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나보다 점쟁이를 더 믿는다는 거야?

돈과 신용(8)

by 올리브그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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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간에도 돈과 신용거래를 하지 않는 것이 아경의 철칙이다.


젊은 시절 아경은 살다가 답답할 때, 속된 말로 <점쟁이>라고 하는 이들을 찾아갔었다.


신내림을 받은 이는 한번 만나봤는데, 그 기에 영향을 받은 것 인지 곧바로 좋지 않은 일이 생기는 바람에 사주풀이를 하는 이들을 주로 만났다.


<명리학>을 근거로 한 사주팔자는 인간의 운명을 점치는 것 같지만, 사실 자신이 타고난 명(命)을 어떻게 운전(運轉)하는 것이 좋은 지 알려주는 것이다.


지금도 아경은 사주풀이가 넘치는 것은 덜어내고 부족한 것은 채우면서 살아가는데 참고할 만한 것으로 여기고 있다.


아경이 만났던 명리학자들은 한결같이 아경에게 주의를 주었다.


<남에게 돈을 빌려주면 절대 돌려받지 못할 팔자다. 돈을 빌려주면 사람과 돈을 다 잃는다>


이 말은 <빌려줄 때는 앉아서 빌려주고, 받을 때는 서서 받는다>는 말과 일맥상통하니 <다 아는 거야>라고 말할 수 있지만 알면서도 남에게 돈 빌려주고 떼이는 이들이 부지기수다.


실제로 아경의 집안에서도 돈을 빌려주고 돌려받지 못해 법적 소송까지 갔던 사건이 있었다.


그 당시 채무자는 아경에게 전화해서 정말 갚을 돈이 없으니 소송을 말려달라고 부탁을 했었다.


또한 아경의 어머니도 돈을 빌려주고 돌려받지 못해 속을 끓였다. 결국 그 채무자는 끝까지 돈을 갚지 않았다.


아경의 대학 동기의 어머니도 오랜 벗에게 수천 만원을 빌려주었는데, 그 친구가 돈은 갚지 않으면서 모피코트에 보석을 구매하고 해외여행을 즐기면서 친구의 어머니를 조롱해서 많이 속상해하신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속 좁은 아경이가 그런 일을 당했다면, 약 올라서 죽을 지경이었을 것이다.


친구 집에 놀러 갔다가 친구 어머니를 뵈었는데, 역시 표정이 밝지 않고 침울해 보이셨다.


결과적으로 아경은 자신의 사주를 참고 삼아 돈을 빌려주지 않기로 결심했다.


<돈을 빌려줘서 돈과 사람을 잃는다면, 차라리 사람만 잃자>


그러다가 결혼한 언니가 아경에게 ○천만 원을 빌려달라고 했다.


아경은 “이자는 얼마 줄 건데?”라고 물었다.


돈 빌려주면 절대 안 되는 팔자라는 것을 깜박한 것이다.


다행히도 언니가 “이자 줄 거면 왜 너한테 빌리니? 은행에서 빌리지.”라고 싹퉁머리 없이 말하는 바람에 아경은 기분이 상했다.


그래서 소리 질렀다.


“꺼져!”


그리고 몇 년 후 남동생이 결혼하면서 ○천만 원을 빌려달라고 했다.


다행히 언니와는 달리 동생은 은행에 이자를 줄 바에는 누나에게 주겠다고 했다.


솔깃했다.


그러나 아경은 고민했다.


<돈>보다는 <사람>을 잃는다는 말이 영 걸렸다.


아경은 언니와는 달리 동생과는 사이좋게 지내고 싶었다.


그래서 선배들에게 조언을 구했는데, 다들 말렸다.


어떤 선배는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선배는 아경보다 나이도 훨씬 많고, 기혼에 아들만 둘 두셨는데 본인이 남동생 입장으로 누나에게 돈을 빌렸다고 했다.


“근데 말이야, 이상하지. 누나가 돈을 갚으라고 할 때마다 자꾸 화가 나는 거야. 마치 내 돈을 빼앗기는 기분이랄까? 아직까지 갚지 않았어. 누나가 돈을 돌려 달라고 하면 <내가 누나 돈 떼먹을까 봐 그래? 나를 못 믿어?> 하면서 아직 버티고 있지.”


“너무하신 것 아니에요? 돈 있으면서 안 갚는다는 말이잖아요.”


놀란 아경이 선배에게 그렇게 말하자, 선배는 그냥 웃었다.


“그렇지. 근데 그게 그렇더라고. 갚으려니 돈이 너무 아깝더라고. 누나 돈이 내 돈 같고 말이야. 가족이잖아. 그러니까 아경은 빌려주지 마. 지금 누나랑 나 사이 안 좋아졌어.”


그리고 선배는 누나 돈은 안 갚으면서 최근에 고급 산악자전거를 샀다고 했다.


결국 아경은 그날 저녁 동생에게 말했다.


“점쟁이가 내 팔자가 돈을 빌려주면 돈과 사람을 모두 잃는단다. 그래서 안돼”


동생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지금 나보다 그 점쟁이를 더 믿는다는 거야?”


아경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컴퓨터로 하는 카드게임에 집중했다.


결국 동생은 은행에서 대출을 받았고, 그것으로 마무리가 되었다.


그 이후부터 현재까지 아경과 동생과의 관계는 여전히 괜찮다.


가족들에게도 이럴진대 아경이 다른 이들에게 돈을 빌려주는 일은 없었다.


누군가 돈을 빌려달라고 하면 어김없이 점쟁이의 말을 고대로 인용하며 거절했다.


심지어 "나랑 그만 만나려면 돈 빌려달라고 해."라고 했다.


물론 아경도 남에게 돈을 빌려달라고 하지 않았다.


그녀의 삶의 원칙 중에는 중요한 두 가지가 있었다.


<내가 하기 싫은 일은 남도 하기 싫은 일이다>


<남에게 아쉬운 소리 하지 말자>


아경도 돈이 모자라면 은행에 가서 대출을 받아 이자를 꼬박꼬박 납부하고 원금을 갚았다.


가족에게 돈을 빌려주지는 않았지만 그렇게 인색하지도 않았다.


동생의 경우에는 결혼축의금, 회사를 그만두고 해외로 나갈 때 찬조금, 귀국해서 창업을 한다고 할 때 격려금을 주었다.


집안 행사 시에는 일부를 부담했고, 밥도 잘 샀다.


가족과 맛있는 밥을 먹는 것은 그녀의 즐거움이었다.


언니의 경우에는 두 조카에게 쏟아부었다.


아경은 <나만한 이모도 없다>는 자부심이 있었다.


반면 아경은 비혼에 자식도 없는지라 단 한 푼도 형제자매에게 돈을 받아 본 적이 없었다.


어차피 돌려받으려고 준 것이 아니므로 괜찮았다.


그 일이 있기 전 까지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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