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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님 Mar 10. 2021

하울의 움직이는 성

/영화/ 성이 무너질 때 비로소 아이는 성장한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

(Howl's Moving Castle, 2004)


애니메이션, 판타지 / 2004.12.23. / 119분 / 전체 관람가 / 감독 미야자키 하야오

주관적 느낌 위주로 서술하고 있으니 작품이 궁금하시면 직접 보는 것을 추천. 스포주의.




이건 내가 아직 기탄수학 연산이나 하고 있을 때쯤 처음 만난 작품이다. 어릴 때가 좋았는데 내 인생은 아마 중학교 때 함수를 만나면서 꼬인 것 같다. 분수 계산과 원기둥 부피 구하는 정도가 내 인생의 최대 난관이었던 시절은 이제 없다. 아마 이 시기 쯤 해리포터를 처음 접했던 것 같다. 내 인생작품들은 대개 90~00년대에 몰려있다. 누구나 어릴 때 만난 작품을 가장 최고로 여기게 되는 법이다. 물론 그런 개인적 사유를 제하고도 이건 명작이다. 하울은 우리 또래들이 만인의 남친으로 불렀던 대단한 존재가 아닌가. 물론 지금 와서 다시 보면 완전 허접이다. 제목을 소피의 움직이는 성으로 바꿔도 될 것 같다.


주인공 소피의 인생은 내가 함수를 만나며 인생이 꼬인 것과는 차원이 다른 스케일과 방식으로 꼬인다. 그저 길을 걷던 중 황야의 마녀 눈을 피해 도주하던 하울을 잠시 도와주었을 뿐인데 대가로 젊음을 홀랑 빼앗기고 만 것이다. 심지어 딱히 돕겠다고 나선 것도 아니다. 한국 작품은 대개 본인이나 주변인의 실수와 잘못이 업을 부르는 경우가 많은데 일본은 그런 게 없다. 난데없이 이번엔 네가 당첨이로구나! 하는 식이다. 소피 역시 잘못한 것이 없다. 소피와 하울은 단 한 번 꿈처럼 만나 하늘이나 날아본 게 전부다. 나였다면 하울을 보자마자 조목조목 따져서 손해배상이라도 받았을 텐데 왜 이런 영화 속 주인공들은 이렇게 착해빠져선 집 청소까지 해주고 있는지 모르겠다.


한순간에 등 굽은 흰 머리 할머니가 되어버린 소피가 향한 곳은 하울의 '움직이는 성'. 의도는 아니었지만 비와 추위, 어둠을 피하기엔 딱 좋다. 완벽해보이는 자유로운 도피처이나 조금 흉물스럽고 어지러운 그곳은 소피를 새로운 이야기로 인도한다. 그의 모험은 오즈에 떨어진 도로시와 닮았다. 마법에 걸린 허수아비와 함께 찾은 구릿빛 성에서 실은 겁쟁이였던 마법사 하울을 만나 좌충우돌 사건사고를 겪다 결국엔 위기를 극복하고 행복해진다는 점, 단순히 도로시 스타일의 밀짚모자와 땋은 머리가 돋보인다는 점 등에서. 다만 도로시는 익숙한 보금자리를 종착역으로 삼았고 소피는 모험의 시작을 이룬 곳이 곧 종착역이 되었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에서 돋보이는 것은 늘 주연 여성 캐릭터의 성장이다. 성장이 돋보이는 같은 감독의 다른 작품을 하나 꼽자면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봐서 손해일 건 없는 작품이다. 무려 20년 전 작품임에도 요즘 쏟아지는 영화보다 낫더라. 계단 하나 내려가는 것도 겁을 먹던 치히로가 누군가를 살리기 위해 처음인 길 앞에서도 용기 있게 걸음을 옮기게 되면 오타쿠의 가슴은 웅장해지고 만다. 이렇게 다른 지브리 작품에서도 캐릭터의 성장을 잘 확인할 수 있지만 여기서 소피의 성장은 좀 더 특이하다. 의견을 굽히지 않고 또박또박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장면에서 점차 젊어지는 그의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영화의 의미가 보인다. 원래 성장이란 외형 나이와 주름을 포함하는 법인데 젊어지며 성장하는 소피의 이야기는 얼마나 특별한가. 물론 그대로 할머니로 남아 있었더라도 좋은 결말이었을 테지만 소피에게 뼈마디가 쑤시는 고통을 더 줄 순 없다. 상세한 건 차치하자. 건강한 시절은 길어야 좋지.


이 영화의 줄거리를 굳이 설명할 필요가 있을까? 내 또래 중 이 영화를 모르는 사람은 아마 손에 꼽힐 만큼 적을 것이다. 굳이 극장에 가서 보지 않았더라도 대학 동아리에서, 학교 자율학습 시간에 한 번쯤은 봤을 법한 영화. 너무 어릴 때 접해 잘 기억나지 않거나 잠이 부족해 엎드려 자느라 결말을 모르는 이도 있겠지만 모두가 기억하는 단 하나의 장면이 있다면 바로 이것이 아닐까.


발을 내밀고 계속 걸어. 겁낼 것 없어.


물론 이 아름다운 청춘 드라마는 곧바로 전방에 과속방지턱을 맞이한다. 소피가 하울을 다시 만나게 되는 건 할머니가 된 후니까. 황야의 마녀를 만난 후 거친 바람에 떨어뜨린 모자를 주우려다 주름 가득한 제 손을 발견한 소피는 한 차례 혼돈에 빠지지만 오히려 늙기 전 거울 앞에서 멋을 부리던 때보다 자신을 토닥일 수 있게 된다. 괜찮아, 할머니! 건강해 보이고 옷도 잘 어울려! 그런 위안 뒤 소피는 전보다 훨씬 무겁고 삐걱거리는 몸과 함께 길을 떠난다.


누구에게나 꿈이 있다. 당장 꿈을 갖지 못한 이라도 소박하게나마 가졌던 꿈이 있거나 가질 꿈이 있다. 가만히 앉아 모자나 만드는 게 소피의 꿈은 아니었을 것이다. 젊음은 꿈과 희망을 갖기 좋은 날들을 가져다주지만 대부분은 주어진 날들을 어떻게 써야 할지 잘 모른다. 꿈을 가지면 모험을 해야 하고 두려운 길 앞에 서야 한다. 안주할 수 없다. 나아가야 한다. 소피는 밀짚모자를 눌러 쓰고 갈색 머리를 길게 땋은 평범한 소녀일 때는 단지 장녀이기 때문에 물려받은 모자가게에서 평생을 보낼 것처럼 지내왔다. 단조롭고 새로울 것이 드문 일상. 조숙한 맏이지만 젊음을 사용하는 데엔 서투르다.


이 영화를 보고 있으면 자연스럽게 눈길이 가는 오브젝트가 하나 있다. 소피, 황야의 마녀, 그의 부하들까지 애용하는 상품. 모자다. 머리는 사람을 볼 때 가장 눈에 띄는 자리에 위치해 있다. 모자는 그런 머리를 덮어 가려주는 아이템으로, 도피에도 유용하다. 햇빛을 피해 모자 그늘 아래로 숨듯 모자 아래 숨은 인물들은 소피부터가 솔직하지 못하다. 주어진 시간을 제대로 사용하는 법을 몰라 모두가 헤매고 있다. 그것은 머리를 염색해 본래의 자신을 가린 하울도 마찬가지다.


잃고서야 시작한 모험은 순탄치야 않아도 늘 새롭다. 때론 대단하고 가끔 서럽기도 하다. 수많은 사건 앞에서 소피는 솔직하고 밝은 제 나이를 만난다. 초반부에는 엄청난 일들을 겪었음에도 울지 않았던 것과 달리 비와 함께 눈물을 쏟아내면서부턴 굽었던 허리를 펴고 지팡이 없이 계단을 오르는 등 점차 젊어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결국 그는 자기 자신을 바로 마주한 뒤 모자를 놓아주고 이야기 속에서 비상한다. 이 과정에서 하울 역시 성장한다. 멋지고 섹시한 마법사인줄 알았던 하울은 사실 머리색 하나 바뀐 걸로 쉽게 절망하고 마녀가 두려워 부적을 방 안 가득 채워놓거나 선생님을 만나기 싫어 소피를 앞세우는 등 생각보다 깨는 사람이다. 소피가 비 오는 날 엉엉 울었던 것도 하울 탓이다. 아름다움이란 두 사람 모두에게 콤플렉스를 자극하는 키워드다. 난 한 번도 아름다워 본 적이 없다고 말하며 우는 소피, 아름답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고 절망하는 하울. 둘은 각자의 슬픔 뒤 겹치는 연민을 경험한다. 아픔과 결여를 가진 사람들은 다른 종류의 고통을 가졌기에 서로를 100%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우리라는 존재를 연민하며 조금은 다가가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전부 이해할 순 없어도 사랑할 순 있다. 두 사람은 잠시 같은 길을 걸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좋은 동반자가 되어줄 수 있는 것이다. 통상적 사랑이라는 의미를 넘어 이 관계는 주인공 소피의 성장 자체를 담았기 때문에 더 사랑스럽다. 소피가 스무살을 되찾은 시점이 바로 하울과 자신을 위해 용기 낼 수 있는 마음이 모두 자랐을 때다.



불행했던 기억을 가슴 한 구석에 품고 살아가는 자만이 더 강해지고 뜨거워지고 더 유연해질 수 있지,
행복은 바로 그런 자만이 쟁취하는 거야.


드라마 <사이코지만 괜찮아>에 나오는 대사. 리뷰를 쓰며 넷플릭스를 틀었다가 서예지의 얼굴에 혹해 클릭했는데 생각 이상으로 재미있더라. 공감가는 대사가 있어 옮겨보았다.


원래 성장은 사건을 겪었을  이뤄진다. 소피도 성이 완전히 무너지고 성의 판자 하나 간수하지 못할 지경에 와서야 완전히 성장했다. 그런 경험들을 통틀어 우리는 인생이라 칭하곤 한다. 싸움 뒤에 깊어지고 펑펑  뒤에 후련해지듯 어떤 사건이 주는 변화는 반드시 있기 마련이다. 인생은 그런 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우리는 돌고 도는 회전목마 같은  안에서 매번 새로운 사람들과 스토리를 만나며 각자의 회전을 해나간다. 소피처럼 마법을 만나지 못하더라도 우리에겐 각자의 움직이는 성이 존재한다.  이야기가 인생을 담고 있다고 생각해 본다면 모두가 가진 각자의 , 모자가게, 황야의 마녀가 존재할 것이다.  현실에 매어두는 모자가게와  멀리 내가  거라곤 생각도 해보지 못한 ,  저주의 늪으로 빠뜨리는 황야의 마녀 같은 일들. 위대한 모험을  일은 없다. 하지만 우리도 언젠가  번쯤 저주에 걸려 자신만의 '하울의 '으로 향하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안에서도 행복한 일만이 일어나지는 않지만, 모든 저주가 해결된 다음에도 여전히 다른 사건들이 찾아올  있겠지만 어찌됐든 자라는 일이란 성장통을 가지게 된다. 누구와 어떻게 어떤 태도로 통증을 마주하느냐가 중요하다. 검은 머리 하울과  머리 소피의 아름다운 엔딩 씬을 보며 생각했다.


이 영화엔 끝까지 절대악으로 남은 사람이 없다. 의외성이 좋은 영화. 대단한 악마일 것 같았던 황야의 마녀는 한순간에 원래 나이의 마력을 잃은 노인으로 돌아가고 후반부 살짝의 조력마저 해준다. 엔딩 씬에선 평화롭게 하울의 성에 얹혀 사는 모습까지 나온다. 설리먼 또한 잠깐 하울과 대척점에 있었을 뿐 곧 의미없는 전쟁을 끝내고자 하며 악의 존재가 두드러지지 않아도 영화는 무사히 성장물로 잘 이어지다 행복한 끝을 맞는다. 이건 지브리가 가진 특징이다. 토토로에선 아예 악의 존재 자체가 없고, 키키도 마찬가지다. 흑백의 대립만이 스토리의 유일은 아니라는 것을 지브리를 보면 느낀다.


그런데 이게 원작 소설이 있다더라. 정말 전혀 몰랐던 얘기다. 애니메이션이 너무 유명한 탓이다. 원작을 보려다 괴리감이 심하다고 해서 감상을 쓰기 전에 찾아보지 않았다. 이제 한 번 찾아볼 예정인데 소피 캐릭터가 생각보다 많이 다르다고 해서 벌써 두렵다. 나는 원작이 있는 리메이크를 볼 때 굳이 원작을 고려하지 않는 편이지만 세 얼간이 급으로 다르면 호러가 될 것 같다. 솔직히 그건 책보다 영화가 더 재밌었다. 재미있게 읽게 된다면 추가해서 책 감상도 쓰게 되지 않을까? 색다른 매력을 찾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만 마무리 지으려다 생각났는데, 이 영화를 본 뒤 또 하나의 매력을 느끼고 싶다면 가수 이진아 씨의 하울의 움직이는 성 OST 인생의 회전목마 한국어 가사 버전 커버를 들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이진아는 천재다.


https://vod.jtbc.joins.com/player/clip/vo10298486 ◀ 이진아 ver. 하울의 움직이는 성 메인 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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