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 지금 한국 영화는 어디에 서 있는가?

by 써니사이드업

한때 국내외에서 큰 찬사를 받았던 한국 영화는 지금 분명 위기의 한가운데 서 있습니다. 2000년대 이후 올드보이, 살인의 추억, 괴물 같은 작품들은 세계 영화계의 시선을 끌었고, 대중성과 예술성을 동시에 잡아내며 한국 영화의 저력을 입증했습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그 빛나는 서사가 점점 흐려지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의 빈 극장 (출처: 네이버 이미지)

코로나19 팬데믹은 결정적인 타격이었어요. 관객들이 극장을 찾기 어려워지면서 매표 수익은 급격히 줄었고, 관객이 사라진 극장은 제작자에게 안정적인 수익을 보장하지 못하게 되었죠. 수익이 줄면 투자는 위축되고, 제작이 지연되거나 무산되는 경우가 늘어났습니다. 제작자 입장에서는 흥행 가능성이 높은 장르만 선택할 수밖에 없었고, 결국 관객은 더 좁아진 선택지 속에서 비슷한 이야기를 반복해서 보게 되었습니다.


OTT에게 시청자를 빼앗기고 있는 극장 (출처: ChatGPT 생성 이미지)

그 공백을 메운 건 넷플릭스 같은 글로벌 OTT(Over The Top) 플랫폼이었습니다. OTT는 팬데믹 시기에 시청자를 빠르게 끌어들이며 한국 드라마와 영화의 해외 진출에 새로운 길을 열어주었어요. 오징어게임이 대표적인 사례지요. 그러나 이 흐름은 영화계에 이중의 압박을 안겼습니다. 관객은 극장을 떠나 OTT로 향했고, 투자와 제작도 OTT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기존의 극장 중심 산업 구조는 빠르게 무너져 내렸습니다. 영화는 더 이상 극장을 필수적 무대로 삼지 않게 되었고, 이는 곧 극장 생태계의 붕괴로 이어진 거예요.




영화 박하사탕 2000년 (출처: 네이버 영화 스틸 컷)

이런 환경 속에서 한국 영화는 점점 안전한 선택만을 반복하게 되었습니다. 범죄물, 스릴러, 가족 드라마 같은 장르가 여전히 흥행 가능성이 높다 보니, 제작자들은 거기에 기대려 했죠. 하지만 반복은 창작자에게는 매너리즘을, 관객에게는 피로감을 남겼습니다. 한때는 쉬리처럼 블록버스터 장르의 개척이 있었고, 박하사탕처럼 실험적인 예술 영화가 상업적 주목을 동시에 받던 시절도 있었는데요, 지금은 자본이 모험을 허락하지 않으니 실험적이고 날카로운 영화들이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습니다.


영화 괴물 2006년 (출처: 네이버 영화 스틸 컷)

사실 한국 영화가 세계에서 주목받았던 이유는 장르 영화를 잘 만들어서가 아니었습니다. 한국 영화만의 고유한 매력—‘감정의 직진성’과 ‘사회적 서사의 농밀함’—이 있었지요. ‘살인의 추억’은 연쇄살인이라는 범죄 장르 속에서 시대의 억압과 무력감을 드러냈고, ‘괴물’은 괴수 영화라는 외피 속에 한국 사회의 불신과 분노를 담아냈습니다. 이처럼 장르를 빌리면서도 현실을 정면으로 응시하는 힘, 인물의 고통을 있는 그대로 끌어올리는 감정의 밀도가 한국 영화의 힘이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그 본질에서 점점 멀어지는 것처럼 보입니다. 자본은 검증된 이야기만을 원하고, 제작자는 실험을 포기하며, 흥행을 위한 계산이 우선이 되어버린 거죠.


그렇다면 해답은 무엇일까요? 결국 본질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가장 ‘한국적인 이야기’를 통해 보편성을 획득하고, 감정과 서사의 밀도를 되살리는 것 외에는 뾰족한 길이 없습니다. 예컨대 봉준호의 ‘기생충’은 한국적 불평등 구조를 집요하게 파고들었지만, 동시에 전 세계가 공감할 수 있는 메시지를 전했기에 세계적 성공을 거둘 수 있었지요. 다시 말해 한국 영화의 경쟁력은 화려한 기술이나 장르적 세련됨보다, 바로 한국 사회가 지닌 고유한 서사적 힘에 있는 거예요.

영화 기생충 스틸 컷 2019년 (출처: 네이버 영화 스틸 컷)


동시에 산업 구조의 변화에 대한 대응도 필요합니다. OTT를 단순히 위협으로만 볼 게 아니라, 새로운 창작과 배급의 기회로 삼을 수 있는 전략이 필요합니다. 독립영화나 예술영화는 극장에서 살아남기 어렵지만, OTT에서는 특정 취향의 관객을 확보하며 안정적인 유통망을 찾을 수 있습니다. 글로벌 플랫폼과 협업하면서도 한국 영화가 고유의 정체성을 지킬 수 있도록, 제도적·산업적 장치가 마련된다면 위기 속에서도 새로운 가능성이 열릴 것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희망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팬데믹 상황에서도 자기 색을 밀어붙인 몇몇 작품들은 해외 영화제에서 호평을 받았고, 젊은 감독들은 단편영화, 독립영화, 온라인 공개 등 기존 시스템 밖에서 새로운 시도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디지털 기술과 저비용 제작 환경이 발달하면서, 오히려 신인 창작자들에게는 더 많은 실험의 기회가 열리고 있기도 해요.


따라서 지금 한국 영화는 위기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변화의 문턱에 서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 문턱을 넘어설 수 있는 열쇠는 다시 한번 ‘한국 영화다움’을 되찾는 데 있습니다. 현실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인간의 감정을 집요하게 끌어올리며, 사회의 균열을 예술적 서사로 승화시킬 때—한국 영화는 위기를 기회로 바꿀 수 있을 거예요. 그리고 그 순간, 우리는 또 한 번 세계가 주목하는 한국 영화의 부활을 목격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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