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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ace Jeung Feb 13. 2016

어른이 된다는 건

어린아이와 같은 풍부한 감수성을 주체할 수 없는 나에게

#01

작년에 우연히 알게 된 친구가 있다.
그는 참으로 무덤덤한 친구다.
친구들 중에 가장 무덤덤하다고 느낄 만큼.


그 친구와 달리 나는 너무도 감수성이 풍부하다.

'감수성이 풍부하다는 것'은 다른 사람들이 그냥 지나칠 수 있는 많은 것들을 느끼고 흡수할 수 있는 스펀지의 면적이 크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예민한 더듬이를 가져서 너무 피곤해."라고 툴툴거리곤 한다. 예민한 감수성이 때로는 나를 힘겹게 만들기 때문이다.  


어제 그 친구를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던 중에 "시간과 돈이 무한히 주어진다면, 넌 뭘 할 거야?"라는 질문을 했다.


그에게서 "난 그 돈을 굴려서 더 많은 이익을 창출할 거야."라는 대답이 나왔다.

고개를  갸우뚱하며 나는 이렇게 말했다.

"음, 나는 그저 재미있는 책을 읽고 여행을 가고 사진을 찍고 싶어. 집 밖으로 나오는 일은 내게 너무 신나는 일이야. 그리고 책을 읽고 여행을 하고 사진을 찍고 사람을 만나는 일, 모두. 난 그냥  놀고먹고 싶나 봐."

이렇게 말하면서 갑자기 내 입에서 튀어나온 질문이 있었다. "에? 그럼 일은 왜 하는 걸까? 돈은 왜 버는 거지?"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우리는 지금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고 있잖아, 내가 돈을 버는 이유는 자유롭기 위해서야. 난 내가 무언가 하고 싶을 때 '돈' 때문에 자유롭지 못한 상황만큼은 겪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해."  


무덤덤한 그의 대답에 나는 어느 정도 설득이 된 것 같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나는 스스로에게 말했다. '늘 신나고 싶고, 재미있고 싶지만 조금은 무덤덤하게 지루함도 참을 줄 알아야지. 돈은 자유롭기 위해서 버는 것이고, 일은 돈을 벌기 위해 하는 거야. 그러니까 때때로 재미없는 일도 필요하다면 무덤덤하게 할 필요가 있어. 대학원에 진학하는 이유도 네가 일을 하고 자유롭기 위해서였네. 어른이 된다는 건 나 스스로를 책임질 줄 아는 거고, 돈을 벌어서 생계를 책임지고 자유로운 상태를 유지하는 거야. 신나는 건 그만 찾고 더듬이를 좀 꺼보자.'


#02

감수성이 풍부한 것이 힘겨웠던 나.

자유로운 영혼. 모든 것이 놀이가 되어야 하고, 늘 재미있는 자극이 필요한 나.

하지만 신나고 기쁜 것 만큼이나 우울하고 슬픈 감정도 풍부하게 느끼는 나의 커다란 스펀지가 야속했고, 오늘부터 나는 더듬이를 끄고 일하고 공부하기로 작정했다.

책을 빌리러 도서관에 갔다가 신작 코너에서 우연히 만난 책.

요시모토 바나나의 "어른이 된다는 건".

자연스러운 끌림에 손을 뻗어 집으로 데려왔다.


더듬이를 끄고 공부했던 오늘, 더듬이를 껐음에도 재미있었던 시간. 스스로에게 '어른이 되려면 더듬이를 꺼야 한다'고 다그쳤던 나에게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인간은 어렸을 때부터 사실 그렇게 변하지 않는 법이에요. 그래서 인생이란 멋진 것이기도 하지만요!
어른이 된 후에는 어린 시절을 되찾아 자신의 본디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일단 어른이 되고 나면, 모든 상황에서 가장 필요한 것이 바로 어린 시절의 감각이죠. 인생을 헤쳐 나가기 위한 길잡이는 그것밖에 없습니다. 나이가 몇 살이든 직업이 무엇이든 그건 다르지 않아요.


'어렸을  때부터 사실 그렇게 변하지 않는다고?'

'나의 본디 모습으로 돌아가라고?'

'어린 시절에 감각이 필요하다니?'

군더더기를 버리고 솔직해지기로 했던 나는 스스로에게 솔직하긴 커녕 나의 감수성, 감각 더듬이를 꺼버렸던 것이다.

나의 감각들, 풍부한 감수성이 인생을 헤쳐 나가기 위한 길잡이가 된다니.

글을 읽으며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03

무덤덤한 그 친구에게 나는 "너는 쉴 때 뭐해? 뭐가 재미있어?"라고도 물었다.

그는 "내 쉼은 잠자기야. 그리고 난 재미있는 것 보다 해야 할 일과 하지 않아도 될 일을 구분해서 그냥 해. 꼭 재미가 있어야 하는 걸까?"라고 대답했다.

순간 조금 놀랐다. 그리고 지금껏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는 늘 재미를 추구하는 놀이 중독자였다는 것, 그리고 쉬는 시간에 책을 읽는 나의 일상이 쉼이 없는 것이 아니라 모든 순간이 쉼이었던 것을.
결국 나는 내 삶을 늘 재미있게 여겼던 것이다.


내게 책은 여행을 하고 사진을 찍고 사람들을 만나는 것 만큼이나 새로운 경험을 하게 하는 존재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이 나의 쉼에 대해 고리타분하게 생각한다는 느낌을 받았었고, 나는 만나는 사람들마다 "정말 재미있게 노는 게 뭐라고 생각해?"라는 질문을 던지곤 했다.


요시모토 바나나, 그녀는 외로웠던 중학생 시절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생각했다.

'난 스스로의 외로움과 권태로움, 심심한 순간들을 여유롭게 채워가는 재밋거리들이 무엇인지 아는 어른이구나. 이건 나를 잘 알고 있다는 걸 의미하고, 그만큼 나한테 여유가 생겼다는 거구나.'라고.


지금 생각해보면 우울증이었던 것 같은 중학생 시절_외로움을 경험했기에, 그 후 어른이 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괴롭고 힘겨운 일은 자신의 깊은 곳까지 뒤틀어 놓기도 하고 또 그 당시에는 정말 괴롭기도 하지만 나중에는 반드시 어떤 토대가 되기 마련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며 견디는 수밖에 없죠. 비참하고 하찮은 자신과 마주하고 보내는 모래를 씹는 듯한 나날은 인생에서는 어쩌면 필수 과목일 테니까요.

하지만 저 역시 그때는 아직 어른이 아니었습니다. 그저 외로움에 허우적거리는,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는 상태였어요. 그런데도 어떻게든 친구를 만들어 하루하루를 헤쳐 나갔어요. 지금의 저라면 도중에 차를 마시거나 뭔가  사 먹기도 하고, 책방에 들를 구실도 만들면서 여러 가지로 재밋거리를 찾았겠지만, 그 무렵의 제게는 그럴 여유가 없었습니다.



#04

가장 마주하기 어려웠던, 우울함과  슬픔마저 풍부하게 느끼는 나.

"어른이라면 더듬이를 끄고 공과 사를 구분할 수 있어야 해."라는 말로 다그치며 억누르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하지만 요시모토 바나나는 아버지의 죽음과 함께 맞이한 슬픔을 받아들이며 슬픔을 억누르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을 내게 일러주었다.
내 안에 엉엉 우는 어린아이를 애써서 거기 없다고 여기지 않는 것. 그러면  마음속에 공간이 생겨서 나를 든든하게 붙잡아 준다고 한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슬픔과 우울함을 느끼지 않도록 더듬이를 끄는 것이 아니라 "어린아이인 자신을 살갑게 보듬고 어른으로 살아가는 것"이었다.


이제 어쩌면 아버지와 어머니가 메밀국수를 먹으러 이 집에 오는 일은 영원히 없겠네. 그렇게 말로 해 버리고 나면 슬퍼서 견딜 수가 없을 테니까. 아무 생각도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럴 수 있었던 것은 제가 어른이 되었기 때문이겠죠. 어쩌면 어렸을 때처럼 엉엉 울면서 떼를 부리고 싶었겠지만, 그 마음은 내면에 꾹 억누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렇게 생각해요.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내면에서 엉엉 우는 어린아이를 인정하는 것이라고요. 애써서 거기에 없다고 여기지 않는 것이라고요. 그러면 마음속에 공간이 생겨, 자신을 든든하게 붙잡아 주거든요.

나이를 얼마나 먹든 그건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즉 어른이 된다는 것은 어린아이인 자신을 살갑게 보듬고 어른으로 살아가는 것이죠.



#05

지금 이 순간부터

나의 풍부한 감수성을 힘겹다고 여기던 구린 생각을 버릴 것이다.


왜냐하면 나의 풍부한 감수성, 넓은 스펀지, 예민한 더듬이는 어린아이만이 가질 수 있는 에너지와 풍요로운 공간이기 때문이다.

무덤덤함 속에서는 느낄 수 없는 풍부한 것들을 느끼는 것에 감사할 것.

감수성의 더듬이로 다른 사람들의 필요를 읽을 수 있다는 장점을 살릴 것.

대신 스스로가 우울함이나 슬픈 감정들에 속아서

자아를 바닥으로 끌어내리려는 순간에는 '아, 내가 감정에 속고 있구나.'라고  인지하며 잠시 생각을 멈추고 더듬이 끌 것.


어른이 되면 모두들 '어린 시절로 돌아가고 싶어.'라고 말합니다. 왜일까요? 어린 시절에는 자기가 책임 지고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겠지요. 하지만 모두가 말하는 '어린 시절'이란, 어린아이만이 가질 수 있는 에너지와 풍요로운 공간 아닐까요.

저는 수업 중에 멍하니 창밖을 보거나 자는 일이 많았는데, 그 시간이 만들어 준 머릿속의 풍요로운 공간을 지금도 똑똑하게 떠올릴 수 있습니다. 좋지 않은 태도로 쓸데없이 시간을 보낸 듯하지만, 의미는 있었던 것이죠. 해야 할 일이 많은 어른의 생활 속에서 그런 에너지를 되찾기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여행을 떠나 눈에 보이는 경치라도 바뀌지 않는 한, 눈앞에 있는 것은 자신이 책임져야 할 공간뿐이니까요.

어린아이 같은 풍부함 에너지로 어른의 자유로운 결단을 내릴 수 있다면...
저도 그럴 수 있기를 늘 바라고 있답니다.


어린아이와 같은 풍부함의 에너지를 가지고

자유로운 어른으로 살아갈 내가

참으로 사랑스럽게 느껴지는 밤이다.


굳나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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