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허가 공부방을 했습니다만

겨울 방학을 맞이한 엄마이자 꽃떡지기

by 꽃떡지기

공방 중앙을 차지하는 6인용 식탁. 앙금 꽃 재료가 한 아름 펼쳐져 있던 작업대. 겨울에는 이야기가 좀 달라졌다. 쉿, 6인용 포세린 식탁에서는 무허가 공부방이 펼쳐졌다.


좁디좁은 공방 한가운데, 내 작업대를 떡하니 차지한 주인공은 우리 집 초딩이다. 고객이 원하는 주문 시간에 맞춰 공방에서 꽃떡을 만들어야 하기에, 1+1 행사 상품처럼 우리는 붙어 다녔다. 공식적인 이유로는, 겨울방학을 맞이한 초딩이를 홀로 집에 둘 수 없다는 것. 비공식적으로는, 초딩이 학습 지도를 위해서다. 그렇다, 학습 지도라 쓰고 밀착 감시라 말하기 위해 산만한 초딩이를 가방 위 키링처럼 데리고 다녔다.



우리의 시작은 밤새 냉기를 가득 품은 공방 문을 열고 들어서는 일부터였다. '엄마 너무 추워, 추워, 추워, 추워요!!' 징징거림을 한 번이라도 덜 듣기 위해 난방기부터 얼른 켰다. 초딩이는 분홍색 보조 가방에서 문제집을 꺼내 풀기 시작했다. 아직 물러가지 못한 냉기에 맞서, 한껏 어깨를 움츠린 채 앉아 있는 초딩이. 나 역시 여전히 목도리를 풀지 못한 채 빨빨거리며 분주하게 작업을 시작했다.


7평 남짓한 공방 안에서 각자의 시간을 채웠다. 초딩이가 삐뚤빼뚤한 글씨로 정답을 쏟아낸 문제집을 한쪽에 쌓아두면, 나는 손을 씻고 얼룩덜룩한 앞치마를 벗어뒀다. 오른손에는 초록색 색연필을, 왼손에는 답안지를 들고 문제집 앞으로 갔다. 문제집 위에 동그라미가 많으면 '고객님 사랑합니다~'와 같은 솔 톤으로 아이를 칭찬했다. 물론 오답으로 뒤엉킨 결과에는, 신기전에서 50발 화살이 발사되듯 잔소리가 폭격되었다.


그래도 나름 당근과 채찍을 적절히 사용했다. 정신을 다잡기 위해 산책 시간을 주거나, 달달한 간식도 주었다. 가끔은 초딩이가 좋아하는 백설기와 초코 설기도 뇌물처럼 바쳤다. 노트북 사용 또한 허락했다. 요새 초딩이는 타자 연습과 코딩 게임에 흥미가 있다. 아, 근래에 시작한 패드 학습기도 해야 한다. 해야만 할 것이 많아 안쓰럽긴 하지만, 시대적 흐름에 맞춰 최소한으로 준비해야 하기에 어쩔 수 없다.



이곳, 무허가 공부방에서는 중식도 무료로 제공해 주었다. 안 그래도 나 혼자 먹는 밥도 귀찮은데, 초딩이와 함께 하는 점심은 더더더더더 신경이 쓰였다.


아이들 밥에 관해, 주변에서 들은 이야기는 나를 더 절망스럽게 했다. 대학생은 멀리까지 왔다 갔다 하는 게 안쓰러워서 정성껏 밥을 차려주고. 고등학생은 공부에 힘쓰라고 좋아하는 것 위주로 푸짐하게 차려주고. 중학생은 그저 메뉴를 말하는 것에 감격해 이것저것 사다 나르기에 바쁘고, 초등 고학년은 뒤돌아서면 배고프다고 하니 밥상 다리 부러지게 차려줄 수밖에 없다고들 한다.


초등 고학년을 목전에 바라보고 있는 우리 집 초딩도 눈 뜨면 '배고파요, 밥 주세요'를 외치니, 과히 언니들 말이 거짓이 아님을 체감 중이다. 그렇기에 역시나 매일 아침 '오늘 점심은 뭘 차려야 하나'를 고민하며 머리를 뜯어댔다. 정말 시간을 낼 수 없을 때는 집에서 바리바리 싸 온 반찬통을 꺼내 와 점심밥을 먹었다. 집에 가서 밥을 먹을 수 있는 시간이 허락한다면 다시 집으로 향하곤 했다.



아무래도 예약받아서 제품을 준비하기에 유동적으로 시간을 쪼개서 쓸 수 있다는 게 1인 공방의 가장 큰 장점 같다. 거기다가 방학을 맞은 아이를 누구의 눈치를 보지 않고 데려올 수 있다니. 이 또한 아이 엄마로서 정말 축복받은 현장이다.


하지만.

얼마나 더 커야 혼자 집에 있으면서 제 할 일을 다 할 수 있을까?


초딩이가 공부를 하던 공방은 고요한 적막으로 가득 차곤 했다. 스피커 빵빵하게 홀로 듣던 음악은 옛날 옛적이 되어버렸다. 점심시간은 전투적으로 변했다. 느긋하게 유튜브를 보며 낄낄대던 내 휴식 시간은 꿈처럼 아른해졌다. 제일 불쌍해진 건 내 두 발이었다. 찬바람을 견디기 위해 구매한 털 실내화는 자연스럽게 초딩이가, 나는 봄여름용 일반 실내화를 신어야만 했다. 나중에 정말 발이 시리면 바꿔 신곤 했다.



언제나 일관되게 주장하는 바이지만, 무허가 공부방은 하고 싶지 않다. 시시때때로 공부를 봐주고, 밥을 챙기고, 학원 시간에 맞춰 데려다주기 위해 내 작업 속도를 조절하는 모든 행동이 나에게는 꽤 큰 정신적 노동이었다. 그래도 먼 훗날이 되면 이 또한 추억이 되겠지, 라는 희망 회로를 돌려 본다. 원대한 꿈같은 미래를 꿈꾸며 오늘을 감사히 여겨야겠다.


사실 이 글의 초고를 썼을 때는 방학이 절반도 지나지 않았다. 죄 없는 1월 달력을 째려보며 한숨을 쉬었다. 공부방과 공방을 겸업하며, 도서관 초등 특강을 듣기 위해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다녔다. 달력 한 장을 떼어내 2월이 되었다. 겨울답게 소아청소년과도 들락날락했고, 여행을 가장한 답사도 다녀왔다. 아이를 위한다고 공표하지만, 내가 가고 싶은 박물관 몇 군데를 데리고 다녔더니 시간이 훌쩍 가버렸다. 달력 한 장을 또 넘겨 3월이 되었다. 믿기지 않지만 방학이 다 가버렸다. 앗싸!


봄과 함께 개학이 오셨다. 공부방은 영업 종료를 했고, 공방은 여전히 영업 중이다. 황송하다. 이 봄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