세비야 대성당을 보고 종교를 가지는 사람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고들 하는데 나 역시 프라도 미술관에서 실물 크기의 성화들 앞에서 느낀 경외감을 다시 느꼈다. 그야말로 무시무시한 황금을 보기 전까지는.

문의 크기를 보면 얼마나 천정이 높은지 알 수 있다.

은의 제단

파이프 오르간(측면에서 찍은 사진)

대제단. 예수의 탄생, 수난, 죽음을 표현했다고 한다.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으로 당시 어마어마한 황금(약 1.5톤)이 유입되었는데 그 엄청난 황금들이 여기에 쓰였다고 한다.

성당 내부의 성물보관실에 황금과 보석으로 장식된 예수님을 보면 입이 딱 벌어질 정도로 찬란하고 호화스럽다.


그렇지만 도무지 어울리지 않았고 거부감만 들었다. 십자가 위에서 고통스럽게 희생되신 예수님과 저 황금이 도대체 무슨 상관이 있는가? 예수님은 평생 가난하고 바쁘게 사역만 하다가 고통스러운 죽음을 맞았던 분이다. 평생 저 황금 비슷한 것도 가져본 적이 없었을 것이다. 기묘한 이질감이 들었다. 세상에서 가장 어울리지 않는 두 가지를 합쳐놓은 광경이 아닐까.

눈이 부실 정도로 찬란한 황금으로 장식된 예수님을 보며 내내 머릿속엔 하나의 시구가 떠올랐다.

아아, 온갖 윤리, 도덕, 법률은 칼과 황금을 제사지내는 연기인 줄을 알았습니다

- 당신을 보았습니다, 한용운


윤리, 도덕, 법률은 물론이고 종교조차도 칼과 황금, 즉 돈과 권력을 위한 수단일 뿐이다. 콜롬버스는 신대륙에서 황금만 약탈한 것이 아니다. 콜롬버스의 신대륙 발견은 원주민들에게는 재앙이었다. 남자는 살육을, 여자는 강간을 당했다. 아니면 노예가 되었다. 구대륙의 침략자들은 약탈과 살육 이외에도 전염병까지 옮겼다. 오랜 세월 그들끼리만 살아와서 면역력 자체가 없던 원주민들은 전염병으로도 죽어갔다.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자신은 인도라고 여겼지만)에 상륙한 이후 인류 역사상 놀라운 문명을 이루며 행복하게 살던 아메리카 지역의 원주민들은 살육과 공포의 폭탄 세례를 받게 된다. 폭탄을 투하한 자들은 비록 그것이 천국으로 가는 신앙과 문명이라고 주장했지만 말이다. 그들이 어떤 세례를 받았는지는 그들에게 신앙과 문명을 전해 주러 갔던 자들이 남긴 문헌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그들 눈에 비친 원주민들은 당연히 야만족이고 게으르고 열등하며 두개골의 크기 또한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이기에는 너무나 작았다. 문명인을 자처하던 자들 가운데는 악습으로 피해를 보는 그들에게 가장 좋은 치료법이 광산 노동이라고 주장하는 자들에서부터 성적으로 문란한 원주민 남자들을 정리하기 위해 사나운 개를 풀어 물어뜯게 한 자에 이르기까지 실로 다양한 인물군이 존재했다. [네이버 지식백과] 라스 카사스 [Las Casas] (세상의 모든 지식, 2007. 6. 25., 서해문집)


그들은 아이러니하게도 약탈한 황금으로 예수님을 경배했다. 그 황금은 사실 엄청난 피에 젖은 황금이었던 셈이다. 그들이 경배하던 예수님은 어떤 예수님이었을까? 정말 예수 그리스도인가? 아니면 칼과 황금의 신인가? 바알인가 혹은 사탄인가?


예수님, 당신은 이것을 원하셨나요?

예수님, 당신은 저들을 용서하셨나요? 아니 저들의 죄가 과연 용서받을 수 있기나 한 걸까요?

예수님, 저들의 영혼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요? 당신의 이름으로 살육을 저지른 자들의 영혼은? 아무 죄도 없이 죽어간 원주민들의 영혼은?

십자가에 달려계신 예수님은 아무런 말이 없다.

사람들이 많이 모여있는 곳에 가보니 역시나 콜롬버스의 관이 있다. 콜롬버스는 신대륙 발견으로 자신이 원하는 만큼 재미를 못봤고 그를 후원한 이사벨 여왕 사망후 그의 위상도 땅에 떨어졌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죽으면 스페인에 절대 묻지 말라고 했다고. 관을 매고 있는 네 사람은 스페인의 전신인 네 왕국, 레온, 카스티야, 나바라, 아라곤의 왕들이고 앞의 두 명은 콜롬버스를 지지했기에 당당하게 얼굴을 들고 있지만 뒤의 두 왕은 반대했기에 죄인처럼 고개를 숙이고 있다고 한다. 정복자의 후손들은 저렇게까지 콜롬버스를 기리지만 당시 원주민들의 입장에서 콜롬버스는 때려죽일 약탈자에 불과하다.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식민화의 원수인 이토 히로부미, 침략자이자 살육자인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일본에서는 영웅인 것과 비슷하지 않나 싶다. 그런 의미에서 제 3자인 우리가, 어찌보면 침략의 피해를 수없이 당해온 면에서 원주민 입장에 더 가까운 우리가 굳이 그들과 같이 콜롬버스를 기리는 마음을 가질 이유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고 대성당의 찬란함과 위용에 다소 거부감이 들었다.


(좌) 운좋게 찍은 사진. 아주 열심히, 꼼꼼하게 복원 작업을 하고 있다. (우) 이슬람의 흔적이 남은 오렌지 정원

세비야에서의 마지막을 츄러스로 장식한다. 100년 넘은 츄러스 맛집이라는 Bar El Comercio. 이 집 정말 맛있다. 저 걸쭉한 초코가 느끼하지 않고 진하다. 혼자라서 다 먹지는 못했지만 스페인에서 먹은 츄러스 중 가장 맛있었다.

이틀간 묵었던 숙소, 카사 데 콜론에서 짐을 찾는다. 대성당 근처라 위치도 좋고 직원도 친절하고 깔끔했던 곳.

짧은 2박 3일 간 세비야에서의 일정은 이렇게 끝난다. 이제 론다로 간다. 굿바이 세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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