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9월
지금은 영화제마다 출석 도장을 찍고, 한정된 시간 안에 최대한 많은 영화를 보려고 잠과 밥을 걸러가며 하루 4번씩 상영관에 들어갑니다. 그러나 영화제에 처음 가볼 때만 해도, 하루에 영화를 2편 이상 본다는 선택지는 머릿속에 존재하지도 않았어요. 영화제가 뭔지도 몰랐고 그냥 인터넷을 뒤지다가 무슨 상영을 한다길래 궁금해서 예매를 해본 게 다였죠.
당시 백수였으므로 별생각 없이 갔던 것으로 기억해요.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 <브레드위너>라는 애니메이션을 봤습니다. 아프가니스탄의 골목을 헤매기 위해, 가족을 위해 남자의 옷차림을 한 작은 여자아이 이야기였고… 이후 <파르바나: 아프가니스탄의 눈물>이라는 제목으로 공개된 작품입니다. (지금은 왓챠와 웨이브에 있어요.)
나오는 길, 영화제라고 여기저기서 홍보 부스가 들어선 광장에서, 우연히 봅니다. 히잡을 쓴 여자가 그려진 책 표지. 만지작거려 봤지만 책이 너무 두꺼워서 망설였는데… 별안간 나타난 출판사 직원 분이 “이 책 진짜! 진짜! 좋아요!”라고 강조하셨습니다. 팔려고 하는 소리가 아니라 진짜 좋아서 하는 말임이 너무 느껴져, 기세에 밀려서 사 왔습니다. <나의 몫>이라는, 이란 소설이었어요.
한 편의 영화와 한 권의 영화로, 그전까지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여자들의 삶을 그려보게 됐습니다. 그 여자들은 인도에서 제가 자주 만나던, 만날 때마다 환하게 웃던, 그러다가도 제 손을 잡고 울던, 그러다가도 분주하게 먹을 걸 내어주던, 잊지 못할 여자들과 같은 옷차림을 하고 있었으므로… 아주 다른 이야기는 아닌지도 모르겠어요.
그때부터 영화관과 영화관, 영화제와 영화제를 돌며… 세상의 가장자리로 밀려나는 사람들, 밀려나지 않으려고 손아귀의 힘을 쓰는 사람들… 을 보았다고 생각합니다. 시리아, 홍콩, 미얀마, 아프가니스탄… 그런 곳의 이야기를 가장 잘 들을 수 있는 곳이, 제게는 영화제였거든요. SNS의 정제되지 않은 짤막한 영상으로 읽고 싶지 않았고, 뉴스처럼 개인이 가려진 이야기로 읽고 싶지도 않았고, 책처럼 나중에 후술한 이야기로 듣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영화를 통해, 촬영된 풋티지와 그걸 편집한 감독의 시선을 읽는 게,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습니다.
그런 날들이 쌓이면서 범위는 넓어져 갑니다. 남미 국가들의 군사 독재 이야기,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몰랐던 이야기를 듣습니다. 세계 곳곳에서 폭력은 물풀처럼 끈적하고 투명하게 흐르고 있었습니다. 평소엔 보이지 않지만.
가끔은 속 울렁거리는 풋티지 때문에 멀미할 각오를 하고 비장하게 상영관에 들어서며, 혹시 이런 것도 일종의 자해일까 우려도 됐어요. 아니면 선정적인 소재를 찾아, 다크 투어리즘을 다니는 그런 마음은 아닐까? 스스로를 의심하며 불편한 마음이 듭니다. 무엇보다도… 이 모든 게 대체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 그래, 내가 여기서 이걸 봤지. 그래서 뭐? 일개 1명인 내가 대체 뭘 할 수 있는데? 나는 대체 왜 이러고 있는 건데?
괴로워하면서도 몇 년 동안 그런 영화들을 찾아보고, 꾸준히 리뷰를 쓰면서, 제 안에는 기억-기록-해석에 대한 개똥철학이 차츰 생겨났습니다.
영화의 보여주기는 사실 적극적인 말하기이다. 무수한 이들의 피가 흘렀던 초원에 오늘날 얼마나 햇살이 곱고 들꽃이 살랑거리고 있는지, 단지 고운 들판을 보여줄 뿐인데 왜 우리는 참담해지는지. 이 적극적인 말하기가 없다면, 다시 말해 기록의 행위가 없다면 우리 눈에 그저 예쁜 초원으로만 보였을 것이다. 그토록 거대한 기억도 사라질 수 있다. 그러나 기록하고 전달하는 한, 조각도 이야기가 된다.
(영화 <카메라를 든 사람> 리뷰)
기록의 큐레이션을 기억이라 부를 수 있는가? 나는 여기에 결국 YES를 택했다. 어디까지가 '인간적'인 존재인가, 라는 질문에 결국 나는 이런 안드로이드를 만난다면 인간으로 인지하고 수용할 수밖에 없겠다는 대답을 한 셈이다. 그러나 이는 내가 인간이기 때문이다. (…) 기억을 가진 주체의 눈에 비추어 보이는 한, 기록의 큐레이션은 기억으로 해석될 수 있다. 인간 없이는 챗GPT가 오천 번쯤 업그레이드된다 해도 기록의 큐레이션에 머무를 뿐이다.
(영화 <애프터 양> 리뷰)
기억도 기록도 힘이 세다. 가끔은 이 말 자체가 구호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현실 정치와 모략이 판치는 세상에서 기억이 과연 얼마나 힘이 셀 수 있을까. 힘이 셌으면 하는 나의 바람이 구호처럼 맺힌 문장은 아닌가. 그러나 평생 동안 삶으로 기억하고 기록한 사람을 보니 이는 허망한 구호가 아니다. 실제 그의 기록 중에는 역사 교과서의 몇 줄 행방을 가르는 주효한 대목도 있었다. 목격한 일을 전하는 것이 인간의 일이라는 말 앞에서, 기억과 기록은 단순히 내 주장을 뒷받침하고 내 목소리를 크게 만들기 위해서가 아닌, 내가 참으로 인간 되기 위함임을 통감한다. 그러면 결국 생각이 다른 서로를 가르는 선은 딱 하나로 모인다. 우리는 인간으로서 인간을 소중히 여기는가?
(영화 <되살아나는 목소리> 리뷰)
다큐멘터리가 역사적 순간을 말할 때, 한 축이 기록이라면 다른 한 축에는 해석이 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이 영화는 해석을 통해 기록과 해석의 존재 의의를 동시에 비춘다. 기록을 읽어내는 과정에 관객을 흥미로운 방식으로 동참시키고는, 생각지도 못한 곳에 우리를 내려놓고 묻는다. 1960년대의 일에서 지금 여기 우리는 과연 자유로운지. 여전히 허울 좋은 말에 가려진 차별과 격리로 누군가를 투명하게 만드는 시도들은 없는지. 그 현실을 기록하고 해석하는 눈은 어디에 있는지.
(영화 <사적인 영화> 리뷰)
흔히들 기억하기 위해 기록이 중요하다고 합니다. 이 말만 놓고 보면 기록이 기억의 보조 도구인 것만 같습니다. 저는 이 일방적인 화살표를 살짝 쌍방으로 바꾸고, 그 둘 사이 ‘해석’을 살짝 끼워 넣어 삼각형을 만들고 싶습니다.
기록은 중요하죠. 하지만 기록을 읽고 해석하는 사람이 없다면 기록도 무의미합니다. 일차적으로 기록을 편집하며 해석한 감독의 눈이 있고, 그걸 읽고 이해하는 관객의 눈이 있습니다. 이렇게 해석하는 눈이 있을 때, 그 기록은 읽은 사람의 새로운 기억이 됩니다. 기억을 보조하는 게 아니라 또 다른 기억을 낳는 것이죠. 저는 기억-기록-해석이 삼각형의 세 꼭짓점처럼 기능한다고 믿습니다. 하나라도 없으면 도형은 무너진다고. 그러니 우리가 영화를 보고 책을 읽고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건, 무력감이라도 계속 이야기하는 건, 중요하다고요.
저는 스크린에서 증언하는 사람들의 얼굴을 마주친 적도 없고, 기록한 사람도 아닙니다. 단지 그 기록을 열람했고, 이제 그건 제 기억이기도 한 거죠. 한창 시리아 동 구타 지역 폭격이 심하던 시절, 사진마다 실려 있던… 피와 먼지에 뒤덮인 채 울지도 못하고 멍해져 있던 (그래서 아이답지 않게 느껴지던) 아이들의 얼굴을 기억합니다. 영화 <되살아나는 목소리>에서 제암리 학살 사건을 증언하던, 사건의 유일한 생존자 할머니의 고운 한복 결도요. 16살 나이로 홍콩 시위 현장을 뛰어다니며 의료진 역할을 하던 소년의 안경 너머 직선적인 눈빛도 기억합니다.
이 모든 건 이제 제 기억입니다.
그리고 이 글을 읽은 여러분의 기억이기도 해요.
가자지구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답이 나오지 않는 질문을 마음 한 구석에 팽개쳐 놓고 하루하루를 사는데, 갑자기 셀린 시아마 감독의 인스타 스토리가 올라왔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감독인데 인스타 잘 안 하시거든요. 무슨 일이지? 쓱 눌러보니 오랜만에 보는 얼굴에 눈에 띕니다. 영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주연이었던, 아델 에넬입니다.
어린 시절 배우 활동을 시작해 호평 일색을 받으며 커리어를 탄탄하게 쌓아온 배우였는데 몇 년 전 돌연 은퇴를 선언했습니다. 은퇴 사유는 “프랑스 영화 산업이 성범죄자에게 너무 안일하다”는 것. 그는 훌륭한 배우인 동시에, 미투 운동이 불거졌을 당시 본인이 어렸을 때 당시 감독에게 당한 성범죄를 폭로한 사람이었습니다. 세자르상 시상식에서 폴란스키 감독이 상을 받을 때 자리를 박차고 나가며 “아동성애자 브라보!” 하고 비꼴 만큼 거침없는 목소리를 내왔던 사람입니다. 좋은 배우를 볼 수 없다는 건 아쉽지만 어디서든 하고 싶은 일 하며 행복하길 바랄 뿐이었는데, 이렇게 얼굴을 보게 됩니다.
모자를 눌러쓰고, 미간에 단단한 주름이 일자로 새겨질 만큼 강단 있는 표정을 하고서… 가자지구의 상황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몇 년 동안 보이지 않던 배우는, 기자회견도 하고, 인스타그램도 개설했습니다. 자기가 앞으로 어떤 시민단체 활동을 할 거라고 설명하는데, “그게 지금 인간적으로 살 수 있는 유일한 방법 같아서” 한다고 합니다. 그레타 툰베리가 탄 구호선, 넬슨 만델라의 손자도 타고 한국인도 한 분 타셨다는 그 구호선에, 그도 곧 승선할 예정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선박이 영해에 진입하면 강경 대응하겠다고, 배를 나포하고 탑승자들을 장기 구금하겠다고 빳빳하게 매일 소리치던 때였어요. 그의 인스타그램을 팔로우하며, 지켜보는 눈이 하나라도 더해져서 그가 안전하길 바랐습니다.
그때 저는 부산국제영화제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영화 목록과 상영시간표를 펼쳐 놓고, 어떤 영화를 보고 어떤 글을 쓸까 고민하며 저녁 시간을 보내던 때였습니다. 가자지구에 관련된 영화도 몇 편 보입니다. 개중에 시간상 볼 수 있는 것들을 체크합니다. 그리고… 그중 한 영화는, 감독님이 저와 같은 시기에 부산에 계시다는 걸 알게 됩니다. 충동적으로, 어쩌면 아델 에넬이 한 말을 보며 그저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서… 인터뷰 신청서를 냅니다.
신청서가 수리될까? 일정은 가능할까? 전혀 모릅니다. 설령 성사가 된다고 해도 무슨 질문을 하고 싶은지, 아직 모르겠고요. 그래도 성사만 시켜주신다면 몸을 갈아 밤을 새워서라도 열심히 준비해서… 부족하고 모자라도 마음 하나만큼은 꾹꾹 눌러 담아, 또 하나의 기억과 기록과 해석을 남길 수 있지 않을까요.
이 모든 것들이 모여서 나를 어디로 데려갈지 나도 모르겠다,라고 일기에 썼습니다. 일단은 너무 먼 미래를 바라보지 말고, 성사될지 안 될지 모를 인터뷰도 지금은 생각하지 말고, 부산을 앞두고 당장 써야 할 글부터 쓰기로 합니다. 좋은 글을 뽑아내려고 애쓰지도 말고, 그냥 쓰레기 같은 글이라도 쓰자. 그래야 시작되겠지.
이 영화와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됐습니다.
식량 위기에 있어 가장 공신력 있는 보고서와 예술가들이 똑같은 소리를 내야 하는 환경을 언제까지 보고 있어야 할까. "영혼을 손에 붙이고 걷"는 예술가들이 더 이상 파괴되지 않도록, 먼 곳에서 평화를 빌며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한다. 아델 에넬처럼 나 또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상황을 견디기 어려워서, 이 영화를 앞세워 본다. 목소리를 듣고, 기록을 열람하고, 기억하고 해석하는 자리에 서는 것 또한 유의미함을 믿기에.
(영화 <영혼을 손에 품고 걷는다> 리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