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하다는 착각

허상의 능력주의

by 햇님

한 아이가 있다. 그는 충분한 재능을 가지고 있으며 풍부한 상상력과 끊임없는 노력으로 실력까지 갖추어 나가는 중인, 능력이 뛰어난 미술학도이다. 이러한 배경으로 보았을 때 그는 앞으로 반드시 성공하게 될까? 내 답은 '글쎄,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이다.


가정을 몇 가지 해보자. 이 아이가 태어난 집이 물감을 사긴 커녕 당장 오늘 마실 물을 살 돈조차 부족한 곳이라면? 목표하는 미술대학은 서울에 있지만 나고 자란 곳이 서울과 다섯 시간은 떨어진 외곽 지역의 한적한 동네인지라 주변에 대입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곳이 없다면? 기회는 똑같이 주어졌다. 이 아이는 다른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대입까지 같은 시간을 받았고 가난하거나 먼 지역에 산다고 해서 대학 지원을 할 수 없게 만들거나 미술을 그만두라고 종용하진 않았다. 하지만 우리는 이를 두고 정말 그거면 됐다고, 아무 문제도 없다고 그저 지나쳐버릴 수 있는가?


개인의 능력은 중요하다. 세상은 능력을 너무도 사랑해 왔고, 뛰어난 사람이 대우받고 유명해지는 것은 아주 당연한 일이 되었다. 능력주의는 현대사회가 가장 사랑하는 단어이자 근거다. 기회 공평, 능력 발휘. 그에 따른 배분. 아름답고 이상적이다. 너무나도 공정해 보이는 단어들. 공평, 공정이란 단어는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어떻게 그리 사람을 금세 홀리는지 모를 일이다. 그러나 우리는 좋아보이는 것들일수록 조금 더 깊이 쳐다보아야만 한다. 비싸다고 전부 맛있는 음식이 아니며 튼튼한 신발도 아니듯. 너무 비싼 신발은 되레 굽이 빨리 닳지 않던가.


공정하다는 착각. 마이클 샌델의 저서는 제목부터가 주장하는 바를 잘 보여준다. 그는 말한다. "능력주의는 불평등에 대한 해결책이 아니다. 그것은 불평등을 정당화하는 수단일 뿐이다." 어째서일까. 왜 능력주의가 불평등일 수밖에 없는 걸까. 답은 앞서 제시한 예시에서부터 드러나고 있다.


우리는 생각해보아야 한다. 과연 세상에는 '공정한 출발선'이 존재하는지.


능력주의가 부르는 과도한 경쟁에서 승리한 자들은 말한다. 나는 이만큼 노력을 했으니 이 같은 결과를 얻는 것이 당연하다고. 진 너희들은 우리보다 못한 인간들이며, 난 능력만큼의 보답을 받은 것 뿐이라고. 하지만 너무도 간단히 그 논리는 무너지고 만다. 학비를 지원받을 수 없는 집에서 자라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으면 공부를 할 수 없는 아이와 부유한 부모 밑에서 자라 한 달에 수십에서 수백의 사교육비를 지원받는 아이가 있고, 전자는 지방 국립대에 들어갔으며 후자는 서울권 사립대에 들어간다. 그리고 세간에선 서울권 사립대가 더 평가가 높다고 해보자. 이런 상황에서, 후자 쪽의 아이가 전자의 아이를 두고 '능력이 나보다 떨어진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이것은 모두가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사안일지. 다들 어떤 생각이 드는가?


물론 성과만큼의 배분이 주는 이점도 있을 것이다. 능력을 위해 달려나가는 모든 이들의 노력은 소중하기 때문에. 그러나 그것이 소중하기 때문에 더욱 생각을 깊이 해두어야 한다. 평가절하되어서는 안 된다. 그어준 선 자체(기회)는 똑같으며 참가 자격도 공평히 주었고 발휘할 장까지 마련해주어도, 누군가는 가벼운 몸으로 달리고 있고 다른 누군가는 등에 온갖 짐을 인 채 달리고 있다. 물론 둘 다 달리고 있기에 모두가 힘든 건 마찬가지다. 그러니 그야말로 과열이다.


이렇게 능력주의가 만든 과열 경쟁 속에 지쳐가는 청춘들의 반감은 사실 요즈음, 사회 자체보다는 개인을 향할 때가 많다. 쉬이 우울을 겪고 자신보다 더 '능력이 좋고 잘난' 소위 말하는 (예전의 유행어지만)엄친딸, 엄친아를 질투하여 자기파괴적인 생각에 빠지거나 상대를 해하려는 맘을 먹는 경우가 있음이다. 결국에는 고이고 썩어가고 있는 것으로, 이런 사회적 분위기가 계속되어서는 탈력감만이 남을 것이다.


실제로 어떤 취준생은 방 안에 가득 자신의 목표와 다짐을 적어넣고 매일을 노력하며 살고 있었지만, 결국 자신의 능력이 원하는 만큼 따라주지 않는 것을 비관하였고 자살사고가 일어나고 말았다. 난 기사 사진 속 어지러운 방 안에 뜯거나 치우지도 않은 파이팅의 말들이 포스트잇 가득 적혀 있는 것을 보고 조금의 공허를 느꼈다. 이곳은 능력주의가 만들어낸 엘리트만을 바라는 사회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런 결과를 원하는 것은 아니었을 텐데. 우리는 공평이라는 키워드에 속아 그것이 정말 모든 것을 열어줄 마스터키인 것처럼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기회는 정말 균등하게 준다고 주어질 수는 있는 게 맞는가?

<공정하다는 착각>. 표지에 적힌 흰 글자들을 보며 생각에 잠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수시냐 정시냐 그것이 문제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