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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이정 Aug 19. 2018

B셔터로 찍는 사진

지나간 시공간은 돌아오지 않는다



  공항에서 들어오는 길에 고속도로를 탄다.

  2년만의 하이데라바드다.


  처음 인도에 들어오던 밤, 2012년을 마무리하던 즈음의 밤을 떠올려 본다. 자정을 넘어서 비행기가 내린 탓에 크리스마스가 갓 지난 참이었고, 오래 전 아기 예수가 태어났을 그곳만큼이나 적막한 밤이었다. 곳곳에 조롱조롱 매달려 있던 별 모양 등불 장식이 그나마 마음을 좀 환하게 해주기는 했으나, 그 아래 들개들과 더불어 누워 거적떼기를 덮고 있던 걸인들의 모습은 쓸쓸하고 초라했다. 그런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던 당시의 나는 꽤 놀랐던 기억이 난다.


  그때를 생각하면 격세지감이다. 정말 많은 게 변했다. 일단 예전에는 없었던 고속도로가 쭉 뻗어 있다. 그 도로를 따라 협죽도를 고르게 심어 두었고, 키 큰 야자나무도 멀리서부터 눈에 들어온다. 기억도 그렇게 고르게, 멀리서부터 차근차근 돌아온다.



  무얼 바라 여기까지 왔나, 하는 윤동주의 한 구절을 입내내어 본다. 그 시를 읽으며 느낀 무거움과 비슷한 무거움이 마음에서 떠나지 않는다. 오랜만에 만나는 얼굴들은 약속이나 한 것처럼 다들 그때 살던 집과 다른 곳에 살고 있어, 공간 배경이 예전과 같은 곳이라곤 즐겨 찾던 카페나 마트 정도뿐이다. 아주 작은 차이일 뿐인데 모든 게 낯익으면서도 낯설다. 그래서일까, 이 재회가 기쁘면서도 순도 100% 기쁨만 있는 것 같지는 않다. 그냥 꿈 속을 걸어다니는 기분이랄까. 너무 좋아서 꿈 같다는 관용구가 아니라, 정말로 잠시 후면 내 방 침대에서 일어나 “하이데라바드 꿈을 꿨어.” 라고 말할 것 같은 기분이었다.


  더 이상 이곳에 속해 있지 못한 것 같다는 울적함으로 사람들 주변을 빙빙 맴돌며 며칠을 보내다 문득 낯선 마음은 사라졌다. 탐색전이었던 걸까. 결국 마음을 다시 이곳에 끌어다 묶은 것도 사람들이었다. 반가움으로 환하게 빛나는 얼굴, 우리 사이에 여전히 애정이 있음을 굳게 확인해 주는 그 얼굴들이 가까이 다가와 내 손을 맞잡으면 마치 봉인이라도 해 두었던 것처럼 잊고 있던 감정이며 고민, 생각과 느낌들이 올올이 되살아났다. 무얼 바라 여기까지 왔나, 하는 시구는 그때부터 넣어두고 나는 시인의 다른 시구를 되뇌었다.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어제도 가고 오늘도 갈 나의 길 새로운 길.


  그 길을 찾아 어디로든 훌쩍 떠나 와야만 했다. 비록 좀 흔들리긴 했어도, 정신없이 굴러온 시간을 어떻게든 꺾어 잠시 접어두어야만 했던 게 맞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귀국 후 2년이나 지났는데 아직도 내 자신의 위치가 낯설었다. 인도에서의 시간이 끝나고 한국으로 돌아가자마자 갑자기 뒤집히는 일상을 견딜 자신이 없어 귀국 이틀만에 시작한 인턴 출근, 곧바로 이어진 복학, 졸업 준비와 이런저런 시험들, 모자란 시간, 잘 나오면 잘 나와서 불안하고 안 나오면 안 나와서 불안하던 점수, 내가 인도에서 2~3년을 사는 동안 취직하고 결혼하고 아이 낳고 어딘지 몰라도 나와는 한참 멀다는 느낌이 드는 어딘가에서 살고 있는 친구들. 너무 오랜만이라 오히려 안부를 나눌 수 없는 시간의 간극.


  내 자신이 마치 포맷된 구형 컴퓨터 같은 기분이었다. 다들 업데이트가 된 최신형으로 반짝거리는 삶을 살 때 나 혼자 구형 모니터를 들여다보며 당황하는 기분. 그러면서 나는 아주 옛날에 겪은, 잊고 살았던 모든 실패의 기억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걸 느꼈다. 그 실패들이 나를 감싸고 두려워서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는 기분에 옴짝달싹 못 하고 지냈다. 살면서 그래본 적도, 스스로가 그럴 거라고 생각해 본 적도 없었는데 어느새 우울함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우울한 감정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게 이렇게 힘들구나, 생각하면서도 그저 멍하니 망가져 가는 자신을 볼 힘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 모든 걸 떨치고 다시 이곳, 다시 인도. 내가 낯설지 않은 곳. 내가 가장 사랑 받고 사랑하면서, 활기차게 불꽃 같이 살았던 곳으로 돌아왔다. 몇 년을 살았어도 인도는 내게 늘 쉽지 않아서, 이번 여정도 부드럽게 흘러가지만은 않았다. 일정이 바뀌고 비행기가 취소되는 다사다난한 가운데 마침내 도착하고 멈춰서 보니 그제야 서서히, 아주 서서히 느껴지는 지난 날의 내가 있었다. 오자마자 거짓말처럼 불면증은 사라졌다. 10시에서 12시 사이에 잠들고 아침 7시면 거짓말처럼 눈을 반짝 뜨는 생활이 저절로 시작됐다. 물론 인도 공기에 마법이 걸려 있는 건 아닐 테니 딱히 여기가 어디여서라기보다는, 잠시 마음의 짐을 내려놓고 나를 정비할 시간이 필요했고 내 모든 짐이 다 있는 조국에서는 그게 쉽지 않았을 뿐이다.


   그래서 여기까지 오는 길 내내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도입부에 나오는 인디언들의 잠언을 오래오래 생각했다. 인디언들은 가끔 말을 멈추고 말에서 내려 자기가 온 방향을 돌아보며 서 있는데, 그 이유는 자기가 너무 빨리 달려서 자기 영혼이 못 따라올까봐 기다려주는 것이라는 말을.


  영영 잃기 전에 기다려야 할 마음이 누구에게나 있다. 바쁘고 혼잡한 현대 사회에선 이게 꼭 사치처럼 느껴지지만. 내가 조금 모자라고 부족한 게 죄도 아닌데 그렇다고 좀 쉬어가는 게 죄스럽다는 생각이 드는 건, 나만 느끼는 건 아닐 테지만. 그럼에도 그런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니 한 달의 시간을 쪼개어 인도로 돌아온 것이 실은 놓쳐 버린 마음 조각을 찾는 여행이었다.  배낭 동여매고 자아를 찾아 떠난다며 인도로 여행 가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던 나였는데, 우습게도 이제 내 영혼 구석을 메우러 인도로 여행을 왔다.




  고등학교 때 토이카메라에 열광했던 적이 있다. 외양뿐 아니라 결과물도 장난감처럼 어설펐고, 어딘가 모자란 그 느낌이 당시의 내 마음에 쏙 들었다. 그때 처음 산 카메라는 홀가였다. 35mm 필름을 쓰는 보통의 필름카메라와 달리 홀가는 120mm 필름을 써야 했다. 따로 구입하고 일일이 챙겨 쓰는 게 그때의 내겐 보통 큰 일이 아니었던지라 결국 몇 롤 찍지 못하고 장식품이 되었지만, 아무튼 우리 가족의 카메라가 아닌 나만의 카메라를 산 것은 처음이었으므로 길지 않은 설명서만큼은 제법 부지런히 들여다 보았다. 거기에는 B셔터에 대한 설명이 있었다.


  B셔터 모드로 촬영하면 셔터가 눈 깜빡이듯 순식간에 열렸다 닫히는 대신, 1시간이나 2시간처럼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천천히 열렸다 닫힌다. 그 시간 내내 렌즈 안에 들어오는 장면들을 필름 한 면 위에 고스란히 녹여 낸다. 별의 발자취도 그렇게 B셔터로 찍을 수 있다. 물론 품질만 놓고 보면 조악하다고도 할 수 있는 토이카메라로는 언감생심 꿈도 못 꿀 소리지만 아무튼 설명서가 말해주는 원리로는 그랬다.


  홀가 카메라로는 한 번도 써 보지 않은 그 셔터를, 나는 내 마음 속에서 눌러 두었다. 어느 노래의 제목처럼 기억을 걷는 시간. 이 여행 내내 나의 발자취를 차곡차곡 담으면 그 끝에 다음 발걸음이 자연스럽게 놓일 것이다.


그렇게 여행을 시작했다. 이 여행길에서 꼭 만나고 싶은 사람들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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