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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희 마리아 Jul 10. 2024

부자

전 부자가 싫습니다. 텔레비전에 나와서 자신들의 궁전, 와인 창고를 자랑질하고 있는 저들이… 황금 욕조에 모유를 가득 담아 목욕을 하든 말든, 그걸 대체 왜 저한테까지 보여주는 건가요? 전 그들과 더불어 사는 법을 모르겠습니다.”

2015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벨라루스 작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붉은 인간의 최후』 중. 공산주의를 무너뜨린 모든 것에 대한 증언록이다. 알렉시예비치는 책을 쓰기 위해 1990년대 소비에트연방의 몰락을 경험한 1000여 명의 시민을 20년에 걸쳐 인터뷰했다.
중앙일보 아침의 문장, 2024.5.27, 28면


요즘 우리 사회의 단면이기도 하다. 모든 매체들에서 보여주는 남이 사는 모습, 왜 그것들을 보여주고 봐야 하는지...

예전에는 몰래 엿보는 것이었다면 요즘은 대놓고 보여주기이다. 그 보여주기가 실제여도 문제가 있고 사실이 아니라면 더 문제가 있다.

부러워하기 위해서 남의 삶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을까.

부자가 좋으냐, 싫으냐 하면 싫다고 말할 자신이 없다. 속마음으로는 부자가 좋다 고 답할 것이다.

그렇지만  부자가 좋으냐, 잘 사는 사람이 좋으냐라고 물으면 망설일 것이다.

마음에서는 부자가 좋다라고 대답하고 싶지만 부자가 과연 잘 사는 사람일까에 생각이 미치면 마냥 부자가 좋다라고만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생각할 것이다. 부자는 누구인가? 잘 사는 사람은 누구인가? 그리고 조심스럽게 대답할 것이다. 부자이면서 잘 사는 사람이 좋다.

승리를 쟁취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모든 경기에서 빠지지 않는 표어가 정정당당한 경쟁이다. 편법을 쓰지 않고 부정을 하지 않고 실력대로 겨루고 정당하게 평가받자는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우리는 노력에 플러스알파가  작용하기를 기대한다. 그래서 최선을 다해서 연습하고  마지막에는 기도한다. 운이 더해지기를  바란다.

이런 인간의 심리를 누가 나쁘다고 하겠는가. 약한 인간인지라 내가 할 수 있는 능력 밖의 초월적인 영역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을....

그런데, 문제는 그 까지 내가 만들어 내려고 하는 것이다.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승리만 하면  된다는 집착이다.

그래서 승리하고도 만 천하에 망신을 당하고, 오랜 세월 동안의 뼈를 깎는 노력이 한순간의 수포로 돌아가일들 보고 얼마나 아까워하고 안타까워했는가.

잘 사는 사람을 스스로에게 성실하고 정직하고 남에게 배려와 희망을 주는 사람이라고 정의하고 싶다.

부자이면서 잘 사는 사람이 되고 싶다.
정정당당한 승리자가 되고 싶다.
남에게 희망을 주고 힘이 되는 부자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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