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의 힘> 책리뷰 : 국가의 흥망성쇠를 결정짓는 요인을 밝히다
<지리의 힘> 북리뷰 : 국가의 흥망성쇠를 결정짓는 요인을 밝히는 책
* 이 글은 이동규 작가가 시민기자 자격으로 언론사 '오마이뉴스'에 송고한 기사 글의 원본입니다.
금수저 나라와 흙수저 나라
요즘 유행하는 말로 금수저와 흙수저가 있다. 부모의 재력과 재정적 지원에 따라 자녀의 삶이 얼마나 질적으로 좋은지 나쁜지를 일컫는 한국사회의 은어다. 그런데 여기 ‘지리적 특성’을 근거로 세계의 여러 나라들을 금수저 국가와 흙수저 국가로 구분하려는 책이 있다. 25년 이상 30개가 넘는 국제적인 분쟁 지역들을 취재한 베테랑 저널리스트, 팀 마샬의 저서 <지리의 힘>이다.
주변에 자신들을 괴롭히는 나라나 집단이 없고, 넓은 땅에 자원이 풍부하며, 기후가 온난한 곳에서 산다는 것은 축복이다. 그런데 이렇게 ‘축복받은 지리’는 그 구성원들에게 선천적으로 주어지는 것일 뿐 후천적으로 쟁취하기가 무척 어렵다는 점에서, 마치 사람으로 비유했을 때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는 것과 같다. 같은 논리로, 주변의 강대국과 적대 집단 때문에 싸움이 끊이질 않고, 좁은 땅에 자원도 없는데다, 기후마저 열악한 곳에서 산다는 것은 저주다.
이처럼 국가의 국경선과 주변국, 매장된 자원들과 선대부터 내려온 문화 등등을 부모의 재력에 비유한다면, 그러한 지리적 특성들이 속칭 얼마나 "은혜로운지"에 따라 세계 각지를 금수저국과 흙수저국으로 나누는 것도 무리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지리라는 감옥에 갇힌 사람들
이 책의 원제는 ‘지리의 수인’(Prisoners of Geography), 쉽게 말해 ‘지리라는 감옥에 갇힌 사람들’이다. 저자는 특정 국가의 흥망성쇠를 좌우하는 근본적이고도 치명적인 요소가 지리적 특성이라고 말한다. 국가의 번영과 쇠락의 키 플레이어를 지정학이라고 생각한다는 점에서, 이 책의 저자도 넓게 보면 <총, 균, 쇠>의 저자 재레드 다이아몬드와 비슷한 주장을 하고 있다. 한 나라의 정치 현실을 그 나라가 처한 지리적 특성들로 설명하는 것을 두고 ‘지정학’이라고 하는데, <지리의 힘>도 기본적으로는 지정학적 관점으로 쓰인 책이다.
책에서 다루고 있는 지역이 꽤 넓다. ‘중국, 미국, 서유럽, 러시아, 한국과 일본, 아프리카, 라틴 아메리카, 중동, 인도와 파키스탄, 북극’, 총 10개다. 책에서는 한 지역 한 지역씩 각각의 지역이 갖고 있는 지리적인 장·단점들을 나열하여 분석한다. 특정 지역에만 해당하는 지리적 요소들도 일부 있지만, 대체적으로는 10개 지역 모두에 적용되는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지정학적 요소들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상대적으로 핵심적인 요소들만을 기준으로 삼아서 책 속의 10개 지역을 필자 나름대로 단순하게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축복과 저주를 결정짓는 지리의 5대 특성
1. ‘천연자원 풍부함’ :
석탄, 석유, 가스 등의 물자나 에너지 자원이 풍부한 나라는 생산 활동과 무역에 유리하다. 생산 활동과 무역이 원활할수록 국가는 부강해질 수 있다. 책에서는 천연자원의 축복을 받은 대표적인 지역으로 미국을 꼽는다. 미국은 1800년대 이후부터 프랑스·스페인·멕시코·러시아로부터 차례차례 루이지애나, 플로리다, 캘리포니아, 알래스카를 사들이거나 이양 받았다.
모두 비옥한 토지와 수자원, 광물, 석유·가스 등을 자랑하는 곳들이다. 게다가 주변에 미국을 위협할만한 강대국도 없고, 유럽과도 거리상 멀다. 저자가 현존 세계 최강국인 미국이 앞으로도 패권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하는 이유들이다. 역설적이지만 기후온난화로 인해 빙하들이 녹아서 바닷길이 열리자, 새로운 자원 개척지로 북극이 각광받는 이유도 ‘천연자원의 풍부함’ 덕분이다.
2. ‘험준한 지형의 존재’ :
제 아무리 천연자원이 풍부해도 지역 안에서 물자들을 원활히 운송할 수 없으면 경제 발전이 더딜 수밖에 없다. 주로 거대한 산맥, 울창한 열대 우림, 폭포로 이어진 강, 사막과 고원 등등 험준한 지형들이 있으면 물자 교류에 방해를 받는다. 책에서는 라틴 아메리카와 아프리카를 그와 같은 지역들로 꼽는다. 라틴 아메리카 중에서 특히 브라질은 아마존 때문에 국내에서 물자 운송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라틴 아메리카 지역에서 그나마 문명화된 도시들이 주로 해안에 있고, 여러 나라들 중에서 아르헨티나만 미약하게나마 더 발전할 수 있는 이유도 험준한 지형이 적기 때문이다. 아프리카도 정글과 늪, 폭폭 등이 그들을 가난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설상가상으로 아프리카 지역은 대개 열대 기후인 탓에 각종 질병들까지 창궐하여 더더욱 문명화되기가 힘들다.
3. ‘주변 강대국과의 관계’ :
지리적으로 가까운 변두리에 어떤 나라들이 있는지도 국가의 성패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우선 스스로가 강대국이어서 주변국을 장악하려는 나라가 있다. 대표적으로 중국이 그러하다. 중국은 티벳, 신장 자치지구, 인도 등에 영향력을 행사하여 자원을 획득하고, 아시아 전역으로 지배권을 확장하려는 중이다. 심지어 그들은 남미와 아프리카에도 대규모로 투자 중이다. 뿐만 아니라 해양국이 되려는 야심까지 발휘하여 남중국해를 독점하려고 한다.
한편 초강대국들이 모인 지역은 아니지만, 강대국들의 전략적 요충지로서 전 세계의 귀추가 주목되는 지역도 있다. 바로 한반도, 그리고 미국의 우방국가인 일본이다. 한반도의 남쪽은 미국의 정치체제를 수호하는 최전선이다. 반면 북한은 중·러를 위시한 공산주의 체제의 최전선이다. 결국 이 지역의 성패는 남북한의 갈등이 어떠한 방식으로 진행되고 귀결되느냐에 따라 판가름 날 가능성이 높다.
4. ‘평야와 부동항의 존재’ :
예나 지금이나 평야는 곡물의 생산지로서 그 지역 일대의 먹을거리를 풍부하게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또 평야 지대는 평지라서 주변 지역과 문물을 교류하는 데 적합하다. 같은 유럽 땅인데도 서유럽 쪽이 동·남유럽보다 발전한 까닭이 이것 때문이다. 동유럽은 기후가 척박하고, 남유럽은 산악 지형이 많아 상대적으로 고립되어 있는 편이다. 한편 서유럽은 대서양에 인접해있어서 중세 이후 항로를 개척하여 해외 정복에 나설 수도 있었다.
반면 러시아는 서유럽과 상황이 정반대였다. 러시아의 영토는 방대하지만 평야 지대가 적고, 추운 날이 많다. 기온이 낮기 때문에 부동항, 즉 1년 내내 얼지 않는 항구를 보기 힘들다. 한마디로 곡창지대도 빈약하고, 외국에 진출할만한 교두보도 마땅치 않다. 러시아가 크림 반도에 지배권을 행사하려고 애쓰는 이유는 석유 수송로를 장악하기 위한 것도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부동항을 얻기 위해서다.
5. ‘민족·이념·종교 분열’ :
5가지의 ‘지리 감옥’ 중 가장 처참하고 비극적인 감옥은 내전 지역이다. 대부분 특정 집단들 간에 민족, 이념, 종교 등이 다를 때 내전이 벌어진다. 민족 간에 분열을 겪는 지역이 아프리카이고, 이념·종교 등이 달라 분열하는 곳이 중동 지역과 인도·파키스탄 지역이다. 그리고 이러한 갈등을 부추긴 근원은 제국주의 시절의 열강들이다.
식민주의 시대에 열강들은 자신들의 편의에 따라 아프리카, 중동, 인도·파키스탄 지역 안에 ‘직선’으로 국경선을 설정했다. 원래 이 지역에는 민족과 이념·종교 분파에 따라 전통적이고 자연적으로 형성된 경계선들이 있었다. 그런데 열강들은 이를 무시하고, 민족·이념·종교가 이질적인 집단들끼리 같은 국가에 살도록 국경을 만들었다. 이들 지역은 책 속에서 제시된 10개 지역들 중에서 저자가 생각하기에 가장 앞날이 우려되고 전망이 밝지 않은 지역으로 묘사되고 있다.
‘지리의 힘’은 번영을 이루는 절대 유일한 요인인가
이 책은 일석 삼조다. 이 책을 통해 지리학과 세계정세를 배우면서도, 각 지역에 얽힌 역사까지도 배울 수 있다. 따라서 이 책은 지리서이면서 정치서적이기도 하고, 역사책이기도 하다. 그리 두껍지 않은 분량 안에 꽤 많은 내용들이 명쾌하게 요약되어있다. 국제 이슈를 효율적으로 배우기에 이만한 분석서도 없을 듯하다.
그러나 책을 읽다보면 조금 석연찮은 생각도 든다. ‘지정학적 요건이 훌륭하다면 무조건적으로 번영하는 나라가 될 수 있는 것일까’, ‘훌륭한 지정학적 요건이라는 것은 시대나 상황에 따라 가변적인 개념인 것인가, 아니면 시대나 상황에 무관한 절대적인 개념인 것인가’하는 질문들이다.
일례로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라는 책에서는 국가의 흥망성쇠를 결정하는 키 플레이어가 지정학이 아니라, 권력과 부의 재분배가 민주적으로 이뤄지는 정치·경제 시스템이라고 말한다. 간단히 말해 ‘지리 결정론’은 위험한 발상이라는 의미이다.
책 <지리의 힘>에 대한 또 다른 반례로서 유럽의 역사를 들 수 있다. 항해술이 그다지 발달하지 않았던 고대 시절에는 지중해에 인접한 남유럽 지역이 주변 지역과 교류하기에 유리했던 반면, 원거리 항해술이 점차 발달한 근대부터는 대서양에 인접한 서유럽 지역이 해외 식민지를 개척하기에 더욱 적합했다고 생각할 여지도 있다. 이는 ‘훌륭한 지정학적 요건’이라는 것이 당대의 과학기술 문명에 따라 얼마든지 바뀌거나 달라질 수 있는, 가변적인 개념일 수도 있다는 뜻이다.
독자들이 책 <지리의 힘>을 읽으면서 구절구절마다 십분 공감하고 깨달음을 얻되, 결코 의구심을 버리지 말아야 할 부분들이 몇 개 있다면 바로 그 점들일 것이다. ‘지리의 힘’은 절대 유일한 요소가 아닐 수도, 절대 불변하는 개념이 아닐 수도 있다는 가능성들 말이다.
글머리에서 금수저·흙수저를 예로 들었으니 이에 비유하자면, ‘금수저는 무조건적으로 출세할 수밖에 없는 것일까’, ‘금수저가 되려면 시대를 막론하고 부모의 재력만 충분하면 되는 것일까, 아니면 시대가 변함에 따라 부모의 지위·권력까지 필요한 것일까’와 비슷한 맥락의 의문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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