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은 왜 의사나 판사가 안되셨나요?”라는 말을 들었다.
“몹시 화가 나거나 비통할 때는 인간의 인생은 짧으며 우리는 곧 모두 무덤에 누워 있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상기하라.”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분노’에 관해 위와 같은 말을 남겼다. 그는 로마제국 16대 황제이자 스토아 학파 철학자로 <명상록>의 저자이다. 나는 이 말에 50%만 동의한다. 인생은 짧다. 모든 화를 굳이 참을 필요 없다고 생각한다. 화를 내야 하는 순간과 화내지 않아도 되는 상황을 분별하는 지혜만 갖추면 충분하지 않을까?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일에는 화를 내는 게 마땅하다. 얼마 전 출근길이었다. 만원 지하철에 서 있는 만삭의 임산부가 눈에 띄었다. 핑크색 배지를 가방에 달고 임산부석 앞 손잡이를 잡고 힘겹게 버티고 있었다. 핑크색 스티커가 붙은 자리에는 다리를 벌린 중년 남성이 신문을 보고 있었다. 임산부석임을 모를 리 없었다. 임산부가 앞에 서 있었지만 비키지 않았다. 힘들어 보여 내 자리를 양보했지만 괜찮다며 거절했다. 욱하는 마음에 임산부 자리에 앉아있는 남성을 조치해달라는 문자 민원을 넣었다. 방송이 나왔다. 쏟아지는 시선 때문인지 남성은 일어났고 임산부가 앉았다. 마땅한 권리를 침해하는 행동에 분노했다. 이럴 때는 화를 내는 게 마땅하지 않을까.
굳이 화내지 않아도 되는 경우가 있다. 본인이 상대에게 상처를 주는지 모르는 상황이다. 악의적이지 않은 상황이랄까. 특히 무지에서 비롯된 공격은 분노하지 않아도 된다. 학원에서 초등학교 고학년 아이들 ‘STEAM’ (과학(Science), 기술(Technology), 공학(Engineering), 미술(Arts), 수학(Mathematics), 미술(Arts)) 교육을 담당한다. 아이는 부모를 비롯한 어른의 가치관을 투사한다. 투사는 ‘내가 가진 생각이나 감정을 타인의 것으로 여기는 현상’을 의미한다.
수업 중, 의료기술에 인공지능이 활용된 사례를 설명했다. 한 아이가 손을 들고 “의사처럼 좋은 직업도 있는데, 선생님은 왜 여기서 이러고 계세요?”라고 말했다. 순간 분노가 나타났다. “선생님은 좋아하는 일 하면서 아주 잘살고 있는데?”라고 말하며 의연하게 넘겼다. 그 아이는 내게 상처를 주려는 의도가 아니었다. 좋은 직업을 가져야 한다는 주변 어른들의 욕망을 투사한 것일 뿐이었다. 직업에 귀천이 있다고 교육 한 어른의 잘못이라고 생각했다.
화를 내야 하는 상황과 그렇지 않은 상황을 구별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감성과 이성을 적절하게 활용하는 것이다. 감정적으로 분노가 일어도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분노를 제어할 수 있다. 앞서 말한 임산부의 일처럼 직접적인 내 일은 아니지만, 이성적으로 분노해야 할 때도 있다. 마음속 지혜를 활용해야 한다.
분노가 넘치는 세상이다. 예기치 못한 상황에서 분노가 치밀어 오르면 잠시 눈을 감고 마음속 지혜에게 물어보자. ‘지금은 화를 내야 하는 상황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